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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
필리프 데트머 지음, 강병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이 책이 왜 내 도서목록에 놓여있었고, 하지만 나는 또 아랑곳하지 않고 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적어도 내가 자발적으로 손에 집어들만한 책은 절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주제는 아무리 예쁜 그림과 노란색의 흥미로운 커버로 장식한들 그 내용은 큰 포식 세포, MHC분자, 사이토카인, T세포 수용체, 림프계와 항체와 같은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종횡무진하는 글자들로 그득그득 채워진 면역학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 나는 문과출신이다: 이런 이상한 단어를 이상할만큼 매우 경계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단어들이 책을 펼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나는 결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단호하게) 그런 나의 즉각적인 거부반응과는 극명하게 (마치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항체 같다) 작가는 이러한 독자들의 거리낌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냐오냐’하며 달래고 애쓰며 나름의 유머코드를 쥐어짜고는 (세포들을 주제로 개그를 만드는 건 정말 극한 직업이 아닌가! 우리 모두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시다) 자신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보길 원했다. 어찌나 묘사가 섬세하고 말투의 디테일이 세심한지 나의 분개했던 감정마저 작가 앞에서는 스르륵 누그러진다. (이것이 진짜 면역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의 능력인가?!)
이 책은 내게 ’해리포터‘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다음은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당장 말해줘) 또 어릴 때 주야장천 열심히 보던 ‘신기한 스쿨버스’(몸속으로 만화 등장안물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들어가 각종 장기들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교육용 애니메이션; 구조가 디테일하지 않아 거부감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아동용 작품이다)를 시청하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특히나 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메인 주제였던 해부학 때문은 아니고 주인공인 담임선생님의 빠글거리는 파마와 쫑알쫑알 거리는 수다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작가는 몸 안에서 일어난 각각의 세포들의 반응과 연속적인 행동 변화 추이를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는데 (작가가 표현하가로는 세포들의 춤) 마법을 부리는 듯한 인과과정이 잘 정돈된 클래식을 듣는 듯한, 혹은 신상 디바이스를 손에 쥐고 하나씩 버튼을 눌러가며 기쁜 마음으로 기능을 살펴보는 느낌이 들었다.(이 글에 비유가 많은 건 작가 탓이다: 그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지 않기 위해 온갖 비유란 비유는 다 가져다 쓴다!) 분명 제일 가까운 순간에 누구보다도 내 몸속에서 가장 쉽게 마주하고 있음에 분명한 면역과정이 누구보다도 낯설고 때문에 근거리에서 묵인해 버린 과정들이 이렇게까지 미묘하게 구미를 당기는 지도 모른다. (딱히 이해하고 있지 않아도 몸은 알아서 면역활동을 잘 해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풀어내서 간략화하고 축약한다는 건 그만큼 작가가 이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도 세세하게 잘 알고 있다는 얘기.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이미 아는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언어로 치환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후기에 전한다) 독자들은 작가가 이끄는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닫었을 뿐인데,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세포들의 움직임을 신기하고 앙증맞게 대면하는 신비를 경험하게된다. 이미 작가도 언급했지만 면역계에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넘어있는 부분들이 많고, 때문에 확실한 구조와 원인을 전부 파악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어렵지만 나는 이렇게나마 갑작스러운 조우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어 마냥 뿌듯했다. 타인에게 권하고 싶지만 아무도 추천받고 싶어 하지 않을 주제이기에 작가가 그러했듯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슬그머니 책을 밀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