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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 역정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3
존 번연 지음, 정덕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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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들의 여정을 우화로 표현한 성서 이야기 (성경)
✒ 이 책은 독특하게도 작가의 당부글이 서두에 위치한다. 프롤로그라고 하기엔 분량이 좀 있는데, 당시 청교도혁명부터 명예혁명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가장 심화되던 가장 격동적인 시기에 출판된데다 독특하게도 성경을 우화로 풀어낸 독특한 형식 때문에 해석이 분분하여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을 예정했던 모양이다. 성경 구절은 그 당시에도 다양하게 해석되었는데,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여 풀어낸 이 책에선 당시 부패한 정교를 비판하고 실천을 중요시 한 청교도, 혹은 개혁적인 신교들의 손을 들어준 듯한 해석도 가능한지라 아마 정치적으로 꽤나 힘들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시절에 종교를 비판하고 직접 설교를 다닐 만큼 열정적이었던 작가가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었을 터, 그가 불법설교를 죄명으로 감옥에 있을 때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 멸망의 도시에 사는 크리스천이 순례길을 떠나 고난과 환란을 겪고 같은 신자를 만나 의지하며 천성(天城)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의 일과 대화를 묘사한 1부, 크리스천과 떠나지 않은 그의 아내 크리스티애나와 네 아들이 남편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순례길을 떠나 역시 천성에 당도하는 2부로 구성되어있다.
멸망의 도시에서 떠난 크리스천은 사망의 골짜기에서 믿는자를, 허영의 시장에서 선의의 해석자로 복음전도사를 만나게 된다. 그 사이 타락한 목사, 속세의 현지, 완고, 우유부단, 까마귀 아볼루온, 돈좋아, 세상지배와 같이 성서에 반하는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방해받지만 믿는자, 복음전도사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들의 믿음이 공고해진다. 같이 떠나지 않았던 아내와 네 아들의 여정이 2부에 나오고 2부의 주인공 크리스티아나(아내)는 자비와 담대한마음을 만나 동행을 이룬다.
1부와 2부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연작으로 보이는데, 1부는 남성, 2부는 여성에게 요구되던 덕목 위주로 에피소드/단어선정이 이루어져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2부는 1부의 단호함 보다는 포괄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결말을 가지고 있다.
✒ 읽는 동안 성경구절의 인용이 정말 많고 어투와 사용하는 단어들이 비 신자 혹은 나같은 무신론자들에겐 낯설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천로역정이 기독교적 교리가 굉장히 강하다고 해서 앞뒤안보고 넘겼는데, 이번 번역은 문학적 관점으로 번역하셨다고 하였으나 역시 나같은 무신론자에겐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떠다니는 구절이 많았다. 거기에 종교에 대한 의문을 끊을 수가 없었는데 그 몃가지 생각을 적자면, 순례가 도대체 종교인들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제목으로 쓸 만큼 순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고, 두번째론 반복적으로 나오는 '의심하지말라'라는 구절이었다. 모든 진리는 의심과 궁금증으로 시작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맹목적인 믿음을 주입받는것 같아 의심이 봉인된 믿음이 진실된 믿음인지 믿을 수 없었고, 세번째는 종국에 얻는다는 영생과 영광이 세속적 기준에 맞춰져 묘사된 것이었다. 세속의 모든 것이 소용 없다는 과정을 지나 결국 얻는것이 세속의 모든 것이라는 이 아이러니는 나를 당황하게 했고 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인물들에게 동화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내가 유물론자에 가까운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근원적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 대부분 주인공의 이름이나 지명이 이해하기 쉬운 (ex- 배교시에 사는 변절. 감언이설 마을의 돈좋아 등등) 직관적 단어로 설정했고, 교리문답식의 대화법, 간증과 다름없는 서사구조를 가졌기에 교인이거나, 혹은 성경에 관심이 있다면 성경과 함께!!(비유가 원체 많아서)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구약이 뭐고 신약이 뭐에요 수준이라도 읽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공감하고 받아들이기엔 아무래도 무신론자는 버거울 수 있다. (경험)
그러나 종교적 파고가 높았던 17세기 영국에서 교리를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선을 추구하고 행함을 우화형식으로 써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필요하지만 함부로 언급할 수 없었을 17세기의 시대정신을 문학으로 그려낸 작품이기에 천로역정이 을유 세계문학전집에 선정된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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