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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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어난 행동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행동이 일어나기까지 머릿속에서 그려진 사고가 글로 쓰여진다. 사람은 순간에도 부유하는 수많은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집착이라는 행동으로 귀결되는 하나의 목적지만 고집한 채 작가는 쉴새없이 주절거린다. 일관되게 집착만으로. 내가 그를집착하는건지 작가가 집착을하는 것인지 70페이지 남짓한 짧은 단편에 나는 작가와 사고를 교류하며 집착에 빠져든다. 사람을 쫒아 그를 흠모하고 타인을 미워하고 감정에 빠져드는 극히 당연한 논리가 작가의 글 안에서 수축되었다가 발산되고 평면의 이론을 뒤흔들며 실재와 시간의 흐름을 무의미하게했다.
아니 에르노는 당혹스러우며 파격적이지만, 그 어느것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치장한 모습으로 으레 평범한 나를 파괴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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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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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독립서점이 유행처럼 각자의 매장을 오픈할 즈음, 나는 사무실의 딱딱한 테이블에 앉아 팀장이 지시하는 책방 프로젝트를 따르고 있었다. 때문에 책방 무사가 사무실 근처의 조용한 언덕 위에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곳을 소규모 서점으로 생각하기보다 비즈니스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대상인지 여부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 당시 내게 그곳은 책방이라기보다 한 때 유행의 흐름에 편승해 생겨난 장소 그 이상은 안 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뒤늦게 그 책방이 주인이 된 이야기를 손에 쥐고 앉아 서점을 운영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독립서점을 취합하고 있던 그 당시의 나는 사무실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고, 계동에 있던 책방‘무사’ 또한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전이었다. 겉에서 바라보기에 마냥 낭만적이고, 시간과 여유가 남아서 책방이나 오픈했던 것 같던 유명세 있는 저명한 사람이 시간이나 죽일 심상으로 (이렇게 오해하고 있어 정말인지 참으로 죄송하다) 운영하는 것 같던 그 공간은 나의 철저한 고정관념으로 오해되었을 뿐이었다. 매달의 내역서를 보면 적자임에 분명하여 계산서를 정리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운영 상황과, 여성 운영자에게는 CCTV설치가 필수인 독립서점의 모양새는 날것을 드러낸 판타지였다. 마치 산타할아버지는 사실 너의 부모라고 기껏 모른 척해왔던 노골적인 진실에 맞닿은 것 같은 당혹감으로 나는 그 상황을 애써 못 본 척 외면해 왔는지 모른다. 독립서점이라는 네 음절의 소소한 개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프레임 안에 고이 사고를 접어 넣어 세상이 너무 각박하기에 나는 그런 판타지라도 누군가 지속하고 있다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의 글은 늘 내게 너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딱히 응원의 말 따윈 한 줄도 안 쓰여있는데 한 권을 후루룩 읽으면서 계약된 상황의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로 글을 쥐어짜는 작가의 상황과는 전혀 상반되게 나는 독특한 감명을 받는다. 이렇게 살아갔던 사람이 있구나. 단순히 책을 좋아하고 책이 좋아서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너무 당연한 조건과 환경의 일치함이 무료하게나만큼 재미없게도 그 사람의 인생이 된 것 같아서 나는 그 점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판타지로 오해하고 가공해서 곡해하지 않았는지 했다. 홀로 서서 내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다. 정답이 없는데 만들어 나아가려다 보니 자꾸 주변을 흘겨보고 잘하고 있는지 비교대상을 찾아 스스로를 재단하기 일쑤이다. 나보다 앞서나간 누군가를 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되는 나에게 작가의 글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돌이키게 하며 나는 그렇게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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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 사지 않아도 얻고, 버리지 않아도 비우는 제로웨이스트 비건의 삶
이은재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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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게 소비문화의 자본주의와 맞닿으면 새로운 트렌드가 된다. 그린워싱을 대변하는 또 다른 마케팅의 활로가 활짝 열렸을 때 많은 기업은 친환경과 녹색을 가장한 상품을 통해 대중의 소비를 독려하는 방식을 똑똑하고 착한 소비자로 치환하며 그들의 행동을 격려하기 마다하지 않았다. 방식이 어찌 되었든 하나라도 더 팔면 과정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후반부에서 지적하듯 이미 미니멀리즘은 대중들 속에서 보기 좋은 양태로 재단되며 소비되고,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인테리어나 무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서 대중에게 각인되어 버린 듯하다. 때문에 작가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이 이와 같이 따라가려는 부적절한 앞날을 우려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소비트렌드의 하나로써 사람들에게 사용될 하나의 모티브가 친환경으로 자리 잡은 건 확실한 듯하다. 모든 기업이 ESG경영이라는 거대한 명제하에 환경을 고려한다는 마케팅을 치밀하게 짜고 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묘한 수법으로 소비를 독려하기 위한 또 다른 기법임에 다름없었다. 적어도 제로웨이스트를 제창하면서 그들의 물건을 사주길 바란다는 것 차제가 모순 덩어리가 아니던가. 
제로웨이스트의 삶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들고 다니는 수고며, 쉽게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도착하는 빠른 배송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 타성의 노력에 젖어버린 현대인의 삶에서 과연 가능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들정도 이기 때문이다. 편함으로 가는 길은 매우 쉬운데 거꾸로 거슬러 되돌아가는 방법은 정말인지 구태여 선택하고 싶지 않다. 편의를 필수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당연함은 돈으로 환산되는 특별한 가치가 되었기에 이제는 모든 사고방식을 돈으로 변화하여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공유하기에 더더욱 불편을 향한 수고는 생략하고 싶을 따름이다. 때문에 한 개인이 일상에서 투명 페트병을 분리하고 뚜껑을 모으는 행동이 무슨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했다. 나 혼자 고기 안 먹고 비건을 지향한다고 해서 전 세계의 소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와 지구의 행복은 조금도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막연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작가와 같이 조금이라도 덜 쓰고 가려먹고 유난 떨면서 소비를 경계하고 있다. 그냥 내가 마음이 편할 뿐이다. 딱히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도 내 후손과 자녀들을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다. 대의를 위한 명분이라기에 내 행동의 실천이 너무도 초라함을 알고 있기에 큰 의미부여를 두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사소한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되고, 모두가 되고, 국가가 되면 또 다른 얘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집단성에 기대어 나는 조금이나마 안도를 할 따름이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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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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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로 이런 서술을 끌어낼 수 있는 작가는 “아니 에르노”가 유일무이 하겠지. 작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호불호가 분명하고 강렬할 수록 작품은 더 더욱 훌륭해지며 명작의 반열에 올라 겉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뜨겁게 타오를꺼야. 이도저도아닌 삶의 모호한 흔들림에 줏대없이 반응했다면 이제는 또렷하게 뭔가 나아갈 필요는 없을까 하고 고민하게되어. 작가는 누가 뭐라하든 광고에서 가식적으로 주창거리던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고 있네. 분명한건 매우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영감을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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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 이 정도면 충분해
제프 시나바거 지음, 이지혜 옮김 / 옐로브릭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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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변은 어찌나 풍족한지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나도 모른 채로 구매욕구의 함정에 빠져든다. (구매뿐만일까?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집중을 못하게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잡다한 이슈들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모든 영향력을 지배하려 든다) 한창 ‘지름신’과 ‘기업의 노예’라는 용어를 통해 스스로를 자학하는 현실의 자아를 살피는 대중의 행위는 끊임없는 구매의 루프에 빠진 개인을 묘사하는 더 이상 위트 있는 표현만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상업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매우 고달프다. 시간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광고의 재빠른 사탕발림은 혀를 내두르는 매끄러운 유혹으로 변모하여 단순한 편의를 필요로 만드는 사고의 제어를 급발진시킨다. 찰나의 순간은 그들에게 기회이자 절호의 전환점이다. 나의 사고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된 것인지 판단의 법정이 열리기도 전에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결제시스템은 아주 간단하고 사뿐한 봄바람처럼 내 마음에 잠시나마 영원할 것 같은 훈풍을 일으킨다.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제한하고 주변을 바라보며 베풀라는 작가의 철학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착하다. 이미 서점에는 절판되고 도서관에서도 서고를 뒤지는 사서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아마 무시무시한 욕구로 가득 찬 현실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 힘든 이 책의 의미 때문은 아닐까. 

고고하게 서서 풍성한 혹은 그 이상을 넘어 넘쳐나는 모든 것들에 거부의사를 표하고, 풍족함을 나누며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사상은 현실에서 파면되어 마땅한 불순한 의도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반기를 들고 싶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계속해서 사야 하는지, 누군가가 입고 누군가가 쓰고 멋들어지게 가공된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하게 모두가 이상향을 넘어 단순히 이상해졌다. 광고와 미디어는 맹목적으로 한 지점을 향해 스테레오타입으로 존재해야 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며 삶이 갖춰야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늘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상태로 개인을 평가절하하며 소비자를 업그레이드와 개선이 매 순간 이뤄져야 하는 모자란 인간으로 대중을 평가한다.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기업의 불순한 의도는 날것 그대로 괴팍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한껏 포장된 가상의 가공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가상인간이 되기를 늘 영혼 없이 끌려다닌다. 나는 신기술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기업의 멋들어진 설명회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의 상품을 꿈꾸며 나의 현실을 비관했다. 저것만 소유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존재에 조금이라도 완성을 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세계 환경의 날’을 특집으로 쇼핑을 권고하는 노골적인 포털사이트의 특별 팝업창을 바라보며, 녹색 그림으로 뒤덮어 사람들의 사고를 혼탁하게 모호하게 흔드는 맹목적인 소비의 촉진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한 아이템이라고 소개하며, 지금도 넘쳐나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더욱 완고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쓰레기를 선사한다. 매끄럽고 친환경과 에코, 자연소재라는 이명하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들을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필요의 재화로 둔갑시키면서 결국은 소비자일 뿐 생각하는 소비자로 개인을 착각을 시키며 또 다른 꼭두각시를 만들고자 의도했다. 이렇듯 도처에 널린 보이지 않는 소비의 지뢰가 개인을 길들이기 위해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조금 과거에는 당연했고 사람들을 위하며 주변을 따스하게 바라보던 시선들이 사라짐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서, 도시가 발달해서, 개인주의가 자리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는 모든 일이 점점 돈으로 해결되는 개인적인 방식이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감정마저도 수치로 환산 가능한 시스템에 맞춰 인간이 인간 되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기획된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의도에 풍요를 인정하고 주위를 바라보고자 하는 행동이 그들에게 오류로 인식되어 존재의 바이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 시작은 나에게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말하는 작은 행동은 바로 이곳에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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