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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돈키호테들에게 빛나는 시간을>>
예술은 어딘가 비슷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다.
소묘강습 어느날, 잘 그리려면 잘 봐야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정물대 위의 정물을 열심히 봤다. 그저 바나나가 까매졌고 사과 주변 초파리가 늘어나고 꽃의 고개가 꺾였고 배경 정물에 먼지가 쌓였다. 화면에 이 변화를 담으라는 건가. 선생님, 열심히 봤는데 영 모르겠어요. 몰라서 가만히 바라만보다 화폭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고 마음이 넘쳐 흐를때가 되어야 기어코 깨닫는다. 아. 저걸 그려야겠다.
읽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읽다보니 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손짓할까 말까 머뭇머뭇 사람을 찾고 만나고 깔깔대고 시뻘건 속내를 엄지손톱만큼 비쳐보다 서로의 생에 한 발 담가보는 일은 텍스트에서 사람의 인생으로 이어지는 불가해한 기묘함이다. 그러다 속엣것을 쏟아내고 싶은 그 순간, 글자가 인사한다. 어서와. 라이팅 클럽은 처음이지?
김작가와 인영이 겨울이 길던 계동마을 골목에 왔다.
글쓰기 강의를 빙자한 동네 사랑방이 된 곳,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냄새, 마음의 흔적, 삶과 죽음 사이에서 쓰는것만이 온전했던 계동의 그 작업실 이야기. 뭘 쓰고자 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작가인 김작가와, 쓰고싶은 열망에 열병을 앓는 딸 영인, 글쓰기 강의에 모인 계동의 사람들, 영인의 친구 K와 R. 김작가의 글쓰기 교실은 언제나 영인의 마음에 차지 않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영인은 이억만리 이국땅 뉴저지 해컨색에서 네일아트를 하며 살아간다. 그 시간을 버틴 힘은 그렇게 싫어했던 글쓰기 교실, 라이팅클럽이었다. 돌고 돌아 계동, 돌고 돌아 글쓰기, 밀고 밀어내도 결국 사람의이야기. 소설.
읽는 사람이 쓰고싶은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사실만큼 당연하다. 뭔지도 모르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절절끓는 용암덩이만 죄 뱉어놔도 그저 예쁘다. .일단 토해야 산다.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속이 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흑역사를 만천하에 박제한 꼴이란 걸 깨달을 즈음에야 다 식은 글을 마주한 고통을 영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도 있다니!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 P.200
이불속에서 발을 뻥뻥차며 지른 내 비명이 왜 여깄지.
『결국에 우리는 무엇이든 잘 몰랐던 거야. 서로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조차. 자기의 마음도 서로의 마음도 알고자 하기 전에 지레짐작하고 단정지어버린 거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짐작과 단정 사이엔 오해만이 있고. 그건 그러니까 골목같은 거지.』
『그저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한다. 자신이 짐작하는 것이 다만 짐작에 그칠 뿐 진실은 아니며 진실에 가깝지도 않으리란 사실조차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 짐작에 짐작을 거듭해, 최선을 다 해 오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그의 고통을 짐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러니 어쩌면 짐작만이 삶의 전부이며 짐작하는 인간은 고독하다.』 - 오래전 고독 中, 염승숙 作
아. 이걸 써야겠다. 바다에 띄워보낸 무인도의 편지가 다른 대륙의 누군가에게 읽힐 확률을 가졌더라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어 혼자 안달하는 꼴이라 비웃어도 나는 써야겠다. 쓴다는 것은 산다는 것. 잘 쓰고 싶은 것은 잘 살고 싶은 것이고 멋지게 쓰고 싶은 것은 멋지게 살고 싶은 바램이니. 마음이 차오르는 동안 나와 당신을 되짚어 더듬고 짐작과 단정 사이를 헤매고 오해하고 이해하면서 엉킨 매듭을 풀어보려는 인간의 마지막 발버둥 같은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 가닿을지 알 수 없어서 활자에 마음을 매어두는 절박한 꼴을 하고서 이것을 마지막으로 생을 가위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고독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일 외에 다른 일에서 정신줄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임신초기의 울렁증처럼 평생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도가 더 심해지면 바보가 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병을 앓는다 』 p.214
환자가 된다. 글을 쓰고싶은 열망은 열병이 된다. 열병에서 살아남고자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넘어 너를 쓰게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어서 나를 이야기하려면 당신도 있어야 하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시작한 문장은 어느 새 대신 고통받고 내지못한 목소리가 되어주고 넘치지 못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앙다문 입속의 웃음이 된다. 나를 쓰고 당신을 쓰고 우리를 쓰고 시대를 쓰고. 점점 커지는 마음이 돈키호테를 닮아간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을 굳이 지켜줘야 한다며 분연히 일어선 돈키호테,종일 부산스러운 계동 골목엔 그 수많은 돈키호테들이 산다. 이렇게 거국적인 오지랖의 세계에서 쓴것을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만 봐도 쓰는 사람이 오해하고 읽는 사람은 이해하는 쪽이 아닌가. 그 적극적 오해와 이해의 줄다리기 앞에서 세상 사람들은 마음속에 돈키호테를 재워두고 버티는지도 모른다. 나와 당신과 우리를 모두 위로하는 일이라면 이제 당신들의 돈키호테를 깨워도 되겠다. 쓰기위해 살고, 살기위해 쓰고 깔깔대며 머리를 맞대어 살아갈 힘을 만들었던 계동 골목의 이 유쾌한 돈키호테들처럼.
써 보시라.
당신의 인생을 쓰기 전과 쓴 후로 나눌 수 있을테니. 침대위에 엎드려 다디단 과자를 먹으며 전쟁에 참가해 팔다리가 잘리는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지켜보는 관객(P.110) 이었다가 전쟁에서 팔다리가 잘리는 주인공을 캐스팅해 이야기를 읊어보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미 말했지만 자신의 옛날 글을 읽는 고통은 추후의 문제다. 미래의 내가 잘 버틸거라 믿으면 된다.
p.s - 밤 12시를 넘겨 태어났다. 반을 깨어있고 반은 잠들어있는 시간, 어제가 끝나고 오늘이 시작되는 시간, 과거가 미래로 대체되는 순간, 달이 가장 빛을 발하고 생명을 키우는 해가 가장 멀리 있을 시간. 정적이고 고요하고 그림자도 숨은 혼몽한 시간을 닮은 내 돈키호테는 요즘 더워서 장기휴가를 보낸 참이다. 당분간 없다.
🔖 글을 쓰리라! 글을 쓰리라! 죽어도 글을 쓰리라. P.59
🔖 "한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P.255
🔖 순환의 시간이었다. 뭔가를 쓰라고 자꾸만 부추기는 조울증의 시간,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지긋지긋한 떨림의 시간,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지긋지긋한 떨림의 시간, 그리고 아무런 욕망도 갖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침묵의 시간. P.306
🔖 글은 말이야, 재미있게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잇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없잖아 P.315
🔖 너는 오후 세시에 태어났어. 오후 3시는 누구나 후줄근해지는 시간이지. 매일 오후 세시가 도면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셔. 그리고 '난 지금 막 세상에 태어난 신삥이다.' 생각하며 살아.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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