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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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책은 이게 처음이었다.  소설가의 소설을 읽기 전에 그 작가의 자서전을 먼저 읽기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번째가 산문집이라고 출간됐지만 내가 보기엔 자서전인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힘겨움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각오와 다짐으로 독자에게 감동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는 그가 소설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까지의 고생담을 들려줌으로써 작가지망생뿐 아니라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난 그의 고생담이 왠지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그는 문자 그대로 스스로 고생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일부러 자신을 어려운 길로 몰아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폴 오스터가 쉬운 길로 갈 수 있었는데  일부러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가 대단해 보이지 않냐고? 물론 대단하다!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인 그를 왜 깎아내리려 하냐고?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지만 그를 깎아내리려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다. 그의 고생담은 헐리우드에서 만든 그렇고 그런 현실은 없고 낭만적인 색채만 가득한 영화로만 보인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부짓집 출신의 남자주인공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여자를 사랑한다. 근데 그의 부모님이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해서 집을 뛰쳐나와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없으니 가난하다. 그래도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여서 행복하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그의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생을 한다. 하지만 정말 그가 빈곤의 끝까지 갔을 때, 그는 갈 곳이 있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 아니, 그가 배고픔으로 길 위에 쓰러지기 전에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부모님이 먼저 그를 도울 것이다. 뭐 이런 식이다. 많은 작가지망생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고 있는 반면, 그는 이 책에도 쓰여 있듯이, 근무 시간도 적고 근무환경도 좋은, 일하는 시간에 비해 보수도 적은 편이 아닌, 엑스 리브리스라는 예술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에 취직한다. 분명 그는 거기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이 많기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몇 개월 만에 엑스 리브리스를 박차고 나온다. 그 이유는 단지 좀이 쑤셔서,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도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존 버나드 마이어의 도움으로 뉴욕 창작지원금 5천달러를 받게 됐을 때 그는 그 돈으로 생활비에 보태 쓰면서 소설 안 쓰고 캐나다 퀘백으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돈 때문에 일하느라  소설 쓸 시간이 없어서 괴로웠다고 말한다. 나 같으면 그 돈으로 퀘백으로 안 떠나는 대신 일을 안 하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하루 온종일 소설을 쓰면서 보냈겠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유조선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도 글 안 쓰고 그는 파리로 떠나서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한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다른 작가지망생들은 돈만 조금 모인다면 아르바이트 당장 때려치우고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매달리고 싶은 게 소원인데, 폴 오스터는 그 돈으로 딴 짓하고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는 일들도 대부분 고급 일감이다. 막노동, 3D노동이 아니란 말이다. 평론을 쓰고 서평을 쓰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번역일을 하고 뭐, 대부분 이렇게 고상한 일들이다. 다른 작가지망생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작가지망생들도 있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글은 쓰고 싶은데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든가 그 외 갖가지 시간제로 일을 해가며 어렵사리  글을 쓰는데, 폴 오스터는 뭐라고, 아무리 좋게 봐줘도 배부른 소리로밖엔 안 들린다! 그런 그가 작가로 알려지기까지 나 무지 고생했다, 고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적어도 내겐 못마땅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고생의 원인으로 작가 자신이 이야기 초반부에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라고 언급하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나는 솔직히 못마땅하다.

이런 게 이 책의 아쉬운 면이지만 이 책의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재미나다. 자서전이 아니라 마치 영화나 소설 같다. 이 이야기서 폴 오스터가 만난 인물들은 우리가 소설에서 읽고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도 많이 듣고 본 듯한 인물들이라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괴짜인지 알 만하다. 하긴 시대가 격동의 시대였다. 적극적인 동조자는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그도 68혁명 때 대학교를 다녔으니 그 시대에는 원래 저렇게 재미나고 특이한 사람이 많았나, 그 유명한 시대에 나도 한 번 학생으로 살아 봤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길거리의 거지조차도 낭만적인 슬픈 사연을 갖고 있고, 유머와 재치도 있으니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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