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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레시피 -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꺼낸 위로의 요리들
차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차유진, [하루키 레시피], 문학동네, 2014.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지만(최근에서야 겨우 단편에 재미를 붙였다), 유명한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남모르게 슬쩍 따라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의 장편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열성적인 예찬론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솔직하고 담백한 에세이에 마음이 간다. 에세이에 관해서 좀 더 얘기해 보면... 어느 것을 읽어도 공통으로 드러나는 하루키의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문학', '음악', '영화',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다시 말해서 읽은 책, 사서들은 음반(주로 재즈), 감상한 영화, 가본 곳... 에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세상의 좋은 책들이 그렇듯, 하루키의 글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와 닿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해가 더 잘 되는 부분도 생기고, 요리에 관해서는 특히 새롭게 보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연결고리를 찾는 데 집중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나의 내면에서 공명하는 지점을 찾아낸다.(p.12-13)
한때는 이것을 정리하려고 노트를 옆에 두고 깨알 같은 메모와 함께 책을 읽었다. 너무 방대한 작업이라 시간 없음을 핑계로 얼마 가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요리'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 막 얼핏 생각나는 것은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비채, 2012.)에 나오는 하루키의 식습관이다. "나는 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 사람이어서 아무래도 채소 중심으로 식사하게 된다. 슈퍼마켓이나 채소 가게에 장을 보러 가 직접 채소를 고르는 것도 좋아한다... 양배추를 살짝 쪄서 인초비(기름에 절인 멸치)와 함께 파스타 재료로 써도 좋고, 유부와 함께 된장국을 끓여도 좋다. 혹은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사발 가득 담아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것도 나쁘지 않고..." 외국에 가서 뭔가 가볍게 배를 채우고 싶은 경우에는 '시저스 샐러드'를 주문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이 샐러드를 맛있게 먹은 적이 없어서 직접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먼저 무엇보다 이 샐러드에는 아가씨처럼 싱싱하고 신선한 로메인상추가 필요하다. 보통 양상추를 대신 쓰곤 하지만, 이건 논외다. 상추 같은 걸 썼을 때는 참을 수가 없다. 토핑은 크루통과 계란노른자와 파르마산 치즈로, 간은 질 좋은 올리브유,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레몬즙, 우스터소스, 와인비네거로. 이것이 정통 레시피다... 정통 레스토랑에 가면 요리사가 테이블까지 와서 실제로 눈앞에서 이런 재료를 재빠르게 섞어준다. 이거 정말 볼거리다."






하루키는 음식을 통해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을 작가로 만든다. 먹거나 운동하거나 흘려넘기기 쉬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그만의 시선으로 다시 불러내 특별한 순간과 공간을 만든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그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이 공명하고, 우리 또한 무미건조한 일상을 하루키처럼 나만의 독특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사색하고 기록하게 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각자의 생활에서 절로 텍스트가 배어나오게 한다.(p.14)
요즘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맛집에 관한 포스팅은 말할 것이 없고, 연인의 도시락에서부터 신혼부부의 밥상에 이르기까지... 점차 일인 사회로 되어감에 따라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에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기대감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오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드라마 <미생>과 같은 현실에서 나를 위로하는 만찬을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꺼낸 위로의 요리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물론 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를 읽어 봤다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지만 여러 난관이 뒤따랐다. 첫째 하루키 책 한 권 읽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단정짓거나, 둘째 하루키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색을 밝힌다고 여기거나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쉬운 여자의 예로 미도리를 갖다대는 인간은 난독증이 있음이 분명하다), 셋째 읽긴 했지만 일본 작가니까 좋아하면 안 된다는 사람(그냥 책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독창적인 변명을 잘 늘어놓는다)까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내 입을 다물게 했다.(p.31-32)
저자는 요리사이고 푸드 칼럼니스트라고 하는데, 하루키와 그의 소설을 향한 애정(어쩌면 이것을 넘어선 열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싫은 소리 좀 하자! 출간한 책의 판매량뿐만 아니라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니 하루키라는 이름은 이미 시대의 아이콘으로 충분히 자리를 잡은듯하다. 그런데 하루키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팔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세기의 평가를 받는 이름이기에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푸드 칼럼니스트가 정확히 무슨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직 요리사가 쓴 [하루키 레시피]에는 그녀가 읽은 하루키는 있어도 따라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는 없다.






요리에 관한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 그가 요리를 직접 해본 것은 물론, 오랫동안 요리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어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리를 잘하는 것과 요리 이야기를 글로 잘 풀어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 모두 배가 고파지고, 그의 인물들이 먹는 것이 어떤 요리인지 알고 싶어진다.(p.53)
나는 대학 시절에 남들과 다르게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고, PC 통신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작품 속에 나오는 '손녀딸'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어느 날 문득 요리하고 싶어서 그동안 해오던 것을 놔두고 영국으로 날아가 다시 공부했고, 하루키의 발자취를 따라서 세계를 여행하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라고 하는데... 매학기마다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고,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하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이것을 따라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는 현실에서 하루키식으로 감성 충만한 한 끼 식사를 원했는데, 배부른 자랑만 듣고 있자니 거부감이 크다.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일까? 어디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요리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자 있으면 나와보라!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댄스 댄스 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IQ84], [스푸트니크의 연인], [빵가게 재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