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작업실 - 우리집에 만드는 나만의 공간
캐럴라인 클리프턴 모그 지음, 김세진 옮김 / 오브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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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클리프턴 모그, 김세진 역, [집과 작업실], 2012. 

Caroline Clifton-Mogg, [A Space of My Own], 2011.

 

  우리 집에 만드는 나만의 공간

  상상력이 넘치는 나만의 공간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 나만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작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갖추어 놓고, 때로는 쉴 수 있는 아담하고 따뜻한 공간... 이러한 '작업실'은 차분하면서도 창의적인 안식처인 동시에 피난처이자 평화의 장소이다.

 

  하지만 건축학적으로 편리함과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자기만의 공간을 성공적으로 꾸미려면... 일반적인 의미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는 것과는 별개로, 공간의 용도를 설정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홈 비즈니스를 위한 곳으로 개조할 것인가? 혹은 재택근무용으로 사용할 것인가?

  이곳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작업에 알맞게 설계한 장소여야 한다.(p.10)

 

  적절한 수납으로 공간을 활용,

  깔끔한 공간과 풍부한 자연광,

  좋은 전망으로 영감을,

  어울리는 탁자와 의자,

  전기 시설과 조명,

  이미 가지고 있는 소박한 아이템의 조합과 활용,

  그리고 공간의 조화

 

 

 

 

  요소들(The Elements)

 

  가구의 선택과 배치... 차분하고 연한 컬러의 벽과 가구, 심플하면서도 최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 인체공학으로 디자인된, 자신의 취향과 집의 스타일과 어울리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홈 오피스의 구성요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

 

  수납과 선반 활용의 즐거움... 수납이라는 개념은 내 주변의 공간에서 물건이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치우는 것이다. 또한, 주변의 가까이 둬야 하는 물건들을 현명하고 기능적으로 정리하여 언제든 필요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적인 수납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논리와 사고가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보이는 곳에, 다른 것들은 안 보이는 곳에...

 

  조명등이 주는 놀라운 매력... 빛과 조명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다. 나만의 창의적인 공간 연출을 하거나 방의 분위기를 바꿀 때에도 조명은 필수이다. 은은한 조명, 자연광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조명, 각도 조절이 가능한 방향등... 조명은 공간에 빛을 채워주는 핵심적인 역할과 동시에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현대 디자인의 아이콘이다.

 

  공간에 표정을 주는 장식... 데코레이션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창조적인 공간 연출을 위한 색상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극과 열정, 영감을 선사하는 밝고 선명한 색상을 선택하자.

 

 

 

 

  [집과 작업실]은 단순히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만의 공간 연출을 이야기하고 있다. 벽지와 어울리는 가구를 배치하고, 논리적인 수납을 하며, 빛과 색으로 공간을 채우는... 나의 몸에 맞는 이러한 공간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영감을 부여해 주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아이템과 소품이 조화를 이루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나만의 공간 연출... 수록된 수많은 사진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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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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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역, [신참자], 재인, 2012. 

Higashino Keigo, [SHINZANMONO], 2009.

 

  고덴마초 사건... 어느 날 저녁, 아파트에 혼자 사는 45세 여성이 목 졸려 살해당한다. 미쓰이 미네코... 남편과 헤어지고, 만나지 않는 아들이 있으며, 두 달 전에 연고 없이 이사를 온, 약속으로 방문한 친구에게 주검으로 발견된다. 가가 교이치로... 니혼바시에 부임한 신참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주변인 조사와 탐문을 시작한다. 거짓말... 형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진실, 화해, 가족...

 

  센베이 가게 딸

  요릿집 수련생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시계포의 개

  케이크 가게 점원

  번역가 친구

  청소 회사 사장

  민예품점 손님

  니혼바시의 형사

 

  처음 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무조건 히가시노 게이고만을 사들인 적이 있었다. 왕성한 필력으로 이미 수많은 읽을거리가 출시되어 있었고, 영화나 TV 드라마의 원작이라는 것이 흥미로웠으며, 미스터리의 다양한 접근과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이 읽은 작가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생각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다. 록 홈즈(Sherlock Homes)나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처럼 인상적인 해결사(?)가 등장하면 좋을 텐데... 모든 주인공을 한 사람으로 통일하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고, 지금이라도 영웅적인 캐릭터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라는 바람도 가져보고...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그에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가 교이치로'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이다. 유가와 교수는 천재 물리학자로 과학적 분석과 실험 검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면, 가가 형사는 현장을 누비며 증거를 수집하고 발로 뛰며 단서를 모아 형사의 논리와 통찰로 문제를 해결한다. [신참자]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이다.

 

  시리즈의 순서는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 [잠자는 숲], [악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붉은 손가락], 그리고 [신참자]이다. 가가는 제일 처음에 등장했을 때에는 대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교사가 된다. 그리고 어느 학생과 연관된 사건으로 ('교사로서는 실격'이라 여기고)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된다. 네리마 경찰서와 히사마츠 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신참자]에서는 니혼바시 경찰서에서 경부보로 활약한다.

 

  이 소설은 조금은 특별한 재미를 주는데, '고덴마초 사건'이라는 하나의 장편 속에 주변의 목격자를 찾아 수소문하는 아홉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와 아홉 개의 조그만 이야기가 입체적인 구성을 이루어 사건의 해결을 향해 나아간다. 장편으로서의 메시지가 있고, 단편 하나하나의 의미가 존재한다.

 

  "실은 이번 일, 그 사람이 제안했어요. 진짜 진단서를 전하러 갔을 때 그 사람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이 일에 대해서는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도쿄 토박이고 남자끼리의 약속이니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다, 그렇게 말이죠."(p.49-50)

 

  "꽤 쓸 만한 아이예요. 요리 솜씨야 얼마든지 갈고닦을 수 있는 거지만 입이 무거운 것은 손님을 상대할 사람에게는 큰 재산이죠."(p.100)

 

  "야나기사와 씨, 여자란 복잡하기 짝이 없어요.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속은 정반대일 경우가 왕왕 있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형사 노릇 하면서 제일 힘들다고 느끼는 게 여자 심리를 헤아리는 겁니다."(p.139)

 

  삼면의 숫자판을 동시에 움직이는 원리는 간단하다. 보통 시계는 숫자판 뒷면에 기계 장치가 붙어 있지만 이 시계의 경우 그 장치가 바작에 붙어 있다. 즉 태엽에 의해 작동되는 축이 삼각기둥의 중심에 서 있는 형태다. 그 축의 움직임을 톱니바퀴가 세 개의 숫자판에 전달하는 것이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p.187-188)

 

  그녀는 금고 옆에 놓아둔 휴대 전화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조그만 강아지 장식이 달려 있다. 순산을 기원하는 부적이라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다정한 눈길의 여자 손님이 준 것이다.(p233-234)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p.278)

 

  "참 아이러니하죠.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려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도키코 일로 배웠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는 미네코에게서 배웠습니다. 나라는 인간, 참 서툴러요."(p.325)

 

  "완구점은 꿈을 파는 가게니까 늘 즐거운 기분으로 지내야 해요. 그래서 나쁜 얘기는 듣고 싶지 않은 거예요..."(p.370)

 

  "저는 나쁜 짓을 저지른 아들을 지킨 게 아니었습니다. 더 나쁜 방향으로 가도록 등을 떠민 셈이죠. 부모로서 완전 실격입니다. 동시에 경찰로서도. 부모는 원망을 사는 한이 있어도 자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입니다... 그 죗값은 당연히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거짓을 가슴에 품은 채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도 있어요..."(p.432)

 

  이전의 작품이 금전적인 이유로, 치정에 의해서, 사소한 실수로, 계획된 복수이거나, 순간적인 착각으로, 우발적인 범죄나,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미스터리의 잔혹함이나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신뢰'와 '공존'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가족의 회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각각의 단편에는 뚜렷한 갈등이 있다. 할머니와 손녀, 주인과 종업원,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친구, 아내와 남편,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형사와 형사, 형사와 범인 사이의 갈등. 이러한 갈등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이고,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작가는 새로 전입해온 가가 라는 신참자를 통해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추리라는 형식은 조금 약한듯하지만,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서로의 관계가 해결되는 모습을 통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한국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일본사회의 험악한(?) 가족문화를 향한 작가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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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독이다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오경화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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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사와 야스히사, 오경화 역, [나는 감독이다], 국일미디어, 2012. 

Ebisawa Yasuhisa, [KANTOKU], 1979.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가 돌아오고, 아시아 최다 홈런왕인 이승엽이 돌아왔다... 2012년 대한민국 야구판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때를 같이하여 적절한 타이밍으로 야구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이 출시되고 있는데... 좌완투수의 승부조작 미스터리 [사우스포 킬러], 악연으로 맺어진 투수와 심판이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 [오심], 수비의 중심인 유격수 [수비의 기술]...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감독을 주인공으로 하는 [나는 감독이다] 등이다.

 

1. [나는 감독이다]는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KANTOKU]를 원작으로 하는데, 2007년에 이미 [야구 감독](김석중 역, 서커스)으로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일미디어에서 새롭게 재번역, 재출간한 작품이다.

 

2. 에비사와 야스히사는 [지상의 꿈 F1](1988)으로 닛타 지로 문학상, [귀향](1994)으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그는 스포츠를 소재로 하여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주로 야구, 골프, 그리고 자동차 레이스의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전문가를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과 승부를 둘러싼 극적인 면을 최대한 살리는 재능으로, 실제 경기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포츠 자체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제대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야구 소설이 어려운 이유는? ① 야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문단에 없다. ② 구단과 선수의 실명을 사용하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글이 되고, 가명을 사용하면 실재감이 떨어진다.

 

3. [나는 감독이다]는 히로오카 타츠로라는 실존인물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팩션이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조직은 전부 가공이며, 현존하거나 혹은 과거의 어떤 실존인물 및 실재조직과 흡사하다 해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또 한 명의 히로오카 타츠로에게 바친다.(p.4)

 

  히로오카 타츠로는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이다. 하지만 자이언츠의 황금시대(1965년부터 1973년까지 센트럴리그와 일본시리즈를 9연속 제패, V9이라고 한다.)를 이끈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과의 불화로 1966년 팀에서 쫓겨난다. 은퇴 후, 그는 히로시마 카프 코치를 거쳐 야쿠르트로 옮겼고, 1976년 감독이 된다. 1년 만에 만년 꼴찌 팀인 야쿠르트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2위까지 끌어올리고, 이듬해에는 창설 29년 만에 처음으로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만들어 낸다. 1982년 창단 4년째인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으로 취임, 2년 연속 팀을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상까지 이끌며 명감독으로 이름을 높인다.

 

  소설의 내용은 히로오카 타츠로라는 과거 자이언츠에서 쫓겨난 스타 선수가 훗날 리그 최하위인 엔젤스의 감독이 되어 자이언츠와 우승을 다툰다는 내용이다. 작품에 사용된 '엔젤스'라는 팀 이름만 가공일뿐, 등장하는 선수나 상대 팀 구성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4. 초임 감독이 꼴찌 팀을 이끌어가는 과정 속에는 리더십, 갈등 해소, 다양한 전술, 슬럼프 극복, 목표를 향한 전진... 등 야구의 재미와 함께 우리의 인생을 담아내어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 때마다 감독을 갈아치우는 방식에 히로오카는 반대였다. 결국은 그것이 팀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단을 떠나는 것이 선수가 아닌 감독 쪽이라는 것을 선수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선수들은 더 이상 감독의 명령을 듣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랫동안 나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p.15)

 

  그걸로 족합니다. 강하게 만드시려거든 절대로 선수들을 칭찬하지 마세요. 그들은 딱히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단지 야구를 해서 이긴 것뿐이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잖아요? 명심하세요. 선수들의 본분은 야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겁니다. 선수들로 하여금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진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p.72)

 

  "만약 자네가 1루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이런 일도 가능해. 투구와 동시에 스타트 하는 듯한 시늉을 내는 거야. 2루수나 유격수 둘 중 하나가 반사적으로 2루 베이스로 들어가겠지? 그렇게 되면 적의 수비 대형을 관찰할 수 있어. 히트 앤드 런을 시도하기 쉬워지는 거야. 유격수가 움직이면 그 자리로 치면 되니까. 그리고 자네의 그런 리드로 인해 작전이 순조롭게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비단 다음 타자의 안타 한 개에만 머무르지 않아. 적은 그 다음에 우리가 어떤 공격을 감행해올지 생각하게 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 때, 경기는 그만큼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되는 거라고."(p.99)

 

  견실한 수비로 상대방을 무득점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단 1점이어도 좋다. 그리고 그런 야구는 능히 할 수 있다. 오히려 5점을 획득해서 이기는 야구보다 확률은 더 높다. 타카하라, 자네의 타율은 몇 할이었지? 그래, 3할 1푼 2리다. 즉, 자네는 100개 중 70개는 범타를 치고 있는 셈이야. 반면 자네의 수비율은 9할 6푼 2리야. 이제 일겠지? 3할이라는 미덥지 못 한 숫자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9할 6푼이라는 숫자에 의존할 것인가.(p.161-162)

 

  "잘 들어라, 기본적인 사항을 항상 자신의 머릿속에 철저히 주입해둬야 된다. 무기력하게 타구를 기다리기만 해선 안 돼. 머리를 쓰라고. 이를테면, - 투수는 어떤 공을 전질 것인가. - 주자는 몇 명 있는가. - 아웃은 몇 개인가. - 상대가 번트를 칠 만한 상황인가. - 타자는 어디로 칠 가능성이 높은가. - 스퀴즈 번트를 칠 가능성은 있는가. - 도루를 할 우려는 있는가. - 타자의 발은 빠른가. 이런 기본을 무시하지 마라. 이것을 늘 머릿속에 담아둠으로써 경기에서 이길 수도 있고, 어이없는 실점을 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p.179-180)

 

  "선수는... 본래 게으름뱅이들일세. 감독이 한 번이라도 절망에 빠져봐. 금세 전염되어 아무렇지 않게 시합을 포기해버리지. 하지만 잘 들어.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선 안 되는 거야. 그들은 잠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거거든. 그 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그 능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쏟게 해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야."(p.290)

 

  히로오카 타츠로의 야구는 선수의 심리를 이용하는 야구, 분위기를 지배하는 야구, 다양한 작전이 있는 야구, 수비 중심의 효과적인 야구, 기본기가 철저한 야구, 생각하는 야구, 즐기는 야구, 이기는 야구이다.

 

5. 출판사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야구 감독]은 논픽션에 가까운 팩션의 느낌이라서 일본 야구와 소설의 재미를 한번에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감독이다]는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국일'의 이미지가 강해서 픽션의 형실을 빌린 실용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의 재미와 함께 감독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그리고 번역은 전반에 걸쳐 [나는 감독이다]가 조금 더 자연스러웠으나, 용어 선택이나 특정 부분에서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에는 어느 번역을 사용해도 큰 지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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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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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쇼지, 김선영 역,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검은숲, 2012. 

Yuuki Shoji, [GOMESU NO NA WA GOMESU], 2008.

 

  지금이야 일본 미스터리의 다양한 장르를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처음부터 정통이니, 사회파니, 본격이니, 하드보일드니... 라는 구분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실험적인 시도와 개척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토대가 마련되고, 독자의 호응에 따라서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유키 쇼지의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는 요즘에 나오는 다양한 소재의 획기적인 작품과 비교한다면,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들며, 판타지나 SF적인 요소가 첨가되고, 영화적인 묘사와 스피드한 전개, 반전의 반전을 이루는 복합적인 구조... 더구나 스파이 물이라고 한다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주인공,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위기의 순간에 발휘되는 비밀무기, 금발의 미녀와 세계를 누비며 특급호텔 스위트룸의 화려함이 있는.., 아쉽게도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에서는 이러한 공식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단조로운 구조, 평범한 캐릭터, 반전이나 자극도 약하고, 특별함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출판사는 왜 이러한 소설을 번역 출간한 것일까?

 

  하지만 이 작품이 1962년에 쓰였다는 점, 유키 쇼지가 일본 하드보일드 작풍을 도입한 선구자라는 점, 획일적인 추리 일변도에서 스파이 물을 다루었다는 점, 배경이 국내가 아니라 전운이 감도는 베트남 사이공이라는 점, 그리고 또... 이러한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작품의 의미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살해당한 게 아닐까?

  그때, 내가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러길 바랐기 때문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죽음을 바라는 내 마음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뒤틀린 마음은 또한 그 바람과 똑같은 비중으로 가토리의 생환을 바라고 있었고, 그것은 어두운 그림자 반대편에 자리한 진실이기도 했다.(p.24)

 

  나치난 무역회사 사이공 출장소, 가토리는 파견 3개월 만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복귀를 신청한다. 그리고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라진다. 3년 전 파견의 경험이 있고, 후임 예정자인 사카모토는 현지 사무소를 중심으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와 내전의 기운으로 끓어 오르는 현지의 분위기는 모든 것이 녹녹치 않다.

  만나는 이들은 가토리의 실종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강도상해로, 마약중독으로... 그의 죽음만을 추측할 뿐,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살인이 일어나는데... 죽기 직전 한 남자는 "고메스의 이름은?"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랬지.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부러워. 나는 너무 많은 시체를 보고 말았어. 다들 통나무처럼 죽어나가는 거야. 그걸 보고도 구역질을 참고 침을 삼켜가며 그저 지나가기만 했지. 나중에야 사람이라는 게 저렇게도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면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더군. 태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후였어. 포로로 잡은 병사들이긴 했지만 그놈들을 죽일 때마다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쾌감을 맛보았지. 그 쾌감은 지금도 남아 있어. 씁쓸하고 껄끄러운, 녹 가루처럼."(p.193)

 

  종전 후 패전한 조국으로 송환되기보다 베트남에 남는 길을 택한 일본인들이 수백, 많게는 천에 이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인도차이나전쟁을 치르는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 군에 들어갔고, 어떤 이는 프랑스 군 외인부대에 들어가 베트민과 싸웠으며, 또 어떤 이는 현지인과 결혼해 베트남 사회로 달아났다.(p.207)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일본군의 퇴각으로 베트남의 정치적 공백, 과거 식민지를 되찾기 위한 프랑스의 진출, 호찌민이 이끄는 민족 독립운동, 인도차이나전쟁,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 미국의 지원과 남베트남 독자 정권 수립, 베트콩의 게릴라 활동, 내전의 긴장 고조... 현재 우리는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소설의 시각은 1962년에 멈추어 있다. 그리고 전쟁의 기우를 예상한 것일까? 전쟁의 치열함과 폐해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과거에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가 민주화되지 못하고 이번에는 자국 독재자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았어요. 독립 해방된 것은 일부 권력자뿐, 국민의 빈곤한 생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죠. 지금이 나라 내부가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 학대받은 민족의 의식이 하나로 뭉쳐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언론 통제나 그 밖의 공포 정치가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다는 게 그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죠. 미국이 아무리 밀어줘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p.219)

 

  과거 냉전 시대의 어두운 역사,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정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독재권력을 지원한 미국의 정책... 혁명적 대의를 위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돈을 위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하는 가운데 스파이가 된 사람들... 소설은 강대국의 정치놀음 속에서 희생당하는, 각자의 처지에서 어느 한 쪽 편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본 추리소설은 마쓰모토 세이초 씨의 [점과 선](1958)으로 현실에서 동떨어진 트릭 게임에서 벗어났고, 범죄의 동기를 깊이 고민해 현실주의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범죄의 동기를 사회기구 내부에서 찾았고, 사건의 발단에서 종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고발함과 동시에 풍속소설이나 여행기가 갖는 흥취를 곁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다시 말해 마쓰모토 세이초 씨 덕분에 추리소설은 오락성, 문학성, 사회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다소 사치스런, 혹은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소설로 성장했다.(p.306-307)

 

  작품을 읽으며, 1960년대는 일본 미스터리의 르네상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새로운 시도로 사회문제를 다루게 되었고, 유키 쇼지를 통해서 하드보일드한 스파이 물이 소개되기도 하는...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가를 통해서 오늘의 다채로운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흥행성과는 별개로 이러한 고전의 반열에 있는 작품을 번역하여,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검은숲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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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마타 마호카루, 민경욱 역, [유리고코로], 서울문화사, 2012. 

Numata Mahokaru, [YURIGOKORO], 2011.

2012 오오야부 하루히코 대상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 사진 사이트에서 일반적으로 초보와 고수를 구분하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초보는 카메라를 볼 때 행복하고, 고수는 사진을 볼 때 행복하다.", "초보는 무슨 카메라로 찍었는가를 보고, 고수는 어떻게 찍었는가를 본다.", "초보는 남들이 찍는 사진을 따라서 찍고, 고수는 자기만의 사진을 찍는다.", "초보는 좋은 사진을 보면 흉내 내려 하고, 고수는 한발 늦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많지만, 모두가 다 프로 사진가가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있지만, 모두가 다 김건모나 신승훈이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에는 글을 꽤 쓴다는 사람이 줄 서 있지만, 모두가 다 ???작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합니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개성, 누가 보아도 원작자를 짐작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작품에 눈길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유리고코로]는 1948년에 태어나 5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등단하여, 일본 전역에서 '누마타 붐'을 일으키고 있는 누마타 마호카루의 소설입니다. 늦깎이 작가의 수많은 인생 경험과 승려, 회사 경영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그녀의 창작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런데 개성과 독보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유리고코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구성으로 전개됩니다. 애견 카페를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던 료스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잇따른 불행이 찾아옵니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아 요양원으로 가고, 약혼자는 이유 없이 사라집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아 치료를 거부하고, 하필이면 이러한 때에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본 기억이 있다. 그런 기묘하게 뒤틀린 감촉이, 세월에 바랜 가죽과 녹이 슨 금속 장식에서 얼룩처럼 차분하게 전해진다. 왠지 몸이 떨리는 것만 같다.(p.12)

 

  그것은 내가 네 살쯤 됐을 때니까 지금부터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폐렴인지 뭔지로 나는 장기간 입원한 적이 있는데, 마침내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 머리털을 보지 않았다면 분명 평생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p.15)

 

  유리고코로

  저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뇌 구조가 보통 사람과 다르겠죠.(p.21)

 

  료스케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며 본가에 왔다가 아버지의 서재에서 검은 머리털이 담긴 낡은 핸드백과 빽빽한 글자로 가득한 빛바랜 노트 네 권을 발견합니다. 핸드백 속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검은 머리털이, 노트에는 살인을 고백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왜 어머니의 이름이? 그리고 살인의 고백은 누가? 도대체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의사는 유리고코로가 없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또 이 아이만의 유리고코로를 찾아내면 좋을 텐데...(p.23)

 

  그곳에 인형도 드문드문 놓여 있었습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주위에 범람하는 색채도, 공격적인 소음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유리고코로라는 것을 금방 이해했습니다.(p.24-25)

 

  어린 시절의 의사는 분명 '요리도코로(안식처)'라고 했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감각적인 안식처' 또는 '인식의 안식처' 혹은 '마음의 안식처'라는 게 이 아이에게는 없다고... 웅얼웅얼 얘기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참 이상하게도 잘못 들은 셈입니다.(p.48)

 

  노트 속에서 마음의 안식처가 없는 아이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리 진열장 안의 낡은 합성수지로 만든 인형을 통해 유리고코로(요리도코로, 안식처)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는 그 유리코 인형을 대상으로 가학적인 행위를 함으로 안식을 얻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초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친구가 연못에 익사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공원에서 우발적인 압사 사고를 일으킵니다. 자라난 아이는 칼로 손목을 긋는 자해를 도우며, 거리에서 몸을 파는 것으로 절정을 맞이합니다.

 

  "시험 삼아 제가 그어볼까요, 어떤 느낌인가 보게."

  특별히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미쓰코의 손목을 누르고 조금 전의 상처와 평행하게 또 하나의 붉은 선을 그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각자의 상처 입은 팔을 내놓고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습니다. 두 팔목에서 몇 줄기 피가 가늘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p.98-99)

 

  "저기요, 미쓰코 씨, 꼭 가요. 하코다테보다, 홋카이도보다 더 먼 곳, 어디 외국에 안 갈래요? 이름도 들은 적 없는 그런 마을로 언젠가 같이가요."

  미쓰코의 왼손에 비닐봉투를 씌우면서 얘기했습니다... 미쓰코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먼 곳의, 우리 가게..."

  "맞아요. 작지만 꽃향기 속에서 커피를 마셔요."

  한 번으로 끝내기 위해 깊고 길게 칼을 넣었습니다. 팔을 반쯤 자르는 것처럼.(p.107-108)

 

  작가는 유리고코로를 향한, 안식을 얻기 위한 욕망의 분출을 매우 아름답고 감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이코패스의 살인 본능이 충족되는 과정을 관능적인 미스터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료스케와 과거의 살인자가 교차로 진행되는 시점은 입체적인 구성으로 또 하나의 재미를 줍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개성과 독보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 가해자의 잔혹함에는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가 떠올랐고, 살인자의 독백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는 듯했으며, 현실에서 약혼자의 실종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창성보다는 짜깁기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노트 속 과거의 살인자는 모든 문제의 발단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살인자를 통해서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완전한 결말을 향하게 됩니다.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 살인과 가학이라는 끔찍하고도 파렴치한 행위를 미학적으로 왜곡하는 내용이 다분히 포함되어서 마음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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