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야수들의 밤 밀리언셀러 클럽 80
오시이 마모루 지음, 황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시이 마모루, 황상훈 역,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야수들의 밤], 황금가지, 2008.

Oshii Mamoru, [KEMONOTACHI NO YORU - BLOOD The Last Vampire], 2000.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야수들의 밤]은 도서정가제의 시행을 앞두고 떨이로 구매한 책 중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손에 넣은 작품이다. 다소 직설적인 제목과 만화 같은 표지는 어쩌면 경박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책의 내용은 인류학을 중심으로 역사,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폭넓은 지식체계를 기반으로 인간과 인간을 닮은 또 다른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배우 전지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블러드>(크리스 나흔 감독, 2009.)의 원작이고, 저자인 오시이 마모루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만든 감독이다.

  학교에 가면 그들은 본질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아 행실이 불량한 문제아 또는 악질 선동자로 낙인 찍힌 채, 생활 지도라는 이름 아래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수많은 공갈 및 협박들에 거의 혼자 힘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집에 가면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절대적인 이데올로기 아래 공갈, 회유, 눈물 등을 포함하는 끔찍한 지옥도가 거의 매일같이 되풀이되었다. 혈육간에 오가는 언쟁으로 황폐해진 가정은 말 그대로 소모전을 반복하는 전장이었다.

  학교와 가정. 이 두 전선을 오가는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는 거리였다.(p.34-35)

  1969년. 어느 당파에 속하지 않은 무당파로, 미와 레이는 도립 K고교 민주화 투쟁위원회의 학생 활동가이다. 실제로 어떤 사회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지 아니면 그저 젊은 날의 혈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마르크스나 레닌주의는 아니라고 하면서 행동하는 실천가로 반정부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도심의 대규모 시위는 (만화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인 묘사가 뛰어난데) 소속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의 헬멧을 쓰고, 나름의 성향에 따라 온건하거나 과격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대치 중에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기동대의 반격으로 시위대는 순간 힘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다. 레이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한적한 건물 사이로 숨는데, 교복 차림으로 피투성이의 날이 선 일본도를 휘두르는 여자와 수상한 두 명의 외국인... 그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목격한다.

  "살인 사건이라고 보는 근거가 몇 개 있지. 첫 번째는 사인. 피해자들은 다량의 혈액을 잃었고, 그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된 것은 틀림없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체에 외상이 전혀 없었어. 단 하나, 손목에 작은 교상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지."

  "교상?"

  "물린 상처 말이야."(p.48)

  자신을 경시청 형사부 조사 1과의 형사라고 하는 고토다 하지메는 불쑥 집으로 찾아와 그날 본 것을 집요하게 묻는다. 아직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는데, 연쇄적인 고교생 활동가의 죽음과 실종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목에 물린 상처만 있었는데, 다량의 혈액을 잃은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무산자 동맹인 에스에르(SR)파의 고교생 위원회이고, 사건을 전후로 사야라는 여학생의 움직임을 포착한 상황이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단 한 명이다.

  "말 그대로지. 세계 어떤 문화권에 가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녀석들이 존재하잖아? ... 슬라브의 뱀파이어, 러시아의 우피르, 그리스의 브뤼콜라카스, 루마니아의 스토리고이, 북부 독일의 나하제어......"

  "그거 설마 흡혈귀들?"(p.124)

  "흡혈귀라는 건 말이지. 죽음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사태를 설명하기 위한 지역적이며 집약적인 표현으로, 일종의 도피처였어. 가슴에 말뚝을 박아넣는 것은 죽은 자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말이야. 예를 들어 흡혈귀에 물린 인간은 흡혈귀가 된다는 전설은 전염병을 설명하는 당시의 가장 뛰어난 상징적 은유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갈 거야.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허황하지만 말이지. 이러한 상징들의 재미있는 점은, 당시의 인간들이 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 그것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당시 당사자들조차 이유를 알지 못하고 보편적으로 행하던 풍습의 대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끔 짜맞추었다는 것이지...... 뭐, 그건 딴 이야기고."(p.125)

  임시 회의를 소집하고, 경찰을 끔찍이 싫어하는 어린 혁명가들은 친구이자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동맹을 맺는다. 그들은 임무를 분담하고 실종자와 사야라는 여학생에 관해서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초월적인 힘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하지만 실제로 흡혈귀라고 불리는 자들은 엄연히 실존하고 있다네...... 아니, 정확히는 흡혈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까? 허구 속의 흡혈귀와 공통점이라고는 흡혈을 한다는 것, 자외선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것, 외관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분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불로 불사는 아니야. 수명이 경이적으로 길긴 하지만, 느리긴 해도 노화가 존재하고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는 못하더군."(p.209)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지구상 다른 어떤 곳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의 내부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라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맞서 싸워야 했던 존재이자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된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진화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인 인간이었던 거야. 그들은 우리의 선조가 도구를 가진 유인원의 무리였을 때부터, 우리 선조의 모습으로 내부에 기생하여 전문적으로 인간을 포식하며 살아온 거라네......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만을 상대로 진화해 온 걸세."(p.214-215)

  "수렵 가설이란 게 뭐지?"

  ...

  "유인원 중 일부가 무기를 가지고 살육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에 눈을 떴다는 가설일세."(p.215)

  "우리들의 선조가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적응해 온 유인원이라면, 우리를 잡아먹으면서 나란히 진화를 해온 그들이 우리와 닮아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가장 정당한 이야기이지...... 그들은 우리의 사악한 모습을 정확히 비추어내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네. 내가 아까 그들은 인간이라고 말한 것은 그러한 의미도 담겨 있었다네......"(p.260-261)

  "그들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극히 적지. 기생자가 숙주를 죽이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 갈 거야. 하물며 고등한 지성의 소유자인 그들이 무작위로 사람을 죽일 리도 없고...... 적어도 근대 이후에 그들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숨어들어, 폐쇄적인 작은 집단에 기생하면서 그 구성원들을 먹이로 삼아 살아왔다네. 우리들은 그것을 할렘이라 칭하고 있지. 아예 대놓고 사냥터니 식당이니 하고 부르는 자들도 있네. 그들의 흡혈 행위 구조는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많지만, 아마도 먹이가 되는 인간은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매우 의존하게 되는 듯하더군. 스스로 나서서 피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대상을 집단 내로 끌어들이기도 할 정도로......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상관없이 말일세."(p.262)

  인간 사이에서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있으나 인간의 피를 흡혈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은 전설로 내려오는 흡혈귀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여 수렵하며 진화해 온 것이 정당하듯, 이들도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며 생존을 위한 진화를 하고 있었다.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변형할 수 있어서 인간을 죽이기보다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구조를 형성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인간은 주종관계를 형성하여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작가는 마치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인간과 죽음에 관해서, 또 다른 인간에 관해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거침없이 쓰고 있는데... '수렵 가설'로부터 '수렵 가설의 비판'을 지나 '기계론적 철학'과 '종교의 영역'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지루할 정도로 다양하고 어려운 이론을 끌어와서 뱀파이어의 세계관을 완성하고 있다.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이것을 토대로 앞으로 전개될 많은 이야기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키 레시피 -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꺼낸 위로의 요리들
차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차유진, [하루키 레시피], 문학동네, 2014.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지만(최근에서야 겨우 단편에 재미를 붙였다), 유명한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남모르게 슬쩍 따라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의 장편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열성적인 예찬론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솔직하고 담백한 에세이에 마음이 간다. 에세이에 관해서 좀 더 얘기해 보면... 어느 것을 읽어도 공통으로 드러나는 하루키의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문학', '음악', '영화',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다시 말해서 읽은 책, 사서들은 음반(주로 재즈), 감상한 영화, 가본 곳... 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세상의 좋은 책들이 그렇듯, 하루키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와 닿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해가 더 잘 되는 부분도 생기고, 요리에 관해서는 특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연결고리를 찾는 데 집중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나의 내면에서 공명하는 지점을 찾아낸다.(p.12-13)

  한때는 이것을 정리하려고 노트를 옆에 두고 깨알 같은 메모와 함께 책을 읽었다.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시간 없음을 핑계로 얼마 가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요리'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 막 얼핏 생각나는 것은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비채, 2012.)에 나오는 하루키의 식습관이다. "나는 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 사람이어서 아무래도 채소 중심으로 식사하게 된다. 슈퍼마켓이나 채소 가게에 장을 보러 가 직접 채소를 고르는 것도 좋아한다... 양배추를 살짝 쪄서 인초비(기름에 절인 멸치)와 함께 파스타 재료로 써도 좋고, 유부와 함께 된장국을 끓여도 좋다. 혹은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사발 가득 담아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것도 나쁘지 않고..." 외국에 가서 뭔가 가볍게 배를 채우고 싶은 경우에는 '시저스 샐러드'를 주문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이 샐러드를 맛있게 먹은 적이 없어서 직접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먼저 무엇보다 이 샐러드에는 아가씨처럼 싱싱하고 신선한 로메인상추가 필요하다. 보통 양상추를 대신 쓰곤 하지만, 이건 논외다. 상추 같은 걸 썼을 때는 참을 수가 없다. 토핑은 크루통과 계란노른자와 파르마산 치즈로, 간은 질 좋은 올리브유,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레몬즙, 우스터소스, 와인비네거로. 이것이 정통 레시피다... 정통 레스토랑에 가면 요리사가 테이블까지 와서 실제로 눈앞에서 이런 재료를 재빠르게 섞어준다. 이거 정말 볼거리다."

 

 

 

 

 

 

 

  하루키는 음식을 통해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을 작가로 만든다. 먹거나 운동하거나 흘려넘기기 쉬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그만의 시선으로 다시 불러내 특별한 순간과 공간을 만든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그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이 공명하고, 우리 또한 무미건조한 일상을 하루키처럼 나만의 독특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사색하고 기록하게 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각자의 생활에서 절로 텍스트가 배어나오게 한다.(p.14)

  요즘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맛집에 관한 포스팅은 말할 것이 없고, 연인의 도시락에서부터 신혼부부의 밥상에 이르기까지... 점차 일인 사회로 되어감에 따라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에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기대감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오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드라마 <미생>과 같은 현실에서 나를 위로하는 만찬을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꺼낸 위로의 요리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물론 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를 읽어 봤다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지만 여러 난관이 뒤따랐다. 첫째 하루키 책 한 권 읽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단정짓거나, 둘째 하루키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색을 밝힌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쉬운 여자의 예로 미도리를 갖다대는 인간은 난독증이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 읽긴 했지만 일본 작가니까 좋아하면 안 된다는 사람(그냥 책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독창적인 변명을 잘 늘어놓는다)까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내 입을 다물게 했다.(p.31-32)

  저자는 요리사이고 푸드 칼럼니스트라고 하는데, 하루키와 그의 소설을 향한 애정(어쩌면 이것을 넘어선 열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싫은 소리 좀 하자! 출간한 책의 판매량뿐만 아니라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니 하루키라는 이름은 이미 시대의 아이콘으로 충분히 자리를 잡은듯하다. 그런데 하루키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팔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세기의 평가를 받는 이름이기에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푸드 칼럼니스트가 정확히 무슨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직 요리사가 쓴 [하루키 레시피]에는 그녀가 읽은 하루키는 있어도 따라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는 없다.

 

 

 

 

 

 

 

  요리에 관한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 그가 요리를 직접 해본 것은 물론, 오랫동안 요리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어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리를 잘하는 것과 요리 이야기를 글로 잘 풀어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 모두 배가 고파지고, 그의 인물들이 먹는 것이 어떤 요리인지 알고 싶어진다.(p.53)

  나는 대학 시절에 남들과 다르게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고, PC 통신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작품 속에 나오는 '손녀딸'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어느 날 문득 요리하고 싶어서 그동안 해오던 것을 놔두고 영국으로 날아가 다시 공부했고, 하루키의 발자취를 따라서 세계를 여행하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라고 하는데... 매학기마다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고,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하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이것을 따라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는 현실에서 하루키식으로 감성 충만한 한 끼 식사를 원했는데, 배부른 자랑만 듣고 있자니 거부감이 크다.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일까? 어디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요리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자 있으면 나와보라!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댄스 댄스 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IQ84], [스푸트니크의 연인], [빵가게 재습격]...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4-08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빠의 우주여행 - 한국 SF 단편선
양원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원영 외, [아빠의 우주여행], 황금가지, 2010.

  어느 의식 있는 작가가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을 선언하듯이 나도 의식(?) 있는 독자로 국내 소설은 이외수와 김진명을 제외하고는 읽지 않겠다는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물론 기자 회견은 없었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었지만, 순문학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장르문학에 관한 차별을 지닌 국내 문단을 향한 일종의 객기 어린 반항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일본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으로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에 이어서 이렇게 SF소설을 읽게 되다니,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반가웠다. 아직도 편견과 선입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외로운 글쓰기를 하는 이름 없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빠의 우주여행(양원영)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김현중)

  머리 사냥꾼(류형석)

  처음이 아니기를(정소연)

  스위치, 오프(정보라)

  애니멀 201(김두흠)

  아름다운 감금(임태운)

  해바라기(정희자)

  코르사코프 증후군(정해복)

  그녀를 만나다(곽재식)

  [아빠의 우주여행]은 10개의 SF 단편 모음이다. 주로 동호회와 웹진을 위주로 활동하는 국내 작가로 이루어졌는데, 30페이지로 이루어진 공상과학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의 세계관과 구성, 나름의 반전과 메시지는 기성의 어느 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이런 유의 글에 익숙한 이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주여행."

  "뭐?"

  "지구 밖으로 나가 보고 싶었어. 화성에도 가보고 우주 정거장에도 가보고. 우주의 끝이 어딘지도 알고 싶고."(p.13)

  보호자 안드로이드는 국가 복지의 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고아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하는 보호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곱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정교하게 아빠와 똑같은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와 12년을 살았다. 이제 곧 성인이 되어 반납해야 하는데, 심경이 복잡하다. 기한을 얼마 남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물으니 뜻밖의 대답을 한다. 우주여행을 하고 싶다는...

  대뇌반구간 보조신경연결체 삽입술. 일명 아인시술(AIN)... 예전부터 좌뇌와 우뇌의 원활한 소통이 높은 지능과 관계있다는 설이 제기되어 왔었는데, 한스 크뢰벨 박사는 포유류의 뇌량(좌,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다발)은 은과 지르코늄 합금으로 된 미세한 바늘을 삽입하면 신호전달 흐름이 좀 더 활성화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차례의 침팬지 실험을 통해 그는 이 수술이 지능 활동을 최대 15퍼센트까지 개선시키며, 아무런 생리적 거부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p.33-34)

  뇌를 활성화해서 똑똑해지는 수술은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자식에게 이 수술을 받지 않게 하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수술 후 2주간의 회복을 거치면 이마 위로 꼬리를 내린 자국이 남는데, 이것으로 수술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구분된다. 가난으로 비인가 의료기관을 찾아 불법 수술을 받는 사람이 생기는데...

  사람의 기억을 읽어서 저장해 높고 죽을 경우에는 저장한 기억을 다른 무기물(無機物) 신체에 이식하여 되살려 낸다던가, 보존을 위해서는 뇌수술을 통해 탐침을 심어야 하는데 어린 아이는 뇌의 발달 정도가 부족해서 그런 수술을 하지 못한다던가.(p.65)

  뇌를 인공 신체에 이식해서 기억을 보존할 수 있다. 뇌를 손상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기억을 재생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머리 없는 변사체가 발견된다. 헤드 헌터라는 별명을 가진 범인은 머리를 잘라 기억보조 장치를 섬세하게 절단해 간다.

  나노기술과 체세포 복제를 활용한 대체 장기 개발은 몇 십 년째 연구되고 있는 분야였다... 나노봇으로 이루어진 주형틀이 세포 복제가 완료된 후 저절로 분해되고 나면, 생생한 세포로 이루어진 주형만 남는다... 이 연구의 최대 난점은 구조가 대단히 복잡한 인간의 장기 틀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였고, 이 장기적인 문제에 앞서 당장 급한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들은 완전한 복제 장기 대신 이미 사용되고 있는 인공 장기에 체세포를 복제해 붙여 거부반응을 막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p.94-95)

  발생한 전염병 SDT는 혈액이나 체액의 접촉으로 감염되는데, 이 바이러스는 면역 체계를 교란시켜 정상적인 장기를 외부에서 침입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면역력이 거부반응을 일으켜 자신의 장기를 공격해 파괴하는데, 면역 억제제도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 방법으로 대체 장기 이식만 남았다.

  초록색 언니가 다니는 병원에는 우리 아빠가 있다. 아빠는 거기서 여자애가 되고 싶은 남자애나 남자애가 되고 싶은 여자애들을 마음에 들게 바꿔주는 일을 한다... 아빠는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람 몸속에는 스위치가 있거든. 여자애한테서 그걸 끄면 남자애가 되고, 남자애 걸 끄면 여자애가 되는 거야.(p.105-106)

  행복을 통제하는 사회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회, 심지어는 살면서 원하는 대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

  미래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태아의 세포 조작을 통한 질병 없는 아이 탄생, 배아줄기 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 복제인간 실험, 냉동인간 실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미래생명과학연구소가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인간병기 양성'(p.133)

  연구소에 새로 온 총책임자는 그곳을 농장이라고 부른다. 실험 대상을 농작물이라고 하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 비인간적인 실험이 자행되는 동안 가장 우수한 품종인 애니멀 201이 그곳에서 탈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T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매일 반복되는 음식의 맛도, 출입구 따윈 없는 회색 공간에 대한 저주도 아니었다. 오직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난 누구인가.(p.178)

  어딘가에 있을 탈출구를 찾기 위해 수도 없이 건물의 벽을 두드리고 긁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영문모를 회색의 공간에 갇히게 된 T.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과학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별은 타원형의 공전주기를 갖고 있으며 주위 항성들 간의 중력 간섭으로 주기가 일정치 않다.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 시기는 대략 3년 안팎인데, 그나마도 하늘이 먹구름에 싸여 있으면 태양을 관측할 수가 없다... 그 날이 오면 배는 천장을 활짝 열고 모두들 광장으로 나와 태양 아래 춤추고 노래하며 해맞이를 한다.(p.189-190)

  1400년 전에 지구에서 탐사선이 이 행성에 도착하였고, 얼마 후에는 대규모 조사단이 도착하여 지구화(Terraforming, 테라포밍) 과정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철수를 거부한 소수의 인원은 선박형 부유 도시에 남았지만, 지구연합 정부에서는 초소형 국민 체로 간주할 뿐이지 정식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 봤자 옛날의 이야기이고 지구와의 교류가 끝난 지는 1000년 가까이 되었다.

  의사는 남자가 지난 20년간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기억 장애 증상이고 냉동수면에 들어가기 직전에 단 몇 초 전 일도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했다. 다양한 치료법도 전부 통하지 않았고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완벽한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냉동수면 후에 치료하는 것을 결정했다. 남자는 사인을 했고 지난 8년간 그는 긴 잠을 잤다.(p.232)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남자는 지난 20년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유두체 이상으로 심각한 기억장애가 발생하는 건망 증후군(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판단된다. 정신 착란, 흥분, 치매, 기억장애의 증상을 보이는데...

  옛날에 부자 노인들이 제일 겁내는 게 알츠하이머였거든. 뇌세포가 막 망가지는 알츠하이머 말이야. 그래서 갑부들 치고 알츠하이며 연구하는 기금, 재단에 돈 안 퍼부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그쪽으로만 어마어마하게 기술이 발전해서, 알츠하이머로 망가진 뇌세포 되살리고 보존하고 하는 기술은 기막히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정교해졌다고. 그러다보니까 그 기술로 뇌를 떼어내서 새 몸에 옮겨 넣는 뇌 이식법도 다 가능해진거지.(p.297)

  신종 인플루엔자의 감염으로 심장과 폐는 기능을 잃고 온몸은 망가졌지만, 아직 정신은 멀쩡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실험적인 치료법으로 뇌 이식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20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받은 후에 드디어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다소 허황하고 황당한 상상이지만, SF의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기발할 수 없다. 안드로이드와의 정으로 인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첨단 의료 과학 기술 사회에서 생명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각각의 단편 마다 특별한 세계관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줄거리를 이어가다가 생각지 못한 반전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인간과 똑 닮은 로봇, 인위적인 시술로 지능을 높이고, 대체 장기뿐만 아니라 인공 신체에 뇌를 이식하고 기억을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냉동 수면으로 치료의 발전을 기다리며, 지구를 대신하는 다른 행성에서 사는 미래...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문학가인 백석. 남북 분단의 아픔으로 이름마저 생소하게 잊힌 민족 시인의 삶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조국 교수.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시대의 불의를 모른척하는 게 아니라 권력 앞에서 항상 바른 소리를 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