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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ㅣ 밀레니엄 북스 34
나도향 지음 / 신원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50을 훌쩍 넘긴 신치규는 돈만 아는 지주. 머슴 부리기를 벌레 부리듯 한다. 막실살이하는 이방원의 22살 먹은 아내에게 눈독을 들여 뭐든 다 줄테니 아들 하나 낳아달라 한다. 물론 마나님도 두 눈 멀쩡 살아있다. 한 마디로 일제 말기 막되 먹은 가부장적 인간의 전형이다.
순진한척 튕기던 방원 아내, 이번이 처음도 아니렸다, 급기야 신치규와 모의하고 이방원을 쫓아내려한다. 이방원은 사정도 모르고 아내를 먹여살릴 걱정에 가슴이 먹먹한데, 아내는 앙칼지게 '날 어찌 먹여살리겠수'하고 대거리한다.
부부싸움 후 술에 얼큰해 돌아오는 이방원. 물레방아에서 나오는 신치규와 아내를 목격하고 신치규를 죽을만치 패놓는다. 차라리 그때 신치규가 죽었으면 두 사람의 운명도 달라졌을거늘....
순사에게 잡혀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방원. 끝내 아내와 신치규에 대한 원망을 풀지 못하고 신치규와 살고 있는 아내를 찾아간다. 옛정에 마음이 녹아 이방원은 다시 아내를 구슬려보지만 돈 맛을 안 아내는 막무가내다. "죽으면 죽었지 구질구질한 가난은 싫소. 결국 임자 손에 죽을 거 아니까 이 자리에서 끝을 보시오!" 이방원은 끝내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결한다.
이 비극적인 단편이 시사하는 바는 많다.
흔히 말하듯 물욕과 색욕, 신분상승욕에 눈 먼 어리석은 인간들의 군상을 고발하는 것도 의미요,일제치하의 부정한 자본 아래 신음하는 농민들, 그 탈출구 없는 암울한 시대상을 까발리는 것도 의미다. 그 밖에도 지고지순한 현모양처에서 탈피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여인상을 거의 최초로 그려냈다는 평가도 있다. (하필이면 앞 뒤 안 가리고 부와 신분상승을 꿈꾸는 삶을 그려낸 것은 아쉽지만, 사실상 그 시대에 또 다른 대안은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많은 해석과 평가에서 이방원의 우직함과 성실함은 높이사면서 그 폭력성과 애욕, 집착은 간과하는 듯하다. 성실하지만 무식한 농사꾼의 삶이란 아내를 개패듯 패는 매질과 '모 아니면 도' 식의 폭력으로 점철된다. 사실, 파렴치한 신치규의 탐욕과 비윤리적인 방원 아내의 물욕만큼 앞뒤 안 가리는 이방원의 가시적 폭력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과 자본, 인간 본성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짐짓 동정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가시적 폭력성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야말로 <물레방아>의 가장 큰 핵심이 아닐까.
2009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