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목욕탕 - 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아무튼 시리즈 36
정혜덕 지음 / 위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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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따라갔다. 목욕이야 집에서 샤워로 마치면 될 텐데 구태여 탕에 들어가서 마음을 씻는다는 그의 주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에 웬만한 집에는 욕조가 없다. 1인가구인 탓에 집이 좁은 이유도 있겠지만 생활방식이 욕조 문화와 점점 멀어진듯한 인상이 더 강해 목욕방식이 내가 어렸을 적에 익히 알고 있던 방식과 함께 세월은 변화하지 않았을지 추측해 본다. 사우나와 찜질방이 아닌 목욕탕만을 고집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 이 한 권은 목욕탕에 관한 한 가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비누를 밝고 미끄러진 온천탕의 아름다운 사고가 떠올랐고 작가는 시부모의 목욕탕 운영을 운명으로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목욕탕을 사랑했다. 몸을 씻는다는 숭고한 행위가 나 자신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위안의 시간이 됨은 저명하다. 그 사소한 개인의 시간마저 사치로 취급되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점점 사라지는 동네 목욕탕의 존재가 귀하고 애틋했다. 이와는 반대로 휘황찬란하게 바뀌어가는 대형 스파와의 대결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목욕하지 못한 하루의 무게만큼이나 찝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아마 이 책을 덮으며 친구를 꼬드겨 이번 주에는 목욕탕에 가겠다 생각했다. 동네 골목에 숨겨진 아직 남아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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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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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에 대해 아는것이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홀로코스트, 전쟁, 분쟁, 분쟁 그리고 분쟁… 아무리 생각해도 유머러스한 유대인은 미국시트콤 ‘프렌즈’의 ‘로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딱히 그가 유대인이라서 그렇다기보다 (하지만 많은 에피소드가 유대인의 ‘로스’역할로 꾸려지긴했다) 훌륭하고 재밌는 배우이었기에 (그는 미국인) 이스라엘이 바로 연상되는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작가도 이스라엘 출신이기에 뛰어난 글 솜씨가 있는것은 아니고 그냥 작가 자신이 특출난 재능이 있기때문은 아닐까. 국적의 의미를 구태여 점검하지 않으면 안 돨 정도로 글을 통해 그가 사는 환경과 마주하는 상황이 매우 낯설다. 나는 종종 서구에서 분쟁지역인 한반도를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혹은 이미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묘사하며 전쟁국가로 오해를 삼는다 들었다. (미사일의 뉴스에 노발대발되며 흥분을 일으키는 건 자국이 아니라 타국의 뉴스인것 같다) 아마 그런 관심없는 무지한 오해탓에 상황을 곡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상황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뉴스로 바라본 미디어의 관점은 많은 부분에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작가는 우수꽝스럽게 (하지만 매우 계획적인 예리함으로) 일상을 풀어헤친다. 이미 나는 그의 글을 후루룩 따라가는 동시에 입가에는 웃을 준비를 장착한 기대감에 차있다. 그가 웃기지 않는 발언을 할지언정 나는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단순히 작가의 글을 읽는 다는 이유만으로) 이 점에서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필력을 가진 사람인지 알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웃기려는 글을 쓴다는 목적만으로 쉽사리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작가가 글을 쓴지 25년 이력가운데 출판한 첫 에세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히브리어(모국어)로 출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연 이 괴상하고 독특한 작가를 나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분쟁의 우려스러운 문제들도, 아내와의 황망한 에피소드도 그리고 아이의 사랑스런 성장과정도 하나 빼먹지 않고 작가 앞에서는 모든 것이 훌륭한 인생이고 대단한 발견인듯 해보였다. 나는 이렇게 또 대단한 거장을 만나고 파해쳐 나갈 새로운 생각을 가진 작가를 만났다는 점에 마냥 기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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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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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말은 감정이 격해 목소리의 톤을 높여보아도, 침착하게 상대방을 구슬리는 다정한 늬앙스로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인 상황을 피력하는 마법의 주문 같다. 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도 항상 경계하며 타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의지만으로도 쉽사리 하강해버리고 마는 그 개념이 낯설고도 멀게만 느껴지는데, 그만큼 역지사지로 타인의 상황을 파악한다는 관점은 나와 같은 어리석은 인간의 좁은 소양으로는 이해할 길이 너무나도 아득하기만하다.
급작스런 백혈병으로 삶을 다시 고쳐쓰지 않으면 안되게 된 기자가 작가로 글을 썼다. 글을 쓸 수 있는 여러가지 이유가운데, 자신의 질병으로 그 이유를 들었다는 점이 매우 애석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애초로운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현실을 문제시 하려하지 않았다. 에세이에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질병 앞에서 가장으로서, 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담담하게 서술되어있다. 계속해서 연거푸 진행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실망을 감출법이 없을 텐데 작가는 희망의 끈을 잃지 않으려는 독한 의지를 내세운다. 응원이랄까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그들의 생을 외면하지 않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본다. 당연시 된 오늘의 자연스러운 날들이 감사하지 않고 내가 누려야할 기본 의무처럼 여겨진 것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되었기에 가능한 무례함이다. 그렇게 작가를 통해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타인과 나를 돌아보며 잊혀져버려서 금세 사라져버린 세심한 주의력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본게 된다.
기자라는 객관적인 정보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직업상의 글 습관 때문인지 내게는 다소 작가의 글이 설득력있거나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어쩌면 정신 흐트러지게 멋진 감각과 감각적인 독창성으로 화려한 글에 익숙해진 내게 작가의 글이 단조로운 무미건조한 담담함으로 다가왔기에 그 간극이 서로다른 인상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지나 작가가 완쾌했으면 했지만, 1년 후 청력에까지 문제가 생겨 그 또한 작가의 에세이로 나왔다는 후기에 조금 마음이 안쓰러웠다. 작가는 그럼에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인 안쓰러움은 뒤로하고 하루에 충실한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멋진 일이다. 작가의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이렇게 타인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시도라도 해보려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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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떡볶이 -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무튼 시리즈 25
요조 (Yozoh) 지음 / 위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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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싱어송라이터라는 유명세로 압도되어서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다. ‘요조’라는 이름은 너무 많이 들어 봤는데 그게 딱히 그녀의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거나 책방을 열었다든가 해서 가본다거나, 글을 썼다는 책을 찾아볼 이유는 되지 않았다. 저명하다는 과장된 입소문에 따른 과거 기억 속의 실망이랄까 아무튼 나는 기대를 걸고 싶지 않은 관성 탓을 해본다. 사실 이 책도 주체적으로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펼쳐본 것은 아니다. 굉장히 우스꽝스럽게도 ‘장강명’ 작가의 책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요조’의 등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는 책을 읽었다. (장강명의 에세이에서 이 책을 꽤 위트 있게 추천했다: 심지어 다른 이유로 ‘요조’는 마무리 글에서 작가‘장강명’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감사와 이 책의 공헌을 돌린다) 

떡볶이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감상이 일었다. (파스타도 아니고 갈비찜도 아닌 분식인 떡볶이가 과연..) 나한테는 적어도 멋들어진 메뉴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음식일 뿐인데 그래서 작가에게는 더 특별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대상이었을까. (보통의 위대함이 여기서 등장하는 것일까) 떡볶이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일이 작가에게 일어났고 (심지어는 이렇게 책을 썼다!) 다양한 사연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다. 그걸 지나쳐버릴 평범한 에피소드로 넘겨버릴 법도한데 작가는 유머러스한 필체를 활용해 멋들어진 글로 일상을 뒤집고 재발견한다.  작가는 과연 책을 쓰는 시작과 끝맺음까지도 (출간 계약하는 과정을 소재로 삼다니!!) 하나의 에피소드로 엮을 수 있는 대단한 실력자이었다. (나는 왜 유명세라는 불필요한 장애물로 작가를 모른척하였던 것일까..) 작가는 후기에 독자들이 이 책을 덮고 떡볶이를 먹고 싶어지는 이유가 되었다면 그걸로 이 책의 목적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녀의 바람은 간절할지 몰라도 이미 책 자체가 자극적으로 맵고 달콤한 떡볶이 그 본질이 아닐는지 했다. (종이로 떡볶이를 만든다면 과연 이렇겠군!) 
작가는 독자가 알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실명(등장인물들의 본인들은 당연히 동의했겠지..?)을 언급하며 현장의 디테일한 상황묘사가 정말 뛰어난데, 이게 누구나 애용할 수 있는 사진보정 필터라 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인기겠다. (무기력한 일상의 건조함에 생기를 더하는 묘사를 나도 경험해보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던 탓인지 한 에피소드를 (박군떡볶이 부분) 친구에게 연신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감칠맛 나는 작가의 글솜씨는 1할도 반영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떡볶이집이 작가의 클레임 때문에 폐업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중한 사건처럼 되어버려 오히려 재밌는 책이 졸지에 단순한 카더라 뉴스처럼 다뤄졌다. (아 이래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뜬소문은 믿을 수가 없군..) 나는 전파하고 말 것이다. 이 작가의 훌륭한 떡볶이 한 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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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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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한 것만 글로 옮겨 쓴다는 작가의 철저한 철학 탓에 그의 문학이 독특하고 빛이 났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만) 때문에 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연유로 그런 철학을 고집하며 글을 쓰는지, 무슨 환경 탓에 그녀의 성장한 배경이 궁금하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질문투성으로 가득 차있었다. 소설인가? 하고 집어든 이 한 권은 (‘진정한 장소’라는 의미 가득한 타이틀이 오해를 살만도 하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대담을 나눈 인터뷰집으로 문학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실기초한 자료를 재료로 삼는 재능 앞에서는 이 또한 소설처럼 취급될지도 모를 터이다. 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통한 답변들이 종이 위에 옮겨진 글로 스스로를 분명하게 대변한다는 확신은 전혀 없다고 고백하나, 독특하게도 그녀를 전혀 모르는 독자 앞에서는 적어도 모든 것이 그녀였고 작가 자신이었다. 작가가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 나는 겨우 그 몇 권 가지고 생각의 결론을 내릴 이렇다 저렇다 할 근거로 재료 삼기에 부족하겠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써야만 했다는 당위성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에 나는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무당의 신내림처럼 점쳐진 운명과도 같이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조금도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비친다. 읽고 쓴다는 일. 주위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 일.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는 거장의 겸손한 멘트에 무엇이 그녀를 이끌었고 파헤치려던 생기발랄한 호기심이 갈 곳을 잃었다. 그녀를 통해 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마음이 끌리고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작가를 모른다. 작가를 모르기에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고 헤쳐나가는지 아직도 끊임없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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