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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일기장을 태우지 않기로 했다
임기헌 지음 / 커리어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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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살지 않는 타인의 삶이 몹시 궁금해질 때 읽으면 좋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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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
이지은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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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독일어. 개인적인 애증의 대상이다, 그것도 증보다는 애가 더 큰. 수능 점수에 맞춰 선택했던 과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적성에 맞아서 즐겁게 공부하며 미래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든 독일로 넘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을 함께 했던 나의 연인, 그리고 아직도 마음 속으로 미련을 놓지 못한 나의 전 연인같은 존재라 이 책의 서평단을 구한다는 말에 냉큼 신청을 했다. 



 이런 책은 누가 써내는 건가 싶어 작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역시나 독일언어문학과 전 교수님. 이왕지사 우리 교수님의 저서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즐겁게 첫 책장을 넘겼더랬다. 독일 사람의 성향에 대한 편견? 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 책의 첫 감상은 "참... 대학 교재같다. 나 그 때 재수강 못했던 독일의 역사와 사회문화 수업을 이렇게 배우는 건가"였다. 그만큼 잘 독일과 독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잘 구성되어 있으면서 때로는 기억 저 너머의 어렴풋한 지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 그래서였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했던 지라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참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독일어를 전공할 예정이거나 독일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이 책에 적힌 전형적인 독일인과는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분명 도움이 될 기본 상식들 같았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유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보니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의 강대국들의 주요 역사같은 것들도 같이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이나 전후관계 등을 알지 못했던 사건들도 줄글을 따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서 참 좋았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을 읽어 독일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읽으면서 특히 제3국이라고도 불리는 히틀러 정권 하의 나치 독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읽을 수록 오늘날 시진핑 정권 하의 중국이 연상되어서 기분이 참 찝찝했다. 


 1933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베틀린 도서관의 책들 중 그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책들이 전부 불태워졌다. 그 사건 이후 하인리히 하이네라는 시인이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라고 한탄했다고 하는데 정말 1941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홀로코스트가 같은 정권 아래 이루어졌다. 그런데 잠깐 '책들이 전부 불태워졌다'고? 어딘가 익숙한데? 맞다. 진나라 시황제 때 있었던 분서갱유. 그리고 마오쩌둥 정권 하 문화대혁명 때 있었던 명청 나라의 문화재와 서책들이 불태워졌던 그 일. 그걸로만 끝이 났던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못지 않은 인류대학살이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에 앞선 싸구려의 대명사가 '메이드 인 저머니'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메이드 인 저머니'가 가진 의미와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지만 1876년 필라델피아의 전시회에서 '독일제품은 값싸고 품질이 낮다'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애당초 영국에서 원산기 표기법을 제정한 이유가 값 싼 저품질의 독일 제품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정말 놀랄 노자다. 다행히 독일은 주변 나라들의 제품을 단순 카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이미지로 바꾸어놨지만 초기 메이드 인 저머니의 충격과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중국이 독일같은 성공을 이룰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와 상업 부분에서 그들은 양심이 없는 자본의 노예들이라 제 살 깎아 먹는 지금의 방식을 절대 바꾸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써 치뤄야 할 비용이 너무나 비싸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1차 세계 대전보다 2차 세계 대전의 역사적 의의가 더 큰 이유는 첫째, 인간의 기술력이 마침내 제 살 깎아먹는 식의 무한력을 지녔음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며 둘째, 국가가 한 무고한 민족을 그릇된 사상과 이기심 때문에 대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 관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인지 이 두 가지는 지금의 나에게 단 한 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생화학전일 거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나서서 무고한 한 민족을, 그릇된 사상을 가진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핍박하고 학살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21세기에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위구르 족이 그렇고 미얀마의 로힝야 족이 그렇다.


 정말 독일을 알고 배워야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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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난이 온다 - 뒤에 남겨진 / 우리들을 위한 / 철학 수업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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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의 '새로운 가난'이 뜻하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귀동냥으로 '밀레니얼 - 인류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도 가난한 자녀 세대가 도래했다'는 말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포괄적이고 미래적이었으며 철학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읽는 내내 '난 왜 미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와 '이거야말로 진정한 지구종말, 인류멸망 아니야?'같은 깨달음과 고뇌로 울적했다. 물론 저자는 그런 지구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저술한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러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내비추고 있다.



 일단 책의 초반에는 제 4차 산업 혁명의 주역인 AI와 로봇을 언급하며 인간들이 그것들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음과 동시에 위협 또한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쑥 묻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AI와 로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저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왜냐면 그것들이 인간들의 일자리를, 생계 수단을 빼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유명한 SF영화 <아이, 로봇>의 AI와 로봇들처럼 인간들을 지배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들의 반란으로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전형적인 지배-피지배에 만성이된 인간들의 '사서 걱정'일 뿐이다. AI와 로봇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점점 인간친화적인 모양새를 갖춰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만약 언젠가 AI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0과 1로만 정의하고 판단하는 AI와 로봇이 정히 걱정된다면,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이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길 원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사실 정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인간=고용주=자본가=권력가)는 따로 있다고 말하며 왜 우리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존재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가에 대해 길고도 무거운 이야기를 써놓았다. 읽는 내내 정말 많은 생각의 전환점을 만났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성이었다. 프로그래밍된 참과 거짓이 상충하면 어느 정도 회로를 돌려보다 포기해버리는, 쉽게 말해 FM같은 기계보다 참과 거짓이 상충하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을 선택하는 인간이 더 무서운 건데. 결코 프로그래밍을 벗어날 수 없는 기계가 인간에게 해가 되는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기계회로의 문제가 아니라 그 회로를 만든 인간의 회로가 문제인 것을.

 그런 식으로 중반부터는 그럴 듯한 주장 뒤에 숨겨진 무서운 인간들과 논리들에 대해 설명하며 제목에 언급한 '새로운 가난'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주고 있다. 사실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읽어봐야 더 희망적인 리뷰도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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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이로움 - 일어나자, 출근하자, 웃으면서
조훈희 지음 / 프롬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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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 1. 먹고 살기 위하여 하는 일

           2. 겨우 밥이나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일



 사람이든 동물이든 태어나자마자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해내야 한다. 먹어야 사는 건 야생의 동물이나 사회의 동물이나 동일하지만, 야생의 동물들도 밥벌이에 이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하여 하는 일'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또는 상대방을 마음 속에서 수십, 수백 번 죽였다 살렸다 반복하며 버텨가고 있다.


 어떤 직종에 얼마나 오래 종사하였는 지와 무관하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밥벌이를 하는 모든 사람은 정도와 종류의 차이만 있을 뿐 스트레스로 골골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회사, 어느 부서에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또라이에도 종류가 있다는 건 알고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민폐형 또라이'와 '총알받이형 또라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참... 또라이같은데 그 여파가 부정적인게 아니라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민폐형 또라이 = "어떻게 저런 사람이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거지?"

 총알받이형 또라이 = "어떻게 저런 분이 아직도 이런 회사에 다니고 계신 거지?"




 처음 1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바로 매일 까임을 당하면서도 태평한 얼굴로 상사의 갈굼을 버티면서도 딱히 일에 열정은 없어 보이는 월급루팡의 사고방식인가'싶어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구구절절 변명조에 피해망상적인, 나 자신도 여러 번 지인들에게 한 때 내가 몸 담았던 회사와 회사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을 때의 논리를 책 하나 가득 적어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찌질함에 공감하게 되는 내 자신의 찌질함에 기분이 과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왠걸. 2장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특히 2장에 있는 '퇴근과 휴가에 꼬리표를 붙이면 안되는 이유'를 읽으며 "와, 이 사람 진짜 또라이 아냐?"하고 감탄했다. 같은 상황을 겪었을 때 나는 속으로만 삼키던 말("부장님은 휴가 왜 쓰셨어요? 누구랑 가세요? 어디로 가세요? & "부장님은 월급 많이 받으셨어요? 어디에 쓰세요? 저보다 많이 버시는 데도 모자라세요?")들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다니!


 거기다 '누군가 나를 욕할 때의 대처법'도 기가 막힌다. 1. '내가 이 구역의 미친개'를 시전하거나 2. '누구보다 빠르게 성과를 내서 진급'하지 못할 거라면, '저 분은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 저러나 봐'라고 생각하면서 다이어리에 하트(!)를 그려보란다. 어머나 세상에.


 또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는 밥집을 통해 알아보는 한 회사 오래 다니는 법도 어이가 없으면서도 납득이 참 잘 된다. 돌려까기의 해학이 담긴 세 가지 비법과 그 예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 바로 눈을 들어 사무실 저편 파티션 아래에 숨어 지내는 장기근속자들을 보아라. 

특별한 능력 없이 당신한테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만 하는데 당신보다 오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밥맛도 없다.


 3장은 각종 영화와 소설을 패러디한 건데, 참... 병맛이네 싶었던 첫줄의 감상은 줄글을 읽어내려갈수록 "이야 이 사람 아이디어가 기가 막히네!"로 바뀌었다. 그리고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저자의 '총알받이형' 기질이 더 잘 드러났다. 내가 읽는 내내 감탄했던 수많은 또라이짓들의 이면에는 "내가 이번에 총대를 매고 남들은 나같은 경험 하지 않게 하자!"하는 살신성인의 정신보다는 "어라? 사장님은/부장님은 이러저러하게 하면 아랫사람이 부당하다고 느낄 거라는 걸 모르시는 건가?"하는 실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사회생활 초중반의 저자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 때 저자의 특별함이 드러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경력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나면 '초심'을 잃고 '기성세대(높은 확률로 꼰대와 동의어)'가 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내가 존경해마지않는 유형인 열린 어른이 되었다.


 1. 신입 시절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수에게 전화로 보고를 올렸다가 대차게 까인 뒤로 직장 내에서는 대면 보고가 진리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실행해왔지만, 비대면을 선호하는 요즘 신입들에게 그 때의 상사처럼 대면 보고를 강요하지 않고 대세에 맞춰 비대면 보고 또한 수용한다. 


 2. 문과 벽을 뚫고 나오는 이사님의 고함 소리에 사무실 분위기가 얼어붙었을 때, 저 문을 열고 제자리로 돌아온 부장님(저자)이 짧은 도화선에 불 붙은 폭탄처럼 누군가에게 혹은 부서원 모두에게 화를 쏟아낼까 두려워하는 부서원들에게 "난 괜찮으니 편하게 일해요"라며 웃는 낯을 해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그 속까지 잔잔한 건 아니지만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화'는 '행복'보다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화를 끊어주지 않으면 우리 팀원 모두가 불행해진다.


3. 부서 회의에서 부서원 한명에게 일을 맡겼을 때 그가 "저 이 업무 안 해봤는데요? 그리고 제가 이 업무 담당자도 아니잖아요."라고 대꾸한 적이 있었다. 저자가 아직 따라가는 입장이었을 때, 동급의 직원이 그렇게 선수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제 몫으로 돌아온 일들을 여러 번 했던 지라 그 말은 저자의 도화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내지른 화를 후회하며 다시 회의를 소집해 그 일이 가진 의미와 그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설명하고 자신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고 하며 부서원들에게 업무를 구체적으로 배분한 뒤 휴가까지 보장했다. 


 요컨대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아래로 눈치를 살피는 상사라는 고래와 부하라는 고래 사이의 새우같은 가련함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설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을 택한 저자가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1장을 읽었을 때의 예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낀 바도 얻은 바도 많은 독서였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밥벌이를 시작하고 염증을 느끼게 되면 다시 꺼내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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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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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 2월. 성공적으로 외국 바이어와의 미팅을 마치고 그들의 귀국 비행까지 남은 시간을 떼우기 위해 광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절에 갔었다. 절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말띠가 올해부터 3년동안 삼재라는 말을 들었다. 그 즈음 정말로 진지하고 서서히 확고하게 퇴사의 의지를 키워나가고 있던 때라 "아, 그래서 삼재라는 건가... 내 취준생활... 어쩔..." 이라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4월에 첫 직장을 그만 두고... 돌아보니 정말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작년의 다사다난함에 무던해진 것 뿐 작년도, 재작년도 그렇게 평온하지는 않았다. 고작 스무여섯 해 살아놓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참 민망하지만. 살아보니 그렇다. 지나고 나면 다 그래도 아름답고 그래도 의미있었다고 적당히 희미하고 적당히 아련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러니 올해는 그렇게 유난스러운 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참 나답게 온 힘을 다해서 참 잘 살아왔다.

#2.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 했고, 사회적으로도 다사다난 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다사다난 했던 2016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내일이 없을 것 같은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새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내년은 다를 거야." 하는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D-DAY를 세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다.


#3. <청춘작당:잼 있는 인생> 언어유희의 맛이 더해진 잼 이름들에 한 번쯤 잼을 맛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작은 사진 속 잼 이름을 두 번, 세 번 읽으며 피식거렸다. 어쩜 저렇게 유머러스한 거지? 특히 마지막 문구가 마음을 두드렸다. "모두의 인생에는 잼(재미)이 있다. 다만 아직 그 뚜껑을 따지 않았을 뿐." 그러하다. 그렇고 말고.

#4. <둥글둥글 지구촌 소식:케냐 판자촌 극장에 싹트는 행복> 으음 어디선가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전혀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변사가 그때 그때 자신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해서 관객들을 울고 웃겼다는 이야기. 케냐 판자촌에 있는 극장의 변사 이야기에 언젠가 읽었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글을 썼던 사람도 케냐 판자촌에서 그 변사를 만났던 게 아니었을까?

#5. 2107년은 닭의 해라고 한다. 닭의 해가 밝았는데 왜 닭들은 죽어가고 있나. 며칠 뒤면 너희의 해인데... 마지막 마무리까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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