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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은 상당히 지루했다. 많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질질 끌며 읽어서 그런지 읽는데 한달 가량 소요됐을 것이다. 아무튼 난해한 동시에 지루해서 읽는 고통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준다. 그리고 내가 산 책이 초판이라 그런지 몰라도 오식도 꽤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어찌나 눈에 많이 띄던지 내가 볼펜으로 이음줄을 수없이 그었을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별점 네 개를 주는 이유는 그런 단점들을 상쇄시킬 만큼 대단하다는 것에 있다.
이 소설을 과연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난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 책 뒷표지에도 적혀 있듯이 이건 철학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철학적인 소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철학적'인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철학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아니다! 철학이다! 한 권의 철학서이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고 뚜렷한 줄거리가 없으니, 기승전결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것이 이 책의 난해함과 더불어 지루함을 안겨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진정 위대하다!
20세기 초에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지금 읽어도 여전히 현대적이고, 사르트르의 명확한 문장 표현도 일품이고 비유 또한 뛰어나고 뭐 하나 빠질 게 없지만, 그중에서 내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르주아들을 비꼬고 조소하는 데에 있다. 결국 산다는 건 이 책에서 강력히 피력하는 바와 같이 부조리하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사는 목적도 결국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여기에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수많은 존재의 다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앙투안 로캉탱은 단지 '있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볼 작정이다! 단지 난해함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속의 무언가가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싶게 만든다. 시간 날 때마다 읽을 것이다. 이 책을 꼭 한 번쯤은 읽어 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위대한 작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