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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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4 애덤 스미스(니콜라스 필립슨 지음/한국경제신문)

국부론의 저자,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 평전

177639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판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신화가 시작된 시점이다. 애덤 스미스라는 인물보다 국부론이란 책이 더 유명하다. 그 책은 자본주의의 바이블이 되었고,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창시자처럼 추앙받고 있다.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이란 유명한 말로 설명되는 자유방임주의를 전파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국부론보다 도덕감정론을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진정한 인간 중심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도덕철학자였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 중심 과학이란 다양한 사회 유형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조직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국민의 자유와 행복, 국가의 부와 권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계몽된 통치자가 따라야 할 정부 체제와 입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책은 강인하고 야심 찬 젊은 철학자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가 자신을 형성한 지적 세계를 어떻게 만났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니콜라스 필립슨

 

스미스는 1759도덕감정론에서 인간 중심 과학이라는 거대한 이론의 첫 부분을 발표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처음 거론한 것이나,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행동할 때 사회를 분명히 이롭게 한다는 주장 모두 도덕감정론에서 처음 등장한다.

사회 시험에 자주 출제되던 보이지 않는 손은 스미스의 모든 저작에서 세 차례, 그것도 국부론에서는 한 차례만 나온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도덕적 요구를 충족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스스로 편안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지 설명했다. 또한 사회성 이론이자 윤리 이론으로, 근대 시민사회에서의 도덕적 경제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국부론은 이 이론의 두 번째 부분이다. 이 작품은 역사 속 다양한 시민사회의 정치경제학을 설명하며, 제국의 확장과 상업의 성장으로 국제 질서가 변화하는 시기에 국민의 부와 자유, 행복을 확대하고자 하는 현대 정부가 직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두 부분인 문학의 모든 갈래와 철학, , 수사법의 철학적 역사법과 정부의 이론 및 역사는 완성되지 못했다.

 

애덤 스미스는 172365, 포스만의 작은 항구 도시인 커콜디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다. 아버지는 비주류 젠트리였지만 법조계와 군부, 정부 기관에 연줄이 있었다. 상처한 뒤 재혼한 아내가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스미스가 태어나기 6개월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닌 재혼하지 않고 커콜디에서 긴 생애 대부분을 보내며 아들에게 헌신했다. 스미스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다.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대학교의 베일리얼칼리지에서 공부하면서 프랜시스 허치슨과 데이비드 흄, 두 멘토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 중심 과학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옥스퍼드가 스미스에게 고대와 근대 철학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인간 열정의 작용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시간과 역량을 제공했다면, 데이비드 흄의 철학을 접한 것은 스미스가 지식인으로서 발전하는 데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는 철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12살이나 많은 흄과 깊고 지속적인 우정을 나눴다.

 

1748~1751년에 에든버러에서 했던 강의와 논문을 통해 자신만의 이론 체계를 세웠고, 1751~1764년에 글래스고에서 1년 동안은 논리학 및 형이상학 교수로, 그 이후에는 도덕철학 교수로 활동하는 동안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는 언어학, 수사학, 윤리학, 법학, 행정학, 순수예술 및 천문학 원리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글을 썼다. 스미스는 언제나 인간의 본성에서 이런 주제들의 기원을 찾았다고 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는 우리가 도덕적 감정을 나누는 방식을, 국부론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거래를 인간 본성에 내재된 결핍에 깊이 뿌리를 두고 다뤘다.

스미스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모든 감정(도덕적·정치적·지적·미적 감정)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며 다듬는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훨씬 더 광범위한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 이론은 인간 성격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으로 중요했다.

 

1763년까지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계몽된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던 개선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철학적으로 조명하는 도덕철학 체계와 법학 체계를 개발했고, 결과적으로 유럽의 법학을 변화시켰다. 그는 상업과 개선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의 타고난 결핍, 사회에 대한 욕구, 개선이 가져다주는 만족을 즐기는 성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17631025일 스미스는 흄이 소개해 준 찰스 톤젠드로부터 양아들 버클루 공작을 가르쳐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스미스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어린 버클루 공작과 프랑스 툴루즈로 떠난다. 스미스는 툴루즈에서 1년간 머물고 남프랑스를 여행한 뒤 제네바로 갔다. 그곳에서 스미스는 철학자 볼테르와 만났다. 이후 파리로 간 스미스는 벤자민 프랭클린, 튀르고, 엘베티우스, 프랑수아 케네 등 당대의 지적 리더들과 만났다. 특히 중농주의의 거두 케네의 업적을 스미스는 존경했다.

 

스미스의 개인 교사로서의 여행을 마친 후 국부론의 집필에 들어간다. 177639국부론이 출간됐다. 750부가 성공적으로 팔리자 더블린에서도 출간됐으며, 약간 수정된 원고로 1778년 제2판이 출간됐다.

 

스미스는 국부론의 출간 이후 런던과 에든버러에 훌륭한 철학적 인맥을 가진, 부유하고 대중적인 지식인이 되어 에든버러에 돌아왔다.

1778년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관세청장으로 임명되었고 5년 뒤에는 에든버러 왕립협회 창립회원이 되었다. 1787~89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의 학자로서는 최고위직인 렉터 명예직에 재임했다.

 

세상 사람들과 일반적인 교류를 하거나 활동적인 삶을 살기에는 확실히 적합하지 않았던 철학자, 친절하고 온화하며 사랑스러운 괴짜 스미스는 그리고 1790717일 에든버러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의 관계,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애덤 스미스의 개인적인 삶과 지적 발전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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