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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역, [신참자], 재인, 2012.
Higashino Keigo, [SHINZANMONO], 2009.
고덴마초 사건... 어느 날 저녁, 아파트에 혼자 사는 45세 여성이 목 졸려 살해당한다. 미쓰이 미네코... 남편과 헤어지고, 만나지 않는 아들이 있으며, 두 달 전에 연고 없이 이사를 온, 약속으로 방문한 친구에게 주검으로 발견된다. 가가 교이치로... 니혼바시에 부임한 신참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주변인 조사와 탐문을 시작한다. 거짓말... 형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진실, 화해, 가족...
센베이 가게 딸
요릿집 수련생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시계포의 개
케이크 가게 점원
번역가 친구
청소 회사 사장
민예품점 손님
니혼바시의 형사
처음 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무조건 히가시노 게이고만을 사들인 적이 있었다. 왕성한 필력으로 이미 수많은 읽을거리가 출시되어 있었고, 영화나 TV 드라마의 원작이라는 것이 흥미로웠으며, 미스터리의 다양한 접근과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이 읽은 작가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생각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다. 셜록 홈즈(Sherlock Homes)나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처럼 인상적인 해결사(?)가 등장하면 좋을 텐데... 모든 주인공을 한 사람으로 통일하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고, 지금이라도 영웅적인 캐릭터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라는 바람도 가져보고...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그에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가가 교이치로'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이다. 유가와 교수는 천재 물리학자로 과학적 분석과 실험 검증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면, 가가 형사는 현장을 누비며 증거를 수집하고 발로 뛰며 단서를 모아 형사의 논리와 통찰로 문제를 해결한다. [신참자]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시리즈이다.
시리즈의 순서는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 [잠자는 숲], [악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붉은 손가락], 그리고 [신참자]이다. 가가는 제일 처음에 등장했을 때에는 대학생이었고, 졸업 후에는 교사가 된다. 그리고 어느 학생과 연관된 사건으로 ('교사로서는 실격'이라 여기고) 교사를 그만두고 경찰이 된다. 네리마 경찰서와 히사마츠 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신참자]에서는 니혼바시 경찰서에서 경부보로 활약한다.
이 소설은 조금은 특별한 재미를 주는데, '고덴마초 사건'이라는 하나의 장편 속에 주변의 목격자를 찾아 수소문하는 아홉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와 아홉 개의 조그만 이야기가 입체적인 구성을 이루어 사건의 해결을 향해 나아간다. 장편으로서의 메시지가 있고, 단편 하나하나의 의미가 존재한다.
"실은 이번 일, 그 사람이 제안했어요. 진짜 진단서를 전하러 갔을 때 그 사람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이 일에 대해서는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도쿄 토박이고 남자끼리의 약속이니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다, 그렇게 말이죠."(p.49-50)
"꽤 쓸 만한 아이예요. 요리 솜씨야 얼마든지 갈고닦을 수 있는 거지만 입이 무거운 것은 손님을 상대할 사람에게는 큰 재산이죠."(p.100)
"야나기사와 씨, 여자란 복잡하기 짝이 없어요. 사이가 나쁜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 속은 정반대일 경우가 왕왕 있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형사 노릇 하면서 제일 힘들다고 느끼는 게 여자 심리를 헤아리는 겁니다."(p.139)
삼면의 숫자판을 동시에 움직이는 원리는 간단하다. 보통 시계는 숫자판 뒷면에 기계 장치가 붙어 있지만 이 시계의 경우 그 장치가 바작에 붙어 있다. 즉 태엽에 의해 작동되는 축이 삼각기둥의 중심에 서 있는 형태다. 그 축의 움직임을 톱니바퀴가 세 개의 숫자판에 전달하는 것이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p.187-188)
그녀는 금고 옆에 놓아둔 휴대 전화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조그만 강아지 장식이 달려 있다. 순산을 기원하는 부적이라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다정한 눈길의 여자 손님이 준 것이다.(p233-234)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p.278)
"참 아이러니하죠.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려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도키코 일로 배웠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는 미네코에게서 배웠습니다. 나라는 인간, 참 서툴러요."(p.325)
"완구점은 꿈을 파는 가게니까 늘 즐거운 기분으로 지내야 해요. 그래서 나쁜 얘기는 듣고 싶지 않은 거예요..."(p.370)
"저는 나쁜 짓을 저지른 아들을 지킨 게 아니었습니다. 더 나쁜 방향으로 가도록 등을 떠민 셈이죠. 부모로서 완전 실격입니다. 동시에 경찰로서도. 부모는 원망을 사는 한이 있어도 자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입니다... 그 죗값은 당연히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거짓을 가슴에 품은 채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도 있어요..."(p.432)
이전의 작품이 금전적인 이유로, 치정에 의해서, 사소한 실수로, 계획된 복수이거나, 순간적인 착각으로, 우발적인 범죄나,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미스터리의 잔혹함이나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신뢰'와 '공존'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가족의 회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각각의 단편에는 뚜렷한 갈등이 있다. 할머니와 손녀, 주인과 종업원,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친구, 아내와 남편,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형사와 형사, 형사와 범인 사이의 갈등. 이러한 갈등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이고,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작가는 새로 전입해온 가가 라는 신참자를 통해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추리라는 형식은 조금 약한듯하지만,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서로의 관계가 해결되는 모습을 통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한국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일본사회의 험악한(?) 가족문화를 향한 작가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