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를테면 분열증적 현상이나 도취 상태 등을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독자들에게 이식시켜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를 떠나서 머릿속이 좀 이상해지는 기분이 든다. 근데 그게 묘하게 기분이 좋다.


다음은 [화성의 타임슬립]을 읽으며 떠올랐던 단상, 혹은 작가나 책들.


61쪽
뉴 이스라엘 거류지 북쪽에 있는 와이즈만 비행장을 햐해 헬리콥터를 몰면서 슈타이너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원래는 오토를 못 따라오게 하려고 적당히 꾸며댄 말이었고, 결코 본심이 아니었다. 그가 느끼는 진짜 감정과도 상반되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수치심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B-G 캠프에 결함이 있는 아들을 맡겨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수치심이란 도대체 얼마나 강한 충동이길래, 나로 하여그 그런 얼토당토않는 말까지 늘어놓게 만드는 것일까.



ㅡ 수치심과 관련된 에밀 시오랑의 글을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에밀 시오랑은 이렇게 썼다. "작가의 '영감의 근원'은 바로 그 자신의 수치심이다. 자신 속에서 수치심을 보지 못하거니 회피한다면, 표절작가가 되거나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출처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독설의 팡세]나 [절망의 끝에서]에 나오지 않나 싶은데 현재로선 두 책 다 절판 상태라 일부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하다.


93쪽
묘한 일이다.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자책하고 책임을 느껴야 하다니. 혹시 내가 어떤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어떤 일을 했더라면...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니 모두 내 잘못이다. 이런 식이다.

ㅡ 지난 금요일에 만난 친구와 자살과 관련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다음날 본 이 책에서 이런 구절과 맞닥뜨려 기분이 이상했다.


117쪽
"양이란 참 희한한 동물이디." 휘트록이 말했다. "먹이가 될 만한 것, 이를테면 옥수수 줄기 따위를 울타리 너머로 던져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 1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금세 알아차리고 달려온단다." 휘트록은 껄껄 웃었다. "양은 자기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일에 관해서는 엄청나게 똑똑해. 그런 걸 보면 진짜로 똑똑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지 않니? 똑똑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제대로 간파할 줄 아는 사람이야. 똑똑하면 살아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단다."

ㅡ 이 대목에서 나는 곧바로 가카가 떠올랐다. 물론 이 구절에서는 똑똑한 사람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똑똑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18쪽
그러나 잭 자신은 티칭머신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의 '공립학교'의 이념 자체가 그의 기질과는 상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거나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을 일정한 틀, 그것도 지독하게 제한적인 틀에 넣어 새로 찍어내는 곳이다.


121쪽
'학교' 자체가 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결론을 잭이 내린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학교'가 원하는 것은 절대로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예상을 벗어난 이변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였다. 이것은 강박증의 세계이며, 건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ㅡ 마치 지금 나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강박증의 세계.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122쪽
신경증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라는 실비아의 말은 타당했다. 신경증이란 의식적인 멈춤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점에서 삶을 동결시켜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는 행위라고나 할까.


148쪽
"난 이 곡의 LP판을 갖고 있어." 어니는 계속하며 말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희귀판이라서 틀어볼 엄두도 못 내지만 말이야."
"LP"판이 뭡니까? 헬리오가발루스가 물었다.
"설명해줘도 어차피 넌 모를 거야. 글렌 굴드가 연주한, 40년이나 된 거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가보야. 이런 양손 교차 소나타 연주에는 정말 일가견이 있는 사내였지."



ㅡ 스카를라티라는 이탈리아 작곡가의 건반 소나타 모음집인 것 같은데 들어본 적이 없으니 떠오르는 선율은 있을 리 없고... 대신 최근에 출간된, 글렌 굴드를 등장시키며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라고 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가 생각났다.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보자면, "이 작품은 이야기보다는 1인칭 화자의 회상과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챕터 구분도 단락 구분도 없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하였고, 이것은 베른하르트의 특징인 장광설의 문체와 어우러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산문의 언덕 너머로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끼어들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쏘아 죽인다”고 말하는 베른하르트는 스스로를 ‘이야기 파괴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장과 언어 파괴를 주요 기법으로 사용하는 그는 과장이야말로 글쓰기의 필수 요건이며 과장을 통한 현실 파괴와 언어 해체의 작업만이 상투적인 현실 고발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1쪽
죽음은 모든 사람을 동요하게 만들고, 평소에는 안 하던 일을 하게 만든다. 사람의 행위와 감정을 마치 수면 위로 파문이 퍼져나가듯이 밖으로 밖으로 파급시키며, 더 많은 사람들과 사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328쪽
광기란 무엇일까? 잭은 생각했다. 그에게 관기란 어딘가에서 만프레드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언제 그랬는지를 기억 못하는 일이었다. 어젯밤 어니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린이 해준 얘기를 바탕으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하나씩 짜 맞춰본 뒤에야 어렴풋하게나마 전체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광기란 자기 삶의 정경이 어쨌는지 일일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ㅡ 그러니까 광기란, 술에 잔뜩 취해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 건가...는 그냥 농담이고, 진부하지만 광기, 하면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모리스 블라쇼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중세에서 19세기까지 감금되는 광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더 심층적으로는 수용이라는 그런 구조의 연구를 통해 광기와 비이성 사이의 대화를 확립하려는 시도이며, 요컨대 완결되자마자 필연적으로 잊혀진 그 모호한 행위, 즉 '한계'의 역사이다. 하나의 문화는 어떤 것을 이 한계 쪽으로 배척하는데, 그것은 그 문화에 대해 외부가 된다."


338쪽
그는 헬리오가발루스가 읽고 있던 책을 집어 올렸다. "파스칼." 그는 소리내어 읽었다.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이런 책을 읽어준 이유가 뭐야? 아니, 이유가 있기는 해?"
"리듬 때문입니다." 헬리오가발루스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위대한 산문의 운율은 소년의 방황하는 주의력을 매료시키고, 붙들어매는 효과가 있습니다."



ㅡ 필립 K. 딕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스칼을 보며, 볼라뇨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필립 딕을 읽고 나서 파스칼을 읽었을 수도 있으려나... 어찌됐건 산문은 리듬이다! 생각난 김에 책장에서 [팡세]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나 싶어 책 검색을 해봤는데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불과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물론 '위대한 산문의 운율'을 얼마나 느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다음 출판사 책소개를 보니 [팡세]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보는 게 좋겠다 싶다.

"이 작품에서 파스칼 특유의 문제의식과 새로운 관점 제기, 그만의 독특한 필치가 없었더라면, 교리논쟁을 다룬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문학사에 기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납득시키는 기술’과 ‘상대의 마음에 드는 기술’로 이루어지는 그의 설득술, ‘섬세의 정신’과 ‘기하학의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수사학론은《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진리’ 혹은 ‘진실’을 표현하는 강력한 힘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파스칼과 동시대를 산 라퐁텐느, 라브뤼에르, 라신느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심지어 볼테르를 거쳐 베르나노스, 모리악, 줄리앙 그린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작품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도《팡세》와의 관계에서 단적으로 가늠될 수 있겠다. 우선,《팡세》의 많은 부분이《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와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제주이트’, ‘진리와 폭력’, ‘기적’ 등에 관한 단편들은《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쓰여진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시기적으로도 두 작품이 쓰여진 해는 1656년에서 1658년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팡세》가 파스칼이라는 천재적인 수학자이자 과학자의 관념적 산물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참여와 치열한 자기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또한《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정확한 독서와 이해 없이는《팡세》의 올바른 이해 역시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준다고 하겠다."


349-350쪽
"잠깐만. 담뱃불 좀 붙이고." 실비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재떨이를 가져왔다.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의자 위치를 바꾼 다음, 사건의 전말을 지극히 세세하게, 아슬아슬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필수 불가결한 창작을 덧붙여가면서 늘어놓았다.
놀랍게도 이렇게 얘기하는 일은 실제 경험만큼이나 즐거웠다.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ㅡ 어쩌면, 필립 K. 딕이 느끼는/생각하는 창작의 기쁨일지도...


409쪽
실비아는 강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생각했다. 내가 오늘 무턱대고 저질렀던 일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느꼈을 종류의 증오를 얘기하는 거로군. "잭ㅡ" 그녀는 어색하게 운을 뗐다.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결혼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
잭은 오랫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지 않다고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서."
"그렇지 않아." 그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비아는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남편에게 마음을 읽힌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어떤 식으로든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



ㅡ 잭과 실비아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진다. 이 대화 부분을 읽고 있으려니 레이먼드 카버가 아주 강렬히 생각났다. 대화의 뉘앙스나 그 순간의 이미지가, 카버의 소설 속 일부와 굉장히 흡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카버의 소설에서 나타나던 모호한 결말과는 달리 발췌해둔 구절에선 비교적 선명하게 끝을 맺는다.




며칠 전 본 홍상수의 [북촌방향]에서도 그렇거니와 [화성의 타임슬립]에서도 선적이고 일회적인 시간 구성을 무너뜨리고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구성이 보여지는데(물론 그 방식이나 이유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All You Nees Is Kill]이 언뜻 떠올랐다.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고, 같은 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구성이 독특하다는 생각에 구해둔 기억만 난다.




마지막 장식은 역시(?) 볼라뇨. 볼라뇨는 [괄호 치고]에 있는 "필립 K. 딕"이라는 짧은 글에서 [화성의 타임슬립]에 대해 다음과 같아 간략하게 언급했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가상 의식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글을 쓴 사람은 딕이 처음이다. 속도에 대한 인식, 엔트로피에 대한 인식, 천지만물의 아우성에 대한 인식에 관한 글을 쓴 사람 역시 딕이 처음이다. 처음이 아니라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의 타임슬립]에서 이런 것들을 보여줬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묵시적인 예수와도 같은 자폐증 소년은, 역설적인 시간과 공간이나 우리 모두가 향하는 죽음에 대해 느끼고 고통 받는 데 자기 자신을 바친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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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9-1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KD 걸작선 사고 싶다 사고 싶어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9-19 21:10   좋아요 0 | URL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 권씩 신간 사서 보니까 할인 받지 못했다는 아까움이 반드시 봐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샤라락 변하는 것 같더... (먼산)
 





아이들에게 책/소설 읽는 즐거움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그냥 읽어주라는 대답이 주를 이루는 책이다. 그래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나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에게 유용하게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꼭 교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집필 목적이 어느 정도 선명하게 나타남과 동시에 소설(읽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162쪽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였다'고 한다.

ㅡ 이 구절의 의미가 단박에 와 닿는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184쪽
나는 어떤 여자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차창 밖으로 소설책 한 권을 던져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유인즉슨 비평가들이 하도 격찬을 하는 바람에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ㅡ 개인적으론 평론가들에 대한 불만을 이런 블로그에다 투덜거리는 게 전부인데, 책에서 인용된 것처럼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독자들도 있나보다.


204쪽
읽기를 포기하는 숱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만은 좀 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렴풋이나마 패배한 느낌을 받아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경우다.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 자신보다 완강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의해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책과 씨름을 해보지만,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는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ㅡ 다니엘 페낙 같은 작가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위로 받는 기분이랄까. 페낙은 그렇게 덮어둔 책으로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말콤 라우리의 [화산 밑에서]를 꼽아두었다.

개인적으론, 가장 최근에 읽다가 덮어둔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밖에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나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정도. (훨씬 더 많지만 우선 세 권 정도만...)





ㅡ 위에서 언급된 말콤 라우리의 [화산 밑에서]와 더불어,
26쪽의 "파스칼의 [팡세]라는 책에서..."라는 구절,
130쪽의 "옳거니, [슬픈 카페의 노래]가 좋겠군! 보아하니 학생은 카슨 매컬러스를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어디 한번 [슬픈 카페의 노래] 이야기를 해봐요."라는 구절,
131쪽 "[바보들의 음모]도 괜찮고 말고."(*[소설처럼] 원서를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아마 [바보들의 결탁]이 아닐까 싶은데... 아니면 어쩌나;;)라는 구절 들을 읽으며...

볼라뇨가 떠올랐다.





ㅡ 우선 (아직 한국엔 번역된 적이 없는 것 같은) 말콤 라우리. (* '맬컴' 라우리라는 이름으로, 문지에서 [화산 아래서]가 출간됐다.) 그의 글 일부가, 조만간 번역돼 나올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제사로 인용되어 있다.

// "당신은 멕시코의 구원을 원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길 원합니까?"
"아니요." //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즈북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찬사의 목록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 [화산의 위협 아래 Under the Volcano] 이후 멕시코에 관한 최고의 소설이다(...) // (15쪽)




ㅡ 카슨 매컬러스는 볼라뇨의 [괄호 치고]라는 에세이집(현재 알라딘에서 원서는 검색이 안 되고 영역본만 나온다)에서 "필립 K. 딕"이라는 짧은 글에서 살짝 언급됐던 작가이다.

// 딕은 카슨 맥컬러스처럼 진하게 고통을 그려낸다. 그러나 (*필립 K. 딕의) [발리스]는 맥컬러스의 그 어떤 소설보다 더 불안하다. //(198쪽)

툴의 [바보들의 결탁]은 볼라뇨가 "5000권에 버금가는" 다섯 권의 목록에 포함시켰던 책이다. 이후 다섯 권을 더 언급했는데 거기에 파스칼의 [팡세]도 있었다. [괄호 치고]에는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는데 거기서 파스칼에 대해서 간략하게 코멘트를 했다.

// 플레이보이: 죽고 나면 누굴 가장 만나고 싶어요?
    볼라뇨: 전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아요. 만약 존재한다면 놀랄 것 같아요. 우선, 파스칼이 가르치는 어떤 수업이든 당장 등록할 거예요. //(366쪽)


오랜만에 볼라뇨 덕후다운 포스팅이었다. 헛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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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머가 여름 밤바다처럼 배어 있는 소설이다.
2.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방도를 달릴 때의 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3. 역자가 이세욱이라는 점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 

 
19쪽
ㅡ "거기, 섬에서 느낀 건데... 주민들이 아주 정확한 어휘, 말하자면 전문가들끼리나 주고받을 만한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이들조차 말입니다. 무슨 얘긴지 잘 아시겠지만, 그들은 '거시기'나 '것' 같은 말은 쓰는 법이 없고, 그냥 '밧줄'하듯이 어떤 물건을 두루뭉술하게 일컫기보다는 '쐐기벌레 구제기', '이중 과수장(果樹牆)', '이물대 꼬재기'하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23쪽
ㅡ 섬이라는 곳에서는 시간을 죽이기가 어렵다는 것, 세월에 맞서 싸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25쪽 
ㅡ "사나포선의 뱃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지요? 마음에 드는 어떤 외국 배가 있으면, 그들은 그 배를 세워 이것저것 조사한 다음, 그 선원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친구들을 대신 태웁니다. 그러고 나서는 가장 높은 돛대의 꼭대기에 자기들의 자기들의 국기를 게양하지요. 번역가도 그런 식으로 일합니다. 외국 책을 나포한 다음, 그 언어를 완전히 갈아 치우고 우리나라 것으로 만들어버리지요. 책이 배라면 말은 그 배의 선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 


26쪽
ㅡ 따지고 보면 번역이란 외과 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 내고 언어유희를 이식하며, 큰 것을 잘게 부수고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55쪽 
ㅡ 출판인들은 우스꽝스러운 과장법이 수반되기 마련인 신간 소개용 팸플릿이나 광고지를 보내어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기벽을 지니고 있었다.


66쪽
ㅡ "그들은 나보코프 작품을 겨울에도 번역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나보코프가 누굽니까? 나비들과 너무 가까이 지낸 탓에 그 종잡을 수 없는 교태를 문학에 차용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허전한 계절에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출판사에서만 모르고 있어요.


67쪽
ㅡ 정원 역시 말들이 무더기무더기 널려 있는 난삽한 공간이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식물의 이름을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어렴풋한 표면밖에 감상하지 못한다. 


132-133쪽
ㅡ 우리는 프랑스어를 화제의 중심에 놓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어의 갖가지 특성, 즉 그 율동과 울림, 그 한결같은 절도, 추상(推象)에 대한 그 고질적인 사랑, 여간해서 헝클어지지 않는 그 문법에 대해서. (...) 술기운이 떨어져서 다시 기가 죽어 있던 우리는 임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임에게 가장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다. 몽테뉴, 라퐁덴, 스탕달, 아폴리네르...
  

148쪽 
ㅡ 번역과 무선 통신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주선하는 소중한 중개자이며 항구적인 평화를 가꾸어 주는 거름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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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왜 어리석은 일인지는 제발트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지도. 대부분의 외국작품 뒤에는 '옮긴이의 말'이나 '해설'이 실려 있는데 제발트의 책에 실린 '옮긴이의 말'처럼 무미건조해보이는 경우도 보기 드문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발트의 문장 때문이다. 그의 문장과 맞서서 무력해지지 않을 문장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트에 대해 몇 마디 끄적대려 하고 있다. (이제 굳이 '끼적거리다'고 하지 않아도 되구나!) 뭐든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고, 별 생각 없이;; 친구에게 내뱉은 말 때문이기도 하다.


제발트는, 김훈을 설명할 때면 연관 검색어처럼 단박에 떠오르는 '연필로 꾹꾹'이라는 진부한 수식이 진정 어울리는 작가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화려한 수사나 시적인 미문이나 선언적인 문장 들이 없어도 산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그의 묘사 때문이리라. 묘사가 어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천대시 되는 요즘 시대에 제발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서사보다 훨씬 자극적인 묘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작은 단위의 유형명사/구체명사들이 오밀조밀 나열되어 있는 문장들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실 제발트의 문장은 의미의 밀도가 높다. 하여 한 문장 한 문장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읽어나가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힘든 만큼 집중 했을 때 찾아오는 쾌감도 크다. 더불어 비극과 파국과 몰락을 바라보는 작가의 덤덤한 눈길이 더해진다. 슬픔 감정이 제거된 비극은 외려 아름답다. 그는 독자들에게 일회적인 눈물보다는 오래 지속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보여주는 비극은, 파국은, 몰락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발트의 책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해준 이야기가 나온다. 혹은 그가 떠올린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들도 등장한다. 그것만 봤을 땐 일반적인 에세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마치 윤활유처럼, 허구나 창작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의도적 왜곡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삽입된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이 과연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그러나 제발트를 읽으며 장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와 에세이라는 장르 사이에 존재하는 제발트라는 문학장르. 사실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은 기존의 문학장르가 온전히 포섭할 수 없는 자기만의 특성을 띠어왔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단순히 좋다 나쁘다 혹은 재밌다 별로다를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아마도, 제발트를 다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의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 무엇이 더 좋은 번역이고 무엇이 더 올바른 번역인지 판가름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문장의 리듬에 대해서라면, 산문을 읽는 맛이라는 측면에서라면, 이재영의 번역이 나와 더 잘 맞았다.


현재까지는 [이민자들]이 가장 좋았다. 무지 탓에 놓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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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4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음은 옆의 책 제4과 "영원한 대화"(13-19p)라는 제목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 내면에 있는 노인과 아이가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의 내면세계에는 영원한 아이와 노인이 공존한다. 아이와 노인은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존재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 동안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다. 이제 그들의 솔직담백한 대화를 들으면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통찰력과 풍요로운 지혜를 만나보도록 하자.


아이: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노인: 음, 몇 살로 보이니?

아이: 여든 살로 보여요.

노인: 그것보다 다섯 살 더 많단다.


아이: 할아버지는 더 크면 뭐가 되고 싶어요?

노인: 나는 별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이: 제가 뭐가 되고 싶은지 지금 물어봐주세요.

노인: 그래, 물어보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지?

아이: 신이 되고 싶어요.

노인: 신?

아이: 네. 할아버지가 별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잖아요. 물어볼 게 있어요. 친구가 뭐예요?

노인: 네 엄마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이지.

아이: 할아버지는 친구가 있어요?

노인: 너 하나뿐이란다, 얘야. 다른 사람은 없어.

아이: 친구가 한 명뿐이면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노인: 친구가 없으면 살 수 없겠지. 근데 너처럼 진실된 친구라면 충분해.

아이: 근데 왜 할아버지는 즐겁지 않죠? 제 우정으로는 부족한가요? 할아버지는 슬퍼 보여요.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그래요?

노인: 말이 없다고 슬픈 건 아니란다. 행복하지 않은 게 슬픈 것도 아니고. 그리고 밤의 어두움 때문에 무섭지는 않아. 왜냐하면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 위해 추억이랑 책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지. 만약 네가 무지개에 닿았는데 그것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겠니?

아이: 아니요. 할어버지의 추억... 추억은 어때요? 할아버지는 무지개에 닿은 적이 있어요?

노인: 어제 네가 했던 것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는 것이 추억이란다. 무지개에 대해서라면, 닿은 적이 있어. 하지만 누가 내 말을 믿겠니?

아이: 전 믿어요!

노인: 그래. 난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아서 슬펐단다.

아이: 저도 슬퍼요. 왜냐하면 어제 나무 위 둥지에 새 두 마리가 있는 걸 보았는데 오늘은 한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새가 죽었을까요?

노인: 분명히 수컷일 거야.

아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노인: 만약 아니라면, 둥지는 텅 비어 있을 거야. 어제 오후에 새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거든.

아이: 전쟁이 뭐예요?

노인: 두 무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큰 규모의 싸움이란다.

아이: 누가 전쟁을 하죠?

노인: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하지.

아이: 거북이는 자기들끼리 안 싸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동물들보다 오래 살고요. 그죠?

노인: 네 말이 맞아. 그리고 아무도 달리지 않고, 어떤 곳에 도달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지. 그들은 살면서 그저 걸을 뿐이야. 우린 거북이들에게 그걸 배워야 해. 늘 서두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나쁜 일을 저지르지. 그리고 항상 달리기 때문에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를 못 보는 일이 잦지.


아이: 할아버지는 항상 맞는 말만 해요! 할아버지도 아이였던 적이 있어요?

노인: 그럼, 당연하지.

아이: 저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될까요?

노인: 물론이지. 왜 아니겠어? 네가 나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어떤 아이가 너에게 할 만큼 산다면 말이지.


아이: 채권자가 뭐예요?

노인: 채무자보다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란다.

아이: 지혜로운 건 뭐죠?

노인: 적절히 말할 수 있는 덕목, 그러니까 입을 다물 줄 아는 현명함이지.

아이: 도둑이 뭐예요?

노인: 허락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는 나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

아이: ‘빈대’가 뭐예요?

노인: 일을 하지 않거나 약간의 투자로 큰 이득을 보려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들이지.

아이: 술이 뭐죠?

노인: 불면증을 치료할 수 없는 약이야. 하지만 불면을 즐겁게 해주지.

아이: 사랑은 뭐예요?

노인: 크고 작은 우리의 이기심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란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걸 ‘카리타스’라고 불렀어. 그건 인류애, 가족애, 친구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지.

아이: 내일은 뭐죠?

노인: 오늘 못한 것을 위한 이상적인 날이야.

아이: 사무실은 뭐예요?

노인: 아내에게 받은 집안의 피로를 해소시키기 위한 장소지.

아이: 향수는 뭐예요?

노인: 다른 냄새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냄새란다.


아이: 새들은 왜 노래 부르죠?

노인: 자신들의 자유로부터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지.

아이: 하지만 전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노인: 물론이지, 그렇고 말고. 언젠가 넌, 무엇으로도 그리고 누구도 가둘 수 없는 내면의 자유를 이해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내면의 자유는 영혼의 침묵이란다. 

아이: 행복하다는 게 뭐예요? 그리고 뭐 때문에 침묵이 존재하죠?

노인: 늘 자기 자신에게 진솔한 것이 행복이지. 그리고 침묵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한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아이: 할아버지는 부자예요?

노인: 갖고 싶은 전부를 갖고 있지는 않단다.

아이: 얼마나 갖고 있는데요?

노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것 정도는 갖고 있지.

아이: 선은 뭐고 악은 뭐예요?

노인: 신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둔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만이 네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거야.

아이: 신은 어디 있어요?

노인: 네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 속에 신이 있지. 네 마음이 느끼는 것 속에도 있고, 너의 지혜가 다다른 곳에도 있단다.

아이: 할아버지는 왜 구름 보는 걸 좋아해요?

노인: 모양이나 색깔이 변하는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에 구름 보는 걸 좋아한단다. 구름의 조각가는 신이겠지.


아이: 우리는 왜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하죠?

노인: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서란다. 근데 너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이브가 준 사과를 아담이 먹었다는 이야기. 무슨 생각이 들었어?

아이: 굉장히 배가 고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보다 항상 더 많이 웃는 것 같아요.

노인: 그렇지. 너는 이제 막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잖니. 나는 죽음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아이: 하지만 죽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노인: 그렇지.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삶에 정들어 온 상태에서 그것을 저버리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아이: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노인: 근데 그 눈물은 뭐니?

아이: 제 영혼에서 빠져나온 이슬이에요.

노인: 친구, 내 친구야! 얼마나,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네 곁에서 배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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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9-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 정말 저 책에 이런 글이 나와요? 스페인어를 안 배워도 사고 싶어지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11-09-01 16:00   좋아요 0 | URL
네 ㅎ 참 알흠다운 대화죠? :)

2011-09-01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통 2013-04-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감사합니다
예습해가야되는데 도움이 많이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