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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독이다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오경화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에비사와 야스히사, 오경화 역, [나는 감독이다], 국일미디어, 2012.
Ebisawa Yasuhisa, [KANTOKU], 1979.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가 돌아오고, 아시아 최다 홈런왕인 이승엽이 돌아왔다... 2012년 대한민국 야구판은 그 어느 해 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때를 같이하여 적절한 타이밍으로 야구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이 출시되고 있는데... 좌완투수의 승부조작 미스터리 [사우스포 킬러], 악연으로 맺어진 투수와 심판이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 [오심], 수비의 중심인 유격수 [수비의 기술]...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감독을 주인공으로 하는 [나는 감독이다] 등이다.
1. [나는 감독이다]는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KANTOKU]를 원작으로 하는데, 2007년에 이미 [야구 감독](김석중 역, 서커스)으로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일미디어에서 새롭게 재번역, 재출간한 작품이다.
2. 에비사와 야스히사는 [지상의 꿈 F1](1988)으로 닛타 지로 문학상, [귀향](1994)으로 나오키상을 받았다. 그는 스포츠를 소재로 하여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주로 야구, 골프, 그리고 자동차 레이스의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전문가를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과 승부를 둘러싼 극적인 면을 최대한 살리는 재능으로, 실제 경기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포츠 자체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제대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야구 소설이 어려운 이유는? ① 야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문단에 없다. ② 구단과 선수의 실명을 사용하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글이 되고, 가명을 사용하면 실재감이 떨어진다.
3. [나는 감독이다]는 히로오카 타츠로라는 실존인물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팩션이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조직은 전부 가공이며, 현존하거나 혹은 과거의 어떤 실존인물 및 실재조직과 흡사하다 해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또 한 명의 히로오카 타츠로에게 바친다.(p.4)
히로오카 타츠로는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이다. 하지만 자이언츠의 황금시대(1965년부터 1973년까지 센트럴리그와 일본시리즈를 9연속 제패, V9이라고 한다.)를 이끈 카와카미 테츠하루 감독과의 불화로 1966년 팀에서 쫓겨난다. 은퇴 후, 그는 히로시마 카프 코치를 거쳐 야쿠르트로 옮겼고, 1976년 감독이 된다. 1년 만에 만년 꼴찌 팀인 야쿠르트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2위까지 끌어올리고, 이듬해에는 창설 29년 만에 처음으로 센트럴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만들어 낸다. 1982년 창단 4년째인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으로 취임, 2년 연속 팀을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상까지 이끌며 명감독으로 이름을 높인다.
소설의 내용은 히로오카 타츠로라는 과거 자이언츠에서 쫓겨난 스타 선수가 훗날 리그 최하위인 엔젤스의 감독이 되어 자이언츠와 우승을 다툰다는 내용이다. 작품에 사용된 '엔젤스'라는 팀 이름만 가공일뿐, 등장하는 선수나 상대 팀 구성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4. 초임 감독이 꼴찌 팀을 이끌어가는 과정 속에는 리더십, 갈등 해소, 다양한 전술, 슬럼프 극복, 목표를 향한 전진... 등 야구의 재미와 함께 우리의 인생을 담아내어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 때마다 감독을 갈아치우는 방식에 히로오카는 반대였다. 결국은 그것이 팀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단을 떠나는 것이 선수가 아닌 감독 쪽이라는 것을 선수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선수들은 더 이상 감독의 명령을 듣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랫동안 나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p.15)
그걸로 족합니다. 강하게 만드시려거든 절대로 선수들을 칭찬하지 마세요. 그들은 딱히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닙니다. 단지 야구를 해서 이긴 것뿐이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잖아요? 명심하세요. 선수들의 본분은 야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겁니다. 선수들로 하여금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진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p.72)
"만약 자네가 1루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이런 일도 가능해. 투구와 동시에 스타트 하는 듯한 시늉을 내는 거야. 2루수나 유격수 둘 중 하나가 반사적으로 2루 베이스로 들어가겠지? 그렇게 되면 적의 수비 대형을 관찰할 수 있어. 히트 앤드 런을 시도하기 쉬워지는 거야. 유격수가 움직이면 그 자리로 치면 되니까. 그리고 자네의 그런 리드로 인해 작전이 순조롭게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비단 다음 타자의 안타 한 개에만 머무르지 않아. 적은 그 다음에 우리가 어떤 공격을 감행해올지 생각하게 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 때, 경기는 그만큼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되는 거라고."(p.99)
견실한 수비로 상대방을 무득점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단 1점이어도 좋다. 그리고 그런 야구는 능히 할 수 있다. 오히려 5점을 획득해서 이기는 야구보다 확률은 더 높다. 타카하라, 자네의 타율은 몇 할이었지? 그래, 3할 1푼 2리다. 즉, 자네는 100개 중 70개는 범타를 치고 있는 셈이야. 반면 자네의 수비율은 9할 6푼 2리야. 이제 일겠지? 3할이라는 미덥지 못 한 숫자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9할 6푼이라는 숫자에 의존할 것인가.(p.161-162)
"잘 들어라, 기본적인 사항을 항상 자신의 머릿속에 철저히 주입해둬야 된다. 무기력하게 타구를 기다리기만 해선 안 돼. 머리를 쓰라고. 이를테면, - 투수는 어떤 공을 전질 것인가. - 주자는 몇 명 있는가. - 아웃은 몇 개인가. - 상대가 번트를 칠 만한 상황인가. - 타자는 어디로 칠 가능성이 높은가. - 스퀴즈 번트를 칠 가능성은 있는가. - 도루를 할 우려는 있는가. - 타자의 발은 빠른가. 이런 기본을 무시하지 마라. 이것을 늘 머릿속에 담아둠으로써 경기에서 이길 수도 있고, 어이없는 실점을 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p.179-180)
"선수는... 본래 게으름뱅이들일세. 감독이 한 번이라도 절망에 빠져봐. 금세 전염되어 아무렇지 않게 시합을 포기해버리지. 하지만 잘 들어.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선 안 되는 거야. 그들은 잠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거거든. 그 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그 능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쏟게 해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야."(p.290)
히로오카 타츠로의 야구는 선수의 심리를 이용하는 야구, 분위기를 지배하는 야구, 다양한 작전이 있는 야구, 수비 중심의 효과적인 야구, 기본기가 철저한 야구, 생각하는 야구, 즐기는 야구, 이기는 야구이다.
5. 출판사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야구 감독]은 논픽션에 가까운 팩션의 느낌이라서 일본 야구와 소설의 재미를 한번에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감독이다]는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국일'의 이미지가 강해서 픽션의 형실을 빌린 실용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의 재미와 함께 감독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그리고 번역은 전반에 걸쳐 [나는 감독이다]가 조금 더 자연스러웠으나, 용어 선택이나 특정 부분에서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에는 어느 번역을 사용해도 큰 지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