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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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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조리한 삶의 편린들⠀
세번 쯤 읽은 이방인. 초독때는 어머니의 죽음 후 살인에 이르는 과정에서 뫼르소가 보여주는 인간관계나 감정변화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담, 황당한 캐릭터로만 기억했다. 재독땐 사람마다 추모의 방식은 다르고 슬픔과 기쁨의 기준은 다르니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며 그래도 살인은 너무 간것 아니냐 정도의 부조리의 실루엣만 인지했다.
이번에 읽은 삼독차 이방인은 좀 더 선명하게 인간관계를 넘어 생을 관통하는 부조리함의 크기가 다가왔다. 한권이 더 남아있지만 일단 을유문화사의 이방인으로 삼독차를 정리한다. (왠지 길 것 같고...다 쓰고나니 정말 길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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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네 권의 책은 모두 번역적 특색이 있지만 작품 뒤에 실린 것들에도 차이가 있다. 을유문화사의 이방인은 본문(145p),주석 (44p), 해설 (32p) 작가연보 (6p) 로 구성되었다. 주석이 작품의 1/3인 책은 처음인듯. 원문의 이 단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이러이러한 근거로 바꿨노라 하나하나 설명한 주석을 보고 있자면 친절한 강의노트를 읽는 기분도 든다. (사담이지만 을유세계문학 전집은 약간 스터디너낌. 그래서 좋아합니다. 딱 취향이에요) 내가 가진 나머지 세 권 모두 레몽이 정부를 폭행하면서 이 ㄴ..이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을유의 이방인은 다르게 대체되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3세대 번역 카뮈라고 이름붙일만큼 시대적 흐름을 많이 반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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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보를 받고 간 장례식에서 뫼르소는 슬퍼하거나 엄마의 모습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은 자신의 상실만을 애도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이 끝나가는 시점에선 양로원장, 수위, 어머니의 친구, 여러 노인들이 보이는 애도와 슬픔이 어머니의 죽음때문인지 자신에게도 올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장례식을 위해 옷을 빌려줬던 셀레스트가 보인 애도가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의 삼촌 장례식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20페이지 '그건 인간적인 마음의 정리'라는 구절을 읽으며 개인의 공감 혹은 감각이란 것들이 학습되고 정량화된 사회적 규범이 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고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해야 보통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강제성이 뫼르소가 느낀 부조리의 감각일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장례식장에 가보면 망자를 향한 슬픔과 애통함만 있지 않고 증오, 고통, 연민뿐 아니라 자유로움과 기쁨, 홀가분함까지도 존재한다. 사망이란 사실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엔 실재하는 일이 아니므로 슬플 리 없을 것이다. 관계맺음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더라도 재단되거나 정량화 될 수 없으니 자신에게 빗대어 가늠할 수 밖에. 흘리는 눈물의 양과 애달픈 단어의 갯수를 감정의 크기와 깊이라고 결정짓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의 애도만 보이면 될 일이다. 상대의 애도는 상대의 몫이므로. 뫼르소라면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만이 애도할 수 있으니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상실을 애도했겠지.
장례식 이후 뫼르소가 마리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포주 레몽과 절친이 되어 레몽의 정부에게 폭행을 가한 후 떠난 여행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순간이 1부의 마무리다. 1부에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개인적 사건을 중심으로 연속되는 일상적 관계들을 풀어간다. 연인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과의 관계를 뫼르소가 먼저 욕망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뫼르소는 욕망하고 요구하기보다는 요구받고 관망하는 자연적 위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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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
1부의 마지막,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피고로 감옥에 수감되고 법정에 서서 자신의 죄를 타인의 입으로 들으며 유죄를 선고받아 결말에 이르기까지가 나머지 2부의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성을, 2부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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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판사는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첫발 이후 네발의 탄환사이에 왜 공백을 가지게 되었는지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가치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예심판사가 가진 '모든 인간이 반드시 그러하다 ' 는 확신은 모든 인간안에서 뫼르소를 소외시키고 그것이 스스로의 명제가 거짓임을 말한다.
재판장은 '법률'에 따라 질문하고 '법률'에 따라 판결한다. 법률은 뫼르소가 유죄인 이유를 권하는 커피와 담배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어머니의친구보다 눈물 흘리지 않고, 마리와 연인관계를 시작하고 포주와 절친이 되어 해수욕을 하고 희극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것으로 고발 된 것인지, 사람을 죽인것으로 고발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인 법정에서 '범죄자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인간을 고발'한다는 검사의 말이 타당성을 보이는 부조리한 상황은 법률마저 부조리함에서 비껴갈 수 없다고, 개인과 집단의 부조리함은 개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을 아득히 넘어선 크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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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맺음을 욕망한 유일한 인물인 마리가 뫼르소를 면회할 수 없는 이유가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라했다. 결혼은 사회가 정해준 개인의 관계맺음이다. 집단과 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의로는 관계가 인정받기 힘들다. 뫼르소는 법정과 감옥을 오가는 동안 모든 관계를 감흥없이 흘려보내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가 담긴 관계맺음의 인물-마리와의 단절앞에서 세상과 자신의 흐름이 멈춰버림을 경험한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간호사가 혼잣말처럼 하던 문장, '그렇다 출구는 없다.' 는 문장 속 감옥은 단절된 관계성과 의지의 상실의 의미하는 공간이, 출구는 타인과 사회가 정의한 모든 것들을 초월해야 찾을 수 있는 뫼르소의 이데아 쯤 될 것이다. 개인에서출발해 점차 큰 단위의 집단으로 확장된 관계맺기는 종교적 확신을 가진 신부와의 대화로 정신적 영역으로 한번 더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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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당신의 하느님이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인생, 그들이 고르는 운명이 나한테 뭐가 중요해요? 모든 사람들이 특별해요. 그 타인들도 언젠가는 단죄를 당할거에요.' 신부에게 고함친 뫼르소가 마지막 평온을 맞아 죽은 어머니가 황혼에 삶을 다시 꾸리려 했는지를 이해하며 죽음의 순간에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요양원처럼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은 감옥에서 기대할 수 없으니 감옥에서 나갈 수 잇는 출구는 죽음이다. 세상 사람들에겐 사형집행으로 보일지라도 탈출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그 결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복(증오)해주기를, 뫼르소는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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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민님의 리뷰에서 1세대는 이휘영 선생님의 카뮈, 2세대는 이화영 선생님의 카뮈로 정의하고 을유의 이번 번역본을 3세대 카뮈로 구분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읽는 동안 3세대일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었는데, 읽다보니 부드럽게 잘 읽혀서 까먹고 계속 술술 읽었다는 허망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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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과 내일에 걸쳐서 이휘영선생님(문예출판사) 이화영선생님(민음사와 책세상-이건 같은 선생님의 다른 출판사입니다만 차이가 있어여), 김진하선생님(을유문화사)의 카뮈 총 네권을 문장발췌로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읽는 동안 인상깊었던 몃개의 페이지를 동시에 펴놓고 할 깜냥이..될까요. 하여간 도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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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은 앞부분을 읽고 번역의 차이를 가늠했는데 (좋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취향의 번역) 이 책은 1부의 마지막 단락, 2부의 마지막 두장이 번역의 취향을 가늠하기 훨씬 좋았습니다. 그렇게되면 결말을 미리 보고 시작해야한다는 문제가 있네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