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머가 여름 밤바다처럼 배어 있는 소설이다.
2.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방도를 달릴 때의 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3. 역자가 이세욱이라는 점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 

 
19쪽
ㅡ "거기, 섬에서 느낀 건데... 주민들이 아주 정확한 어휘, 말하자면 전문가들끼리나 주고받을 만한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이들조차 말입니다. 무슨 얘긴지 잘 아시겠지만, 그들은 '거시기'나 '것' 같은 말은 쓰는 법이 없고, 그냥 '밧줄'하듯이 어떤 물건을 두루뭉술하게 일컫기보다는 '쐐기벌레 구제기', '이중 과수장(果樹牆)', '이물대 꼬재기'하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23쪽
ㅡ 섬이라는 곳에서는 시간을 죽이기가 어렵다는 것, 세월에 맞서 싸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25쪽 
ㅡ "사나포선의 뱃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지요? 마음에 드는 어떤 외국 배가 있으면, 그들은 그 배를 세워 이것저것 조사한 다음, 그 선원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친구들을 대신 태웁니다. 그러고 나서는 가장 높은 돛대의 꼭대기에 자기들의 자기들의 국기를 게양하지요. 번역가도 그런 식으로 일합니다. 외국 책을 나포한 다음, 그 언어를 완전히 갈아 치우고 우리나라 것으로 만들어버리지요. 책이 배라면 말은 그 배의 선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신가요? 


26쪽
ㅡ 따지고 보면 번역이란 외과 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 내고 언어유희를 이식하며, 큰 것을 잘게 부수고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55쪽 
ㅡ 출판인들은 우스꽝스러운 과장법이 수반되기 마련인 신간 소개용 팸플릿이나 광고지를 보내어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기벽을 지니고 있었다.


66쪽
ㅡ "그들은 나보코프 작품을 겨울에도 번역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나보코프가 누굽니까? 나비들과 너무 가까이 지낸 탓에 그 종잡을 수 없는 교태를 문학에 차용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허전한 계절에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출판사에서만 모르고 있어요.


67쪽
ㅡ 정원 역시 말들이 무더기무더기 널려 있는 난삽한 공간이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식물의 이름을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어렴풋한 표면밖에 감상하지 못한다. 


132-133쪽
ㅡ 우리는 프랑스어를 화제의 중심에 놓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어의 갖가지 특성, 즉 그 율동과 울림, 그 한결같은 절도, 추상(推象)에 대한 그 고질적인 사랑, 여간해서 헝클어지지 않는 그 문법에 대해서. (...) 술기운이 떨어져서 다시 기가 죽어 있던 우리는 임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임에게 가장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다. 몽테뉴, 라퐁덴, 스탕달, 아폴리네르...
  

148쪽 
ㅡ 번역과 무선 통신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주선하는 소중한 중개자이며 항구적인 평화를 가꾸어 주는 거름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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