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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
이지은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평점 :
독일과 독일어. 개인적인 애증의 대상이다, 그것도 증보다는 애가 더 큰. 수능 점수에 맞춰 선택했던 과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적성에 맞아서 즐겁게 공부하며 미래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든 독일로 넘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을 함께 했던 나의 연인, 그리고 아직도 마음 속으로 미련을 놓지 못한 나의 전 연인같은 존재라 이 책의 서평단을 구한다는 말에 냉큼 신청을 했다.

이런 책은 누가 써내는 건가 싶어 작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역시나 독일언어문학과 전 교수님. 이왕지사 우리 교수님의 저서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즐겁게 첫 책장을 넘겼더랬다. 독일 사람의 성향에 대한 편견? 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 책의 첫 감상은 "참... 대학 교재같다. 나 그 때 재수강 못했던 독일의 역사와 사회문화 수업을 이렇게 배우는 건가"였다. 그만큼 잘 독일과 독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잘 구성되어 있으면서 때로는 기억 저 너머의 어렴풋한 지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 그래서였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했던 지라 두꺼운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참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독일어를 전공할 예정이거나 독일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이 책에 적힌 전형적인 독일인과는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분명 도움이 될 기본 상식들 같았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유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보니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일 뿐 아니라 유럽의 강대국들의 주요 역사같은 것들도 같이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이나 전후관계 등을 알지 못했던 사건들도 줄글을 따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서 참 좋았다.

다만, 저자는 이 책을 읽어 독일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읽으면서 특히 제3국이라고도 불리는 히틀러 정권 하의 나치 독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읽을 수록 오늘날 시진핑 정권 하의 중국이 연상되어서 기분이 참 찝찝했다.
1933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베틀린 도서관의 책들 중 그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책들이 전부 불태워졌다. 그 사건 이후 하인리히 하이네라는 시인이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라고 한탄했다고 하는데 정말 1941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홀로코스트가 같은 정권 아래 이루어졌다. 그런데 잠깐 '책들이 전부 불태워졌다'고? 어딘가 익숙한데? 맞다. 진나라 시황제 때 있었던 분서갱유. 그리고 마오쩌둥 정권 하 문화대혁명 때 있었던 명청 나라의 문화재와 서책들이 불태워졌던 그 일. 그걸로만 끝이 났던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못지 않은 인류대학살이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메이드 인 차이나'에 앞선 싸구려의 대명사가 '메이드 인 저머니'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메이드 인 저머니'가 가진 의미와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지만 1876년 필라델피아의 전시회에서 '독일제품은 값싸고 품질이 낮다'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애당초 영국에서 원산기 표기법을 제정한 이유가 값 싼 저품질의 독일 제품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정말 놀랄 노자다. 다행히 독일은 주변 나라들의 제품을 단순 카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이미지로 바꾸어놨지만 초기 메이드 인 저머니의 충격과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중국이 독일같은 성공을 이룰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와 상업 부분에서 그들은 양심이 없는 자본의 노예들이라 제 살 깎아 먹는 지금의 방식을 절대 바꾸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써 치뤄야 할 비용이 너무나 비싸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각설하고 1차 세계 대전보다 2차 세계 대전의 역사적 의의가 더 큰 이유는 첫째, 인간의 기술력이 마침내 제 살 깎아먹는 식의 무한력을 지녔음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며 둘째, 국가가 한 무고한 민족을 그릇된 사상과 이기심 때문에 대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 관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인지 이 두 가지는 지금의 나에게 단 한 나라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생화학전일 거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나서서 무고한 한 민족을, 그릇된 사상을 가진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핍박하고 학살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21세기에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위구르 족이 그렇고 미얀마의 로힝야 족이 그렇다.
정말 독일을 알고 배워야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