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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
이충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평점 :
표지에서부터 약간의 충격적인 비쥬얼이었다.
눈과 코, 입이 뭉개진 것인지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 모를 만큼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표지의 그림은 뒤표지의 글로 이 소설의 내용이 절대로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다』
언젠가 보았던 일본 영화 ‘비밀’이 생각났다.
사고로 인해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옮겨진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충분히 소설적이고 판타지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런일이 일어날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만큼 푹 빠져 보았던 기억이 있다.
GQ KOREA 편집장을 지낸 이충걸 작가의 장편소설 ‘너의 얼굴’도 마음 아픈 판타지가 펼쳐지는 것인지 읽기도 전에 궁금함으로 가득했다.
첫 장부터 계절이나 주위 풍경, 주인공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자세한 수식어로 가득 차 있어서 눈앞에 훤히 다 그려진다.
공기의 냄새까지도 느껴질 만큼...
사고가 일어나고, 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이후까지 빼곡하게 묘사되는 단어들이 내가 직접 겪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스러움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교통 사고로 정신만이 남아있고 온전한 곳을 찾기 힘들 만큼의 몸 상태로 딸의 남자친구만이 그녀의 보호자로, 간병인으로 옆에 있게 되면서 힘든 투병을 시작하게 된다.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 신경들은 있지만 얼굴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얼굴을 다시 찾을 방법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져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사고 후 병원에 옮겨지면서 딸의 남자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그녀의 딸 ‘파라’ 또한 병원에 있다는 것을,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얼굴을 만들 수 있는 이식의 기회가 자꾸만 좌절되면서 사경을 헤매던 그녀의 딸이 죽게 되고, 딸의 얼굴로 그녀가 다시 얼굴을 갖게 되지만...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싶다.
이충걸 장편소설 ‘너의 얼굴’은 그녀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의 원천이었던 딸과의 이야기, 딸의 남자친구‘모하’와의 오묘한 교감을 느끼는 감정 등 이렇게 솔직해도 될까 싶은 이야기들로 꽉 차 있는 책이다.
문장의 첫 시작부터 마침표를 찍는 부분까지 너무도 세세하게 표현되는 글자들에 너무도 크게 이입되는 감정 때문에 호흡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고, 힘내라고만 할 수도 없을 만큼의 모든 일들은 겪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잘 견디고, 버티고 헤쳐 나갈지 맘을 졸이며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P18
얼굴이 지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빈틈없는 사실이었다. 내 이마부터 오른쪽 눈꺼풀과 코, 턱과 입천장을 포함한 얼굴 하부 골격이 완전히 으깨졌다. 머리카락으로 숨기던 왼쪽 귀의 절반도 사라졌다. 안구 뼈가 함몰되었으나 눈 자체는 보전된 상태며, 시야가 흐릿한 것은 후두부의 타격 때문이라는 설명이 끼얹어졌다. 내 얼굴에서 온전한 것은 눈과 혀뿐이었다.
P151
내 속의 풍랑을 설명하기 위해선 17층 병실에서 뛰어내려야 마땅했다. 내 비위가 약했다면 목을 매는 식으로 예상하기 쉬운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수면제는 다량을 삼킨다고 해도 내가 유배된 곳이 병원인 한 소극적인 방법일 것이다. 손목을 가르는 건 시적으로 보이겠지만 확신이 안 섰다. 결국 차에 치이는 게 최상이었다. 그 정도면 재수 없는 사고로 정리될 것이고, 내가 자살했다는 사실 때문에 모하가 오래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사랑 받았으나 잊힌 소설, 읽혔으나 간과된 소설, 도난 당했으나 회수되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는 가장 비문학적인 사람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은 나의 방식으로 플레이한 문학적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