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화창한 봄날, 울산의 홈 개막전을 보기 위해 기어이 문수구장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울산의 경기를 보고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거의 없지만, 오늘의 상대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포항이었기에 나름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과연 정규시즌에서 5위를 한 팀이 플레이오프에서의 선전만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전진 패스를 강조하는 파리아스 감독의 공격적 마인드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왕이면 울산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승리야 어쨌든 그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지기를 바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비지향적인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울산은 공격지향적인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 포항을 3대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더욱 놀랍게도, 그럼에도 경기가 재미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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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4백으로 일관한 울산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4백 자체가 수비적인 시스템은 물론 아니지만, 양쪽 풀백이 오버래핑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공격의 숫자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염기훈과 브라질리아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경기의 실마리를 풀어갔지만, 좀 더 그럴듯한 장면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울산이 3골이나 넣을 수 있었던 것은, 포항의 공격을 막으면서 비롯된 역습과 우성룡의 높이, 그리고 포항 수비진의 실수가 겹쳤던 덕일 뿐이다. 다만, 한 골을 넣은 브라질리아의 물흐는 듯한 플레이는 정말로 일품이었다.
한편, 포항은 3백으로 경기를 치렀지만, 양쪽 윙백의 공격력이 그다지 살아나지 못했다. 활발한 오버래핑을 자랑하는 최효진이 오늘 경기에서는 조용했고, 왼쪽의 박원재는 후반전에야 투입되었다. 지난 시즌 팀의 중원을 지휘했던 따바레즈의 빈자리를 백전노장 김기동이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그 혼자서는 너무 힘들어 보였고, 경기 후반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데닐손이 좌우로 넓게 움직이면서 분전하긴 했지만, 그는 아직 팀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너무 공을 많이 뺐겼다. 특히, 최전방의 알도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게 포항의 공격을 힘들게 했다. 전체적으로 주중에 치렀던 챔피언스리그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오늘도 울산은 언제나처럼 수비를 튼튼히 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그 지긋지긋한 수비적 축구를 구사했고, 완전하지 않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축구를 포기하지 않은 포항이 거기에 말려들었을 뿐이다. 축구는 어디까지나 골로 말하는 것이기에 3골이나 터진 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상대가 공격해야만 득점할 수 있는 팀이란 건, 그 얼마나 매력적이지 못한 팀인가!
경기도 경기지만, 울산의 팬서비스 또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프타임 때, 어느 200일 커플과 인터뷰를 하고 김영광 선수가 그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볼거리가 마련되었지만, 전혀 볼만하지 않았다. 물론 그 커플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이벤트일지도 모르고, 그들에게 크게 불만이 있지도 않지만, 남의 사랑노릇이나 보려고 축구장에 올 마음은 결단코 없다. 더군다나 징계로 정작 경기에는 나오지 못하는 김영광 선수를 데려다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오늘 울산의 서포터인 '처용전사'의 서포팅은 그리 적절하지 않았던 듯하다. 경기 전 나눠준 책자에 의하면, 포항에게는 번번이 홈에서 이기지 못해 '잘 가세요' 송(울산이 이긴 상태로 게임이 끝나갈 때 상대팀에게 불러주는 노래)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반드시 그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게 서포터의 바람이라고 했다. 결국 그들의 바람은 실현되었지만, 그들은 지나치게 일찍 그 노래를 불렀다. 후반 35분이라면 아직도 게임이 10분이나 남았고(추가시간은 6분이었다), 마땅히 좀 더 골을 노리는 것이 팬들을 위하는 것이련만, 서포터들은 너무 일찍 게임의 열기를 식혀 버리고 말았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경기는 나름의 소득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오랜만에 홈에서 이기는 경기를 봤고, 한 경기에서 3골을 본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울산이 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여기에는 팬들 또한 힘을 보태야 할 듯하다. 구단은 팬들이 정말로 즐거워할 만한 볼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선수들은 헛되이 시간을 지연하는 플레이는 삼가고, 서포터들은 좀 더 축구팬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서포팅을 하며, 여기에 일반팬들도 적극적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축구는 물론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론 팬들이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패배'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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