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다 테쓰야, 한성례 역, [스트로베리 나이트], 씨엘북스, 2012. 

  딸기의 달콤함, 선홍빛 혈흔의 잔혹함, 연쇄 살인, 출구가 없는 죽음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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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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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 김선영 역, [왕복서간], 비채, 2012. 

Minato Kanae, [OFUKU SHOKAN], 2010.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캐릭터를 좋아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왕성함을 좋아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성을 좋아하고, 가이도 다케루의 전문성을 좋아하고, 온다 리쿠의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하고, 기리노 나쓰오의 잔혹함을 좋아하고... 미나토 가나에의 '글솜씨'를 좋아한다. 소설 [고백]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다가온 그녀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치밀한 복선과 탄탄한 구성이라는 평가이다. 가슴을 적시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진실 앞에서,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완벽한 짜임새는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그녀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주요 인물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고백]은 독백의 힘을 보여주고, 두 소녀의 번갈아가는 심리묘사로 이루어진 [소녀]는 서술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독특함은 항상 다음 작품에 대해 기대를 하게 하는데, 이번에는 '편지'이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이십 년 뒤의 숙제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오랜 지인에게 안부를 묻고, 사랑하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며, 기쁨을 나누고, 위로하는 도구로... 이메일과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과거의 유물인 편지를 말하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편지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부드러운 펜으로, 또박또박 정성을 들여, 우표를 붙이고, 며칠간의 기다림... 봉투를 뜯고, 한자한자 눈을 맞추며, 행간의 의미를, 읽고 또 읽는, 은유와 상징의 설레임... [왕복서간]은 보내는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이라는 형식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선사한다.

 

  기억하니? 1학년 때 갔던 여름합숙. 가모지마 섬 여름축제를 취재하러 가서 민박에 묵었던 그날 밤 말이야. 아즈 너하고 시즈카, 지아키, 나, 이렇게 넷이서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털어놓았잖아. 모두 다 고이치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진짜 어색했지. 하지만 지아키가 "그럼 넷이서 정정당당히 겨루자. 모두 차이면 위로 파티를 열고, 누구든 잘 되면 나머지 세 사람은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거야. 어때?"라는 말을 꺼냈고,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결국 고이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제일 먼저 고백한 지아키였지.(p.9)

 

  그건 정말 사고였을까?

  그래, 산에서 내려올 때 있었던 일을 짚어가다가 한 가지 더 깨달은 게 있어.

  시즈카는 그 사고가 있던 밤에도 산을 내려가는 내내, 외그루 소나무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지아키가 넘어졌을 때도, 내가 전화를 걸 때도, 후미야가 와줬을 때도,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어.(p.44)

 

  <십 년 뒤의 졸업문집> 고이치와 시즈카의 결혼식, 남편을 따라 해외 파견생활을 하던 에쓰코는 일시 귀국하여 고향을 찾는다. 그리고 졸업 이후 십 년 만에 방송부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인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지아키는 보이지 않는다. 고이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지아키였는데, 이 둘은 언제 끝나버린 걸까? 에쓰코의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왕복 서간으로 십 년 전의 고백, 오 년 전의 사고, 헤어짐, 행방불명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아이들이 여섯 명 있더구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걸 확인하고 교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지. 그런데 그때 마침 재직 중에 앓던 지병이 악화되고 말았지 뭐니.(p.93)

 

  제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선생님께서 어째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셨는지 그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선생님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마호 씨를 포함한 여섯 명은 사고 당일 함께 산에 갔던 아이들이고요? 여섯 아이들이 사고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그후의 인생에서도 씻어내지 못하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 아닌가요? 마호 씨는 처음부터 제가 그걸 확인하러 온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p.103)

 

  <이십 년 뒤의 숙제> 이십 년 전 어느 가을날, 야유회에서 남편과 제자가 함께 강물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남편은 수영을 못 하고, 제자는 고작 열 살이다. 그때 누구를 구해야 했을까?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하는 마치코는 사고와 관련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교사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오바는 마치코를 대신하여 여섯 명을 찾아간다. 그리고 왕복 서간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십 년 전의 사고 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당신은 약하지도 않고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아.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감하다는 걸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단 한 번, 당신을 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그게 고마워서 날 치켜세워준 것뿐이지 사실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었어.

  ...

  그런데 그들 모두가, 그때 싸움에 뛰어든 당신과 똑같은 눈을 갖고 있었어.

  내 눈은 어떨까? 이 사람들과 같은 경험을 하면, 나도 같은 눈을 가질 수 있을까?(p.191)

 

  나도 후회가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그 녀석들은 돌아오지 않아.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어른들 잘못이겠지. 가즈키네 어머니와 야스타카네 아버지에 대한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어른들 세상의 문제가 아이들에게 비극을 가져온 건 사실이야.(p.228)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준이치는 마리코를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국제자원봉사대 활동을 떠난다. 2년이라는 헤어짐. 왕복 서간으로 지난 십오 년을 뒤돌아 보는데, 이 둘을 연결짓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준이치와 마리코의 기억의 진실은 무엇일까?

 

  [왕복서간]에 수록된 세 개의 중편은 한 가지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서 다각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마치 퍼즐의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면, 또 다른 진실의 조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도입부에서 충격적인 결말이나, 자극적인 소재를 드러내어도 글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미나토 가나에 만의 매력인듯하다. 등장하는 인물의 구체적인 이력은 작품에 생동감과 현실성을 부여하고, 편지라는 형식은 또 하나의 독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더불어 왕복 서간으로 긴 대화의 느낌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녀의 감정, 심리, 내면 묘사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기며, 손 편지의 감성이 마음을 물들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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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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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애나 배곳, 황소연 역, [퓨어①], 민음사, 2012. 

Julianna Baggott, [PURE], 2012.

 

  줄리애나 배곳은 소설, 아동문학, 에세이, 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3개의 펜 네임 중에서 소설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퓨어]는 '종말' 이후를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판타지이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진 세상, 황폐함과 어둠이 깔린 세계,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음모와 투쟁, 증오와 사랑을 강렬함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전의 소설이 어떠한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구해내는 것이었다면, 최근에 나오는 소설은 멸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장르를 '포스트 아포칼립스'1라고 한다.

 

  프레시아가 대폭발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면 마치 태양에 태양에 태양을 더한 것 같았던 발디밝은 빛... 그리고 자기가 인형을 들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인형을 가지고 놀기에는 나이가 많았던 건 아니었을까? 인형의 몸통은 황갈색 천이었고 팔다리는 고무였다. 공항에 있을 때 섬광이 그녀의 시야를 뒤덮더니 세상이 폭발했고 녹아내렸다. 온갖 것들이 서로 뒤엉켰고 인형의 머리는 프레시아의 손이 되었다.(p.22)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p.11)

 

  작가가 상상한 종말은 대폭발이다. 위기 속에서 가진 자는 돔 안으로의 생존권을 구매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방치된다. 급작스런 대폭발의 섬광과 열기로 모든 것은 타오르고 녹아내린다. 돔 안의 생존자는 '퓨어'라 불리며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하지만, 바깥세상의 생존자는 화상과 융합으로 '돌연변이'가 된다. 왼팔이 쪼그라든 아이, 목에 철삿줄이 달린 여자, 한 손이 자전거 손잡이와 뒤엉켜 굳어진 사람... 그리고 사람끼리 융합된 그루피, 이들을 사냥하는 땅과 융합된 더스트와 동물과 융합된 비스트 등이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종말 이후는 퓨어와 돌연변이, 돔 안과 바깥세상,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되는 이원화된 세계이다.

 

  돔은 폭발과 바이러스 공격, 환경 재앙에도 끄떡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공간이다. 돔 안의 사람은 바깥세상의 사람을 천민이라고 부르며, 철저한 질병관리를 통해서 언젠가 지구가 회복되는 날, 바깥으로 돌아가 천민을 돌보며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다. 바깥세상은 폐허의 공간이다. 대폭발 이후, 수색 구조단은 의료 체계를 재건하고 치안을 위해 군대를 조직했으나, 이내 지도자는 축출되고 혁명군이 등장하여 공포정치를 하며 돔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낸다.

 

  한쪽 손이 인형의 머리와 융합된 프레시아는 16세가 된다. 그러면 혁명군에 징집되어 살인자가 되거나, 아니면 살아있는 표적이 되어야 한다. 패트리지는 돔 안에서 최고위층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안락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생존을 믿으며 돔에서 빠져나온다. 혁명군을 피해 도망치는 소녀와 어머니를 찾기 위해 돔에서 탈출한 소년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무너진 공간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도우며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 사실적인 묘사, 독특한 캐릭터, 커다란 스케일, 인물 중심의 서술... 등 소설은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3부작으로 [퓨어](Pure) 이후에 [퓨즈](Fuse)와 [번](Burn)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여행의 끝에는 어떠한 진실이 숨어있을지, 작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줄지 기다려지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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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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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프라이스, 박효정 역, [스타터스], 황금가지, 2012. 

Lissa Price, [STARTERS], 2012.

 

  마야 달력이 끝나는 2012년 12월 21일 이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이전의 소설이 어떠한 위협(예를 들면 핵무기, 테러, 정치권력, 자연재해, 돌연변이, 정신이상자, 외계생명체... 등)으로부터 지구를 구해내는 세계였다면, 요즘에 나오는 소설은 종말을 전제로 하고 멸망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자연을 즐기며 함께 살아가는 리사 프라이스는 이렇게 뒤숭숭한(?) 때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그리고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베벌리 힐스에서 멀어질수록 길거리의 사람들은 점점 거칠어 보였다. 이미 버려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쓰레기 수거차를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 더미를 피해 걸었다. 올려다보니 붉은 천막으로 덮인 건물을 지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오염 구역이었다. 마지막 생물학 포자 미사일들이 떨어진 지 벌써 1년도 넘게 지났건만, 위험 물질 전담반의 관심이 아직 이 집에까지는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p.23)

 

  가까운 미래, 의학과 의료 체계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200세까지 늘어난다. 수명의 연장은 곧 노동 인구의 증가를 의미했는데, 부족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미성년자는 법적으로 경제활동이 금지된다. 미국은 태평양 연안국과 긴장관계였는데, 생물학적 위협을 받고 있었다. 부족한 예방 백신은 노약자(노년과 미성년자)를 우선순위로 했고, 급작스런 전쟁 발발과 함께 생물학 포자 미사일의 공격으로 20-60대 사이의 사람들은 모두 감염되어 죽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사회는 '스타터'라 불리는 십 대와 '엔더'라 불리는 노인들로 새롭게 재편된다. 한순간에 중장년층이 사라지자 은퇴한 엔더는 다시 옛 직장으로 복귀하여 사회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고, 고아가 된 스타터는 보호소에 강제 수용되거나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도망자가 된다. 투표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된 엔더는 사회 중심층이 되어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지만, 법적으로 경제활동이 금지된 스타터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지거나 이탈자(약탈자)가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미래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루어진 세상이다. 회색빛의 은발로 상징되는 엔더는 기득권을 충분히 누리지만, 젊음으로 상징되는 스타터는 주변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작품에서 이러한 나이와 빈부에 대한 충돌은 화려함은 더욱 밝게, 어둠은 더욱 음산하게 만들고 있다.

 

  "당신은 일종의 무감각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전혀 고통도, 어떤 해도 없어요. 당신은 약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하지만 분명히 훨씬 부자가 되어 일주일 뒤에 깨어나는 거죠."

  그는 다시 하얀 치아들을 번쩍였다. 나는 움찔 놀라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 한 주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그녀가 당신이 되는 겁니다."

  (중략)

  "그녀가 바로 당신 몸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당신 몸을 이용해서 여기서 나가고, 그렇게 다시 한번 젊어지는 겁니다. 아주 잠시만."(p.15-16)

 

  스타터와 엔더가 극단적으로 대립한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엔더는 스타터의 젊음을 갈망하고, 스타터는 엔더의 안정적인 생활을 원한다. 그리고 이들의 욕망은 프라임 데스티네이션(Prime Destination)이라고 불리는 바디 뱅크에서 불법적인 접촉을 하게 된다. 16세의 캘리 우드랜드는 보호소로 강제 수용하는 집행관의 눈을 피해 숨어서 살고 있다. 다른 스타터와 마찬가지로 전쟁 전에는 안락한 생활을 하였으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캘리는 아픈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바디 뱅크를 찾아간다. 그리고 고가의 금액을 약속받고 자신의 젊은 몸을 대여하는 계약서에 서명한다. 사건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젊고 강한 10대의 몸과 100년이 넘는 경험과 지혜를 함께 가진 엔더가 감으로써 이득이 발생할 곳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지. 스파이 활동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더구나, 하지만 그런 건 아마 단지 시작에 불과할 거야.(p.227)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저희가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빨리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시청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잠시 멈췄다. "영구 렌탈입니다."(p.301)

 

  작가가 본 미래는 인간의 욕망이 가득한 사회이다. 나눔과 상생보다는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의 목소리만 내는 분열된 사회이다. 스타터는 기본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빈곤에 시달리지만, 엔더는 넘치는 물질을 소유하고 이것을 더 누리기 위해 젊음을 산다. 그리고 끝없는 욕망은 기술 발전과 결합해 젊음을 제한 없이 소유하는 '영구 렌탈'로 확장된다.

 

  도리스야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지. 난 행복을 느껴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그저 립글로스, 댄스, 음악, 그리고 가벼운 여자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던 때가 얼마나 예전인지도. 지금의 나는 안전, 자유, 그리고 생존 같은 것들을 신경 쓰기에도 벅찼다.(p.71)

 

  행복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일상적인 것이 행복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돈과 물질로 대변되는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도대체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어떻게? 중장년층이 전멸하고, 젊은 신체를 렌탈한다는... 이런 기발하고도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소재, 논리적인 구성, 흡입력 있는 문체는 읽는 눈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작품의 도입과 전개의 필력과는 대조적으로 위기와 절정에서의 박진감이 조금은 부족한듯했다. 확실한 끝맺음을 좋아하는데, 여운을 남기는 듯한 결말도 조금은 취향에 맞지 않아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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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마노, 달의 여행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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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서영, [알로마노 달의 여행], 심심, 2012. 

 

  달은 지구로부터 대략 38만 4,400km 떨어진 위성으로, 빛을 내지는 않으나 태양의 빛을 반사해 다양한 형상을 보인다. 신기하게도 달을 기준으로 날을 세는 음력이 있고, 지구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으로 밀물과 썰물, 해수면의 높이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현상 때문일까? 전통적으로 달은 신비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여겨졌고, 달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하거나,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가 나타나거나,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많이 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여 인간의 발자국을 남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류는 달에 대한 특별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알로마노 달의 여행]은 21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또 다른 달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은 판타지가 아닌,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던 역사로 올라간다. 어느 산 아래에 거주하던 모르민족은 로마의 착취와 훈족의 위협 속에서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희망과 도전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오랜 여정 끝에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완전히 단절된 라키슈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천 년의 시간이 흐른다.

 

  "저기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은 너무 높아 오르기 힘든 아르토스산 꼭대기에서 떠오른단다."

  "그것은 바로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달의 흙에 젊음을 유지시켜주고 청춘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드문드문 움푹 파인 상처가... 그래. 그게 바로 달의 흙을 퍼간 흔적이란다. 달의 흙은 아주 비싼 값에 젊음을 원하는 왕들에게 팔리지..."

 

  "그렇다면 제가 달의 흙을 퍼와 할아버지에게 선물할까요?"(p.22-24)

 

  매력적이고 총명한 알로마노는 달의 전설을 들으며, 달에 가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꿈을 과묵한 아르곤과 예쁜 루우비와도 함께 나눈다. 시간은 더 흐르고 적당한 때가 되자, 알로마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을 향한 여행을 계획한다.

 

  "저희들은 그 누구도 락키슈숲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곳의 존폐를 위협하는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사안이며, 혹시라도 만약에 알로마노라는 젊은이가 숲을 벗어난다면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바깥 세상에 호기심을 느껴 출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모든 전통과 법칙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천년의 역사가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지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아두십시오."(p.40-41)

 

  여행은 시작부터가 험난하다. 모르의 10장로는 젊은이들의 도전을 무모하게 여기고, 숲의 변화를 두려워하여 거세게 반대한다. 하지만 알로마노와 두 친구는 꿈과 이상을 향한 열정을 보이고, 결국은 통수의 허락으로 숲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여행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①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오만함으로 눈이 멀어진 시인 베르테르를, ② 배우지 못해서 좀도둑으로 살아가는 몰로이를, ③ 어린아이와 날지 못하는 오리 제제를, ④ 현실에 안주하여 외롭게 사는 노인 몰로이를, ⑤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자 벨루샤를, ⑥ 정해진 운명을 강요당하는 피피를 만난다. 그러면서 달이 떠오른다는 아르토스 산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된다.

 

  알로마노와 두 친구가 만난 사람들은 여행을 도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 사기꾼, 나이 어린, 늙은 고집쟁이, 이상한, 그리고 나약한 인물들이다. 사람들은 알로마노를 도우며 달을 향한 신념과 열정을 보게 되고, 자신들이 현실에서 잃어버렸던 꿈을 조금씩 되찾게 된다.

 

  [알로마노의 달의 여행]은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안내서이다. 개인적으로 꿈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는 나이인데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하고 명확한 메시지와 더불어 소설 속에는 우주의 수많은 운석이 떨어져 깊이 팬 자국을 사람이 흙을 퍼가서 생긴 것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이 있고, 달이라는 좋은 소재와 모험이라는 흥미로운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달을 찾아가는 여정을 방해하는 것은 피로와 배고픔이 대부분이다. 야만적인 마르민족이 잠시 등장하지만 꿈을 방해하는 상징으로는 의미가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모험 이야기에 필수적인 몇 가지 아이템이 등장하지만, 사용은 전혀 없다. 반전도 약하고... 조금만 더 극적인 요소를 첨가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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