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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피아노 ㅣ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 자동피아노#천희란#창비#창비Q
📍 『그것은 작품이라 부를 수 잇는 것이 아니었다. 증상이었다 』-p.139
✒ 삶의 등과 이마와 손을 맞대고 있는 존재. 죽음.
성공하면 나는 지워지고 실패해야만 존재할수 있는 것.
삶이 역동성의 반짝임을 가졌다면 죽음은 배덕의 매혹을 지녔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가 증언할수 없고 분석할수도 없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실천목록에서 애써 고개돌리는 것. 외면하고 미뤄두는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것. 설마 그런게 어딨냐고 부정하더라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사건, 존재. 그 무엇.
책 한권 내내 죽음에 매혹당하고 죽음에서 고개돌렸다가 다시 끌려들어간다. 대부분을 죽음을 생각하고 아주 가끔 살아있는것이 느껴지면 그것마저 죄지은 듯 하여 다시 죽음을 꿈꾼다, 자는동안에도 깨어있는 동안에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매 챕터 앞부분에 적힌 연주곡을 재생시키고 글을 읽다보면 고독과 외로움에 가슴이 저린다
『혼자가 되지 못한 채로 외롭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많아 외로움이 부정되고, 이토록 무거운 좌절은 영영 바닥에 닿지 않아 무게를 상실한다. 고독 그것은 고립이 아니다. 무력한 전능감이다.』
✒ 어딜봐도 잘 사는 법을 쓰고 읽는다. 내맘 편하게 사는 법이 많이 읽히기도 한다. 요새는 잘 죽는법도 책에서 만난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이나 이르게 되는 마음의 이야기는 없다. 조건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입에 담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한듯 죽음을 앞에두고 매분 매초를 갈등하는 사람의 진실한 마음은 누구도 듣지 않는다. 그런 마음은 진짜가 아니라고 입밖으로 뱉고 글로 쓰면 그것이 진짜 너의 마음이 되니까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막는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나는 삶 만큼 아니 그 이상 죽음에도 매혹된것을.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당신의 마음속에 가득하더라도 나는 그럴수 밖에 없는것을.
아무리 세상이 부정해도 죽음을 갈망하는 내가 여기 존재하는것을. 나의 존재가 부정당할지언정 죽음은 부정의 궤적 그 밖에 존재하는 것이거늘.
✒자동피아노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어 흐르는 음악처럼 끊길듯 끊기지않고 같은듯 다른 리듬과 높낮이로 마음을 두드린다. 이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이야기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이며 그것이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준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삶이 아닌 죽음이 인간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다시 튀어오를지 모를 그 마음을 가졌던 것이 나였다고.
✒하얀 모니터를 앞에 두고 독후감을 쓰는 동안 라흐마니노프의 Suite for two pianos n°1 을 들었다. 덮어둔 내 기억을 가만가만 고르다보니 일어나는것마저 버거웠는지 삶과 죽음의 위치가 내 안에서 뒤집어지듯 시야가 뒤집어진다.
우연히 보이는것도 괜찮지 않고 꺼내어 들여다보는것은 더더욱 괜찮지 않아서 다시 집어넣는다.
그래도 괜찮다. 같은 감정이 다시 떠오르더라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나이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더라도 죽음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법 말고도 삶으로도 존재를 확인하는 법을 배웠으니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것이다. 먼저 답을 내리지는 않겠다.
『 평생을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없다. 』-p.144
🔖 지긋지긋하다. 죽고싶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죽고싶다는 열망이 의심받을까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죽지 않겠다는 말로 죽고싶은 마음을 이해받으려는 비겁함이. 죽는 일에 실패할까 죽기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망설임이. 빠져나올 수 없는 진창에 빠지면 정말로 죽어버리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이. 죽고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단번에 죽을 방법을 궁리하는 일이.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진짜로 두렵지 않을 때를 기다리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이것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p.26
🔖 확신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기만 하다 저질러지는 죄도 죄라고 불러야 할까. 죽이는 건 죄다. 죽는건 죄가 아니다. 죽는건 죄가 아닌데, 죽고싶다 말하는 건 죄가 된다. 죄짓고 싶지 않아서 내게 죄를 지었다. 사는건 같지도 않는 삶을 산다. 죽음만 생각하며 산다. 죽으면 죽음도 없겠지. 죽으려하는게 죄라면 죽지못하는게 벌이고 죽는 일만 생각하고 사는게 죄라면 살아있는 자체가 죄일텐데. 충분히 실현되는 것이 없다. 충분히 실재하는 것이 없다. 실패한다. 실패했다. 실패할 것이다. -p.28
🔖 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욕망하는 일. 내 욕망이 머뭇거림 속에서 실패에 이르는 일. 내가 욕망히는 것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만 완성될 것이다. -p.70
🔖 고독이 깊어진 결과인 줄도 모르고, 고독해지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인줄 알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아무런 표정이 없어서 어떤 표정도 그러 넣을 수 있는 얼굴을 썼다. -p.80
🔖 더 많은 계절을 지날수록 알 수 없게 되는 것들이 있따. 새롭게 배운 언어가 앞서 배운 언어를 지우듯이. 뒤따라 오는 파도가 해변의 파도를 지우듯이.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인파가 나를 지우듯이. -p.115
🔖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텅빈 무대를 본다. 어두운 객석에 앉아 단단하고 깨끗한 피아노의 음성을 들으면 매번 그 연주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연주가 지속되는 만큼의 시간만을 살 수 있어서.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