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소설 읽는 즐거움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그냥 읽어주라는 대답이 주를 이루는 책이다. 그래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나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에게 유용하게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꼭 교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집필 목적이 어느 정도 선명하게 나타남과 동시에 소설(읽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162쪽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였다'고 한다.

ㅡ 이 구절의 의미가 단박에 와 닿는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184쪽
나는 어떤 여자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차창 밖으로 소설책 한 권을 던져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유인즉슨 비평가들이 하도 격찬을 하는 바람에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ㅡ 개인적으론 평론가들에 대한 불만을 이런 블로그에다 투덜거리는 게 전부인데, 책에서 인용된 것처럼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독자들도 있나보다.


204쪽
읽기를 포기하는 숱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만은 좀 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렴풋이나마 패배한 느낌을 받아 책을 다 읽지 못하는 경우다.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 자신보다 완강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의해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책과 씨름을 해보지만,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는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ㅡ 다니엘 페낙 같은 작가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위로 받는 기분이랄까. 페낙은 그렇게 덮어둔 책으로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말콤 라우리의 [화산 밑에서]를 꼽아두었다.

개인적으론, 가장 최근에 읽다가 덮어둔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밖에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나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정도. (훨씬 더 많지만 우선 세 권 정도만...)





ㅡ 위에서 언급된 말콤 라우리의 [화산 밑에서]와 더불어,
26쪽의 "파스칼의 [팡세]라는 책에서..."라는 구절,
130쪽의 "옳거니, [슬픈 카페의 노래]가 좋겠군! 보아하니 학생은 카슨 매컬러스를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어디 한번 [슬픈 카페의 노래] 이야기를 해봐요."라는 구절,
131쪽 "[바보들의 음모]도 괜찮고 말고."(*[소설처럼] 원서를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아마 [바보들의 결탁]이 아닐까 싶은데... 아니면 어쩌나;;)라는 구절 들을 읽으며...

볼라뇨가 떠올랐다.





ㅡ 우선 (아직 한국엔 번역된 적이 없는 것 같은) 말콤 라우리. (* '맬컴' 라우리라는 이름으로, 문지에서 [화산 아래서]가 출간됐다.) 그의 글 일부가, 조만간 번역돼 나올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제사로 인용되어 있다.

// "당신은 멕시코의 구원을 원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되길 원합니까?"
"아니요." //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즈북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찬사의 목록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 [화산의 위협 아래 Under the Volcano] 이후 멕시코에 관한 최고의 소설이다(...) // (15쪽)




ㅡ 카슨 매컬러스는 볼라뇨의 [괄호 치고]라는 에세이집(현재 알라딘에서 원서는 검색이 안 되고 영역본만 나온다)에서 "필립 K. 딕"이라는 짧은 글에서 살짝 언급됐던 작가이다.

// 딕은 카슨 맥컬러스처럼 진하게 고통을 그려낸다. 그러나 (*필립 K. 딕의) [발리스]는 맥컬러스의 그 어떤 소설보다 더 불안하다. //(198쪽)

툴의 [바보들의 결탁]은 볼라뇨가 "5000권에 버금가는" 다섯 권의 목록에 포함시켰던 책이다. 이후 다섯 권을 더 언급했는데 거기에 파스칼의 [팡세]도 있었다. [괄호 치고]에는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는데 거기서 파스칼에 대해서 간략하게 코멘트를 했다.

// 플레이보이: 죽고 나면 누굴 가장 만나고 싶어요?
    볼라뇨: 전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아요. 만약 존재한다면 놀랄 것 같아요. 우선, 파스칼이 가르치는 어떤 수업이든 당장 등록할 거예요. //(366쪽)


오랜만에 볼라뇨 덕후다운 포스팅이었다. 헛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