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집은 참 가난했던 것 같다. 지금도 형편이 좋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더 그랬던거 같다. 그나마 외동딸이라 그런 거 모르고 무럭무럭 자랐다. 부모님 덕분이다. 어쨌든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았던 시절. 우리 건물에는 호떡 할머니가 사셨다. 그 할머니가 겨울이 되면 동네 공터에 비닐로 포장마차를 만드시고 호떡을 파셨기때문에 나는 그냥 호떡 할머니라고 불렀다. 엄마는 "ㅇㅇ 할머니"라고 부르셨던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할머니를 잘 따랐다. 할머니도 나를 이뻐라 해서 호떡 사먹으러 가면 하나씩 더 집어주시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참 외로우셨을 것 같다. 같이 붙어있는 다른 집보다 훨씬 작은 방에서 (기억에 어둡기까지했다) 찾아오는 자식도 없이 사셨기 때문이다. 내가 두 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니깐 엄마는 아마 외할머니 생각에 그 할머니한테 잘 하셨던 것 같고 나는 그런 개념은 없이 그냥 보너스 호떡에 혹해서 할머니를 따랐나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나중에 더 나이들면 호떡 할머니가 잊혀질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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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법칙

1. 내 삶의 쓰임을 알아야 한다.

게으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하고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야 목표가 생기는 법이고 그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절실히 알 수 있게 된다.

2.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면 자기외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강제성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학원이나 클럽을 등록하거나 내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언을 하는 방식 등이다.

3.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좋은 경쟁상대를 만들어라.

긍정적인 동기를 부추겨줄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라이벌을 가까이 하고 있을수록 좋다.

4. 해낼 수 있는 짧은 기간의 계획부터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루었다면 충분히 보상하라.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3일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 하라. 그리고 자축하고 나서, 또 새로운 3일의 계획을 세워라.

5. 육체적으로 피로한 사람은 늘 정신적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달고 다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맞는 이야기이다. 운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천연의 보약이다.

6.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하라. 중요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 부지런한 부분이 있고 게으른 부분이 있다. 명심하라! 모든 일에 부지런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게을러지고 만다.

7.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주고 구체적인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난 왜 운동을 못할까?' 라는 질문 대신에 체중을 5kg 정도 빼려면 하루에 얼마를 운동해야 하고 몇 칼로리 정도로 식사량을 조절해야 하지? 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실천적인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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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변화 과정 2

변화 과정 Ⅱ

변화는 은총이며 또한 과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문제가 있고,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발 묶어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보면, 실은 기대한 것보다 성취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총이고, 또 과제가 됩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와 객관적 세계와 우주에 대한 공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도 해야 하고, 몸 다듬기도 해야 합니다. 걷기와 춤과 명상과 예술 작업이나 감상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단련되면서 조화로운 ‘인간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과정이 곧 변화의 과정입니다.

변화 과정을 개괄하면, 나와 우주에 대한 무지에서 지혜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의식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데로 나아갑니다. 격정에 사로잡히는 데서 격정을 사로잡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포로된 상태에서 해방과 자유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함정에 빠져 안 좋은 면을 드러내는 데서 덕목을 살리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먼지 구덩이의 삶에서 영성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우리는 만 여섯 살 때 확정된 성격과 그 유형에서 본래 타고 난 본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잠재능력을 현재능력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현대 의과학 특히 뇌과학에서 발견한 바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타고난 두뇌 용량의 12% 정도를 쓰는 것이 평균 수준이라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나 현재 살아있는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지나간 시대의 존 록크 같은 철학자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의 25%에 가까운 두뇌 용량을 사용한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반드시 이런 위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기록을 깨는 운동선수들 가운데는, 적어도 몸을 쓰는 면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능력에 비하면 곱을 더 쓰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우리와 같은 몸과 손발을 지녔는데도 무술과 기예를 연마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능력을 나타냅니다. 암산의 천재, 음악의 천재 등등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며 공부하고 단련하고 수련한 사람들 가운데는 25% 안팎의 능력을 봅니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 그들처럼 공부하고 수련하면, 사람의 몸도 마음도 정신도 놀라운 수준으로 능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두뇌 용량을 더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만큼, 또한 마음을 넓게 지니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감성이 예민할 뿐 아니라 풍성한 것도 중요합니다. 스스로 풍부한 감성을 지닐 뿐 아니라 남의 감성도 풍부하게 하는 능력 또한 중요합니다.

영성이 높아지고 온전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내면세계를 안정과 평화로 가득히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상호 관계에서 조화로운 영성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몸담아 사는 체제와 환경에 대한 영성을 함양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영혼이 충만한 삶을 지향하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토록 모든 면에서 노력하고 수련하여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을 향해 나갈 때 에니어그램 수련의 진면목이 살아나고, 총체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표를 환상 속에서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인상이나 상상에 의하여 살지 말고, 환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변화도 수련도 실은 한마디로, ‘리얼리티’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리얼한’ ‘나’가 되어야 하고, 세상을 ‘리얼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 과정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고통을 견디는 법’과 ‘필요한 고난’을 배워야 합니다. 그 까닭은 굴지예프가 밝히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오랫동안 예리하게 자신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주 약점 곧 심리적 고착’으로서 ‘격정’을 분명히 알게 되고, 그것이 ‘전 존재에 각인’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manifesta-tions)을 간과하고 지나치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해서 남을 괴롭히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데, 그 원인을 모르고 삽니다. 우리가 흔히 ‘사무친다’는 말을 씁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주 약점’이 무엇인지 자신의 ‘전 존재에 각인’되어 뼈에 '사무칠' 만큼 될 때, 비로소‘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죽는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에니어그램을 안 것 같으나 변화 과정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결여된 것을 흔히 봅니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심리 테스트의 일종이거나 아니면, 성공주의적인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경계합니다.

굴지예프를 비롯하여 에니어그램의 큰 스승들은 말하기를 남의 도움으로 자신의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을 쉽사리 알게 되면, 그것이 결코 ‘전 존재에 각인’되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마치 ‘약물’에 의존해서 뭔가를 경험하거나 또는 고통을 잊어버리려는 것과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모르는 사람이나 이렇게 안다고 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남에게 얼마나 불쾌하게 나타나는지를 잘 모릅니다. 일찍이 굴지예프는 열두 살짜리 소년 프리츠 피터즈에게 개인 교수하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즉,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 그래서 꼭 배워야 할 과제는 ‘어떻게 남들에게서 불쾌하게 나타나는 것들을 대할 줄 아느냐’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기 기억’과 ‘자기 관찰’을 예리하게 지속하며 수련하면서 변화 과정을 충실히 가려는 사람은 더욱이 ‘자신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얼마나 ‘남에게 불쾌하게 나타나는 것들’이 되는가에 대하여 훨씬 예리하게 진지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두뇌 용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편하게 지니거나, 남에게 너그럽게 쓰는 것을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 됩니다. 에니어그램의 각 성격 유형에 따라 변화 과정에 장애가 되는 것들이 바로 공포, 기피, 함정, 콤플렉스 등인데, 한마디로 격정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그 흔한 스트레스와 더불어 불안, 공포, 우울증 같은 것들이 발달과 변화의 장애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것이 격정의 작용과 표출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외가 아닌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에니어그램 유형이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아니라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은 인성이 아니라 본성을 찾는 것이어야 합니다. 변화 과정은 현재의 (거짓스러운) 자아를 성찰하기보다는 참 자아를 성찰해야 합니다. 머리 속으로 그리는 이상형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영성을 분별하여 본성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말한 것처럼 ‘뜨거운 동정심과 사랑의 폭을 점점 넓혀서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을 끌어안고, 마침내 아름다운 대자연에 이르도록 넓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 과정은 이 목표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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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변화 과정 1

변화 과정 Ⅰ

일반적으로 자기 수련을 말하거나 에니어그램을 말하거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수련하여 온전함을 지향하는 과정이 같습니다. 자기 관찰이나 자기 기억이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제 생각하여도 넘침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첫째, 에니어그램을 평면적으로나 정태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에니어그램은 영속적 운동성’이라 말하는 뜻을 되새겨야 합니다.

따라서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이들은 언제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보든지 사물을 보든지 뭐를 봐도 고정 관념이나 고착된 시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나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자기 발견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 유형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고착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아홉 가지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자신의 유형으로 확인한 것은, 일차적으로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 일정 기간 동안 머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것과 자신을 ‘비동일시’하는 과정으로 이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변화 과정이 중요합니다. 온전함을 향하여 나아갈 때, 현재 내가 발견한 나의 성격 유형은 한 작은 점으로 표시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성격 유형의 점은 원의 둘레에서 9분의 1지점에 위치합니다. 이 점은 전체, 통합, 온전함의 회복을 향하여 들어가는 진입점입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습성으로 지니고 온 것 가운데 포기하며 내려놓을 것도 있고, 확인하며 끌어안을 잠재력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와 확인이 교차하며 이행하는 것 자체가 변화입니다.

통합의 방향으로 이행하여 건강하게 발달하는 것도 변화의 과정이지만, 비통합 내지는 퇴화의 방향으로 이행하며 불건강하게 퇴행하는 것 또한 변화의 과정입니다. 이렇듯이 변화 과정에는 통합과 퇴화, 긍정과 부정의 두 방향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의식으로 집중하며 의도적으로 수련함으로써 변화의 과정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변화는 계속 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정지 상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쩐 방향을 지향하는 변화 과정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과정으로 이해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변화도 있으나,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변화는 필연적으로 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떻게 늙은 것인가를 생각하고 느끼며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건강하게 아름답게 늙어 가는 과정의 변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드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도 않고 생각 없이 느낌도 없이 맥놓고 살면서 되는 대로 살아도 나이는 먹고 늙어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어떻게 나이 듦에 대하여 생각하며 변화 과정을 갈 것인가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에니어그램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변화 과정은 선택에 좌우됩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적극적인 변화와 소극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의도적인 변화도 있고 자연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자발적 고난과 필요한 고난을 견디며 이겨내는 변화도 있고, 불필요한 고난을 겪으며 떠밀리듯 겪는 변화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 들면서 화를 덜 낸다’며 변화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연적 변화의 결과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가 빠져서 화를 덜 내는 것뿐이지, 격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도 격정이 자극을 받거나 유발되면, 젊었을 때와 다름없이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도적이며 의식적인 수련에 의하지 않는 변화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변화는 격정에 초점을 맞춰서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강박 충동에서 관상 기도’로 가는 과정입니다. 에니어그램 변화 과정은 따지고 보면 죄악에서 덕목으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 성격 유형은 저마다 격정이라는 죄, 곧 죽음에 이르는 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면으로 나타날 때 강박 충동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어떤 유형으로 파악할 때 고정 관념으로 또는 고착적으로 받아들이면, 에니어그램은 사실상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또 하나의 짐을 지우거나, 또 다른 가면 하나를 덧씌우는 결과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니어그램 유형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나 남을 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격정을 밝히 보면서 변화를 위한 수련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에니어그램 변화 과정은 포기할 것과 확인할 것을 집중하며 수련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자기 관찰이 수행되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 습관적으로 격정이 나를 사로잡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 자신이 격정을 사로잡고 타성적인, 기계적인 언행을 자제하였든가를 생각하며 의식적인 자기 기억을 수행합니다. 이 때에 비로소 의식적인 자기 변화가 수행되는 것입니다.

월터 윙크는 ‘변화’를 위한 성서 연구에서 주창합니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성서 연구는 파산 선고되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성서 연구는 지적 허위성만 조장할 따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니어그램의 지식이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더 큰 굴레를 씌우는 결과에 빠지게 되고 허위성이나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은 우리를 ‘자아의 감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수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단편적인 지식은 우리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에다 가두는 결과가 됩니다.

티눈과 들보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격정의 속성은 명백히 보입니다. 다만 남의 눈에는 명백히 보이는데 비하여, 자신만이 못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기 관찰과 자기 기억이 의식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그 때에만 자신의 격정이 보이게 됩니다. ‘제 눈의 들보를 깨닫는’ 의식의 눈을 뜨게 됩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격정을 붙잡고 수련하기도 바쁠 터인데, 남의 격정을 가지고 말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실은 에니어그램 수련을 지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남의 격정을 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멘토링을 할 때, 깨어 있는 의식으로 감성과 지성과 행동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 관찰하면서도, 뜨거운 동정심을 가지고, 상대방 유형의 덕목을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가능성과 비전을 내다보면서 돕는 지혜와 분별력과 애정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격정을 말하는 것이 비난이나 판단으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누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안고 고민하며 씨름하는 ‘모자람이나 흠이나 문제’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하면, 그것은 필경 그의 격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비난이나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격정을 더욱 불붙게 하는 결과가 됩니다. 변화에는 오히려 격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더불어 뜨거운 동정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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