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 황순원 전집 8 황순원 전집 12
황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독 짓는 늙은이>라는 단편과 <일월>을 EBS 라디오문학관을 통해 만났다. 특히 <일월>은 그동안 황순원하면 <소나기>로만 환원하던 나에게 적잖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중산층 주인공들의 일상에 넘치는 '모더니티'와 밑바닥 인생과 도의 경지를 오가는 백정의 이야기가 묘한 균형과 조화, 갈등을 이루었다.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같은 어머니 세대의 낭만을 만나는 것도 새삼 반가웠고, 한번쯤 궁금했던 백정의 삶과 애환도 매우 흥미로웠다. 일찍이 천민계급으로 천대를 받으며 멸시와 차별을 겪었던 백정 가문(그렇다, 그것도 대대로 이어지는 가업이었다)을 근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소설이라 현대(오늘날) 백정의 삶과는 많이 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뿌리깊은 신분과 계급갈등이 새삼 어제 오늘 일이겠는가. '백정'으로 대변된 사회계층 밑바닥에서 몸부림 치는 사람들은 물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타자의 다양한 관점과 행동이 작품 전반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다. 그 안에 중산층의 위선과 역사의식 없는 젊은이들의 이기적인 방황과 갈등을 잘 녹여 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골에서 백정의 전통과 가업을 당당하게 이어가는 자부심 강한 본돌 영감과 서울에서 백정일을 하고 있는 도사 같은 김기룡, 백정이란 신분을 속이고 출가해 서울에서 사업에 성공한 상진 영감과 그의 배다른 네 자녀, 그 중에서도 집안 내력을 파고들어가는 인철, 인철과 어려서부터 남매처럼 자란 교수의 딸 다혜, 은행장 딸이자 도도한 근대여성을 상징하는 나미. 그 외에도 상진 영감이 밖에서 낳아 온 딸과 그를 짝사랑하는 스토커, 그녀가 사랑하는 극작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기독교에 빠져든 신실하지만 독선적인 인철의 어머니 홍씨, 뱀이나 두꺼비 따위에 애정을 쏟으며 주변의 역성을 듣는 인철의 남동생, 인철과 다혜, 나미의 묘한 삼각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와 갈등이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숙명을 수긍하고 자신을 묻은 자, 숙명을 박차고 자신을 버린 자, 숙명을 깨닫고 자신을 찾으려는 자. 운명 같은 비극과 몰락은 개인은 물론 잘 나가던 집안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과연 인간은 자신의 태생과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의 자율적 의지와  삶의 궁국적 목표와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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