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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 이제 당신과 나의 다정은 다르게 유전될것입니다.
▶ 사람들은 자신만의 조각을 가졌다. 색, 형태, 두께, 크기, 질감이 다른 조각 모서리를 구기고 찢으며 세상에 끼워맞추는게 사는거라고, 그게 잘 살아가는거라고 여겼다. 같은 모양의 판을 물려주며 이것이 행복이고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해인마을이라는 판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렇게 한 사람은 떠났고 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겪었다.
질병과 고통, 좌절과 갈망은 교통사고였다. 원치 않게 영혼과 육체에 상흔을 남겼고 사라진 상흔 아래 고통은 멈출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창살 사이로 던져 가장 멀리 날아간 쪽지만큼만 희망하고 보이지 않는 고통이 거기 있음을 서로가 알아줄 뿐이다. 체온이 느껴질만큼 가까울때 더욱 몰랐고 한기에 선득할 정도일때 저기 사람들이 보여서 더 잘 알았다. 그렇게 서로를 돌보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통을 함께 경험했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다정이다.
▶ 통속적 의미의 다정이 지금도 두팔벌려 환영할 만 할까. 더 원한다는 말의 입막음으로 다정을 방패삼는게 아닌가, 받아내림을 당연하도록, 거부할수 없도록 짐으로 지워버린게 아닌가. 다정이란 호의속에 창살을 숨기다 서로을 옥죄버린게 아닌가. 그러니 이젠 가까이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긴밀하게 친절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각자의 생이 성기게 연결되어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 이제 다정은 해인마을의 '다정'으로 유전되지 않는다. 서로의 사고와 병을 느슨하게 인지하며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다정은 다르게 흐른다.
그것이 누군가가 환상을 포기하는 과정이라도, 우울과 자책과 분노와 좌절의 과정이라도 다음의 다정을 받아 다시 꿈꿀 또다른 다정이 될 것이므로. 당신과 내가, 우리와 모두가 새로운 유전을 거듭할수록 다정은 모두에게 다른색이 될것이다. 끝없이.
**** 각각의 조각을 이어 붙인 퀼트같은 작품이에요. 거기에 강화길 작가님의 시그니처같은 일상의 선득함이 있구요.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는 언제나 그렇듯 작고 휴대성이 좋은만큼 길지 않은 소설입니다만. 감상의 깊이가 글의 길이에 비례하진 않지요. 이 책은 그동안 쭉 읽어온 아르테 시리즈 중 가장 다양한 감상이 쌓이던 작품이었어요. 먼저 제안주신 아르테 출판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도서지원을 받았고, 개인의 주관적 감상으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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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p.17
-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없애려 애써도 매번 다시 나타나는 거미를 내몰 방법이 없으니 그냥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며 함께 사는것, 지네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믿고 사는 것처럼. p.88
- 그녀는 이사하던 중에 상자를 발견했고 소설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울었다.
"무슨 이야기였는데요?" 내가 묻자 김지우가 대답했다.
"환상을 포기하는 이야기요."p.129
- 병에 걸린다는 건, 타인에게 내 행복을 맡겨둔 것과 같다. 살아있는 순간에 감사하고 모든것이 소중해지는 순간에도, 통증은 불현듯 찾아온다. 변덕스러운 사랑처럼. 그러면 나는 무너진다. 내 의지가 아니라는것, 내 선택과 잘못떄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유약한 마음에 내 인생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고 화기난다.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