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한국에서 태어난 게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프랑스라는 국가가 부러웠고 프랑스라는 국가가 역사적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일구어낸 튼실한 사회가 부러웠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자 수도이고 국제도시인  '빠리' 의 관광명소를 독자들에게 한 번 슥 훑어보게끔 관광가이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저자가 망명생활이 가져다 준 궁핍한 생활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관광가이드를 한 대목이 나온다. 거기서도 나는 부러웠다. 그들이 1.2차 세계대전에서도 지켜낸 아름다운 석조건물들, '빠리'의 아름다운 경관들, 유유히 흐르는 쎄느강, 고색창연하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퐁네프의 다리 그 외에도 '빠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 프랑스의 모든 게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에 비교해 한국은......반만 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수도 서울에 있는 건물들 대부분이 지은 지 50년 안팎이라는 것이 찜찜함을 동반한 창피함을 느끼게 했다.

 단지 내가 부러워한 건 그들이 갖고 있는 외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사회의 성숙된 시민의식과 수준 높은 문제의식. 그 중에서도 교육체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가예산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교육 예산이라는 말에 이들의 선견지명과 미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아니면 알고는 있었어도 부정확하게 또는 불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던,  암울했던 우리의 근,현대 정치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저자 홍세화 씨는 망명생활의 생계수단으로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한국에서 살던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그 둘을 교차시킨다. 거기서 나오는 한국의 정치 실태가 얼마나 코메디였는가를 알 수 있다. 즉, 저자가 프랑스라는 타지에서 이방인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처구니 없는 코메디인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망명신청할 때 프랑스인 공무원과의 면담에서 극명하고도 처절하게 드러나는데, 한국인으로서 나는 결코 웃을 수만도 없었다. 한 편의 블랙코메디랄까! 코메디임에도 울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저자가 이 책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자주 거론하는 똘레랑스{그 의미가 넓고 포용적이며 다층적이라 설명하기가 힘든 단어}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다. 하지만 이 책은 에피소드 중심이라 한 단락 단락이 좀 느슨해서, 조금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다. 또 저자는 그가 망명하게 된 정치적 사건이나 정치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어, 나처럼 8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에게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와 유신헌법 개정, 전두환의 만행인 5.18광주사태 등등의 우리나라의 중요하지만 불행한 정치적 사건을 찾아보게끔 만든다. 물론 일일이 인터넷으로 찾아봄으로써 견문은 넓혔지만 저자가 불친절한 건 사실이다. 물론 다 사정이 있어서라는 건 알지만.

그건 그렇고, 앞에서 말했듯이 난 프랑스가 부럽다. 특히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는 더욱더 그러하다! 작금의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민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민상품이 몇 시간도 채 안 돼 동나는 이 현실 앞에서, 나는 이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망명하게 된 사람이 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굳게 다짐한다. 바꿀 거라고!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프랑스의 사회에 대해 보고 배우고 앞으로 노력하여 미래에는 프랑스 사회의 한 청년이 한국의 사회를 부러워하게끔 바꿀 거라고 말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그들이 일궈낸 사회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한국사회에 창조적으로 적용해 발전하게끔 만들 것이다. 이 책에서 나왔듯이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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