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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단식 일기 - 소비를 끊었다. 삶이 가벼워졌다. ㅣ 자기만의 방
서박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평점 :
제목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주제다.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의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하기에 ‘소비’만큼이나 매력적인 화두가 없다. 이렇게 마음에 끌리는 책은 당장이라도 집어 들고 읽어야 하지만, 나는 소비하지 말라는 작가의 얘기를 책을 구매하면서 소비하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생겼다. 마침 브런치에서 연재된 글들이 이 한 권으로 엮인 점도 있어서 우선 블로그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작가가 어떤 얘기를 하나 넌지시 바라보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본인에게는 부끄러워 남에게는 절대 공포할 수 없는 이야기가 별안간 관련 없어 보이는 타인에게 그만큼 흥미로운 점도 없다. 과장도 없이 작가의 소비는 정말 신기롭고 (혹은 마술사의 특별한 기술처럼) 기이했다. 그녀에게 각종 온라인 강의들은 지식을 위한 마음의 안정된 결제였고, 온라인 책방이 그녀에게는 도서관이었다.(왠지 책을 산다는 소비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지적인 활동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냥 웃고 지나쳐 봤음직한 작가의 희극은 사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비극이기도 했다. 작가에 비해 나는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부족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외출에서 길을 걷다 발견한 쇼윈도 속의 초라한 나를 안타까워하며, 무작정 들어간 옷가게에서 새 옷으로 환복을 했다. 그리고 입던 옷을 그 자리에서 기부한 적도 있었다. (요즘 SPA 브랜드들은 리사이클이라는 명목 하에 옷 수거함이 잘 마련되어 있다) 이게 자원순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이념 철학을 거들먹거리게 하면서, 나 또한 한 수저 얻는 미묘한 우월감으로 쇼핑을 정당화했다. 작가가 주기별로 구매한다는 에코백은 또 어떤가? 사도, 사도 지칠 줄 모르는 디자인과 다양성은 과연 어느 누가 붙이기 시작했는지 이름만으로도 환경친화적(정말 탄식이 따로 없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과연 누가 시작했는가!!))이어서 몇 개를 소유하고 있어도 용서받아 마땅할듯한 가방들. 아마 불태워도 땅에 묻어도 몇 백 년은 거뜬하게 남을 백들이 모든 집에서는 넘쳐나고 있다. 밖에서는 들고 다닐 생각은 1도 없으면서, 뉴요커의 한 바짓가랑이 정도의 사상이 젖어든 우아함에 젖은 텀블러는 죄다 쓸데없이 찬장에서 나뒹굴고 있는데도 애써 모른척했다. 그 때문에 좁아진 집에서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을 배경으로 조금 더 넓은 집이면 행복할까? 하고 미래의 공상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을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 보이도록 계획된 쉴 새 없는 광고와 SNS의 포스팅, 온갖 프로모션은 나의 정신을 구체화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사실 모든 게 엮여있다 몇 년 전에 유행처럼 번지던 미니멀리즘이나, 탈 온라인 라이프, 친환경 소비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운동. 이 움직임들은 실타래처럼 엮어있어 누가 달걀이었고 닭인지 모를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이어폰 줄처럼 여간 머리를 답답하게 했다. 글쎄 돈을 모으는 건 좋다. 모두는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상승하는 만족감을 추구하면서 물질의 규모가 더불어 시각화되는 공간을 꿈꾸었다. 근데, 왜 기업들은 부족함을 부추기고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라고 계속해서 독촉할까? 그들은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네가 가진 소비력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되새긴다. 소비 신앙에서 따르지 않는 신도는 도태된 존재이고 불안정한 자아일 뿐, 발전과 성장이 목적인 그들에게 소비하지 않는 고객은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다. 이렇듯 나와 나 주변의 사람들이 스스로가 던진 광고판이 되며 서로를 독려하고 소비 신앙을 전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현대를 나는 살고 있다. 오히려 자발적인 의지는 스스로를 돌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미묘한 분류를 혼탁시키며 수동적인 조작을 교묘하게 감추는데 나는 정말 알 길이 없다. 작가는 단순히 500만 원으로 청구된 신용카드내역에서 출발했을 뿐인데, 그가 던진 여파는 여간 간단해 보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