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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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 받는 현대 미국작가인 폴 오스터도 한 때 ‘입에 풀칠하던 시절’(원제<Hand To Mouth>의 의미)이 있었다. 그가 자전적으로 ‘휘갈겨’ 내려간 <빵 굽는 타자기>는 제목 그대로 ‘타자기로 빵을 구워내는’ 결코 배부르지 않던 시절을 돌아보고 있다. 지금은 전세계로 책을 팔고 있는 ‘성공한’ 그이지만 <빵 굽는 타자기>를 읽는 작가지망생들의 심기가 편치만 않을 것 같다. 그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보상’이기 보다는 ‘위협’과 ‘경고’로 다가오지 않을까?

작가가 되는 것은 의사가 되는 것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폴 오스터는 <빵 굽는 타자기>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가난한 무명작가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혼돈과 실패의 길에서 만난 모든 지인들과 괴짜들, 삼류인생의 몸부림과 자포자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듯 짐짓 태연한 척 글을 써내려 갔다.

작가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잠시 그 선택을 제고해 보길 바란다. 폴 오스터가 책의 첫 페이지, 첫 줄에 밝히 듯 “내가 손을 덴 모든 것들이 결국 실패로 들어나는” 충격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의 담력과 체력을 가늠해보아야 한다. 특히 당신에게 유산을 물려줄 부유한 부모님이나 이름 모를 키다리 아저씨가 없을 때는 더욱더. 결국 당신도 타자기로 빵을, 아니, 밥을 해내는 것이 좋은 타자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도 밥은 먹어야 하잖아?

그렇다. 그것이 현실이다. 어떤 고고한 이상이든 예술적 경지이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속적인 이 세상에 존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먹어야 한다. 삶의 질과 같은 ‘배부른’ 소리는 잠시 제쳐두고라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는 결국 ‘물질’로 밖에는 충족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배부른 돼지’가 될 수 없었다는 작가 자신도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과 협상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마조히즘적인 고통과 쾌락은 아무나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더구나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폴 오스터처럼 세속적인 삶에 무관심한 척 할 필요도 없고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살아 볼 필요도 없다. 대학졸업장을 가진 뱃사람이 되어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할 필요도 없으며, 아무도 사주지 않는 카드게임의 발명가가 될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면 된다. <빵 굽는 타자기>는 폴 오스터가 ‘폴 오스터’였기에 가능했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당신이기에 가능한 인생을 살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작가가 되는 것이든, 의사가 되는 것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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