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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렵다.
제 1회 세계문학상까지 탔고 (상금이 무려 1억원이다)
소설가, 문화평론가들이 일제히 그럴듯한 칭찬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지루했을까.
그래서 어렵다. 뭐라고 그 지루함을 풀어써야 할지. ㅡㅡ;;
누구는 미실이 팜므파탈의 전형이라 하고
누구는 모성의 진면목을 본다고 하고
또 누구는 새로운 인간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와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심히 왜곡된 유교나 가부장제, 호주제, 여권 등이 최근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를 돌아보면 딸도 호주가 되어 집안을 이끌거나 아들을 재치고 전재산을 물려 받는 등 역사 속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라시대 때 여러명의 위대한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로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참 새로운 여성상을 소개해준다.
아니, 새롭다기 보단 잊혀졌던 것을 재 발견한 했다는 것이 옳겠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라의 궁궐 안팎의 '연애사' 역시 흥미롭다.
특히 왕의 혈통을 보존할 중대한 의무를 지고 '색'을 수련하고 실천하는 '색공' 집안.
그 안에 보여지는 여성들의 성관념은 꽤나 현대적이고 자유롭다.
치마고리 붙들고 애교나 떨며 못이기는 척 쓰러져주는 그런 여성들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선한 소재와 관점은 책을 읽어갈 수록
그냥 뻔한 로맨스 소설에 사극의 중후한 옷을 입힌 꼴로 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결국은 사랑이고, 사랑에 죽고 사는 여자들과 남자들의 이야기다.
복잡한 인물관계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지만
책은 안 보고 '서문'과 '줄거리'만 읽고 만 느낌 같아 영 서운하고 아리송 한 것도 사실이다.
유기적으로 인물관계를 끌어가고 풀어갈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색공이라는 것도 결국은 공적인 '성노예'나 다름없었다는 냉소적인 감정도 억제할 수 없다.
역사를 해석할 때 현재의 관점으로 결코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세종대왕이 후궁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몇 백명이 된다하여
세종대왕을 파렴치한 바람둥이 난잡꾼으로 볼 수 없다는 점... 동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화랑서기>에 등장한 한 여인을 소설로 재해석, 재창조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최근 안방을 차지하는 사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권력과 사랑을 위해 암투를 벌이던 팜므파탈들의 대향락.
화려한 비단무대 뒤의 쓰디쓴 피눈물. 더구나 여기서 모성애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그래서 지루했나 보다.
알고 봤더니 '신라'라는 새 옷을 입었지 어제 봤던 바로 그 놈이 그 놈이었던 것이다.
왕을 만든 것은 그러한 아름답고 지혜롭고 야망있는 여자들이었다....고 짐짓 인심쓰는 듯 여자들을 추켜세우지만 결국 그 여자들 중 누구도 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뻔한 이 사실도 뒤없지 못한다면 비평가들이 칭찬하듯 뭐 그렇게 대단한 '상상력'도 아니라고 본다. (소설의 진부함에 예를 들었을 뿐, 그렇다고 여자를 왕으로 만들어 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소설은 돈과 명예, 권력을 누리는 귀족 집안의 교육 잘 받은 이쁜 딸래미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 되었을 뿐. 먼 역사와 오늘을 연결해 줄 진정한 '젠더'에 대한 고찰이나 고민은 별로 실감하지 못한 바다. 물론 내 글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사극을 보면서 남자들의 뒷담으로 쉽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왕이 되면 좋겠어'
'왜?'
'그 많은 후궁이 다 내꺼잖아... '
'ㅡㅡ;;'
이 글을 보고 문득 여자들이 뒷담으로 이런 얘길 하지 않을까?
'신라시대 색공 집안에 태어났음 좋았겠어'
'왜?'
'황제랑도 자고, 황제 아버지랑 황제 아들과도 자고, 황제 형제랑도 자고, 그 나머지도 많잖아'
'ㅡㅡ;;'
2006년 8월, 곧 다가올 가을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