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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갑자기 하얀색 공포가 당신을 덮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서 ‘하얀색 공포’는 재앙의 원인이 아니라 재앙의 결과이다. 아니, 오히려 재앙에 대한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당신은 이 하얀색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준비가 되었는가? 당신은 이 책을 피해갈 수는 있겠지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인간과 삶에 대한 심오한 고찰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당연히 보아오던 것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느 날 벌건 대낮의 분주한 도로에서 차들이 초록 신호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드디어 신호는 바뀌었고 차들은 일사 분란하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 차량이 도로 중간에 딱 버티고 서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이 눈이 멀었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날 오후 한 안과 의사가 그를 진찰한다. 유례없는 실명 증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밤 늦게 까지 연구를 하던 그는 그 날 밤 눈이 먼다. 같은 날 오후에 그 안과의사에게서 진료를 받았던 한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길거리의 그렇고 그런 창녀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하면서 자신의 성적 매력과 돈의 교환을 정당화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더 할 수 없는 오르가슴에 이름과 동시에 실명이라는 더할 수 없는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이유를 알 수 없는채 눈이 멀어가고 그 도시는 곧 ‘이미’ 눈이 먼 자들과 ‘아직’ 눈멀지 않은 자들로 양분된다. 일반적 실명과는 달리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우유 빛 하얀색뿐이며, 그렇게 그들의 하얀색 공포는 시작된다. 너무나 인간적인 것, ‘두려움’ ……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非인간적인 폭력의 근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 새하얀 재앙으로 모든 도시가 공포에 휩싸여간다. 모든 도시의 기능은 마비되고 그와 함께 ‘인간성’도 마비되어 버린다. 눈먼 자들이 수용된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생존경쟁과 참혹한 폭력의 현장은 우리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나약함과 사악함을 동시에 목격하게 한다.
힘 없는 자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군인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 자신이 가진 힘을 내세워 상대를 착취하는 눈먼 협잡꾼들……모두가 극단적 폭력성과 인간성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은 모두 너무나 인간적인 특징인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있다. 갑작스런 실명에 대한 두려움, 당연히 누려오던 시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착취할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온갖 종류의 두려움이야 말로 잔혹한 폭력의 근원이 아닐까?
상상해 보라. 어느 날 갑자기 온 도시가 눈먼 자들로 가득하고, 우리가 시각에 의존해오던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정지했다. 거리엔 그들의 분뇨와 시체 사이로 배고픈 짐승들만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음식사냥은 온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엄마 잃은 아이도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의 삶을 생존 이상의 것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해답을 모든 파괴와 재앙의 원인을 찾았듯이 결국 다시 인간 안에서 찾게 된다. 앞서 끔찍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다시 상상해보라. 오직 한 명만이 운명처럼 눈이 멀지 않은 채 그 모든 공포와 재앙을 목격하고 있다. 눈 멀지 않은 ‘행운’에 대한 대가로 그녀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오히려 더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희망이 실종된 재앙 속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아직도 인간인 이유, 휴머니티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제시된 인간성의 두 양 극단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나는 비록 고통스러울 지라도 단 한명의 ‘눈 뜬 자’가 되어 가혹한 현실을 제대로 목격하고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결국 당신도 나와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