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개월 간, 나는 축구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점점 묵직해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라거나, 혹은 문득 축구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거나, 하다못해 날씨가 너무 추워서였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확실히 더 이상 삶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유유자적했고, 한결같이 축구의 구렁텅이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안식처라고 믿었으며, 의심할 바 없이 축구야말로 추운 겨울에 실외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확신했던 것이다(물론 추위는 축구를 하는 데 꽤나 방해가 되긴 하지만). 

그러니까 축구를 하지 못한 건,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간, 나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축구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 이유가 점점 묵직해질 삶의 무게를 심각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라거나...(이하 생략)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내 발톱이 또 다시 멍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밥 말리가 죽었기 때문이다.
 


발톱이 멍들고, 빠지고, 다시 발톱이 자라서 멍드는 악순환은 수년간 계속된 내 고질병의 하나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더 심각했다. 일견하기에도 발톱의 밑뿌리까지 시커매져서 도대체 이 발톱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러웠다. 물론, 그럼에도 축구는 계속되었고, 내가 내 발에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는 붕대로 발톱을 싸매어서 축구공이 발가락에 주는 충격을 그나마 최소화시켜주는 것일 뿐이었다.

헌데, 밥 말리가 죽었다고 한다. 자메이카의 영웅이자 레게머리를 한 뮤지션인 밥 말리가, 어쩌면 축구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밥 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그의 죽음 자체는 그리 놀랍다거나 슬프지 않다. 그러나, 그가 발가락에 생긴 악성종양 때문에 죽었고, 더군다나 그것이 축구로 인해 악화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론은 내게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밥 말리가 죽기 몇 년 전, 그는 의사로부터 썩어 들어가는 발가락을 잘라낼 것을 권유 받았지만 그는 축구를 포기하지 못해서 그것을 거절했고, 결국 축구를 하던 중 상대선수의 축구화 징에 발가락이 관통당해 상처가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밥 말리는 죽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밥 말리의 죽음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가 잘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축구는 자유이자 우주 그 자체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이죠."라고 말한 밥 말리가 택한, 그다운 죽음이었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그를 추억하는 팬들이 있었고,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남았으며, 그 와중에 이러한 축구와 관련한 에피소드(죽음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로도 기억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다. 물론 아주 약간은, 조금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죽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나를 추억해줄 팬이 없고, 특별히 남긴 성취가 없으며, 더군다나 그 와중에 축구와 관련된 해프닝(이때의 죽음은 명백하게 그저 해프닝이다)으로만 기억된다면, 아마 나는 '믿거나 말거나'에라도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처지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세상에, 축구를 하다가 발톱이 멍들고 시커매져서 결국 발가락이 썩고, 그럼에도 축구를 고집하다가 죽은 어느 20대 남자의 이야기란 얼마나 터무니없는 해프닝일 것인가!

 

터무니없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심각한 발가락 부상을 안고 있었고, 그럼에도 병원 가는 것을 끝내 거부했다. 그리고 그것은 밥 말리가 의사의 권유를 거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물론 단순히 병원이 두려웠던 것도 있다). 다만 유일하게 다행스러웠던 것은, 어쩌다 보니 축구를 하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발톱을 깎으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시커맸던 뿌리에서 조금씩 새 발톱ㅡ그러나 분명 다시 시커메질ㅡ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오, 놀라운 인간의 생명력이여... 아, 안녕 밥 말리여...

뭐, 그렇다. 밥 말리의 발가락은 썩었지만, 내 발가락은 아직 멀쩡한 편이다(라고 믿는다). 밥 말리는 죽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므로, 나는 축구를 할 것이다. 이제 밥 말리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고,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축구를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명일 것이므로...

 

그래도 아주 가끔, 나는 밥 말리를 기억할 것이다. 축구를 사랑한 그를, 썩어 들어가는 발가락을 끝내 잘라내지 못한 밥 말리를... 그리고, 죽음조차 막지 못한 그의 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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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4-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ㅠ_ㅠ 밥말리가 축구를 좋아했다는 건 몰랐어요.
발가락을 다쳐본적이 있어서 그 아픔을 알죠. 전 발톱이 두 번이나 빠져서..너무 못경셨어요. 그게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지만, 꽤 큰 고통이잖아요. 운동을 하시는 분이라면 더 그렇겠죠. 아무리 운동이 좋아도, 건강관리가 우선이죠. 쉬엄쉬엄하시고, 병원 꼭 다니세요. 아 참!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려요, 전 가시장미에요 :)

Fenomeno 2008-04-17 22:43   좋아요 0 | URL
저는 이상하게 발톱이 빠져도 아프지는 않았어요. 다만, 축구할 때 많이 불편했을 뿐이죠.
사실 님 서재에는 종종 들렀었더랬죠.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반갑습니다. :)

가시장미 2008-04-18 10:21   좋아요 0 | URL
진짜요? 저도 님 서재에 종종들였어요. 으흐흐
서로 눈팅만 했었군요. :) 앞으로는 아는 척 하고 지내요 ㅋㅋ

어묵탕 2013-08-2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암세포가 퍼져서 죽었어요
 

열흘쯤 전에 벌어진 맨유와 더비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박지성은 선발로 출장했었다. 그러나 답답한 0대0의 스코어가 계속되자,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후반에 교체시키고 말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경기에서 박지성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호날두의 다소 이기적인 플레이가 팀의 엇박자를 야기하는 주원인이었고, 긱스는 특히나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퍼거슨은 긱스의 경험과 호날두의 능력을 믿었고, 기어코 호날두는 골을 성공시켰다.

어제 있었던 북한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정반대의 상황에 놓였다. 북한 수비진의 밀착마크와 평소보다 확연히 떨어져 보이는 볼터치로 인해 이렇다할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허정무 감독은 프리미어리거로서의 경험과 실력을 끝까지 믿고, 선발 출장한 박지성을 교체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지성은 끝내 골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고, 이는 다른 프리미어리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와 긱스를 믿은 것과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과 다른 프리미어리거들을 믿었던 것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긱스는 퍼거슨 감독과 십수 년을 함께 해온 백전노장이고, 호날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를 달릴 만큼 환상적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비록 그게 조금은 이기적인 플레이로 인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 없는 두 상황이 결과적으로 동일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지 프리미어리거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을 믿는 것은 부당한 일임에도, 프리미어리거들은 끝까지 기용되었다는 것이다.

어제의 박지성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확연해 보였다. 예의 그 활동량 만큼은 크게 줄지 않았다지만, 어제 경기에서 절실했던 것은 활동량이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번번이 수비에 막히며 볼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게다가 박지성의 장점이라 할 만한 이타적인 플레이도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무리하게 볼을 끄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이영표나 설기현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좋지 않은 컨디션을 보여준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현대축구에서 작심하고 수비 지향적으로 나오는 팀의 골문을 뚫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축구는 혼자하는 경기가 아니며, 결정적으로 북한은 생각만큼 약하지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쁜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이 될 수 있을 만큼 대한민국이 약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박지성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라며 박지성에 대한 변호인지, 자신에 대한 변호인지 모를 말을 했지만, 이는 명백하게 허정무 감독의 실책으로 귀결될 뿐이다.

박지성을 비롯한 프리미어리거들의 경험과 능력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나라 대표팀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리고 멀리서 날아온 그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모습은 더할 나위없이 반가운, 모든 팬들의 바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최소한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라면 좀 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선발선수를 결정하는 것은 감독의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소속팀으로 선발선수를 정한다면, 굳이 감독이 필요하기나 할까.

현재 소속팀에서 출장기회를 잡지 못해 필연적으로 떨어졌을 경기력, 장거리 이동에 따른 시차와 피로, 그리고 함께 손발을 맞출 기회가 적었던 프리미어리거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이 대표팀 내에서 가장 좋은 능력을 가진 것으로 감독이 판단했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감독의 경험과 판단을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허정무 감독이 막연한 믿음과 기대에 근거해 그들을 선택한 것이라면, 나는 감독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자각해 주십사, 하고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막연한 기대와 반가움은, 그저 팬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히 족할 테니까.

* ps. 어제 경기의 무승부와 박지성의 플레이는 많이 아쉬웠지만, 어제 박지성이 흘렸던,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한 방울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그 날 경기에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이든, 멀리서 찾아와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든, 혹은 다만 그날 경기에서 열심히 뛴 조그마한 흔적일 뿐이든, 그 무엇이라도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경기에 뛰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다음 경기에서는 부디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웃음은 곧, 팬들의 기쁨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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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화창한 봄날, 울산의 홈 개막전을 보기 위해 기어이 문수구장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울산의 경기를 보고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거의 없지만, 오늘의 상대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포항이었기에 나름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과연 정규시즌에서 5위를 한 팀이 플레이오프에서의 선전만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전진 패스를 강조하는 파리아스 감독의 공격적 마인드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왕이면 울산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승리야 어쨌든 그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지기를 바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비지향적인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울산은 공격지향적인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포항을 3대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더욱 놀랍게도, 그럼에도 경기가 재미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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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아침에 일어나서 곧장, 바로 옆에 위치한 선암사를 찾았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비 내음을 잔뜩 머금은 아침 공기는 무척이나 서늘하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선암사를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서,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3명의 또 다른 일행만 눈에 띌 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모기의 집중적 타깃이 되긴 했지만. 

선암사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그렇듯, 이곳의 최고 어르신인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대웅전에 먼저 들렀다. 가볍게 3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누나가 어느 절이든 부처님 눈 앞의 경관을 가장 신경 써서 가꾼다는, 제법 신빙성 있는 정보를 알려준다. 딴은 그럴 듯하게 여겨져, 부처님께 잠시 양해를 구하고 대웅전의 한가운데서 경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좀 달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선암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해서 무슨 구체적인 감상을 말하기는 어렵다. 매우 오래된 절의 정취가 한껏 묻어난다는 점만을 겨우 감상이랍시고 내뱉을 수는 있으나, 내 무지는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변명하자면, 그 놈의 모기가 아주 극성이라 끓어오르는 살심을 참는 것만도 힘겨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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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6>

차 안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처음으로 간 곳은 백천사였다. 특별히 알고 있었다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가는 길에 들른다는 생각으로 찾았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은 이번 여행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백천사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본 것은, 어쩐지 음흉하게 웃는 듯 보이는 비대한 포대화상이었다. 실제로 포대화상이 불교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지만, 오직 겉모습만 놓고 볼 때, 이 포대화상은 백천사의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대화상 앞에는 투명한 불전함이 놓여있는데, 마치 '너희가 얼마를 넣을지 내 두고 보겠다.'는 심산인 듯해서 불쾌하기만 하다. 그러나 역시, 이 곳 백천사와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대웅전에 들어가니 '부처 안의 불당' 이라고 해서 부처님의 와신상 내에 불당이 꾸며져 있는데, 사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하얀 수염을 탐스럽게 기른, 도인과 같은 분이 그 앞에서 참배객들을 상대로 생년월일을 물은 후, 몇 가지 운세(예컨대, 행운의 색이라거나 조심해야 할 달 같은, 삼척동자라도 손쉽게 말해 줄 수 있는 것들)를 가르쳐 주고, 대나무채 같은 것으로 몸을 탁탁 쳐준다(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일단의 명부를 작성하게 하고, 당연한 듯 돈을 받는다. 물론 주지는 않았지만 이 절,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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