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두번째 단편집⠀
책을 고를때 글에 감동하는 각자의 지점이 있다. 상황이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 스토리의 당위성, 혹은 전개. 글 전체가 가지는 분위기. 혹은 언어의 배열같은 것. 나는 작가의 머릿속, 그가 손끝으로 글자를 만들기 이전에 백배쯤 더 오래 머물렀을 머릿속의 혼돈상태를 궁금해한다. 상상력. 그런 연유로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그만의 창의성에 가장 큰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그의 상상력이 더해진 문장 틈으로 고요한 동양과 서양을 적절히 담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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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는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들과 모두가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상상을 과학이라는 코바늘로 엮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능력을 가졌다.『매듭묶기』에서는 종자전쟁과 유전자 조작 식품의 이야기에 고대의 결승문자와 단백질 구조기둥을,『심신오행』에서는 인간의 감정에 장내세균(프로바이오틱스 식이요법)과 오행(화수목금토)을, 『사랑의 알고리즘』은 세일럼의 마녀와 인공지능 여자아이 인형을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대안문학상 수상작)가 떠오름), 『모든 맛을 한 그릇에』은 삼국지와 황금시대 이민자1세대 중국인의 이야기를 엮는다. 작가의 이 놀라운 능력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몽환적이고 정적이며 고요한 한폭의 동양화같은 SF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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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sf의 대부분이 육체보다는 인간의 정신을 강조했고 인간의 정신이 곧 인간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로 풀었다면 인간의 몸 역시 인간으로 사는 데 중요하다고 말하는 카르타고의 장미와 심신오행이, 사랑의 알고리즘에서 보여준 인간의 사유와 행동이 알고리즘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기계는 기계일 뿐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입장과 기계와 인간이 별반 다를 바 없음을, 혹은 인간이라는 기존 가치에 부응하는 존재가 기계일수도 있다고 말하는 작품들은 당신의 편견을 확인시킬지라도 불편하거나 슬프기보다 친숙하고 신선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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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개의 단편 중 싱귤래리티 3부작에 해당되는 세 작품은 인간의 정신이 기계에 업로드된다는 가상에서 출발하는 공통의 세계관을 가진다. 육신을 버리고 정신의 영생을 얻기위해 영원한 여행을 선택한 첫 인간 리즈 (카르타고의 장미), 이후 파괴적 뇌스캔으로 영혼을 업로드하는 기업 싱귤래리티에 응하는 사람들과 반하는 가족 이야기(뒤에 남은 사람들), 이후 업로드 된 디지털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로 구성되었다. 세계관의 탄생에서 인간의 삶이 가지는 의미와 영생에 관한 세 작품은 종이동물원의 파(波) 와도 통한다. 기존 단편집 종이동물원보다는 진화와 영생이라는 큰 흐름을 가진 신작 단편들과 통하는 바가 더 크다. 세 작품은 연작이라 싱귤래리티 3부작만 순서대로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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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종이동물원 단편집에서도 마지막 단편이 가장 길고 그이기에 쓸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이번 단편집도 거의 끝부분의 단편이 가장 길고 그다운 작품이었다, 단지 sf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어보인다.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모든 맛을 한 그릇에' 는 제목부터 느낌이 미국인데다 황금시대의 서부라서 웃으며 시작했지만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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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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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언어, 문화를 넘어 쓰는 이와 읽는 이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짓는 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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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글을 짓고, 글을 읽을 수 있는 같은 종(種)이어서, 인간에 가장 멀리 있는 소재로 가장 인간다워지는 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행복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래 오래 이야기꾼으로 남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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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 테드 창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 단편집 종이동물원은 이번 단편집에 비해 문장이 단순하고 감성적이었는데 이번 단편집은 테드 창의 첫번째 단편집처럼 조금 더 우아한 문체와 분위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작품 『사랑의 알고리즘』말미 작가의 글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주인공의 대사와 호응하도록 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작 종이동물원 중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들 말미에도 테드창의 외모지상주의가 언급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테드 창의 글을 좋아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랑 비슷한 구석 찾아보려고 애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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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마저 몽환적이고 선계 어디쯤의 전설의 생물같고요. 다 읽고 책 닫으면서 내용과 표지가 찰떡이라 새삼 놀랐습니다. 표지디자인 체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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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결승문자와 SF를 이렇게 풀어요?? 와...나 진짜 기절이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대안문학상 수상작)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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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코로나 시국 좀 지나가면 한국 한번 오세요 ㅠㅠ 분명 말 한마디 못하고 책만 내밀겠지만요. 제 마음이 그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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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힘이 세죠.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 놓기도 할 만큼요. 하지만 죽음을 너무 깊이 생각하다보면 삶이 멈춰 버리기도 해요. p.36,37 『호(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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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생물들이 몸 속에 살고 있으면 나는 다른사람이 돼요. 더 용감하고 더 거침없고 더 행복하거든요. p.104 『심신오행(心神五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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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말은 실체와 형상을 부여받는다. 줄을 더듬어 내려가다보면 매듭을 묶은 이의 생각이 손끝에 느껴지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뼛속에 전해진다. p.116 『 매듭묶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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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지 하루하루 어떤 알고리즘을 따르는 것 뿐이라면? 우리 뇌세포가 단지 어떤 신호를 받아서 다른 신호를 찾을 뿐이라면?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안한다면? 내가 지금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지 미리 정해진 반응일 뿐이라면,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물리 법칙의 결과라면? -p.161 『사랑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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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 우리는 말이야, 언제나 심연을 가르고 쏟아져 내리는 전자들의 패턴이었어. 원자와 원자 사이이 무(無) 였던 거야. 그 전자들이 두뇌 속에 있든 실리콘 칩 속에있든 무슨 상관이겠니. p.219 『뒤에 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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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은 인류의 숙명이야.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는 성장해야만 해. p.253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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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달에 온 걸 환영한다. 이곳은 사기꾼과 재담꾼, 협잡꾼 몽상가, 거짓말쟁이들의 땅이야.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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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혹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법은 그중 일부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p.289 『달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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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사람과 권력있는 사람은 망명을 하지 않는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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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마침내 세상의 모든 맛을 찾았다. 그 모든 단맛과 쓴맛, 위스키맛과 고량주맛, 거칠고 아름다운 남자들과 여자들, 그들이 지닌 야성의 흥분과 불안,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대지의 평화와 고독...... 한마디로 말해 정신을 고양시키는 짜릿한 맛, 그게 바로 미국의 맛이다. -p.404 『모든 맛을 한 그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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