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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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섬이었다.

섬이 아닌적이 없었으나 알지 못했을 뿐, 이제야 섬으로서의 자기인식을 획득한 것이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달ㄹ 섬 말고 어디서 만날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ê).- 섬(Î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 p.120

 

 

 

◆  홀로이길 권장하는 시절이다. 외로운 섬처럼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시절이다. 잡은 손을 놓고 마주한 얼굴을 멀리 하는 외로운 시절이다. 90년전의 그르니에가 일상에서 섬을 사랑했듯 홀로인 인간은 홀로임을 증명하고자 책을 편다.

 

 

은은히 빛나는 파란 섬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따뜻해진 침묵의 바다를 눈끝으로 더듬으면 섬 위의 하얀 구름마냥 온기가 심장으로 전해진다. 단어와 문장, 문장과 문단 사이 공(空)의 자리에 즉시 내가 들어앉는다.<공(空)의 매혹> 늦가을 우리가 즐길 독서에 고양이 물루의 체취가 콧속으로 밀려들고 마지막을 온 몸 다해 맡겨오는 물루의 체온이 다리 위로 내려앉는다.<고양이 물루> 자연상태로 돌아가기 위하여 비밀을 간직하고 미천한 인간이 되었다가 여행의 종착역에 있을거라 여긴 자기인식을 찾아 섬들로 내딛는다.<케르겔렌 군도/행운의 섬들>  죽음 앞에서 앎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무의 섬뜩함을 느끼고 그르니에의 문장으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나만의 인도를 탄생시킨다. <이스터섬/상상의 인도> 하지만 어머니의 섬, 어부들의 섬, 아름다움의 섬, 종려수들, 오렌지나무들, 지상낙원의 모습을 한 보로메의 섬에 다다라서야 보로메의 섬은 어디에건 있지만 나만의 둘시네아는 꿈과 이상을 좆던 여행에서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로메의 섬>

 

 

 

◆ 우리는 언제나 섬이었다. 섬이 아닌적이 없었으나 알지 못했을 뿐, 이제야 섬으로서의 자기인식을 획득한 것이다. 비밀스러운 책의 진짜 비밀이다.
혼자뿐인 섬, 혼자씩인 인간으로 가득 찬 책 표지를 손끝으로 문지른다. 그르니에의 문장을 닮은 기묘한 두께감과 부드러움이 촉감으로 환원된다. 가만히 바라본다. 푸른 섬은 문장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멀리 안개는 베일처럼 애달프다. 섬 주변은 문장주위에 고인 침묵처럼 올망지며 무욕하게 고요하다. 저 너머 또다른 섬이 고개만 내밀고 섬에는 섬을 기다리는 인간이 홀로 있다.
푸른 섬에 홀로선 인간을 내려다보며 나는 옮긴이의 마지막 단락을 생각한다.

 

 

 

「겨울 숲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숙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이다지도 멋진 작품을 읽었다한들 카뮈와 같은 대작을 써내려갈만한 능력이 내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빈한한 이 글이 그르니에의 글을 읽게 될 독자분들께 저 침묵의 바다 어딘가에 섞였을 나의 애정 한방울로 가닿기를 바란다. 나의 온 마음을 담갔다 나온 그 바다에 여러분의 기쁨이 덧담기길 간절히 소망한다. 알제의 윤슬을 담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1933년 보로메의 섬들이 가슴속 또다른 섬으로 자리하길 기원한다. 그렇게 나와 당신이 먼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무(無)속에 무(茂)하고 공(空)속에 공(共)하여 충만이 들어앉아  안개 뒷편 멀리 숨었던 푸른 섬이 당신 앞으로 눈부시게 다가올 것이다.

 

 

◆ <덧> 태양과 알제와 칼리굴라와 회색의 파리에서 카뮈의 흔적을 찾을때마다 새삼스럽게 그르니에가 정말 카뮈의 스승이었음에 감탄한다. 그르니에의 이 산문들이 작가 카뮈의 첫 발자국었음이 기쁘다. 카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때 소리보다 침묵을 더 크게 담은 그르니에의 추도사마저 공(空)과 무(無)의 산문,『섬』을 닮았다.

 

 

 

- 표지이야기

 

내지 안의 페이지표기 위치나, 책의 제목과 소단원이 배치된 자리를 바라보시면 활자들이 또 하나의 섬처럼 여겨질거에요. 책을 덮은 후 바라본 살구빛 바다가 어찌나 깊어보이던지요. 피드를 쭉 내려보시면 아시겠지만 시기와 국적을 초월해 산문집 혹은 에세이 안읽습니다만 김화영 번역가님께서 장 그르니에는 살을 붙여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 본질만 남기는 작가라 하셨던 말씀처럼 어디 하나 덜어낼 곳이 없이 단정한 산문이 가슴을 오래 울립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고 있구요.   기존 번역본으로 있으신 분들이라면 김화영선생님께서 젊은 시절의 열기를 식히고 연륜과 깊이를 담아 새로 번역하신 이 번역본으로 읽어보시는것도 좋겠습니다. 책과 번역과 디자인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오랜만의 산문집이었습니다. 이 책 만큼은 리뷰요청과 개인구입을 초월해 추천합니다. (제가 '추천'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기재한 독후감이나 리뷰가 몃개 없어요.)

 

 

 

▷ 공(空)의 매혹이 뜀박질로 인도하게 되고, 우리가 외발로 딛고 뛰듯 껑충껑충 이것저것에로 뛰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섞인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공의 자리에 즉시 충만이 들어앉는다.p.29  <공(空)의 매혹>

 

 

▷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40 <고양이 물루>​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 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 우리는 추론을 통해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쪽은 그쪽이다. p.87 <케르겔렌 군도>

 

▷ 태어나고 사멸하는 모든 것의 곁에서 그것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도대체그것은 어떤 모습을 가진 것일까? 그는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물도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아무것도 그 누구도 아니다. 아니다. 그대는 '그것'이다. 항구적이지 않은 것을 통해서 항구적이며 부재 속에 존재하며 공(空) 속에 산재한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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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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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당신과 나의 다정은 다르게 유전될것입니다.

 

▶ 사람들은 자신만의 조각을 가졌다. 색, 형태, 두께, 크기, 질감이 다른 조각 모서리를 구기고 찢으며 세상에 끼워맞추는게 사는거라고, 그게 잘 살아가는거라고 여겼다. 같은 모양의 판을 물려주며 이것이 행복이고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해인마을이라는 판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렇게 한 사람은 떠났고 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겪었다.
질병과 고통, 좌절과 갈망은 교통사고였다. 원치 않게 영혼과 육체에 상흔을 남겼고 사라진 상흔 아래 고통은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창살 사이로 던져 가장 멀리 날아간 쪽지만큼만 희망하고 보이지 않는 고통이 거기 있음을 서로가 알아줄 뿐이다. 체온이 느껴질만큼 가까울때 더욱 몰랐고  한기에 선득할 정도일때 저기 사람들이 보여서 더 잘 알았다. 그렇게 서로를 돌보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통을 함께 경험했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다정이다.​

 

▶ 통속적 의미의 다정이 지금도 두팔벌려 환영할 만 할까. 더 원한다는 말의 입막음으로 다정을 방패삼는게 아닌가, 받아내림을 당연하도록, 거부할수 없도록 짐으로 지워버린게 아닌가. 다정이란 호의속에 창살을 숨기다 서로을 옥죄버린게 아닌가. 그러니 이젠  가까이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긴밀하게 친절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각자의 생이 성기게 연결되어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 이제 다정은 해인마을의 '다정'으로 유전되지 않는다. 서로의 사고와 병을 느슨하게 인지하며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다정은 다르게 흐른다.
그것이 누군가가 환상을 포기하는 과정이라도, 우울과 자책과 분노와 좌절의 과정이라도 다음의 다정을 받아 다시 꿈꿀 또다른 다정이 될 것이므로. 당신과 내가, 우리와 모두가 새로운 유전을 거듭할수록 다정은 모두에게 다른색이 될것이다. 끝없이.

 

**** 각각의 조각을 이어 붙인 퀼트같은 작품이에요. 거기에 강화길 작가님의 시그니처같은 일상의 선득함이 있구요.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는 언제나 그렇듯 작고 휴대성이 좋은만큼 길지 않은 소설입니다만. 감상의 깊이가 글의 길이에 비례하진 않지요. 이 책은 그동안 쭉 읽어온 아르테 시리즈 중 가장 다양한 감상이 쌓이던 작품이었어요.  먼저 제안주신 아르테 출판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서지원을 받았고, 개인의 주관적 감상으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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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p.17

-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없애려 애써도 매번 다시 나타나는 거미를 내몰 방법이 없으니 그냥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며 함께 사는것, 지네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믿고 사는 것처럼. p.88

 

- 그녀는 이사하던 중에 상자를 발견했고 소설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울었다.
"무슨 이야기였는데요?" 내가 묻자 김지우가 대답했다.
"환상을 포기하는 이야기요."p.129

- 병에 걸린다는 건, 타인에게 내 행복을 맡겨둔 것과 같다. 살아있는 순간에 감사하고 모든것이 소중해지는 순간에도, 통증은 불현듯 찾아온다. 변덕스러운 사랑처럼. 그러면 나는 무너진다. 내 의지가 아니라는것, 내 선택과 잘못떄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유약한 마음에 내 인생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고 화기난다.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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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나노로봇공학자, 우리와 우리 몸속의 우주를 연결하다
김민준.정이숙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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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독증을 가지고 나노로봇 과학자로 석좌교수가 되기까지>>

 

나노로봇과 난독증처럼 어울리지 않는게 있을까마는. 저자는 난독증을 가졌음에도 나노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수많은 자료를 읽고 논문을 쓰며 과학자가 되었다. 30센티 자로 한줄씩 읽어가는 방법. 이건 난해한 문장이나 숫자 가득한 자료볼때 쓰는 방식이라 깜짝놀랐다. 시야를 가려서 집중도를 높여주는게 난독증에도 도움이 되는구나. 같은 방법을 쓰면 뭘할까. 저자의 마이크로 나노로봇 연구에 관한 개략적 설명 (2장)은 그렇게 봐도 모르겠는걸.

저자는 나노로봇공학의 한 연구가지만 제자이기도 하고 스승이기도 하다. 1장은 여는 글, 2장은 연구가로서 자신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 3장은 제자로서 자신의 모든 스승에 관한 이야기, 4장은 스승으로서 만난 제자와 만날 제자에 관한 이야기가 엮였다. 과학서적이기도하고 한 사람의 에세이기도 한 글들은 두개의 색채를 가졌으나 모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노로봇공학에 몸담은, 몸담고자 하는 사람의 목소리일수도 있겠다.

 

눈에 보이는 로봇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초소형로봇들은 인간의 신체에 발생한 질병들을 치료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초소형 로봇들이 작은 우주-인간의 몸-으로 진입할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기 때문에 기계, 전기, 컴퓨터공학 뿐 아니라 화학 물리학 미생물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과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나노로봇공학의 세계가 하늘 위 우주와 다르지 않아서 책의 이름을 이너스페이스 (inner space) 로 명명했을거란 생각을 했다. 저자가 책의 처음과 끝에 말했듯 보이지 않는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덕질하듯 학맥을 이어가며 한국의 나노로봇공학도가 늘어나 한국 나노로봇공학의 이너스페이스도 더 크게 팽창하길 기원한다.

 

 

 

 

>>  이 책의 개인회상부분과 연구내용 부분을 나눠 개인독서취향을 반영해본다면, 어렵더라도 연구내용을 읽는게 훨씬 재밌었다. 물론 절반은 두번씩 읽고 단어도 검색해야했지만. 특히 박테리아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자기분화와 역분화를 통해 몸을 변형하는 자연이 만들어낸 트랜스포머 로봇이라는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몸통의 편모들의 운동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급 재밌어진 기분. 그러나 방향성을 강요하지 않으신 부모님과 지도교수로서 만나길 바라는 제자상을 읽으며 다른세계로 슥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가장 공들여 적으셨을 것 같으나 죄송하게도.

 

>> 책을 다 읽고 다시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을 보니 나와같은 비 전공자 /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나노로봇이야기가 아니라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고 연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것이 집필의 가장 큰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준의이너스페이스 #김민준_정이숙 #동아시아
@dongasiabook #동아시아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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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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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기후변화가 범지구적 문제일 수 밖에 없는가
코로나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비대면 명절을 권고한 초유의 추석이 끝나갑니다. 갈수 없으니 추석선물로 대신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명절선물이 집에 가득하구요. 연휴의 마지막날 집 앞 골목은  과일의  스티로폼 그물망, 고기와 해산물의스티로폼과 냉매제, 플라스틱 박스, 배달용 일회용품에 검은 비닐봉투로 가득합니다. 인간이 4박5일 먹고 마시고 쉬기 위해 소비된 흔적들은 지구에서 백년 이상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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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성공적이던 가치가 미래를 파국에 이르게 한다.>>-p.38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도하고 어떤 사람의 과거행적으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만큼은 과거의 기록으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지리학에서는 지질시대를 Eon(누대)-Era(기)-Period(대)-Epoch(세)-Age(절)로 나눕니다. 지금은 신생대 제 4기 홀로세인데,​ 1950년전후를 기점으로 홀로세와 구분해 인류세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참조) 지구환경을 죄지우지하는 존재가 인류가 된 셈입니다. 이 인류세에 들어선지 백년도 되지 않았는데, 변화는 어떤 시대보다도 커졌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지금은 상반기 다르고 하반기가 다를 지경이 되었으니까요. 인간이 지구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기후변화로 지구의 회복탄력성이 떨어진 지금, 인간이 주는 같은 자극에도 더 큰 양의 되먹임으로 되돌려줍니다. 어제와 같은 양의 탄소소비를 했다고 해도 더 큰 기후증폭(ex. 기온과 해수면상승 )을 내놓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전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고 결과물을 도출해내는게 불가능할 수 밖에요. 그러다 티핑포인트를 넘어버리면 인류의 존속이 문제가 되고, 아마도 과거 공룡이 멸종하듯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다른 존재가 지구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땐 신생대 제 4기 인류세가 아니게됩니다.
이런 지구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걸 내어주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인간이 자연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지우고 유한한 자연을 무한한 세계인 양 호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록이 한번 깨지면 우연이다. 다시 깨지면 우연의 반복이다. 세번째 깨지면 추세가 된다. 매번 깨지면 변화가 된다.>> p.72
폭염기록은 매 해를 갱신했고, 갱신하는 주기가 급격히 짧아졌으며 지역평균도, 비가 내리는 패턴도 올해가 다르고 작년이 다르고 십년전과도 다릅니다. 저 문장을 읽는 동안 . 기후평균값을 산출할 만큼 과거의 데이터가 넉넉치 않을것이고, 변동값은 오차 밖으로 넘어갔을테니 기상청의 예측이 틀린 날이 많아진 것은 이런 이유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독립적인 초기조건을 가진 결과물들이 모여야 여러 결과를 예측할수 있게 되는데, 이런면에서 독립적 초기조건은 편향되지 않은 집단지성과 닮았습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민주주의가 지구위기의 예방책일수 있고 북한이 지구위기의 카나리아(갱 내 유독가스를 인간보다 더 먼저 알아챔)와 같은 존재란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굴러가는 민주주의여야 의미가 있다는 건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정서 탈퇴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만. (혼돈의 늪 #미국대선) 제대로 굴러가는 민주주의가 배경일 때 가장 긍정적인 집단지성모형이 생겨나기 때문이겠지요.  
기후예측의 불확실성은 과학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결국 불확실성은 집단지성을 닮은 앙상블 예측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기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든 걸 해결해 주겠지 외면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이념 뿐 아니라 국가와 체제를 넘는 전 지구의 문제가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인류세의 끝을 목도하지 않을 방법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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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책은 해양과학에 과한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기후과학자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환경문제에 관한 책은 아닙니다만 환경문제의 배경이 되는 과학적 지식을 다룹니다.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아요. 물화생지 중에서 생. 지. (특히 지구과학) 선택학생들이나 환경문제의 배경이 될 교양과학서적을 찾는 학생들에게도 추천. 지금 중간고사대비 시즌이라 옆집 고등학생에게 읽어보라 하질 못해서 반응을 모르겠네요.

 

#파란하늘빨간지구 #조천호 
#기후변화와인류세기후시스템에관한통합적논의
#기후 #과학 #국립기상과학원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책 #책읽기 #책추천 #책리뷰 #독후감 #추석 #연휴 #일요일 #📚 #bookstagram #book #readi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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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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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조리한 삶의 편린들
세번 쯤 읽은 이방인. 초독때는 어머니의 죽음 후 살인에 이르는 과정에서 뫼르소가 보여주는 인간관계나 감정변화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담, 황당한 캐릭터로만 기억했다. 재독땐 사람마다 추모의 방식은 다르고 슬픔과 기쁨의 기준은 다르니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며 그래도 살인은 너무 간것 아니냐 정도의 부조리의 실루엣만 인지했다.
이번에 읽은 삼독차 이방인은 좀 더 선명하게 인간관계를 넘어 생을 관통하는 부조리함의 크기가 다가왔다. 한권이 더 남아있지만 일단 을유문화사의 이방인으로 삼독차를 정리한다. (왠지 길 것 같고...다 쓰고나니 정말 길 뿐이고.)
가지고 있는 네 권의 책은 모두 번역적 특색이 있지만 작품 뒤에 실린 것들에도 차이가 있다. 을유문화사의 이방인은 본문(145p),주석 (44p), 해설 (32p) 작가연보 (6p) 로 구성되었다. 주석이 작품의 1/3인 책은 처음인듯. 원문의 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이러이러한 근거로 바꿨노라 하나하나 설명한 주석을 보고 있자면 친절한 강의노트를 읽는 기분도 든다. (사담이지만 을유세계문학 전집은 약간 스터디너낌. 그래서 좋아합니다. 딱 취향이에요) 내가 가진 나머지 세 권 모두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면서 이 ㄴ..이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을유의 이방인은 다르게 대체되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3세대 번역 카뮈라고 이름붙일만큼 시대적 흐름을 많이 반영했구나. 
<< 1부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보를 받고 간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슬퍼하거나 엄마의 모습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은 자신의 상실만을 애도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이 끝나가는 시점에선 양로원장, 수위, 어머니의 친구, 여러 노인들이 보이는 애도와 슬픔이 어머니의 죽음때문인지 자신에게도 올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장례식을 위해 옷을 빌려줬던 셀레스트가 보인 애도가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의 삼촌 장례식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20페이지 '그건 인간적인 마음의 정리'라는 구절을 읽으며 개인의 공감 혹은 감각이란 것들이 학습되고 정량화된 사회적 규범이 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고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해야 보통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강제성이 뫼르소가 느낀 부조리의 감각일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장례식장에 가보면 망자를 향한 슬픔과 애통함만 있지 않고 증오, 고통, 연민뿐 아니라 자유로움과 기쁨, 홀가분함까지도 존재한다. 사망이란 사실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엔 실재하는 일이 아니므로 슬플 리 없을 것이다. 관계맺음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더라도 재단되거나 정량화 될 수 없으니 자신에게 빗대어 가늠할 수 밖에. 흘리는 눈물의 양과 애달픈 단어의 갯수를 감정의 크기와 깊이라고 결정짓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의 애도만 보이면 될 일이다. 상대의 애도는 상대의 몫이므로. 뫼르소라면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만이 애도할 수 있으니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상실을 애도했겠지.
장례식 이후 뫼르소가 마리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포주 레몽과 절친이 되어 레몽의 정부에게 폭행을 가한 후 떠난 여행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순간이 1부의 마무리다. 1부에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개인적 사건을 중심으로 연속되는 일상적 관계들을 풀어간다. 연인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과의 관계를 뫼르소가 먼저 욕망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뫼르소는 욕망하고 요구하기보다는 요구받고 관망하는 자연적 위치에 가깝다.
<< 2부 >>
1부의 마지막,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피고로 감옥에 수감되고 법정에 서서 자신의 죄를 타인의 입으로 들으며 유죄를 선고받아 결말에 이르기까지가 나머지 2부의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성을, 2부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예심판사는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첫발 이후 네발의 탄환사이에 왜 공백을 가지게 되었는지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가치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예심판사가 가진 '모든 인간이 반드시 그러하다 ' 는 확신은 모든 인간안에서 뫼르소를 소외시키고 그것이 스스로의 명제가 거짓임을 말한다.
재판장은 '법률'에 따라 질문하고 '법률'에 따라 판결한다. 법률은 뫼르소가 유죄인 이유를 권하는 커피와 담배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어머니의친구보다 눈물 흘리지 않고, 마리와 연인관계를 시작하고 포주와 절친이 되어 해수욕을 하고 희극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것으로 고발 된 것인지, 사람을 죽인것으로 고발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인 법정에서 '범죄자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인간을 고발'한다는 검사의 말이 타당성을 보이는 부조리한 상황은  법률마저 부조리함에서 비껴갈 수 없다고,  개인과 집단의 부조리함은 개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을 아득히 넘어선 크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관계맺음을 욕망한 유일한 인물인 마리가 뫼르소를 면회할 수 없는 이유가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라했다. 결혼은 사회가 정해준 개인의 관계맺음이다. 집단과 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의로는 관계가 인정받기 힘들다. 뫼르소는 법정과 감옥을 오가는 동안 모든 관계를 감흥없이 흘려보내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가 담긴 관계맺음의 인물-마리와의 단절앞에서 세상과 자신의 흐름이 멈춰버림을 경험한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간호사가 혼잣말처럼 하던 문장, '그렇다 출구는 없다.' 는 문장 속 감옥은 단절된 관계성과 의지의 상실의 의미하는 공간이, 출구는 타인과 사회가 정의한 모든 것들을 초월해야 찾을 수 있는 뫼르소의 이데아 쯤 될 것이다. 개인에서출발해 점차 큰 단위의 집단으로 확장된 관계맺기는 종교적 확신을 가진 신부와의 대화로 정신적 영역으로 한번 더 확장된다
'타인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당신의 하느님이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인생, 그들이 고르는 운명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 모든 사람들이 특별해요. 그 타인들도 언젠가는 단죄를 당할거에요.' 신부에게 고함친 뫼르소가 마지막 평온을 맞아 죽은 어머니가 황혼에 삶을 다시 꾸리려 했는지를 이해하며 죽음의 순간에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요양원처럼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은 감옥에서 기대할 수 없으니 감옥에서 나갈 수 잇는 출구는 죽음이다. 세상 사람들에겐 사형집행으로 보일지라도  탈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그 결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복(증오)해주기를, 뫼르소는 소망했다.
* 보민님의 리뷰에서 1세대는 이휘영 선생님의 카뮈, 2세대는 이화영 선생님의 카뮈로 정의하고 을유의 이번 번역본을 3세대 카뮈로 구분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읽는 동안 3세대일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었는데, 읽다보니 부드럽게 잘 읽혀서 까먹고 계속 술술 읽었다는 허망한 결말.
* 오늘과 내일에 걸쳐서 이휘영선생님(문예출판사) 이화영선생님(민음사와 책세상-이건 같은 선생님의 다른 출판사입니다만 차이가 있어여), 김진하선생님(을유문화사)의 카뮈 총 네권을 문장발췌로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읽는 동안 인상깊었던 몃개의 페이지를 동시에 펴놓고 할 깜냥이..될까요. 하여간 도저언!!!!!!
* 보통은 앞부분을 읽고 번역의 차이를 가늠했는데 (좋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취향의 번역) 이 책은 1부의 마지막 단락, 2부의 마지막 두장이 번역의 취향을 가늠하기 훨씬 좋았습니다. 그렇게되면 결말을 미리 보고 시작해야한다는 문제가 있네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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