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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타임슬립
최구실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11월
평점 :

『남의 타임슬립』은 표지부터 남달랐다.
《시간을 건너 시작된 현대판 인어공주 이야기》라는 띠지의 문구까지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들기 충분했기에 읽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었다.
코로나 시기가 배경으로 나오는 부분이 내게도,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많이 되기도 했다.
최구실 작가님의 『남의 타임슬립』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공주가 아닌 ‘남’이라는 소년의 등장으로 모든 일상이 바뀌게 된 ‘은우’와의 이야기다.
취객과의 소동으로 인해 파출소로 가게 된 ‘은우’와 친구들이 그곳에서 겁먹은 눈으로 ‘은우’를 바라보는 ‘류남’의 사촌 누나를 자처하며 데리고 나오며 만남의 시작을 한다.
100년 뒤 미래에서 수학여행을 왔다가 길을 잃었다는 소년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내칠 수 없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한 집에 살게 된다.
며칠간의 유예였던 ‘류남’과의 어색한 동거하게 되고, 코로나 팬데믹에 하나밖에 없는 ‘은우’의 조카 ‘하나’가 위험한 순간을 겪게 될 때 도움을 주는 ‘남’.
2년 후에는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와중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남’.
‘남’이 사라진 후에 그의 말처럼 코로나는 종식되고, 사라진 ‘남’을 잊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은우’에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나타난 ‘남’.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먼 미래에서 누군가 ‘남’이처럼 ‘현재를 오며 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꿈같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던 『남의 타임슬립』은 나도 모르게 미소 짓기도 하고, 둘의 헤어짐의 시간이 안타까워 마음을 졸이기도 하며 너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이나 영화에서의 《타임슬립》 이야기를 워낙에 좋아하기 때문에 더 푹 빠져서 읽었나 보다.
「“사랑해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해도요.”
미래를 말한 대가이자, 예정된 이별의 시작이었다.」
P101
“누나, 이제 머지않았어요. 팬데믹은 2023년에 끝날거니까요.”
“……남아?”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한겨울 나뭇가지를 닮은 남은우의 손가락을 타고 꽃망울처럼 물거품이 피어올랐다. 그 거품을 이루는 요소 중 가장 반짝이던 남의 두 눈망울은 여전히 은우에게 고정된 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점차 사라졌다. 모든 채도가 메말랐던 은우의 거실을 섬광이 훑고 지나갔다. 그 광경에 놀란 은우가 울음을 뚝 멈추었다.
류남은 남은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건 움켜쥘 수조차 없는 물거품이었다.
P255
“만에 하나 누나 말처럼 제가 사라지지 않고 큰 사건을 막는다고 해도, 앞으로 그런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날 거에요. 그때마다 우리는 이별을 감수하고 모든 일을 막으려 다녀야 할까요?”
남은우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그 영화 속 남자를 떠올렸다. 이미 제 소멸을 감수하고 하나를 구한 남이었다. 만약 또 물거품이 된다면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은우를 괴롭힐 테다. 남은 은우의 얼굴에 드러나는 갈등을 읽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남은우였다. 남은 비겁하게도, 살며시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
“……누나. 전 그런 걸 막으러 온 사람이 아니에요.”
남은 고개를 떨구었다.
“누나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