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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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작가님이 보시기에 매우 불경하게도 나는 술을 못한다. 이렇듯 ‘술’이라는 명사에 동사인 ‘못하다’라는 연결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아마 다른 언어로는 절대 이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완성할 수 없을 거라 소심한 추측을 해본다;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기에) 한국 사회에서의 ‘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음주가 강요와 당연히 되는 몇몇의 상황을 미묘한 경계선에서 마주했던 나는 번번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했다. (심지어 놀랍게도 2022년인 현재도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본의 아니게 주류(酒流)의 그들에게 나는 분명하게 비주류로 분류되었다. (나는 정말인지 마이너한 내 성향을 포기 못하며 주류가 될 수 없을 운명이다) 그런 연유로 손꼽아 좋아하는 작가의 글임에도 나는 선뜻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단지 이유가 너무 분명했다. 술에 관한 이야기라니.. 정말인지 나는 술에 관심이 아주 조금도 없다. 
이에 반해 작가는 본인 인생을 구성하는 삼원색을 책, 술, 축구로 분명히 (그리도 매우 단호하게도 그 각각의 주제로 책을 펴냈다! : 이 엄청난 추진력이란 무엇일까. 역시 술?) 언급했다. 거론한 관심사 중 ‘책’을 제외한 그녀의 관심 카테고리에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기묘했다. (아.. 이래도 작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무모한 도전처럼 개척지를 넓히는 마음가짐으로 (작가가 던지는 엉뚱하고 기발한 화법에 이미 사로잡힌 지 오래되어 벗어날 수 없다..)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또다시 혼비 월드에 빠져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술은 못해도 술을 마시면 취한다는 의미는 막연하게 느낄 수 있다) 상황을 묘사하며 제정신 아니게 마시던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작가는 담담하게 내던진다. 아니 내던진다기보다 이제껏 감춰두었던 복주머니에서 (아마 그건 작가가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보물임에 분명하다) 하나씩 꺼내는 모습이 마치 “옛다~! 하나 더” 하면서 휙휙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마구 선보이는 후한 인심처럼 보였다. 어찌나 그 모습이 쿨하던지 이제껏 내가 알던 술 취한 사람과 음주로 비롯된 사건사고들, 횡설수설함이 당연했던 불쾌한 술기운의 주절거림들이 던져지는 챕터들의 하강곡선과 함께 미묘하게 섞여내려 갔다.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순간으로 술을 즐기고 삶을 동반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내심 감탄했다. 절대 감출 수 없는 유머 본능은 뒤로하더라도 아마 작가의 글들이 8할은 술이라는 알코올에서 발효돼서 작성되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이 될 정도였다. 동시에 비주류에만 머물 것 같은 작가가 이번 계기로 너무 유명해져서 주류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거리감이 일었다. (대한민국에서 ‘술’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정말 메이저한 주제임에 분명했다! 매우 슬프게도) 

반면, 술김에 하는 얘기를 왜 평소에 못하는지 타인의 태도에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작가는 일침을 날렸다. 음주없는 얇고 긴 관계로 설정될 개인 사상은 본인과 맞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사람이 술을 동반하지 않는 가늘고 길게 갖는 인간관계를 (허물없는 의사소통) 불완전한 형태로 치부하지 않는다. 꼭 술을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나름의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 나름의 방식대로 방법을 찾아 따옴표로 마무리 짓곤한다. 다소 작가의 술에대한 대단한 애정으로인해 비주류를 이와 같이 소외시켜버리는 관점에 나는 적어도 동의는 못하겠다. 사실 그만큼 사회라는 표면적인 관계에서 알코올이라는 물질로 소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서로의 상황들이 차단되어있다만 일방적인 방식만으로 문제의 해결이 있는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자 방법은 찾는다. 

주사를 이렇게나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기억 속에서의 조작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능력이 대단했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다듬어서 문자로 책으로 남기는 호기로운 태도에 감탄을 했다. 술이라는 게 적어도 작가와 같이 즐기면서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조금도 공감이 되지 않을 작가의 흥미에 동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어넘기게 되는 상황이 이렇게 자연스레 수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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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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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가는 스스로 글을 쓰는 행위가 본인에게 배설의 욕구처럼 해소의 감정처럼 이뤄지는 행위라고 간주했다. 때문인지 그 복잡하고 얽혀있는 감정의 배설을 읽어내는 행위가 나로 하여금 곤란하게 혹은 말 그대로 복잡하게 만든 건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겠다. ADHD는 익히 들어봤지만 그걸 질병으로 취급할 정도의 무언가였는지 돌아서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구나 (표면적으로 결함이 보이는 어떤 질병은 분명 아니기에) 하며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쩌면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현대의학에서 아직 정의 내리지 못한 질병을) 껴안고 살지는 않은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운이 좋게도 본인의 질병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한쪽으로는 행복한 존재는 아닐까) 

막연하게 작가가 경험한 상황을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다소 이해하라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강요하는 관점이 슬금슬금 들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책은 어찌나 두꺼운 지류를 사용했던지 (작은 판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량 때문에 전체적인 무게는 무겁다;;) 책은 가뜩이나 부담스러운 작가의 주제만큼이나 (그게 의도였다면 편집자의 놀라운 안목에 박수를 보내 마다하지 않는다! 짝짝짝) 자체로도 무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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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빚을 다 갚았다 - 마이너스 인생을 바꾼 생존 재테크
애나 뉴얼 존스 지음, 이주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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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전에 읽은 “소비단식 일기”의 저자가 본인의 글에서 워낙 몇번이고 언급한 책이라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부분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또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 책은 예상대로 사실상 “소비제한”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전자에 언급한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른점이 있다면 “소비단식 일기”의 저자가 한국인 이라는것과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라는점 뿐일까.(그 정도면 거의 번역본 수준인듯)
본 책은 2016년에 출판되었는데 (미국 현지에서의 출간은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그때보다 심하면 심했지 자본주의의 소비를 향한 대중들의 사랑은 끊임없이 열렬하고 기업들의 수법은 더 발전되고 교묘해진듯 하다.

극단적이기까지한 작가의 (필수품만 구매한다는 소비제한 조건) 1년동안 이뤄진 실험은 (왜 이렇게 미국인들은 이런 극단적인 타이틀을 흥미로워하는 것인지) 과연 실행 가능한 것일지 조금 의문이 들긴했지만, 그 뒤에 담고있는 소비의 의미와 목적에 의문을 던지는 제안은 크게 공감할만 했다. 과연 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소비인지 (작가가 말하는 필요한 물건, 원하는 물건의 차이) 아니면 기업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목적과 그에 감흥되버린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전개된 소비일지 앞으로 우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른다고 제시했다. 매우 넓게 보자면 물질과다로 인한 풍요의 자연재해는 결국 사용하지도 못할 다량의 소비로인해 시작되었을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하였으리라 의심하지 않을수 없기때문이다. 이에 반발해서 “에코”니 “친환경”이니 각종 운동이 번져나가고 있지만, 그마저도 기업의 매끄러운 마케팅에 흡수되 소비의 또다른 패턴으로 장식된 현실을 마주하며 탄식만 내비치기에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얼마전에 목격한 대형 포털내 쇼핑사이트의 “친환경 그린라이프 제로웨이스트” 기획전은 정말 그 표본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제로웨이스트는 근본적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계속해서 사용하되 불필요한 소비를 더 이상 하지 않는것에 기초하고 있지는 않는가??! 역시 기업은 돈이 필요하다!)
작가의 출발은 학자금을 비롯한 무분별한 소비습관으로 완성된 빚 청산에 있었지만, 그 가운데 소비를 제한하며 다시 바라보게된 본인의 삶을 소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는 신성한 회개마냥 거룩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단지 주체성이 사라진 무분별한 의식에 제약이 없다면 자신을 피폐화 하고자하는 중독적인 다른 행동과 무엇이 다르다 반론할수 있을까. 필요하지도 않을 물건을 변호하며 합리적인 목적을 구체화하는데 도사가 되어버린 나는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오랫동안 무섭게 뿌리잡고있는 소비습관을 항상 경계하고 되새기지 않으면 살아 남을 길이 없어보이는 현실에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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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단식 일기 - 소비를 끊었다. 삶이 가벼워졌다. 자기만의 방
서박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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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주제다.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의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하기에 ‘소비’만큼이나 매력적인 화두가 없다. 이렇게 마음에 끌리는 책은 당장이라도 집어 들고 읽어야 하지만, 나는 소비하지 말라는 작가의 얘기를 책을 구매하면서 소비하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생겼다. 마침 브런치에서 연재된 글들이 이 한 권으로 엮인 점도 있어서 우선 블로그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작가가 어떤 얘기를 하나 넌지시 바라보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본인에게는 부끄러워 남에게는 절대 공포할 수 없는 이야기가 별안간 관련 없어 보이는 타인에게 그만큼 흥미로운 점도 없다. 과장도 없이 작가의 소비는 정말 신기롭고 (혹은 마술사의 특별한 기술처럼) 기이했다. 그녀에게 각종 온라인 강의들은 지식을 위한 마음의 안정된 결제였고, 온라인 책방이 그녀에게는 도서관이었다.(왠지 책을 산다는 소비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지적인 활동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냥 웃고 지나쳐 봤음직한 작가의 희극은 사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비극이기도 했다. 작가에 비해 나는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부족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외출에서 길을 걷다 발견한 쇼윈도 속의 초라한 나를 안타까워하며, 무작정 들어간 옷가게에서 새 옷으로 환복을 했다. 그리고 입던 옷을 그 자리에서 기부한 적도 있었다. (요즘 SPA 브랜드들은 리사이클이라는 명목 하에 옷 수거함이 잘 마련되어 있다) 이게 자원순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이념 철학을 거들먹거리게 하면서, 나 또한 한 수저 얻는 미묘한 우월감으로 쇼핑을 정당화했다. 작가가 주기별로 구매한다는 에코백은 또 어떤가? 사도, 사도 지칠 줄 모르는 디자인과 다양성은 과연 어느 누가 붙이기 시작했는지 이름만으로도 환경친화적(정말 탄식이 따로 없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과연 누가 시작했는가!!))이어서 몇 개를 소유하고 있어도 용서받아 마땅할듯한 가방들. 아마 불태워도 땅에 묻어도 몇 백 년은 거뜬하게 남을 백들이 모든 집에서는 넘쳐나고 있다. 밖에서는 들고 다닐 생각은 1도 없으면서, 뉴요커의 한 바짓가랑이 정도의 사상이 젖어든 우아함에 젖은 텀블러는 죄다 쓸데없이 찬장에서 나뒹굴고 있는데도 애써 모른척했다. 그 때문에 좁아진 집에서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을 배경으로 조금 더 넓은 집이면 행복할까? 하고 미래의 공상을 놓치지 않는다. 지금을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 보이도록 계획된 쉴 새 없는 광고와 SNS의 포스팅, 온갖 프로모션은 나의 정신을 구체화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사실 모든 게 엮여있다 몇 년 전에 유행처럼 번지던 미니멀리즘이나, 탈 온라인 라이프, 친환경 소비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운동. 이 움직임들은 실타래처럼 엮어있어 누가 달걀이었고 닭인지 모를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이어폰 줄처럼 여간 머리를 답답하게 했다. 글쎄 돈을 모으는 건 좋다. 모두는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상승하는 만족감을 추구하면서 물질의 규모가 더불어 시각화되는 공간을 꿈꾸었다. 근데, 왜 기업들은 부족함을 부추기고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라고 계속해서 독촉할까? 그들은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네가 가진 소비력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되새긴다. 소비 신앙에서 따르지 않는 신도는 도태된 존재이고 불안정한 자아일 뿐, 발전과 성장이 목적인 그들에게 소비하지 않는 고객은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다. 이렇듯 나와 나 주변의 사람들이 스스로가 던진 광고판이 되며 서로를 독려하고 소비 신앙을 전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현대를 나는 살고 있다. 오히려 자발적인 의지는 스스로를 돌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미묘한 분류를 혼탁시키며 수동적인 조작을 교묘하게 감추는데 나는 정말 알 길이 없다. 작가는 단순히 500만 원으로 청구된 신용카드내역에서 출발했을 뿐인데, 그가 던진 여파는 여간 간단해 보이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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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질 중독 - 올바른 탄수화물 조절로 내 몸 리셋
마키타 젠지 지음, 박유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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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얇은 책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반복한다. 당분을 그만 좀 섭취하라고.

논리는 간단하다. 탄수화물이 결국 포도당으로 변하면서 생기는 당분의 주요 원인이 되며, 그는 곧 비만이 되므로 줄이라는 것이다. 초콜릿과 같은 분명해 보이는 당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붉은 딱지처럼 주의보가 붙어있긴 하지만, 흰밥이나 (심지어 현미밥이 매우 좋다는 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 식빵과 같은 순수한 탄수화물이 오히려 그 문제의 원인이 됨을 바로잡는다. 이건 단순한 원료 섭취가 오히려 건강한 식습관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오해하고 있던 점이었는데, 가령 흰밥에 간단한 김이나 메밀소바와 같은 단조롭고 건강해(?) 보이는 식습관이 좋지 않다 지적한다. 논지는 탄수화물이 체내에서 단순한 영양소로 분해되어 혈당을 급작스럽게 높이기 쉬우니 반대로 곁들인 기름진 것들(고기도 좋다고 추천한다)과 섭취하도록 유도했다. 어찌 되었든 조금이라도 과정을 복잡하게 해서 절차를 지연시킴에 따라 혈당의 순간적이 변화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탄수화물은 뭔가 힘의 원천 혹은 분명한 에너지처럼 생각되어 줄인다라는 개념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내 관점에서는 좀 당혹스러웠다. 원체 탄산음료와 같은 당분이 액체로 변형된 음료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 만큼이나 탄수화물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와닿지 않았다. 

이 책은 원인이나 논리를 반복하고는 있지 구체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 무엇을 먹어라 먹지 말아라 라는 대략적인 개념은 던져주나 그 계획이나 일정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독자들이 취합하기를 바란다. 당질 중독이라는 개념이 있고 분명히 그 위험성을 인지했으면 이 책의 소임은 끝난 것이라는 다소 쿨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심 있으면  직접 자발적으로 찾아보시든가! 하는 다소 냉정한 자세에 깔끔한 마무리로 책을 정리한다. (뭐 그래 봤자 내재된 식습관은 그리 오래된 변화를 바라지 않겠지만) 말은 그래도 무엇이 잘못된 사고였고 흔히 떠도는 누군가의 성공기나, 이따금씩 클릭해서 누르게 되는 자극적인 웹 기사의 건강 헤드라인보다야 분명하고 간략한 정보로 그 본질을 알고 싶었다. 아주 간략한 제시로 심플하게 시도하길. 내일의 건강이 정말 오늘의 사소한 습관에서 시작되어 완성되는 것처럼. 
그나저나 책 읽기 전에 구매한 두 봉지의 과자는 어찌 처리해버려야 하나 골칫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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