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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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회,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달, 2016.

  시원한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함께 온종일 책을 읽고 싶은 계절이다. 독서를 하면서 음악을 듣기보다는(집중이 되지 않아...;;) 주로 커피를 마시는데, 카페인에 민감한 위장이라 하루에 한 잔 이상은 무리이다(그래서 과일차를 같이 먹는다). 한때는 와인의 세계를 궁금히 여겨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술을 먹지 못 해서(한의사 말로는 간이 약하다나 뭐라나...;;) 신이 내려주었다는 음료는, 내게는 그냥 역한 알코올일 뿐이다. 대부분이 즐기는 것을 태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잔의 커피는 제대로 누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까?'(p.10)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세상 잣대로 보면 좋은 직업일지라도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p.10)

  남자라면(물론 여자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나만의 공간 연출이라는 게 있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자유로운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해서 세상에서 제일 맛 좋은 커피를 내리는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일본의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닷가 마을의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커피집이라든가... 한적한 주택가에 절대로 있을 것 같지 않은 커피집이라든가... 그런데 커피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그동안 마셨던 커피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커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중 산장에서 마신 '우리나라 인스턴트커피'라고 답할 것이다. 배고플 때 먹은 음식이 가장 맛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산해진미라 할지라도 소화불량으로 고생중이거나 이미 다른 음식으로 배가 부른 상태라면 입에 대기도 싫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맛있게 마신 커피와 가장 훌륭한 커피는 다른 의미다. 전자는 커피에 대한 갈급함이 주된 요인이고, 후자는 커피의 질을 말하는 것이다.(p.22)

  저자는 보편적 커피 복지를 말하는 커피테이너이다. 가까스로 아내를 설득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년 동안 55개 나라를 여행하며 커피 농장과 유명 카페를 둘러본다. 남들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는 것을 직접 몸소 실천하는 커피 수행가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커피집을 하고 있고... 보석과 같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맛본 커피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혹시 모를 카페 창업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커피를 향한 열정이다!

  광장 북서쪽 한편에는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심플한 탁자와 의자 외에 별다른 인테리어는 없었으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동식 1세대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백 년은 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 토리노 지방에서 만든 '라 파보니' 머신으로 백 년 가까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책에서만 보았던 것을 직접 마주하게 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머신이 아직까지 멀쩡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었다. 전설적인 머신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셔볼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p.26)

  콜롬비아의 살렌토, 쿠바의 부에노스 디아스, 베트남의 달랏, 오스트리아의 빈, 모로코의 페스, 칠레의 산티아고... 에서 만난 커피는 나름의 개성으로 현지의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콜롬비아... 의 커피 농장은 커피를 향한 뭔가 부족한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 준다. 현지를 여행하는 것은 커피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하는 것 몇 가지가 있다. 커피 서적을 읽거나 핸드드립 등 커피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커피 책 가운데는 내가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한 정보가 많이 있다. 틈틈이 탐독하다보면 그 내용은 내 것이 되고, 커피에 대한 이해 또한 높아진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핸드드립 연습을 한다. 핸드드립은 한번 배우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일 정도로 까다로운 추출 방법이므로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필터에 따라서는 종이드립과 융드립을 하며, 종이드립은 방법에 따라 나선형드립과 동전드립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은 마일드한 동전드립으로 목 넘김이 부드럽고 좋으면서도 맛이 밋밋하지 않다.(p.74)

  주말부부로 지내며, 마포구 신수동에 카페 <커피 꼬모>를 시작할 때의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다. 건물 1층에 전용 면적 10~15평이면서 권리금이 없는,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가 1백만 원 미만의 장소를 찾아내고... 생두를 사다가 로스팅을 하고 블렌딩한 후에 마신 첫 잔의 감격... 카페가 아니라 개인 공방인 줄 알았다는... 혹시 건물주가 아니냐는 오해... 하루 열두 시간을 투자했지만, 20잔도 못 파는 날... 대안으로 로스팅한 커피와 더치커피를... 그리고 파격적인 가격 인하! 일본의 나가사키 - 교토 - 도쿄로 떠난 가배무사수행기는 일본의 커피 문화를 제대로 보여 준다.

  커피를 오랫동안 마시고 즐긴 사람들조차 범하는 실수가 있다. 커피 공부를 책으로 하려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커피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다양한 커피를 많이 마시고, 눈으로 보며, 코로 느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바라고 원하는 커피를 볶거나 추출할 수 있어야 한다.(p.178)

  즉 맛있는 커피의 조건은 추출된 커피의 품질에 있지만, 가장 맛있는 커피의 추억은 분위기, 상대방, 기분, 상황 등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신선하고 결점 없는 생두, 생두의 특징을 살린 적절한 로스팅,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추출,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다.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두에 있다.(p.182)

  예전하고 비교해서 시장이 커졌다고 하지만, 넘쳐나는 브랜드 커피와 나날이 발전하는 편의점 커피의 틈바구니에서 과연 커피집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시종일관 유행을 타거나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커피를 말하고 있다. 커피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싸고 맛 좋은 커피, 커피가 본질이어야 한다.

  가끔 중고 장터를 뒤지며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기능을 갖춘 것은 아무리 중고라고 해도 지출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번번이 구매욕을 삭혀야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커피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과 커피를 즐기는 방법 이외에 핸드드립의 매력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의 커피 수행은 커피를 마시러 일본에 가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게 할 정도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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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매뉴얼
대니얼 월리스 지음, 이규원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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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단순히 영화만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스펙이나 사연까지 한번에 몰아서 볼 수 있겠군요. 이게 끝이어야 하는데, 덕질의 시작이 될까 두렵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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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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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 김선영 역, [경관의 조건], 비채, 2016.

Sasaki Joh, [KEIKAN NO ZYOKEN], 2011.

  최근에 방송인으로 변신한 어느 은퇴 축구선수는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아들은 절대로 운동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힘들게 고생한 것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으리라. 그런데 실제로 살면서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대학 시절에 학교 간의 교류로 어떤 모임에 갔었는데,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 친구는 할아버지가 소방관이었고 아버지가 소방관이며 자기는 소방관이 되기 위해 소방학과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날 모인 사람은 모두 그의 집안 내력에 탄성을 지르며 그가 꼭 훌륭한 소방관이 되기를 진심으로 격려했다.

  3대째 경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따라 경찰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사사키 조의 소설 [경관의 조건]은 [경관의 피](비채, 2015.)에 이어서 9년 뒤의 이야기이다. 모든 시리즈가 그렇지만, 작가는 처음으로 만나는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의 깊이 있는 이해와 더 나은 재미를 위해서는 꼭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한다. 전작이 가족소설과 대하소설의 의미가 있다면, 이번에는 짜릿한 수사 드라마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더욱 정교해진 수사와 경찰 조직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들여다볼 수 있다.

  경시청은 그런 가가야에게 회유당할 우려가 없는, 혈통이 확실한 젊은 경찰관이 필요했다. 임무냐, 돈이냐. 경찰관으로 있을 것이냐, 선을 넘을 것이냐. 그런 문제로 갈등할 리 없는 신입 경찰관을. 가즈야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경시청 경관이었으니 다른 적성도 포함해 적임이었으리라.(p.25)

  그렇게 말하는데 왼손이 무의식적으로 셔츠 가슴주머니로 뻗었다. 주머니 속에 작고 단단한 감촉.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낡은 철제 호루라기다.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경관의 피를 의식한 뒤로 늘 목에 걸고 있다. 가즈야는 호루라기를 움켜쥐고 그 감촉을 재차 확인했다.(p.250)

  전쟁이 끝난 후, 임신한 아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안조 세이지는 경찰이 된다. 그는 직업의 명성이나 출세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주재소 주재 경관으로 근무하기를 원한다. 지역 사회에 동화되어 현지 주민의 생활을 돕는 순찰 경관의 삶은 임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의 사고로 막을 내린다.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 그 뒤에 숨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안조 다미야는 경찰이 된다. 그는 대학생으로 위장하여 좌익 학생운동의 동향을 파악하는 잠입 수사관으로 활동한다. 끔찍한 테러는 막을 수 있었지만, 공포와 불안으로 신경증을 앓으며 내면세계는 파괴된다. 아버지처럼 주재 경관이 되어 시민에게 봉사하는 삶으로 회복되지만, 30여 년 전의 사건을 들추며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난다.

  아버지를 향한 적대감과 이런저런 감정으로 안조 가즈야는 경찰이 된다. 3대를 잇는 경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경관의 피는 범죄와의 유착을 끊는 비밀 내사에 투입된다. 선배를 배신하고 동료를 팔아야 하는 일이지만, 경찰 개혁을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는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할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선다.

  가가야 히토시 경부는 폭력조직을 담당하고 수사원으로서 도쿄의 뒷세계에서 독자적인 정보 수집 루트를 구축했고, 권총 적발이나 각성제 거래 정보를 수집하는 데도 뛰어난 실적을 거두었다. 다만 사생활이 엉망이라 뒷세계와의 유착이 의심되었다. 아무리 눈부시게 활약하는 수사원이라도, 가가야의 경우 경무부의 눈에는 이미 용납할 수 있는 한도를 뛰어넘은 난행으로 비쳤던 것이다.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눈감아주면 다른 수사원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 언제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큰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처분할만한 복무규정 위반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경무부는 계장이면서 부하가 없는 한 마리 늑대 같은 가가야 히토시에게 부하를 붙여, 그 소행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p.25)

  '사적인 감정을 내세웠나?'

  ...

  별이여, 사라져라! 날이 밝으면 나는 승리하리. 나는 승리하리! 나는 승리하리라!

  어젯밤에는 마치 자신을 위한 아리아 같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으면 사태는 가사처럼 바뀌었어야 했다. 하지만 가가야는 의원퇴직을 했다. 경무부의 처분은 사라진 것이다.

  나는 이기지 못했다. 그 사실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졌나? 나는 패배했나? 이 승부는, 가가야의 승리인가?

  아니. 가즈야는 생각을 바꾸었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승부의 시기가 미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른 형태로, 나와 가가야는 다시 한 번 맞서게 될지도 모른다......(p.61-64)

  유능한 경찰이지만(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매력 있는), 사건을 조작하고 폭력조직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가가야 히토시... 그는 비싼 양복을 입고, 독일제 승용차를 몰며, 폭력조직 간의 동향을 살피어 정보를 수집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즈야에 의해 그가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다.

  비밀 내사와 체포 그리고 공판의 과정을 거치며 한때 잘 나가던 수사관은 경시청에서 사라진다. 9년의 세월은 도쿄의 범죄 양상의 변화를 불러오고, 경시청은 새로운 조직 개편으로 이에 맞선다. 가즈야는 경부로 진급하고 조직범죄대책부 제1과 제2대책계장으로 수사를 지휘한다. 아직 악연은 끝나지 않은 것일까? 약물 시장의 판도 변화와 정보 수집의 한계, 정보원이 살해되고 심지어 잠입 수사관이 피살되는 일이 발생한다. 상부에서는 가가야의 복귀를 추진하는데... 부서 사이의 갈등과 경쟁은 앙갚음과 보복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예고한다.

  "저는 계장님이 가가야 경부를 고발한 게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관할서를 포함해 조폭 수사를 담당한 지 오래되었지만, 가가야 경부 같은 수사 방법에는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거래를 하기 시작하면 그건 더는 경찰이 아닙니다. 제 양복은 싸구려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 명품 옷을 걸치고 맞설 생각은 하지 않아요."(p.358)

  전직 경시청 수사원이라는 우치보리의 행색은 과거 가가야가 이용했던 몇몇 정보원들의 분위기와 똑같았다. 하지만 우치보리의 경우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수사 대상이었던 업계에 한쪽 발을 담근 탓에 그쪽 분위기가 몸에 배고 만 것이리라. 경마와 싸구려 술, 정보 거래. 혹은 갈취할 수 있는 사냥감의 탐색. 그런 하루하루가 어느새 과거의 수사원을 이런 남자로 바꾸었다. 수상하면서도 적적한 기운이 뒤섞인, 타락한 남자의 인상.(p.359)

  자부심과 사명으로 정도의 길을 걷는 경찰, 회색 지대에서 이권을 위해 정보를 사고파는 경찰, 결국 선을 지키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경찰...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의 경찰이 등장한다. 매우 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영웅적이거나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과장된 인물이 아닌 현실에서 실제로 있는 듯한 인물이 나온다. 사건의 해결도 한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경찰 조직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마지막 30페이지에 들어설 때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혹의 공은 마침내 경관의 조건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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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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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조, 김선영 역, [경관의 피], 비채, 2015.

Sasaki Joh, [KEIKAN NO CHI], 2007.

2007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08 일본모험소설협회 대상

  일본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특별히 경찰 소설을 구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전직 경찰이나 경찰에 버금가는 탐정이 등장하고, 경찰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사사키 조의 이름을 언급하며 경찰 소설의 대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지 이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계급 구조, 조직 문화, 남성 중심, 팀을 이끄는 경험과 리더십, 의문의 사건... 그리고 악연은 필수 요소이다. [경관의 피]는 들은 소문으로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는데, 이번에 후속으로 [경관의 조건](비채, 2016.)을 출간하면서 전작으로부터 9년 뒤의 내용이라고 하여 순서대로 읽었다.

  [경관의 피]라는 제목은 매우 박력 있어 보이는데, 여기에는 사건 현장을 누비며 범죄와 맞닥뜨리는 경찰의 희생이라는 뜻과 함께 전후 3대에 걸쳐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가문의 혈통을 의미한다. 안조 세이지 - 안조 다미야 - 안조 가즈야로 이어지는 경찰 3대의 이야기는 마치 세 권의 책을 읽는 기분이다.

  세이지 본인의 희망은 막연했다. 우선 제때에 월급을 받고 싶었다. 제복 경관으로 거리에 서는 일은 그다음의 꿈이었다.

  경찰학교에 있는 동안 약간이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게 되기는 했다. 담당 구역의 주민이나 장사치들이 따르는, 순찰을 돌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들 인사를 해주는, 그런 순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서장이 되는 일도, 헬멧을 쓰고 경찰봉을 휘두르는 자신도, 사복 수사원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마을의 경찰 아저씨. 굳이 말하자면 그것에 세이지의 경찰관으로서의 꿈이다.(p.34)

  안조 세이지는 1948년 전쟁에서 돌아와 임신한 아내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경찰이 되기로 한다. 당시에는 전후 복구와 사회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경관을 모집했다. 경찰학교에서 만난 네 명의 동기생은 후에 인연과 악연으로 이어지는데, 시작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우에노 경찰서로 배속되어 지역을 순찰하며 공원의 부랑자 관리, 좀도둑 검거, 사기꾼 색출... 등 일선 현장에서 직무를 감당한다. 그는 경찰로서 출세보다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인상의 주재소 주재 경관이 되기를 희망한다.

  두 사람을 배웅한 후 다미오는 새삼스럽게 불단에 놓인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다미오에게 있어 유일한 성인 남성의 규범. 어머니와 지금의 삼촌들이 실제보다 더 미화해서 이야기했더라도, 그들이 이야기해준 진짜 경찰관. 그 피를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다미오는 남몰래 긍지로 삼아왔다. 특히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더욱 강렬하게.

  영정을 바라보면서 다미오는 가슴속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가 경시청 경관이 되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가 또 있다. 누구에게 말할 생각도 없고, 말해봤자 이해해주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그 또 하나의 이유를 위해 나는 내년에 경시청 경찰관 채용 시험에 응시한다......(p.197)

  안조 다미오는 1967년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주재 경관으로 친절하면서도 위엄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리고 의문의 죽임을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경찰학교에서 그는 국립대학에 진학하여 학생운동을 감시하는 잠입수사의 임무를 맡는다. 첩보 영화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데... 경찰이지만, 신분을 대학생으로 하고 신좌익 운동과 적군파의 테러 음모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처럼 주재소 주재 경관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가즈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한 가지만 말씀해주십시오. 이 임무에 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뜻밖의 질문이었을까?

  오이카와가 다시 가즈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피다. 자네에게는 훌륭한 경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런 변칙적인 임무도 견딜 수 있을 만큼."(p.535)

  안조 가즈야는 아버지의 죽임으로부터 오 년 후, 경찰시험에 합격하여 대졸 경찰관으로 채용된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서 경찰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3대 경찰이다. 그는 경시청 형사부 수사 4과에 배속되어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한다. 동료를 배신하고 선배를 밀고하는 일이지만, 범죄와의 뿌리 깊은 유착을 끊어야 한다.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경관의 피... 그는 할아버지의 의문의 죽임과 관련하여 아버지가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하였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한다.

  대하드라마라고 해야 하나? [경관의 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찰 3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60년의 기록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일본의 근, 현대사를 간략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는 재건을 위해, 사회 질서와 안녕을 위해 대규모로 경찰을 채용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집 없는 부랑자들이 모여 사는 우에노 공원의 풍경, 한국 전쟁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노동조합 운동은 활발해지고...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의 일상은 어느 것 하나 사소한 것이 없다. 베트남 전쟁은 대학가의 학생운동에 불을 붙이고, 심지어 국가를 향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사회 곳곳에서는 약물과 관련된 일탈이 벌어진다. 부패 경찰, 범죄와의 유착, 보여주기식 행정... 등장인물은 허구이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근원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뭔가 후련한 복수나 확실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 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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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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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저자의 2016 맨부커상 소식으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책을 출간한 2014년 연말에 어느 문화평론가의 한해 키워드 정리에서 들은 적이 있어서

상을 받은 [채식주의자](창비, 2007.)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다.

글솜씨에 놀라기보다 시종일관 먹먹한 가슴을 달래야 했다.

나는 1990년대 학번으로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대학생활을 했다.

매년 5월에는 총학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그날을 기념하지만,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핑계를 대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당연하였다.

그들은 고육지책으로 학생 식당 앞에다가 그날의 영상을 켜 놓았다.

어느 여학생의 처절한 가두방송이 귓전에 메아리로 남아 있다.

몇 년 전에 아프리카 가봉에서 유학 온 친구를 알게 되었다.

먼 곳에서 우리나라로 온 것이 기특해서 하필 왜 한국을 선택했냐고 물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고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제3세계 독재자끼리 외교 관계를 맺고 서로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가봉에 잘 알려진 나라이다.

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민중이 있다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

원하는 것은 같지만, 누구 하나 앞장서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근, 현대사를 공부하러 왔다고 했다.

내가 잊은 그날을 다른 대륙에서 온 외국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동호와 정대, 수피아여고 3학년 은숙,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진수, 양장점에서 일하는 선주 그리고 소설가 한강.

작가는 어렸을 때 잠시 스쳐 지나간 기억을 무슨 이유로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을까?

어쩌면 오랜 세월을 보내며 마음속으로 어떤 빚진 감정이나 다른 부담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손끝에서 글로 되살아난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주 선명하다.

우리하고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 다섯 사람의 이야기이다.

잊고 있었던 것을, 아니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단지 열흘간의 악몽이 아니다!

죽은 자, 살아서 고문과 협박으로 자존감마저 무너지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함께 죽지 못한 서러움과 군홧발에 짓밟힌 몸뚱어리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이다.

죽음의 의미와 무의미한 삶 사이의 치열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똑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처럼...(p.7)

이제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p.17)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 끝이 갈라져 있다. 반복되는 피라는 단어가 어쩐지 가슴을 답답하게 해, 너는 다시 입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p.22)

  오늘 남는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묻지 않고 너는 망설인다. 죽을 거 같으면,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p.28)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p.69)

  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었습니다. 죽을 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조원들 대부분이, 특히 어린 친구들은 더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고백하건대 나에게 그런 초연한 확신은 없었습니다.(p.113)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p.119)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p.130)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p.135)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p.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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