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나는 꿈의 문을 지나 그곳에 들어섰다.유명한 파괴의 도시가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을. -나다니엘 호손-정말 그렇다. 얼마 전에 나는 그 오랜 꿈의 문을 지나 저 유명한 <폐허의 도시>에 들어섰다. 모든 의식과 상상력의 구석구석을 쿡쿡 찌르는 날카로운 소설이었다. 더욱 소름 돋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결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우리들 역시 말이다. 살아가는 이유, 그 무엇이어도 좋다.

한 신문기자가 폐허의 도시로 특파되었으나 6개월간 소식이 끊긴다. 여동생 ‘안나’는 오빠를 찾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폐허의 도시에 들어선다. 그 곳에서 그녀의 삶은 곧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다. 그러나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삶을 끈질기게 꾸려나간다. <폐허의 도시>는 안나가 전에 알고 지내던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겪었던 모든 끔찍한 경험과 그 안에서 느꼈던 작은 행복, 만나고 증오하고 또 사랑한 모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쏟아진다.

안나가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폐허의 도시에서 오빠 대신 찾아 낸 것은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였다.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도 좋다. 또는 ‘사랑’이라 해도 좋다. 아니, ‘증오’나 ‘복수’라고 할 수도 있다. ‘쾌락’과 ‘탐욕’도 이유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용기’ 또는 ‘비겁함’이라고 해도 좋다. 사실 또 다른 그 무엇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존재한 다는 것이며,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폴 오스터의 아주 불쾌한 농담<폐허의 도시>에 묘사된 모든 유기체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또 나름대로 진화되어 전혀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자들, 최후의 낙하로 의지를 불태우는 자들, 죽은 자의 몸을 뒤지는 자들, 남의 불행으로 행복해지는 자들, 그리고 다행히(?) 절망과 끝까지 싸우는 자들이 있다.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폐허의 도시>는 불편하고 불쾌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도 <폐허의 도시>가 상상의 저편 ‘이상한 나라’의 불행만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착취와 배신 온갖 음모와 거짓으로 가득 찬 이 폐허의 도시에서 작가가 진정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니 희망이니 하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 따위는 없었던 게 아닐까? <폐허의 도시>는 단지 작가의 아주 짓 굳은 농담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불쾌한’ 농담이었다. 안나는 끝내 편지를 완성하지 못했다....... 때문에 당신은 그녀의 편지를 평생 기억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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