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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지음, 박순철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서 이 책에 관한 (모든 것은 아니고) 많은 것을 말해준 덕분에 나는 많은(귀찮은) 수고를 덜었다. 대부분 수긍가는 옳은 말이니 꼭 한번 읽어보라. 그저 책 팔려고 멋지게 휘갈겨 쓴 소개글만은 아니란 얘기다.
다만 톰 울프가 비판하는 현대미술의 이론과 비평가들의 현학적인 횡설수설만큼 이 글도 이따금씩 뭔지 모를 횡설수설로 가득하다. 톰 울프의 고급 유머를 이해할만한 독해력이 떨어져서인지 톰 울프의 필체가 '소문'만큼 읽기 쉬운 게 아니어서 그런지는 영어 원작을 읽어봐야 알겠지만(뭐, 그 시간에 좀 더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좀 더 한국독자들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한 번역은 못내 아쉽다.
그나마 글이 짧아서 두 번 정도 후딱 읽으면서(술술은 아니고 자주 턱턱 막히면서) 재밌게 읽어나갔던 것은 톰 울프의 위트와 실랄한 풍자의 묘미(물론 이 역시도 현대미술에 대한 왠만한 배경지식이나 관심이 없으면 뭔 소린지도 모를판이다)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덕분이다.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지가 되고 싶은 '그들만의 잔치'에 일반 관객이란 그저 들러리일 뿐(더 정확히는 불청객), '억억'하는 현대미술시장에서 '헉헉' 팔려나가는 건 알쏭당쏭한 '~주의'나 '~파'로 무장한 이론, 그림은 언제나 '조연'이었다. 그런 와중에 일반 관객과 실수집가들은 언제나 은밀히 '사실주의적' 그림을 흠모해왔고, 이를 눈치챈 교묘한(한편으로 절망한) 현대미술 이론가들은 사실주의적 그림에서 '사실주의'를 표백하는 작업도 병행해왔다(팝 아트가 잘 팔리는 이유랍니다요 이게 ㅋㅋ).
또 그런 와중에 나(를 비롯한 아마추어나 무명화가들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환장했으니. '그림을 그려 세상을 바꾸겠다'는 오매불망 야무진 포부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회의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은밀한 욕구와 진심, 불만을 모두 폭로하는 동시에 위로해 준 책이랄까. '꿈깨!'하고 찬물도 오지게 끼얹었지만.
사실 지난 30년간 무엄하게 빳빳이 머리 쳐들고 일어난 '플로레타리아' 덕분에 '부르주아지'의 미술시장은 겉보기에나마 좀 더 다채로워졌다. 그럼에도 30년전의 톰 울프의 통찰력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30년 전 전 세계를 합쳐도 '만명(고작 소도시 인구)도 안되던 미술계 인사'들이 싸질러 놓은 분비물을 여전히 묵묵히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여! 플로레타리아가 생산해도 같은 플로레타리아가 소비하지 못하고 부르주아지의 매끈한 손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닌척 해도 결국 부르주아지가 되고 싶은 플로레타리아 예술가들의 '적과의 동침'도 여전히 대세다.
톰 울프가 요즘 현대미술시장을 보면 뭐라고 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다. 그냥 팬을 꺾고 '니 멋대로 하세요'했을까, 자신의 예언이 나름 적중했음을 기고만장하게, 그러나 씁쓸하게 선전했을까, 또는 새로운 희망과 전망을 역설했을까. 아니, 이는 우리 세대가 써나가야 할 몫이겠지. 이쯤에서 나는 여전히 '한 장의 그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꿈꾸는 이상주의자가 쓴 현대미술사를 만나고 싶다(어디선가 제트기처럼 솟아오르는, 꿈깨!).
2009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