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6 : 소중한 것일수록 맛있게 - 전5권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오 헨리 외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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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의 힘찬 날갯짓 위로 ‘신들의 양식‘ 은 어디서 왔느냐고 냅다 물으시오면, 쇤네는 머리를 조아리고 읍소할거거먼유.

치.. 치킨????
심지어 하늘에서는 하얀 닭이 세상을 굽어살피사
그 눈빛 성스럽기가 파닥파닥이옵나니.
그러니 오늘 저녁은 삼계탕. 탕탕탕!!! 통과!!

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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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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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거실 베란다 가까이 티비만 한 어항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 가방을 내던지고 식탁 의자를 질질 끌어 올라앉아 어항에 코 끝을 붙였다. 지느러미가 공작새같던 열대어가 물 속에서 너울거리는 모습을 넋이 빠져라 보다보면, 서쪽 끝으로 기울어진 햇빛이 어항을 통과해 불 켜지 않은 거실 깊은 안쪽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들, 저녁의 붉고 노란 빛, 식지 않은 여름의 마지막 열기와 놀이터의 시소가 내는 금속마찰음. 그제서야 어항에서 얼굴을 떼고 식탁 의자에서 내려왔다.
어느 봄인가 초여름인가, 아빠는 수초 한봉지를 어항 속에 풀어놓았다. 그날 처음으로 어항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수초는 개구리밥처럼 물 위에 둥둥 떠다녔다. 어빠가 내 머리 위에서 물에 몸을 맡기고 편안하게 떠있는 채로 사는 식물이라서 부상수초라고 말했다.
아빠 식물이 물 위를 덮으면 물고기가 숨이 막히지 않을까.
아니야. 물고기한테 그늘을 만들어주니까 쉴 수 있어서 좋지.
그럼 물고기가 저 식물들 뿌리를 뜯어먹으면 다 죽을텐데 어떡하지?
뿌리가 자라면 물고기가 저 사이에 숨어서 쉴 수 있거든. 자기만의 비밀장소를 왜 뜯어먹겠어.
그래도 다른 풀들처럼 한 자리에 있지 못하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정아. 물 속에선 온 몸에 힘을 꽉 줘야 한 자리에 있을 수 있어.
수영장 바닥에 앉아 가만히 있으려면 갈비뼈가 부들부들 떨리도록 온 몸에 힘을 주어야 했으니까 식물도 그런가.
그 날 이후 식탁 의자에 올라서서 어항 위를 내려다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항 윗쪽을 잡고 서면 손 끝으로 여과기의 진동이 웅웅웅웅 타고 올라왔다. 산소발생기에서 나온 공기방울이 흔들흔들 올라와 초록 수초 잎을 쿡쿡 건드렸다. 물이 일렁거렸고 녹색의 수초 사이로 전복 껍질을 닮은 오색의 물고기 꼬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앞에서 보는 어항은 늘 조용했는데, 위에서 본 어항은 흔들흔들, 한 순간도 고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물고기도 쉴 곳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뿌리 사이에 몸을 끼우고 쉬는구나.
학교에서 돌아오니 며칠동안 어항 구석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던 물고기 하나가 배를 뒤집고 물에 떠있었다. 몽땅 까만데 배만은 하얗게, 아니 뿌옇게 부풀어서 수초 사이에 끼어 있었다. 어떡하지. 아빠가 없는데.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올 때 까지 배를 뒤집은 물고기는 물 위에 떠있다가 물살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한 구석에 가라앉았다. 수초 뿌리가 물고기를 가릴만큼 자라지 않아서 물고기 몸에서 검은색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었다.
죽은 물고기가 부패하는 동안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가 왔고, 물고기가 저기 있다며 울었다. 별 일 아니라고 했고 아빠가 돌아온 집은 예전과 같았다. 다만 어항 물이 탁해져서 햇빛이 비춰도 무지개가 생기지 않아 거실 깊은 모서리가 어둑어둑했다. 죽은 물고기의 까만 색깔이 물에 녹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 이 기억은 영영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면 아래 잠긴 우경과 해인을 위해 문장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문장 사이사이 뒤엉킨 두 사람의 슬픔이 물고기 꼬리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할 그들의 고통이 대단할 것 없는 풍경 (<별 일은 없고요?>, 이주란 - 시티픽션, p.132 ) 속에서 대단한 일도 아닌(p.30) 일상을 거치며 서서히 분해된다. 애쓰지 않으면서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극적인 장면도, 대단한 플롯도, 격정적인 감정 표현도 없다. 정말로 온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떠서 뿌리를 내려가는 부상수초를 닮았다.
​그래서 어항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듯 행간을 살피며 책장을 넘기면 마음이 일렁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어항처럼 흔들흔들, 무수한 감정들이 일상의 편안한 파동을 타고온다.
꿈꿨니?
이모가 물었고
네.
대답했다.
어떤 꿈을 꿨니?
아쉬운 꿈이요.

-p.186
덕분에 꿈같던 풍경 하나를 기억해냈다.
정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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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페이지까지 읽고 <시티픽션>에 수록된 단편 <별일은 없고요?>를 단번에 떠올렸다. 어?? 같은데?? 하고 책장을 뒤져보니 역시 같은 작가.
문장과 문장 사이를 살필수록 보이는, 이주란 작가만의 결이 있더라고.
#문학 #한국문학 #장편소설 #소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bookstagram #book #reading #시티픽션 #별일은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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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페이지터너스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빛소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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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어느 작가님이 발굴해 번역한 책들은 특별히, 기어이 찾아 읽곤 한다. 배수아 작가님께서 번역하시는 동유럽 소설과 정보라 작가님께서 번역하신 러시아 소설이 그렇다.
한 말 또하고 또 하는 장황한 문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불륜과 사랑과 명예가 어쩌고 하는 것도 취향이 아닌데다 신을 찾아 참회하는 이야기는 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후 더욱 더 러시아문학과 멀어진 상황이다.
'아글라야 페터라니'라는 낯선 동유럽 작가의 책을 배수아작가님을 믿고 선뜻 집은 것 처럼 이 책은 정보라 작가님을 믿고 폈음을 고백한다.
- 진심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느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을 선택하겠다.
총독 암살이 목표인 다섯 사람이 모스크바에 와 있다.
스물둘의 대학생이자 사회주의자인 하인리히. 벽돌공장 노동자 출신 표도르, 신을 믿는 사회주의자 이반(바냐), 조지를 사랑하는 폭탄제조 화학자 에르나, 유부녀인 옐레나를 사랑하는 테러리스트 조지. 정치적 정당성을 이유로 살인을 하는 테러리스트들. 그들에게 혁명, 이념, 신, 사랑, 삶은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살인이 목표가 되었을까.
무엇의 이름으로 살인을 향해 가는가? 테러의 이름으로, 혁명을 위해서? 피의 이름으로, 피를 위해서?
나는 내가 왜 테러의 길을 가는지 모르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는지는 안다.
하인리히는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표도르는 아내가 살해당했다. 에르나는 사는것이 수치스럽다고 했다. 바냐는...... p.20
암살 폭탄 테러에 가담한 다섯은 모두 다른 생각중이다. 하인리히는 사회주의의 완성과 짝사랑하는 에르나를, 안드레이는 당을, 표도르는 노동자의 삶을.그러나 신의 사랑을 믿는 바냐와 무엇도 믿지 않는 조지가 살인의 이유에 대해 나누는 거침없는 자기성찰은 흑백처럼 서로 반대면서 거울을 마주하듯 닮았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대의와 명분, 시대의 업을 짊어진 테러리스트의 이야기 속에서 심연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내 안에 숨겨둔 조지를 들킨 것 같기도.
- 이반(바냐)
그거 아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거,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바친다는 건 쉬워.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지. p.45
살인하게, 다른 사람들이 살인하지 않도록.
살인하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사랑이 세상을 밝히도록.
p.83

- 조지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고 한다. 또 장관을 죽이는 건 괜찮고 혁명가는 죽이면 안 된다고 한다. 혹은 그 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나는 어째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째서 자유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은 좋고 독재 권력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은 나쁜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p.14

사람들이 말하기를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존중하는 마음도 없다면?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죄에 대해 말한들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내가 보매 창백한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그 말이 발을 디디는 곳에는 풀이 시들고, 풀이 시드는 곳에는 생명이란 없으며, 이는 즉 법도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p.76
그동안 조지의 살인은 명분이 있었다. 살인의 정당성을 찾지 못하고도 암살테러를 계속 해 나갔던 조지가 명분없는 살인을 저지른 후 내면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조지는 스메르댜코프도 라스콜니코프도 되지 못했고, 혁명의 정당성도, 선과 악도 삶과 죽음의 경계도 흐려지고야 만다. 나는 혁명을 위해 살인했나? 아니면 나를 위해 살인하고 있나? 아마 혁명을 위해 시작했겠지만 반복된 살인은 염증과 회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악마를 보았다 中>

니체가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살인에 명분과 정당성을 찾는 자신신이 살인괴물로 변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신이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을것이다. 신은 답이 없으니 사랑에라도 매달려보고 싶었을 것이다.
내게는 덧없는 에로스라도 믿어본 적없는 신의 말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자신은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 아직 인간의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통곡하며 기록한 일기로 읽혔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며
조지가 가장 죽이고 싶었던 것은
총리가 아니라 괴물이 된 자신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사빈코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진보적 사회주의자.
러시아 재무장관과 모스크바의 총독 암살을 성공하고 기록한 테러리스트이자 작가.
여기까지만 알았을 때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권력독점에 맞서 싸운 혁명가에서 별 백만개를 더한다.
(I think 독점권력은 적보다 더 위험하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이제까지 나는 명분이 있었다. 나는 테러의 이름으로, 혁명을 위해 죽였다. 러시아를 위해 그 죽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죽였다, 나는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경계선도 없고 차이점도 없다. 어째서 테러를 위해 죽이는 것은 좋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필요하고, 저신을 위해서는 불가능한가? 누가 내게 대답할것인가?
p.170
나는 지상 낙원도 믿지 않고 하늘의 낙원도 믿지 않는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자유로운 노예조차 되고 싶지 않다.
나의 모든 삶은 투쟁이다. 그러나 무엇의 이름으로 투쟁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그렇게 원할 뿐이다.
p.173
어째서 나는 살인했는가? 죽음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렇다. 나는 믿었다. 살인해도 된다고.
그러나 지금 나는 슬프다. 나는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도 죽였다.
p.174
덧 1 ) 정지돈작가의 추천사에서 막혔던 소설의 출구를 <창백한 말> 에서 찾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뜨겁고 치열한 글이라면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덧 2 ) 세 번 읽음, 와.........정말 좋다. 얼마나 좋았으면 무지막지하게 많이 나오는 성경 인용구절마저 더 알아보고 싶어졌을 지경. (수학책보다 성경을 더 싫어함)
덧 3 )이 작품 묘하게 정보라 작가님이랑 닮았어... 히히.
덧 4 )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도 그렇고 <창백한 말>도 그렇고, 뒤통수가 얼얼할만큼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서 정말 좋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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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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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다락방에서 시대의 광장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묵묵히 써내려갔던 무수한 작가들을 위하여. 우리는 광장에서 만나 새로운 이정표를 써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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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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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인가, 비해님께서 노란 두부과자와 함께 보내주신 소설집이다. 이전에 추천해주셨던 <소녀 연예인 이보나>도, 그 이후에 읽은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도 좋았기 때문에 작품이 나와 잘 맞을지 아닐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이 책을 고르신 분을 믿을 수 있었고, 이 책을 쓰신 작가를 믿을 수 있었으며, 이전에 읽은 나의 경험을 믿을 수 있었으므로. 이 모든 것들은 책의 첫 장을 여는 손 끝이 가벼울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을 읽었다는 "같은 이유로" 책의 첫 장을 여는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는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 마고는 세상을 천지창조한 신 중에 유일한 여성 신이었다. 다른 남성 신들이 산을 넘어뜨리고 육지를 파괴해서 세상을 창조할 때 마고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계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조선과 일제를 거치며 어느새 마고는 마귀가 되었다 자신이 만든 바다에 빠져 죽고 자신이 정성 들인 세계의 사람들을 해치는 마귀할멈. 단군은 그런 마고를 쫒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가성에게 마고의 이야기를 해준 운서는 생각이 좀 다르다고 했다.

"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되니까." 』p.42

마고 (痲姑).

치마폭에 흙을 날라 산을 만들고 앉은자리에서 강을 만들었다던 한국의 창조신. 권위를 상징했던 할미(할망)가 붙어 마고할망은 여성창조신이었는데 어쩌다 마귀할멈이 되었을까. 그것은 사회면 기사 타이틀에 어울릴만한 "미 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한 세 명의 여성 용의자" 라는 부제 아래 아래 펄럭이는 나팔바지와 알록달록한 모자의 키치한 세 모던보이의 기우뚱한 프레임 한 컷으로 요약될 터.


패망한 일본의 자리를 꿰찬 미 군정의 시절에 남성 지식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 셋 중 하나는 빨갱이, 하나는 술집여성, 하나는 작업물을 강탈당한 제자. 그리고 셋 모두는 여성.
​여성권익향상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교수는 선주혜에게 잠자리를 요구했고, 윤선자의 과거를 꼬투리잡아 성관계를 맺길 협박했으며 제자의 작업물을 자신의 것인양 강탈해갔지. 그러고선 여자들끼리 마음의 빚을 지우도록 판을 짜놓곤 본인은 조용히 발을 빼버렸어. 그게 어떻게 가능했느냐면, 남성이고 지식인이고 친정부 인사니까. 여성이 아니고 아이가 아니고 노인이 아니니까.

아. 재밌다. 이것이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작품 속 세태가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비꼬는 말이기도하다. 세상을 빚어낸 창조신을 마귀할멈으로 만든 것 만큼이나 우스운 일이겠으나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미움받고 손가락질 받아야하는 마고 입장에선 가슴 찢어지게 슬픈일이지. 필요에 의해 이용당했던 사람들만은 끝까지 사랑하고 낙관했다는 것도 비슷한 고통과 슬픔 아니었겠는가.

⠀윤박을 누가 죽였고 어떤 형벌을 받았느냐보다 윤박이 벌인 일로 어떤 피해자가 생겼고, 시대가 어떤 제물을 만들어냈는지 따라가는 동안 일제강점기가 미군정으로, 미군정이 다시 현대로 시간이 빠르게 감기는 듯 했다. 아. 우리는 참으로 달라지지 않았다.운서, 가성, 송화, 에리카, 현초의 말고도 마녀와 창녀로 손가락질 받던 마고의 후손들은 여전히 여기 다른 옷을 입은 마고가 되어 운신하고 있었으니.필요에 의해 받아들여졌다가 내쳐지던 마고들만이 끝까지 사랑하고 낙관했던 것 마저 달라지지 않았더라고.

『 이곳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남자이고 좌익이거나 우익일 테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겠죠. 이 조선 땅에서 저 순교같은 건 안합니다.』 p.129

그래서 더욱 미궁이다. 택배상자의 개인정보를 뜯어 파쇄기에 넣을 때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온라인 글에 특정할만한 개인정보를 꼼꼼히 지웠는지 확인할 때 마다 pc와 폰과 패드와 여러 전자기기에 위치정보 연동 해제를 수시로 확인할때마다, 아침마다 지나던 길목에 생긴 노란 폴리스라인이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나, 여성을 앞세워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는 정치인들을 볼때마다 낙관해야할까. 정말 낙관해야만해? 낙관할 가치가 있는 세계야? 그렇게 낙관했는데도 장난감처럼 버려지고 잡초처럼 무심하게 밟혀 죽는 사람들은 어째서지. 요즘은 낙관하겠다는 의지마저 누군가의 권력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아 낙관이 또다른 낙관으로 이어지리라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저는 그저 기록하는 자입니다. 누군가 저의 기록을 말하여주십시오. 그때 제가 살아있다면 이 벌을 받겠습니다. 그 벌을 달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연가성 씨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저의 낙관입니다.』 p.185
​ 
표지 속 삐딱한 프레임만큼 기울어진 나의 낙관.
그러나 이 세계를 낙관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저 채도만큼 선명한 나의 열망.
몸서리치게 싫지만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엇보다 깊은 사랑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수 있는 말이 없다.


- 재밌고 슬프고 빠르고 무거운 책.
- 참고문헌 목록이 끝도없이 계속되는 거 보고 너무 좋아서 기절할 뻔. 이런거 좋쟈나.
- 표지 <모던 보이>. 너무 찰떡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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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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