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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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단편소설집 하나 더 읽었다.
사실, 이 책은 나의 '중남미 독서 프로젝트'의 일간으로 구매했던 책인데, 먼저 읽었던 '붐 그리고 포스트 붐'에 너무나 실망하고 진이 빠져버려서 완전히 주제를 바꿔 가볍게 머리를 식히려고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를 먼저 읽었다. 

 
<조제와~>를 참 재미있게 읽고 들뜬 마음으로 역시 일본 작가인 바나나의 단편집을 손에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제와~>와는 분명 문체도 다르고 글 내용도 달랐지만 왠지 연작 소설을 읽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제~>가 감각적으로 통통 튄다면, 이 글은 차분하고 세련되었다. 그리고 전자가 다소 특별한 상황을 연출한다면 후자는 여행이라는 테마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상황을 제시한다)

소설의 소재가 '사랑과 연애'라는 것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일본이라는 친근하고도 이국적인 '국적'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불륜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은 일본 남녀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
어차리 사랑이란 것, 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니 불륜이란 것도 사랑이라는 갑옷을 두르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람피는 남자'는 있어도 '바람피는 여자'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작품에서 남녀 주인공 모두 결혼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여자는 당시 이미 별거중으로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는 상황과는 다르다. )

바람피는 남자와, 그들의 여자들.
이유야 어쨌든 남자의 아내에게 상처주는 음모에 가담한 공범의 독신녀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저기 밑줄까지 그으며, 불륜의 기억들을 통해 삶의 상처와 소중함을 어루만지는 바나나의 글에 매료되면서도 '왜 그럴까'하고 계속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도 남자지만, 도대체 그녀들은 왜 그럴까.
그들을 도덕적인 잣대로 힐난하는 게 아니다.
이 단편집을 그러한 '비균형' 때문에 비난할 마음도 없다.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호기심이 일고 궁금할 따름이다. 

 아무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7편의 '여행소설'은 달콤씁쓸했다. 단숨에 읽어내렸지만 남미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녹아낸 일본의 정적인 에너지는 한 글 한 글 긴 여운을 남긴다.  

 

 
참, 소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마수미 하라(MASUMI HARA)의 그림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족으로, 빼어난 작품들의 감동과 여운에 상처를 내는 김빠지는 작가의 말이나 여행일정 부록은 없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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