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1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전세재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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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유명한 책에 리뷰가 없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왜 리뷰가 없을까? 거 참 궁금하네.

 각설하고,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고, 앨런 긴즈버그와 함께 비트닉의 대표자라 할 만한 윌리엄 버로스의 유명한 소설이라는, 그리고 미국 소설가지만 이 소설은 처음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으며  1959년 출간 당시 프랑스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으며, 그 3년 뒤인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는 외설 시비로 미국에서 법정 공방에 휩싸여, 판금 위기까지 갔던 소설이라는, 이유로 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지금 이 소설은 20세기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긴 문학사에 이런 책들이 더러 있다.

 이렇게 유명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나의 감상은 재미없고 지루했다. 그렇다고 진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소설이 극도로 진보적이기 때문에, 내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재미없고 지루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이 작가는 구어체를 상당히 잘 구사하는데, 작가가 능숙하게 구사한  미국의 구어체의  미묘한 느낌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맛을 조금 잃었다고 해야할까. 내가 이 소설을 지루하게 느꼈던 이유 중 이런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은 번역자의 세심한 노력이 보이고 잘한 편이라 생각되나 이런 문제는 번역자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이 책을 다 읽고 거기에다 부록으로 실린 작가와 번역자의 인터뷰까지 읽었지만(한마디로 이 책의 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다 읽었다.)아직까지도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뚜렷한 줄거리는 찾을 수 없고, 플롯은 뒤죽박죽이고, 온통 마약과 동성애, 섹스 얘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적지 않은 부분을 마약에 취한 채 써내려갔다고 말했는데,  그런 "약빨"을 이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독자들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으니! 정말이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약을 한 것처럼 몽롱하고 잠이 오고 자신이 뭘 읽어내려가고 있는지조차 알기 힘들다. 문장이 구불구불하거나 뱀처럼 긴 것도 아니요, 난해한 내용도 아닌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왜 이 소설에 별 네 개라는 후한 점수를 주느냐! 그건 작가가 말했다시피 독자에게 해석적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하도 안 읽히고 지루해서 2주나 되는 대출기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대출해서 다 읽었다.) 이번에 구입을 해서 두고두고 읽어볼 작정이다. 이 책의 강점은-동시에 약점도 될 수 있겠지만-뒤죽박죽인 구성 때문에 책의 아무 부분이나 펼쳐놓고 읽어도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부분을 펼쳐 놓고 읽어도 재밌거나 재미없거나, 흥미진진하거나 지루하거나의 둘 중 하나를 독자는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아주 긴 서사시를 읽는 것과 같다. 시가 그것을 읽는 이에게 여러 의미의 해석의 가능성을 전해주듯이 이 소설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에게 해석적 자유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를 간과해선 안 된다. 바로 여태껏 읽은 전통적 소설 읽기의 타성에 젖어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나처럼 아주 지루하게 이 소설을 질질 끌 것이다. 이 소설을 먼저 읽은 선배로서 다시 한 번 조언하자면 절대 이 소설을 진지하게 대하지 마라. 그냥 가볍게 읽어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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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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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책은 이게 처음이었다.  소설가의 소설을 읽기 전에 그 작가의 자서전을 먼저 읽기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번째가 산문집이라고 출간됐지만 내가 보기엔 자서전인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힘겨움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각오와 다짐으로 독자에게 감동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는 그가 소설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까지의 고생담을 들려줌으로써 작가지망생뿐 아니라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난 그의 고생담이 왠지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그는 문자 그대로 스스로 고생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일부러 자신을 어려운 길로 몰아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폴 오스터가 쉬운 길로 갈 수 있었는데  일부러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가 대단해 보이지 않냐고? 물론 대단하다!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인 그를 왜 깎아내리려 하냐고?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지만 그를 깎아내리려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다. 그의 고생담은 헐리우드에서 만든 그렇고 그런 현실은 없고 낭만적인 색채만 가득한 영화로만 보인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부짓집 출신의 남자주인공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여자를 사랑한다. 근데 그의 부모님이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해서 집을 뛰쳐나와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없으니 가난하다. 그래도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여서 행복하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그의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생을 한다. 하지만 정말 그가 빈곤의 끝까지 갔을 때, 그는 갈 곳이 있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 아니, 그가 배고픔으로 길 위에 쓰러지기 전에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부모님이 먼저 그를 도울 것이다. 뭐 이런 식이다. 많은 작가지망생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고 있는 반면, 그는 이 책에도 쓰여 있듯이, 근무 시간도 적고 근무환경도 좋은, 일하는 시간에 비해 보수도 적은 편이 아닌, 엑스 리브리스라는 예술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에 취직한다. 분명 그는 거기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이 많기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몇 개월 만에 엑스 리브리스를 박차고 나온다. 그 이유는 단지 좀이 쑤셔서,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도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존 버나드 마이어의 도움으로 뉴욕 창작지원금 5천달러를 받게 됐을 때 그는 그 돈으로 생활비에 보태 쓰면서 소설 안 쓰고 캐나다 퀘백으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돈 때문에 일하느라  소설 쓸 시간이 없어서 괴로웠다고 말한다. 나 같으면 그 돈으로 퀘백으로 안 떠나는 대신 일을 안 하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하루 온종일 소설을 쓰면서 보냈겠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유조선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도 글 안 쓰고 그는 파리로 떠나서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한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다른 작가지망생들은 돈만 조금 모인다면 아르바이트 당장 때려치우고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매달리고 싶은 게 소원인데, 폴 오스터는 그 돈으로 딴 짓하고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는 일들도 대부분 고급 일감이다. 막노동, 3D노동이 아니란 말이다. 평론을 쓰고 서평을 쓰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번역일을 하고 뭐, 대부분 이렇게 고상한 일들이다. 다른 작가지망생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작가지망생들도 있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글은 쓰고 싶은데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든가 그 외 갖가지 시간제로 일을 해가며 어렵사리  글을 쓰는데, 폴 오스터는 뭐라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배부른 소리로밖엔 안 들린다! 그런 그가 작가로 알려지기까지 나 무지 고생했다, 고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적어도 내겐 못마땅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고생의 원인으로 작가 자신이 이야기 초반부에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라고 언급하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나는 솔직히 못마땅하다.

이런 게 이 책의 아쉬운 면이지만 이 책의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재미나다. 자서전이 아니라 마치 영화나 소설 같다. 이 이야기서 폴 오스터가 만난 인물들은 우리가 소설에서 읽고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도 많이 듣고 본 듯한 인물들이라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괴짜인지 알 만하다. 하긴 시대가 격동의 시대였다. 적극적인 동조자는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그도 68혁명 때 대학교를 다녔으니 그 시대에는 원래 저렇게 재미나고 특이한 사람이 많았나, 그 유명한 시대에 나도 한 번 학생으로 살아 봤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길거리의 거지조차도 낭만적인 슬픈 사연을 갖고 있고, 유머와 재치도 있으니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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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즈 클리어 훼이스 스파 모이스트 클렌징 폼 - 중건성 17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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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타입 : 건성 | 민감성

일단 내 피부는 건성인데, 티존 부위에 집중적으로 피지 분비가 왕성하고 블랙헤드도 꽤 심한 편이다.특히, 코에 나는 피지 때문에 예전에는 코팩을 사서 했는데, 세안제란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는 세안제로 코팩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세안제로 세수하지 않으면 다음날 코에 블랙헤드가 끼어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자꾸 손이 코에 가서 블랙헤드를 긁는다고나 할까! 코팩도 세안제도 모르는 시절에는 그렇게 해서 그때 코의 모공이 상당히 넓어져 버렸다.

아무튼 이 제품은 세안하고 난 뒤 피부가 당기는 것 빼곤 괜찮다. 피지랑 얼굴에 묻은 미세한 먼지나 스킨이나 로션의 잔여물도 깨끗하게 싹 씻기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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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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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소설은 상당히 지루했다.  많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질질 끌며 읽어서 그런지 읽는데 한달 가량 소요됐을 것이다. 아무튼 난해한 동시에 지루해서 읽는 고통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내가 산 책이 초판이라 그런지 몰라도 오식도 꽤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어찌나 눈에 많이 띄던지 내가 볼펜으로 이음줄을 수없이 그었을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별점 네 개를 주는 이유는 그런 단점들을 상쇄시킬 만큼 대단하다는 것에 있다.

이 소설을 과연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난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 책 뒷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이건 철학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철학적인 소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철학적'인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철학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아니다! 철학이다! 한 권의 철학서이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고 뚜렷한 줄거리가 없으니, 기승전결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것이 이 책의 난해함과 더불어 지루함을 안겨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진정 위대하다!

20세기 초에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지금 읽어도 여전히 현대적이고,  사르트르의 명확한 문장 표현도 일품이고 비유 또한 뛰어나고 뭐 하나 빠질 게 없지만,  그중에서 내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르주아들을 비꼬고 조소하는 데에 있다. 결국 산다는 건 이 책에서 강력히 피력하는 바와 같이 부조리하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사는 목적도 결국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여기에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수많은 존재의 다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앙투안 로캉탱은 단지 '있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볼 작정이다! 단지 난해함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속의 무언가가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싶게 만든다. 시간 날 때마다 읽을 것이다. 이 책을 꼭 한 번쯤은 읽어 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위대한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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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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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한국에서 태어난 게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프랑스라는 국가가 부러웠고 프랑스라는 국가가 역사적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일구어낸 튼실한 사회가 부러웠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자 수도이고 국제도시인  '빠리' 의 관광명소를 독자들에게 한 번 슥 훑어보게끔 관광가이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저자가 망명생활이 가져다 준 궁핍한 생활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관광가이드를 한 대목이 나온다. 거기서도 나는 부러웠다. 그들이 1.2차 세계대전에서도 지켜낸 아름다운 석조건물들, '빠리'의 아름다운 경관들, 유유히 흐르는 쎄느강, 고색창연하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퐁네프의 다리 그 외에도 '빠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 프랑스의 모든 게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에 비교해 한국은......반만 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수도 서울에 있는 건물들 대부분이 지은 지 50년 안팎이라는 것이 찜찜함을 동반한 창피함을 느끼게 했다.

 단지 내가 부러워한 건 그들이 갖고 있는 외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사회의 성숙된 시민의식과 수준 높은 문제의식. 그 중에서도 교육체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가예산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교육 예산이라는 말에 이들의 선견지명과 미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아니면 알고는 있었어도 부정확하게 또는 불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던,  암울했던 우리의 근,현대 정치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저자 홍세화 씨는 망명생활의 생계수단으로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한국에서 살던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그 둘을 교차시킨다. 거기서 나오는 한국의 정치 실태가 얼마나 코메디였는가를 알 수 있다. 즉, 저자가 프랑스라는 타지에서 이방인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처구니 없는 코메디인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망명신청할 때 프랑스인 공무원과의 면담에서 극명하고도 처절하게 드러나는데, 한국인으로서 나는 결코 웃을 수만도 없었다. 한 편의 블랙코메디랄까! 코메디임에도 울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저자가 이 책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자주 거론하는 똘레랑스{그 의미가 넓고 포용적이며 다층적이라 설명하기가 힘든 단어}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다. 하지만 이 책은 에피소드 중심이라 한 단락 단락이 좀 느슨해서, 조금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다. 또 저자는 그가 망명하게 된 정치적 사건이나 정치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어, 나처럼 8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에게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 개정, 전두환의 만행인 5.18광주사태 등등의 우리나라의 중요하지만 불행한 정치적 사건을 찾아보게끔 만든다. 물론 일일이 인터넷으로 찾아봄으로써 견문은 넓혔지만 저자가 불친절한 건 사실이다. 물론 다 사정이 있어서라는 건 알지만.

그건 그렇고, 앞에서 말했듯이 난 프랑스가 부럽다. 특히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는 더욱더 그러하다! 작금의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민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민상품이 몇 시간도 채 안 돼 동나는 이 현실 앞에서, 나는 이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망명하게 된 사람이 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굳게 다짐한다. 바꿀 거라고!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프랑스의 사회에 대해 보고 배우고 앞으로 노력하여 미래에는 프랑스 사회의 한 청년이 한국의 사회를 부러워하게끔 바꿀 거라고 말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그들이 일궈낸 사회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한국사회에 창조적으로 적용해 발전하게끔 만들 것이다. 이 책에서 나왔듯이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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