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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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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관계도 알 수 없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서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지 처음엔 알지 못한다.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살고 있는 ‘미티’의 정체가 궁금하고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친구라는, 이모라고 부르는 ‘베델’과는 진짜 어떤 관계일까....

‘미티’와 ‘베델’의 삶과 관계의 의문 부호를 마침표로 찍기도 전에 ‘미티’마저 궁금증으로 가득한 새 이웃 ‘레나’와 레나의 남자 친구(동거인) ‘서배스천’까지 등장한다.

『네가 누구든』의 주요 인물들이다.

1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미티’와 ‘베델’의 원래 이웃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여름 별장이나 공유되고 있는 집들로 인해 새로운 세입자들과는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옆집으로 ‘레나’ 커플이 이사를 오고 ‘미티’는 새 이웃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매끄러운 피부와 늘씬한 몸매,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인 ‘레나’ 또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이전의 삶이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이들의 극적인 만남으로 ‘친구’가 되어가는 듯하지만 둘의 관계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상처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과거를 갖고 있는 이들 속에 일흔아홉의 ‘베델’의 삶은 왠지 모를 낭만이 느껴진다.

어쩌면 생면부지일 수 있는 ‘미티’와의 인연, ‘미티’ 엄마인 ‘퍼트리샤’와 인연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까지 내게는 낭만이다.

『네가 누구든』의 여자인 등장인물들을 보면, 자신의 삶은 현재만이 아닌 과거, 미래까지 모두가 ‘나’여야 하는 정체성을 찾고 있다고 느껴진다.

어울림이 느껴지지 않는 이들이 만나고, 함께 하고, 같은 마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의리」와는 다른 「연대감」의 만들어진 「우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의 앞날이 선명하지는 않아도 환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기에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반가웠다고 하고 싶다.

열리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미티’와 ‘레나’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소망해 본다.


P15

오늘은 미티와 베델이 동거한 지 십 년째 되는 날이다. 미티의 인생의 거의 삼분의 일을 함께 산 것이다. 그들의 기념일이 진정한 이정표로 느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베델의 나이가 일흔아홉이고 생애 대부분이 미티가 태어나기도 전에 흘러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들이 함께한 세월은 너무도 짧고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동거 십 주년을 기념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중략] 결국 미티는 베델이 이런 의식에 의미를 두든 말든, 감사의 뜻으로 케이크는 사 가기로 결심한다. 이번에는 당근 케이크다.

그녀는 진열장 유리를 손가락으로 누른다. “저거요.”

직원이 작은 디저트를 꺼내 상자에 담는다. “케이크에 뭐라고 안 써요?” 미티는 베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잠깐 고민한다. 

「날 구해줘서 고마워. 날 계속 데리고 있는 건 하나도 안 고마워.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P288

엄마가 미티, 세상에 대한 너의 관점은 전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라고 말했단 사실을, 오래전에 끝난 일들을 곱씹는 미티를 엄마가 얼마나 못 견뎌 했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해줄 것이다. 엄마가 틀렸다고.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녀의 마음은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문가를 말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되는 편집 영상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티 자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의 말을 인용하는 사람도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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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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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여름방학이면 시골 외갓집에 꼭 내려가곤 했다.

『여름비 이야기』는 고등학생이던 사촌 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언니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졸라대던 그때가 생각나게 해주었다.

제대로 볼 수 없으면서도 소리만으로, 느낌만으로 알 수 있는 공포감이 최고였던 ‘전설의 고향’을 좋아하던 꼬맹이였던 나는 사촌 언니의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그 시간을 기다리고 좋아했다.

요즘은 범죄와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일찍부터 만나게 되었고, 추리와 서스펜스, 공포가 가득한 소설을 많이 읽곤 한다.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알게 되면서 여러 작가의 많은 이야기를 읽으며 ‘홈즈’나 ‘포와르’가 나오는 것보다 더 공감하고 찾게 되는 것 같다.

‘기시 유스케’ 작가의 작품도 그렇게 만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에게 읽히거나 알려진 몇몇 책을 읽어보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책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여름비 이야기』는 일단 표지부터 너무나 눈에 확 들어온다.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 커다란 눈동자.

그 눈동자 주위의 얼굴은 실핏줄이 다 터져버린 듯 붉다.

무엇인가 기대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만드는데 충분한 시작이었다.


「5월의 어둠」, 「보쿠토 기담」, 「버섯」의 소제목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묶여있다.

‘하이쿠’ 시집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스승을 찾게 된 제자와의 대화나 익숙하지는 않기에 오히려 주인공들이 찾고 있는 의미를 나도 함께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5월의 어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스님의 저주인지 염려인지 모를 경고를 받고 난 후 너무나도 기묘한 꿈(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나오는 「보쿠토 기담」의 꿈속 배경은 눈에 그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이다.

앞마당에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집안까지 점령하며 자라나는 버섯들이 말도 안 되는 곳으로 번져가는 상황들에서 생각지 못하고 예상할 수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의 묘미를 주는 「버섯」.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긴장감과 박진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마지막 줄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놀라움으로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다.

많은 작품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밋밋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기도...

약간 고개를 갸웃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도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호(好)’~!!

넘쳐나는 미디어에 살고 있는 요즘 여전히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꿈을 키웠던 시대를 살았던 나이기에, 책을 읽으며 머리와 가슴으로 그리며 더 많이 공감하고 교감의 행복이 더 좋아서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비 이야기』를 읽고 나서 알게 된 『가을비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P61

“한심하게도 지금은 내가 지은 시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는 지경이지.”

나오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나이를 먹으며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그렇게 되는 건 아니네. 난 아직 육십대야. 그런데 잘난척하면서 하이쿠를 해석하는 도중에 내가 한 말을 잊어버리다니. 아까 자네 어머니 시가 실린 잡지를 찾고 있었을 때도, 도중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잊어버렸다네.” 그는 나오를 향해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에게는 이 세상이 밝은 낮이겠지. 하지만 난 캄캄한 어둠 속을, 손전등 하나만 들고 걷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네. 이 시의 작가와 똑같지. 오늘은 자네가 와준 덕분에 기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상태가 좋았는데, 결국 마각을 드러내고 말았군.”

“선생님…….”

나오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P161

카페 안에 흐르던 <비로드의 달>이란 노래가 끝났다. 존 크로포드처럼 머리를 짧게 자를 여급이 축음기에 새 SP 레코드를 걸었다.

와타나베 하마코 (20세기 중반 일본의 대표적인 여가수)의 <잊으면 싫어요>란 노래다. 

“……결국 검은 나비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아.”

그러곤 요시타케가 입을 다물자 미쓰코는 흥미가 솟구친 것처럼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너무너무 낭만적인 얘기에요. 그 검은 나비는 요시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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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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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만나는 설레임과는 또 다른 설렘을 갖게 한다.

대만의 소설가 ‘우밍이’작가의 『복안인』도 그러한 설렘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아보지 않고 신세계를 경험하듯 읽게 된 『복안인』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면서 쉽지도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현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와요와요’섬의 ‘아트리에’의 이야기와 ‘H시’로 불리는 곳의 ‘앨리스’와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는 어우러진다.

현실에 있을 법 하기도 하지만, 동화에만 나올 것 같은 ‘와요와요’ 섬의 이야기와 차남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부족 무리에서 떠나와야만 한 ‘아트리에’의 생(生과) 사(死)가 함께 하는 모험.

어느 날 갑자기 사고인지 실종인지 모르게 사라진 남편과 아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기다리는 ‘앨리스’의 알 수 없는 나날들.

모든 이들의 만남이 되는 큰 사건(?)이 되는 ‘쓰레기 소용돌이’까지.


몽롱한 환상 속에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한 『복안인』의 이야기들은 소설일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해하던 벌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쓰레기 소용돌이’는 현실에도 곧 닥쳐올 재앙의 전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일곱번째 시시드》라는 바를 운영하는 ‘하파이’의 이야기 또한 아주 약간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중요 인물인 ‘다허’의 전 부인과 같은 ‘마사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여성 성노동자로서 지냈던 삶을 담담하게 서술한 점이 그랬다.


『복안인』은 많은 것에서 새로웠다.

인물들의 이름이나 부족, 그들의 생활환경과 배경은 물론이고 한 번이라도 들어보거나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읽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에 적응한 이후에는 그들의 감정에 빠르게 공감하며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내게는 미지의 세계와 같은 ‘대만’이라는 곳이 궁금해지고, 대만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밍이’ 작가님의 다른 이야기들과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P15

섬은 크지 않았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아침 먹을 때 출발하면 점심 먹을 무렵이 조금 지나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섬이 크지 않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지금 ‘바다를 향해 있다’ 또는 ‘바다를 등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다를 향하는 것과 등지는 것의 기준은 섬 한가운데 있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그들은 대화를 할 때는 바다를 향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바다를 등졌으며, 제사를 지낼 때는 바다를 향하고, 사랑을 나눌 때는 바다를 등졌다. 카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와요와요 섬에는 추장이 없고 ‘노인’만 있다. 노인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바다를 닮은 노인’이라고 불렀다.


P36

거대한 진동음이 몇 분간 계속된 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앨리스는 너무 지쳐 다시 잠이 들었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직 날이 밝기 전이었다. 앨리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을 때, 바다 위 무인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멀리서 파도가 미세한 포말을 일으키며 고집스럽게 한 겹 한 겹 육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앨리스는 하루에 두 번씩 밀물에 감금됐다가 몇 시간 뒤 풀려났다. 만조 수위가 높은 사리 기간에는 바다가 조용히 집의 배수로를 애 돌아 포위한 뒤 후문 앞에 각양각색의 물체를 남기고 갔다.]


P164

다허는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테이블에 들러붙은 신문을 펼쳤다가 (지금은 이런 곳에서만 신문을 구독한다) 조금 전 아나운서가 보도한 뉴스가 바로 얼마 전 신문의 1면 주요 뉴스라는 걸 알았다. 제목은 ‘위기! 쓰레기 소용돌이 타이완 덮친다’였다.

[타이완이 곧 쓰레기에 포위당할 것으로 보인다. 197년 해양학자 찰스 무어는 북태평양에서 세계 최대 쓰레기 더미라고 불릴 만한 광활한 면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발견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쓰레기 섬 또는 쓰레기 소용돌이《Trash vortex》라고도 부른다. 쓰레기 소용돌이는 해저 해류의 영향으로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 500해리 지점에서 처음 형성돼 지금은 일본 해안까지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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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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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김현아’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됐다.

『멜론은 어쩌다』는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퀴어(?), SF소설’이 묶여있다.

‘비채 서포터즈’가 아니라면 내가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큰 공감과 이해는 쉽지 않았다.

‘뱀파이어’와 함께 공존하는 사회나, 천국과 지옥에서 어린 마음으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동화인지 판타지인지 모를 만큼 흥미롭기도 하지만 큰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한 공감을 하기 어려운 ‘퀴어’의 이야기들은 글쎄...

아직 내 마음은 크게 열려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있을 수 있을 ‘섹스 로봇’의 이야기는 그나마 현실적으로 이해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이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는 힘들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거나, 선입견 없이 바라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너무 깊은 심각함이나 결코 가볍게만 써내려 가지 않았을 작가님의 필력에는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평범한 이야기처럼 읽거나 들을 수 있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유전자 조작으로 최고 우등 DNA로 인간이 만들어지고 탄생과 성장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의 이야기는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감춰진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은 영화 ‘식스센스’급의 반전의 묘미를 느끼기도 했다.

여덟 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재미가 없을 수 없고,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이야기 속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몰입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주인공들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얕지 않은 고민의 시간까지도...


요즘에 들어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소설은 현실과 다른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미래가 생각보다 밝지 않기도 하고, ‘그 미래의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를 무서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밝은 세상으로 가득한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기존에 읽었던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멜론은 어쩌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공감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완벽한 공감’을 못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내 감정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어렵고, 심각하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멜론은 어쩌다』를 주위 분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P9 

기영의 인생에서 미나는 유일한 레즈비언 친구였다. 유일한 뱀파이어 친구이기도 했다. 두 가지 다 친구로서는 비범한 요소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기영에게는 전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 어려웠다.

중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미나는 기영에게 커밍아웃과 동시에 사랑 고백을 했다. 라일락이 짙은 향기를 내뿜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P45 

저 여자가 분명히 자신을 거절할 것 같고, 거절하지 않는대도 비웃고 괴롭히고 상처 주고 배신하고 결국엔 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를 혐오하는 어떤 남자들하고는 달랐다. 다르다고 믿었다. 영민은 일단 여자였으니까. 그리고 여자를 만나본 적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영민의 첫사랑은 그를 철저하게 망가뜨렸다.


P213

나는 정부 공인 백마녀다. 마녀 학교에서 교육받고, 면허를 따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정식으로 장사하는 마녀.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선하고 적법한 마법만 행한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건강을 선사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요즘 나 같은 떳떳한 백마녀는 흔치 않다. 면허 없이, 또는 면허가 있으면서도 사악한 저주를 행하는 불법 흑마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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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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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로 ‘마쓰이에 마사시(まついえまさし, 松家仁之)’ 작가님의 작품과 처음 만나게 됐다.

이르지 않은 나이로 일본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작가님의 신간과 만나게 되어 여름의 끝자락에 몽글몽글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소란한 도쿄를 뒤로 하고 홋카이도의 작음 마을에서 우편 배달일을 시작하게 된 서른다섯의 ‘무요 게이코’는 세상의 소리를 모은다는 ‘데라토미노 가즈히코’를 만나게 된다.

동네와는 조금 외떨어진 곳에 혼자 살고 있는 ‘가즈히코’와 《어른의 연애》를 하게 되면서 커져가는 사랑의 감정과 주위의 시선에 대한 버거움까지 ‘게이코’를 완벽한 편안함으로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가기도 전에 ‘연애’부터 시작하게 되면서, 작은 마을의 특징(?)과도 같은 관심들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게이코의 ‘쿨’함으로 별것 아닌 일들이 돼버린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남아있다.

옛사랑을 잊고, 현재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에 열심히 부딪혀나가는 게이코의 일상이 어찌 보면 단조롭기도 하지만 그녀 나름의 평안함으로 만들어 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마저 어쩜 저렇게 넘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볍게 넘어 가는 게이코의 연애관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에 몇 번을 놀라기도 했다.

『가라앉는 프랜시스』의 ‘프랜시스’는 과연 누구일까가 처음부터 궁금했는데 매우 극적으로 알게 해주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아…….” 정도로만 그친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다.(아주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게이코의 일상이나 우편배달을 시작한 동네의 풍경들은 눈앞에 보일 듯이 잔잔하게 읽을 수 있고,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사랑은 회오리와 같이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전혀 지루할 틈도 없고, 이들의 사랑에 어떤 일들이 더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눈을 뗄 수 없기도 했다.


작가님께 조련 받는 착한 독서가의 모습으로 설레며 읽은 『가라앉는 프랜시스』,,,

10대, 20대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랑의 순간들을 보며 꿈꾸고 싶은 마음에 ‘사랑’과 ‘연애’ 이야기를 읽게 된다.

잊고 있던 풋풋한 마음을, 조금 더 어른이 된 성숙한 마음을 번갈아 가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느끼곤 한다.

오랜만에 그런 감정으로 읽은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새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소설 같은 마음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남은 이야기는 어떠할지, 행복으로만 가득한 그들의 사랑과 일상에 다시 한번 더 몽글한 마음을 더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보면서도 ‘어떻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터라 열어놓은 채 마무리가 되는 책을 보면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지고, 속편을 기다리는 편이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다.

작가님께 이런 소망의 마음이 닿기를 한동안 꿈꿔야겠다.


P40

그러고 보니, 아까 데라토미노가 말하던 ‘프랜시스’란 누구일까. 프랜시스는 남자 이름 아니었나, 게이코는 생각한다. 수염이 덥수룩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그렇지만 《소공녀》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여류 작가이다. ‘가오루薰’처럼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 이름인가? 어느 쪽이든 안치나이 마을에 와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어쩌면 데라토미노는 오디오 마니아로, 연인이 외국 남자인가? 그러니까 이렇게 스스럼없이 여자인 나을 집으로 초대하는 건가? 마당의 빨랫줄에 걸린 하얀 세탁물이 정연하게 바람에 흔들리던 광경이 떠오른다. 혼자 사는 것치고는 숫자가 많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113

가즈히코의 집에 간 날은 마지막에 목욕을 한다. 게이코는 하얀 타일이 발린 청결한 공간을 좋아했다. 천천히 옷을 주워 입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줍는다. 샴푸 냄새를 풍기면서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간다. 자기가 운전해서 돌아왔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데려다줄까?’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이 게이코의 작은 불만이었다. 게이코는 충일된 감각에 깃든 약간의 허무함과 엔진 소리, 진동만을 동반한 채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숲길을 혼자 집으로 향한다.


P167

강가의 커다란 돌에 걸터앉았다. 여기에는 나만 있다 게이코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움직이는 물고기의 모습을 보려고 눈에 주의를 기울였다. 눈은 아무래도 수면의 움직임에 이끌린다. 그래도 지지 않고 집중해서 응시한다. 차차 강바닥 부근에 돌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움직이지 않는 돌.

게이코의 머리는 생각해야 할 일들로 꽉 차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곧 날이 저물려고 한다. 강물이 까만색을 띠기 시작한다. 그 시커먼 물속 깊이 까만 그림자가 둘, 셋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인다.

물고기에게 게이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이코에게도 지금의 자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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