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뿐인 섬, 혼자씩인 인간으로 가득 찬 책 표지를 손끝으로 문지른다. 그르니에의 문장을 닮은 기묘한 두께감과 부드러움이 촉감으로 환원된다. 가만히 바라본다. 푸른 섬은 문장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멀리 안개는 베일처럼 애달프다. 섬 주변은 문장주위에 고인 침묵처럼 올망지며 무욕하게 고요하다. 저 너머 또다른 섬이 고개만 내밀고 섬에는 섬을 기다리는 인간이 홀로 있다.
푸른 섬에 홀로선 인간을 내려다보며 나는 옮긴이의 마지막 단락을 생각한다.
「겨울 숲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숙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이다지도 멋진 작품을 읽었다한들 카뮈와 같은 대작을 써내려갈만한 능력이 내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빈한한 이 글이 그르니에의 글을 읽게 될 독자분들께 저 침묵의 바다 어딘가에 섞였을 나의 애정 한방울로 가닿기를 바란다. 나의 온 마음을 담갔다 나온 그 바다에 여러분의 기쁨이 덧담기길 간절히 소망한다. 알제의 윤슬을 담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1933년 보로메의 섬들이 가슴속 또다른 섬으로 자리하길 기원한다. 그렇게 나와 당신이 먼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무(無)속에 무(茂)하고 공(空)속에 공(共)하여 충만이 들어앉아 안개 뒷편 멀리 숨었던 푸른 섬이 당신 앞으로 눈부시게 다가올 것이다.
◆ <덧> 태양과 알제와 칼리굴라와 회색의 파리에서 카뮈의 흔적을 찾을때마다 새삼스럽게 그르니에가 정말 카뮈의 스승이었음에 감탄한다. 그르니에의 이 산문들이 작가 카뮈의 첫 발자국었음이 기쁘다. 카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때 소리보다 침묵을 더 크게 담은 그르니에의 추도사마저 공(空)과 무(無)의 산문,『섬』을 닮았다.
- 표지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