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살라 시무카, 최필원 역, [흑단처럼 검다], 비채, 2016.

Salla Simukka, [MUSTA KUIN EEBENPUU(AS BLACK AS EBONY)], 2014.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서 보거나 시리즈를 연이어 끝까지 읽었을 때는 뭔가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이고, 특히 책장에 꽂힌 책을 바라볼 때는 나름의 성취감이 들기도 한다. 조금은 생소한 핀란드에서 건너온 소설은 백설공주라는 의미를 가진 18세 소녀 루미키 안데르손을 주인공으로 '스노우화이트 트롤로지'... 백설공주 3부작을 완성한다. 시리즈의 첫 번째 [피처럼 붉다](비채, 2015.)와 두 번째 [눈처럼 희다](비채, 2016.)를 읽었을 때는 솔직히 작품의 매력을 알아채지 못했다. 살라 시무카라는 이름의 유명세와 52개국으로의 판권 수출은, 나에게는 그냥 그런 영 어덜트 픽션에 불과했다. 여성적인 감성이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알듯 모를듯한 주인공의 내면세계는 불편하고, 그것이 어떤 해결 없이 암시로만 끝나서 불만이었다. 후반부에 급하게 마무리하는 사건은 어정쩡한 느낌이고... 하지만 세 번째 [흑단처럼 검다]를 읽으면서 하나하나의 의문이 풀리는데, 세 권을 다 읽어야 비로소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보다 훨씬 오래 됐어. 페로의 버전은 1600년대에 나왔고, 그림형제의 버전은 1800년대에 발표됐다고. 이야기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고. 그거 알아? 옛날 버전에선 왕자가 부드러운 키스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지 않는다는 거. 그는 공주를 강간해. 공주는 쌍둥이를 낳을 때까지 깨어나지 않고 말야."(p.14)

  동화 [백설공주]와 [흰 눈과 붉은 장미]에 이어서 이번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원형인 [들장미 공주]를 차용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까다로운 현실은 동화속 세상으로 서서히 물들어간다. 처음에는 피 묻은 돈을 추적하면서 국제적인 마약 조직에 엮이고, 다음에는 프라하에서 집단 자살을 모의하는 컬트 종교에 연루되었으며, 이번에는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스토커와의 대결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루미키는 우울한 분위기로 남을 믿지 않는 자기만의 규칙을 가지고 외롭게 지냈다. 남들하고 다르게 따뜻하고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족과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지배적이었고... 하지만 두 번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다른 일상으로 돌아온다. 새로 남자 친구를 사귀고, 학교 연극에도 참여한다. 따돌림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지난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손엔 피가 묻어 있어, 루미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지.

  난 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어.(p.29)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다른 이름들도 알고 있어. 넌 루미키지. 백설공주. 한때 들장미 공주처럼 잠들어버린 누군가가 있었다는 거 기억해?(p.48)

  아니, 겉으로는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복잡하다. 그녀에게 전해진 쪽지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내는데, 지금까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알고 있다. 그는 그녀가 잊었던 기억을... 왜 우울하게 사는지, 왜 가족이 서먹한지... 기억을 되살리는 열쇠를 준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이것이 그녀의 삶을 파괴하더라도 그녀는 자기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그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왜곡된 욕망은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고...

  "용기가 공포를 이긴다는 얘기들을 하잖아. 하지만 난 공포가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이끌어낸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공포 그 자체가 용기일 수밖에."

  ...

  "하지만 공포는 도망치게 만들고 용기는 남아서 싸우게 해요." 알렉시가 말했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 하지만 공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서 가장 적절한 반응을 끄집어내잖아.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역시 죽음의 공포지. 우릴 도망치게도 하지만, 맞서 싸울 용기도 주지." 헨리크가 말했다.(p.95-96)

  "네 파일을 읽으니 네 영혼이 훤히 보이더군. 내 영혼만큼이나 새까맸어. 흑단처럼 검은 영혼. 그때부터 난 널 사랑하게 됐지."(p.159)

  몹시 추운 눈길을 달리고, 뙤약볕 아래에서 발에 땀이 차도록 달리고, 이번에는 빗속을 달린다. 공포를 이겨내는 용기인가? 아니면 공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용기인가? 루미키는... 아니. 이제 겁내지 않을 거야. 죽을 만큼 두렵지만 참아낼 거야... 남모르게 자기를 지켜보는 눈을 향해 달려간다.

  [흑단처럼 검다]는 앞의 두 권에서 조각난 주인공의 감정을 하나씩 추스른다. 그녀는 왜 따로 규칙을 만들어서 자신을 통제하는지, 그녀의 가족은 왜 다른 가족하고 다른지, 이성하고 상반되게 흘러가는 감정의 곡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소설이 의문을 제시하고 확장했다면, 이번에는 퍼즐을 끼워 맞추고 있다. 십 대 후반의 두려움과 내재한 아픈 기억을 해결하는 과정... 조금씩 착실하게 억압된 과거를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을 한 편의 스릴러로 보여준다.

  책을 한 권으로 몰아서 편집하면 어땠을까? 짧은 분량이 가장 아쉽다. 그리고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뭔가 끊기는 듯하고... 일반적으로 500~600페이지를 넘기는 소설이 다반사인데, 200~300페이지의 분량은 모자라 보인다. 무엇보다 세 권을 전부 읽어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한 권으로 붙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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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살라 시무카, 최필원 역, [눈처럼 희다], 비채, 2016.

Salla Simukka, [VALKEA KUIN LUMI(AS WHITE AS SNOW)], 2014.

  핀란드의 작가 살라 시무카의 '스노우화이트 트롤로지' 첫 번째 [피처럼 붉다](비채, 2015.)가 동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했다면, 두 번째 [눈처럼 희다]는 그림형제의 동화 [흰 눈과 붉은 장미]를 변주하고 있다. 시리즈를 읽으면서 같은 등장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전작하고 마찬가지로 십 대 후반의 루미키 안데르손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제목의 의미하고는 조금 다르게 6월 초여름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다.

  "내게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이 흑단 창틀처럼 검은 아이가 있었으면."(p.5)

  뒤뜰에 떨어진 피 묻은 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마약 조직과 엮이고, 그들로부터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은 형사를 밝혀낸 사건으로부터 석 달 반이 지났다. 당시의 허벅지 관통상과 동상으로 지친 몸을 겨우 추스른 상태이다. 하지만 저택의 비밀 파티에 잠입하여 조직의 보스 '북극곰'이 일란성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그 뒤를 이어서 북극곰을 상대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각 권의 완결된 구조 외에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가는 단계라고 여겼다. 하지만 기대하고는 다르게 집을 떠나 여행 중이고, 다른 사건에 연루된다.

  뜨거운 날이었지만 여자의 첫 마디가 끝나는 순간 루미키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네 언니인 것 같아.(p.17)

  낯선 곳에서 누군가 다가와 느닷없이 친자매(형제)라는 말을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고, 과거에 여기를 여행하면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돌아갔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태어난 배다른 형제라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거울 앞에서 둘은 서로의 닮은 모습을 찾는다. 루미키는 혹시 모를 혈연의 끊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면 믿지 마라.(p.61)

  누구도 믿지 마라. 그것이 루미키의 좌우명이었다.(p.135)

  매력 있는 외모를 지녔으면서 자신이 예쁜 줄 모르고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짧은 인생의 경험은 몇 가지 규칙을 갖게 했는데, 남을 쉽게 믿지 않는다. 가족 간의 관계는 뭔지 모를 서먹함으로 담을 쌓은 기분이고 그래서 아빠와 엄마에게 별다른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뜻밖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남자친구와의 이별... 뭔가 평탄하지 않은 십 대를 보내는 주인공은 또 다른 혼란에 맞서게 된다. 그녀는 루미키를 자신이 사는 곳으로 초대한다.

  루미키와 블레이즈.

  루미키와 젤렌카.

  루미키와 몇 살 위의 어릴 적 친구. 그들은 '흰 눈'과 '붉은 장미'라는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녀는 문득 그 시절 즐겼던 이야기와 게임을 떠올렸다. 이야기 속에서 마법에 걸려 곰으로 변한 왕자는 소녀들을 구해주었다. 비록 규칙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미키는 게임을 좋아했다. 친구는 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흰 눈'과 '붉은 장미'는 늘 붙어 다녔고, 위험이 닥치면 서로를 구해주었다. 그림자극 속의 두 공주처럼.(p.217)

  신성함과 사악함, 가족 공동체 화이트 패밀리, 컬트 종교, 집단 자살, 탐사보도, 성공의 욕심, 돈과 명예... 저마다의 욕망은 일순간 부딪혀 충돌하고... 그 중심에 루미키가 연관된다. 마치 로드무비처럼 중세의 관광지를 달리는 모습은 아주 역동적이다. 추위를 견디며 아무도 없는 눈밭을 달려야 했던 전작하고는 다르게 이번에는 갈증과 씨름하며 발에 땀이 차도록 뛰고 있다. 그들은 동화 속의 두 공주처럼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십 대 후반으로부터 이십 대 초반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 어덜트 픽션은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는데, 그 나잇대의 고민과 고뇌를 여실히 드러내며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에로틱하다. 길지 않은 분량에 적절한 스릴로 긴장을 유지하고, 극단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범죄 집단과 언론의 유착, 뉴스를 생산하고 왜곡한다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더 깊이 있는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보스의 검거는 실패로 끝나는데, 세 번째 [흑단처럼 검다](비채, 2016.)는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다음 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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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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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역,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현대문학, 2012.

Higashino Keigo, [NAMIYA ZAKKATEN NO KISEKI], 2012.

제7회 중앙공론문예상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기적이 필요한 세상에 꿈같은 이야기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었는데, 한동안 국내 서점가의 인기도서 목록에서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어서 관심을 가진 작품이다. 그만큼 찾는 이가 많았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지금까지의 미스터리와는 조금 다른 성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 하나? 판타지의 옷을 입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여행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작가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논리 구조를 완성하고 있는데, 복선의 해결은 물론 마지막을 읽을 때는 앞과 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따뜻한 감동이 있고...

  제1장 답장은 우유 상자에

  제2장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제3장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제4장 묵도는 비틀스로

  제5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

  1979년부터 2012년까지 33년의 세월...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냉전의 끝을 지나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보내고, 일시에 거품이 빠져 침체의 늪을 걷다가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를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고 지금 이 자리에 섰는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현재는 전부 우울하고 힘겨운 상황이다.

  어떤 고민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잡화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XX 시에 자리한 '나미야 잡화점'. 혼자서는 해결 못할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밤중에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으면 그다음 날에는 가게 주인이 집 뒤편의 우유 상자에 답장을 넣어준다.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72세) 씨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p.24)

  "이 집의 안과 밖이 시간적으로 따로 노는 거 같아.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서로 다른 거야. 집 안에서는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데 바깥에 나와 보면 그게 그냥 한순간이야."(p.48)

  어리숙한 빈집털이 세 친구 아쓰야, 쇼타, 고헤이는 도망 중에 밤을 보내기 위해 폐가에 숨어든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나미야 잡화점... 예전에는 편지 상담으로 유명했는데,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나이 든 주인은 성실히 답장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동네 꼬마들의 장난 어린 글로 시작했지만, 점차 진지한 내용으로 상담은 이루어졌다. 저녁에 가게의 우편함에 고민 편지를 넣으면, 다음 날 아침에 건물 뒤편의 우유 상자에서 답장을 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온 후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과거로부터 온 고민 편지... 지나온 역사를 알기에 투박한 답장을 써서 우유 상자에 넣으니 다시 과거로 전해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의 개념을 뒤집는다. 문을 닫으면 바깥세상의 시간은 멈추고, 과거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의 편지가 온다. 여기에는 어떤 사연과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는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자신의 병은 전혀 개의치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면서요. 그건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합숙이며 해외 원정 같은 훈련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으니까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려면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도 머리로는 충분히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경기에 출전할 선수가 아닌 또 하나의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훈련 따위는 내팽개치고 그 사람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에요.(p.20)

  올림픽 대표 후보자였던 여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직후, 또 다른 사람의 상담 편지가 날아왔다. 그 내용을 보고 아쓰야 일행은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아버지가 하는 생선 가게를 물려받아야 할지 자신이 택한 음악의 길로 나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는 고민은 도무지 고민거리로도 보이지 않았다. 풍족한 집에서 자란 철없는 아들이 그저 제멋대로 하려는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p.324)

  "얘가 아직 뭘 모르는구먼. 물론 이 편지에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담겨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마음과 생각은 별개라는 거야. 어쩌면 이 여자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머리로는 애를 지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 그 결심을 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보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섣불리 아이를 낳으라고 해버리면 완전히 역효과가 나지. 괜히 더 괴롭히는 일이 돼."(p.168)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엄청난 빚을 갚지 못해 나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려고 합니다.

  빚이 너무 많은데 그걸 갚지 못해 회사가 망해버린 것 같아요.

  이달 말일에 아무도 모르게 이 동네를 떠날 예정입니다.

  나는 전학을 시켜줄 거래요.

  하지만 나는 야반도주를 못하게 하고 싶어요. 빚쟁이는 어디까지든 쫓아온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끝도 없이 도망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p.248)

  그렇게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클럽에 나가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열아홉 살이지만 클럽에는 스무 살이라고 말했어요. 체력적으로 힘도 들고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는 하루하루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면에서도 훨씬 더 편해졌고요.

  하지만 두 달이 지나면서 또 고민이 생겼어요. 호스티스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에요. 계속 단순 업무만 할 거라면 굳이 기를 쓰고 회사에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느니 호스티스 일에 전념한다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그게 더 효율적이 아닌가 싶어요.(p.337)

  암에 걸린 남자친구의 간호와 올림픽의 출전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대표 선수, 생선가게의 가업을 잇는 것과 가수로서의 꿈을 키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들, 따로 처자가 있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임산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해야 하는 상황의 소년,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클럽에 나가며 앞날을 고민하는 여자... 이러한 걱정은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절망이 광명으로 바뀌는 기적을 연출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강하게 작용한다.

  지나고 나서는 별일이 아닌 것을 당시에는 두려움으로 고민한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필요한 걱정을 한 적이 있고... 편지를 쓰는 나미야 유지는 상담 편지보다는 본인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스스로 착실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는 마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고민 상담과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적... 나의 미래에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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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
 
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츠키 히로유키, 채숙향 역, [대하의 한 방울], 지식여행, 2012.

Itsuki Hiroyuki, [TAIGA NO ITTEKI], 1999.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일까? 위로할 때 흔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을 한다. 때로는 세상은 아름다워, 너보다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도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여건이 너무나 절박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솟아날 구멍이 있고, 살만한 세상인가? 헬조선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이고, 한 해 동안 미국의 총기 사고 사망자보다 국내의 자살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쩌면 위로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사람은 모두 대하의 한 방울

  창랑(滄浪)의 물이 탁해질 때

  반(反) 상식의 권장

  심야 라디오 이야기

  오닌의 난이 주는 메시지

  후기

  사람은 모두 대하의 한 방울이다. 그것은 작은 하나의 물방울에 불과하지만, 커다란 물의 흐름을 형성하는 한 방울이며, 영원한 시간을 향해 움직이는 리듬의 일부이다... 1999년의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장기간의 불황으로 모든 것이 침체하었다. 한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형성한 물질주의는 대지진으로 무너지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 찾은 종교는 독가스 테러를 일으키며 사회 혼란을 가중한다. 매년 23,000여 명의 자살자가 있고, 구급차 안에서 목숨을 건지거나 구명 치료를 받고 소생한 사람은 이것의 네 배 정도 된다고 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방황하는 시대였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조선 반도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중학교 2학년 때이고, 두 번째는 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후의 일이었다.(p.11)

  내가 자살을 생각하는 지점까지 내몰리면서도 어떻게든 거기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이 원래 엉망진창이고, 잔혹하고, 고통과 비참함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p.37)

  일본의 원로 작가로 활동하는 이츠키 히로유키는 1932년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한반도로 넘어와 논산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평양에서 패전을 맞이하고 소련군의 치하에서 1년간 난민 생활을 하다가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탈출한 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나 보다. 죽음의 그림자는 늘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 또한 두 번이나 죽음을 가까이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얻은 몇 가지 깨달음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 결국 혼자서 죽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른 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기에 기대할 것도, 절망할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천자우(旱天慈雨)라고 갈라지고 바싹 말라버린 대지이기 때문에 쏟아지는 한 방울의 빗물이 감로(甘露)처럼 느껴진다는 뜻을 인용하며, 인생에서 만난 작은 것에 오히려 감동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탁세(濁世)라는 말이 있다. 탁해지고 흐려진 세상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원래는 불교용어에서 온 듯하다.(p.43)

  창랑의 물이 말고 투명할 때는

  내 갓끈을 씻으면 된다

  만일 창랑의 물이 탁할 때는

  내 발이라도 씻으면 된다(p.49)

  내가 사는 시대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른 평가를 하겠지만, 대부분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혼탁한 세상,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도태되는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이다. 탁세의 극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대 중국의 굴원(屈原)과 어부의 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굴원은 유능한 이상가 타입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살고자 한다. 이런 그에게 탁세는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다. 창랑이라는 큰 강가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 무명의 어부가 부른 노래는 좌절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이다.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 된다.

  증명할 수 없는 일은 신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만으로 사는 게 아니고, 시장원리만으로 생활하는 것도 아니다. 증명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을 믿으며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p.59)

  세상의 상식에는 일반적인 인간으로서 맞춰간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개인적인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직감이 '이 약은 먹고 싶지 않다'라고 하면 먹지 않는다. 내면에서 '수술은 받지 않는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다.(p.67)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인류의 개념으로 공통된 인간이 아닌 유일무이한 나라는 존재가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를 일반적인 상식의 틀에 가두지 않고 산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살로 이어져가는 근저에는 자신의 목숨이 그다지 묵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p.78)

  인간은 호흡이 멈추고 동공이 열리고 심장이 정지하면 죽음이 찾아옵니다. 혹은 뇌사에 의해 죽음이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그 순간에 사람은 죽은 것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인간이 태어나는 데 열 달이 걸린다면 죽는 데도 역시 열 달 정도 걸리는 게 아닐까'라고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p.90)

  최근 통감하는 사실은 '인간은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가치를 지금까지처럼 그 인간이 태어나 노력하여 얼마만큼의 일을 이뤄냈는가-그런 덧셈 뺄셈을 통해 인간을 성공한 인생, 적당한 인생, 혹은 실패한 인생으로 구별하는 데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p.93-94)

  무명인 채 일생을 마치고,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이 일생을 마쳤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살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건 두 번째, 세 번째로 생각하면 됩니다. 산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큰일을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후 혼란의 시대를 헤쳐온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p.100)

  정신과 의사였던 프랑클은 인간이 이 극한상태를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동하는 것,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감동 후에 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한 친구와 상담하여 뭔가 매일 하나씩 재밌는 이야기,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서로 그것을 들려주며 웃어보자고 결심합니다.(p.135)

  예전에는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치했기 때문에 인간의 학문과 문화의 체계는 매우 거대하고 통합적인 것, 전 우주적이며 종합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의학의 경우도 그러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의학, 이슬람의 의학, 인도의 의학, 혹은 중국의 의학도 인간을 살아 있는 총체로 파악했습니다.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균형의 혼란이라는 것을 병의 원인으로 생각했던 듯합니다.(p.137)

  예를 들어 인간은 식후에 단것을 먹는다. 그리고 '아아, 맛있었어'라고 그 여운을 즐기면서 멍하니 여유를 즐긴다. 그 시간이 만일 30분이나 40분이라고 치면 이는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에 다 먹고 바로 이를 닦지 않으면 충치가 생긴다는 식의 강박관념을 안고 서둘러 일어나 열심히 이를 닦는다. 한때의 식후 디저트를 즐기는 마음의 여유조차 잃어버린 상태에서 몸의 균형은 결코 잘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치아에도 좋지 않다. 오히려 자연치유력 같은 것에 맡기고 여유 있고 편안한 기분으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게 치아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사고방식입니다.(p.144-145)

  '말로 다 할 수 없다'라든가 '형용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마음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생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말을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느끼고 싶습니다.(p.194-195)

  "자네에게도 언젠가 그런 진짜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날,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유이엔, 그때는 그 외로움에서 도망치려고 한다든가, 그 외로움을 속이려고 해서는 안 되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그 외로움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그런 자신의 마음에 충실히 따르는 게 좋아. 왜냐하면 진짜 외로움은 운명이 자네를 키우려고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지."(p.206)

  일반적으로 기쁨은 인간의 생명력을 높이지만, 슬픔은 반대로 이를 저하시킨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깊이 슬퍼한다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력을 활성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민하거나 괴로운 생각을 하는 것,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 역시 인간의 몸에 중요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울함이나 외로움 속에도 소중한 것이 있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가 있습니다.(p.220)

  NHK 심야 라디오에서 방송한 것을 엮은 부분은, 현실은 마음의 내전을 겪으며 자살하는 시대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살면서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더 가치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해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 인간은 감동과 유머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웃음과 눈물이 있어야 건강하다. 자연치유력에 관해서 말하고, 말의 중요성과 한계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 그리고 기쁨과 슬픔...

  뜻밖에도 물질 우선의 사회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준 한신, 아와지 대지진 이후, 경제적 번영에 대한 불신감이 단숨에 분출되면서 사람들은 내면적인 풍요로움, 즉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시대'라는 말이 막 퍼지기 시작하려던 때, 이번에는 옴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 역시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p.227-228)

  인간의 '정'이나 '비', 르상티망을 경멸하지 않고, 혹은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진정한 지성을 키우는 토양으로서의 감정, 정념이라는 것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p.247)

  저자는 전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난 후유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불교의 세계관을 기초로 하여 고전, 종교, 의학, 철학, 개인적 경험 등을 집약하여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메시지가 있다. 물질주의와 종교성의 양극단에 치우쳐 풍요로운 삶을 살기보다는 피폐하고 억압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 살기보다는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며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 하고... 마음의 내전뿐만 아니라 외부의 삶 또한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여기에 섣부른 위로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라는 답을 준다. 사람은 대하의 한 방울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로 전부를 받아들일 수 없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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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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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김춘미 역,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2016.

Matsuie Masashi, [KAZANNO HUMOTODE], 2012.

제64회 요미우리문학상

  소심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거대한 개념의) 건축에 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실용적인 디자인에는 관심이 있어서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찾아다니기는 하지만, 스스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슬슬 바람이 든 것일까? 나만의 왕국, 나를 위한 공간 연출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오래전에 방영한 일본드라마 <결혼 못 하는 남자>(2006.)에서 아베 히로시는 독신을 즐기는 건축가로 등장하는데, 그가 설계하는 집은 주방이 중심이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온 가족이 하루에 한 번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곳이 주방이기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여기에 공을 들인다.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나는 거실과 서재를 중심으로 하는 집을 갖고 싶다.

  기타아오야마의 주택가,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치기 쉬운 골목 안에 고즈넉이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있다. 콘크리트로 된 단독 건물로, 처마 밑에 자동차 세 대분의 주차 공간이 있다. 매년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기타아오야마 사무소는 반쯤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데 기타아사마에 있는 오래된 별장지, 통칭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사무소 기능이 옮겨가기 때문이다.(p.10-11)

  내가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간 1982년, 선생님은 이미 칠십대 중반에 들어서 있었다. 회사원이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지만, 삼십대는 초짜, 사십대가 되어도 젊은 축인 건축계에서 칠십대 현역은 드물지 않았다. 선생님은 설계뿐 아니라 현장에 자주 나가 의뢰인들과 긴밀하게 상의하는 것을 번거로워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도, 아마도 사무소의 재정 상태도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사무소가 오 년, 십 년 뒤에 어떻게 될지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무엇보다 그것이 궁금했을 것이 틀림없다.(p.12-13)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매번 놀라는 것은 그 소재의 다양성이다. 건축을 소재로, 그것도 회색의 콘크리트 도심이 아닌 초록의 숲이 우거진 대자연의 사이에서 이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지속하는 글을 쓰다니... 기대 이상이다. 1982년, 기타아오야마의 주택가에 있는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조금 특이하다. 칠십대 중반의 무라이 슌스케의 개인 사무소지만, 전후 일본의 건축사에 이름을 올린 실력 있는 사무소이다. 마음만 먹으면 더 크게 키울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규모에 맞춰 일을 선택하고 내키지 않는 일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개인 주택의 설계 의뢰는 절반이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오고 최소 2년 이상을 기다려야 완공된 집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매년 여름이면 두 달 동안 기타아사마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옮겨가 일을 한다.

  "그렇게 큰 집만 설계하다가는 스케일 감각이 이상해지거든."

  ... 같은 시대에 활약한 대부분의 건축가는 미래지향적 도시론이나 문화론을 웅변하면서 잇달아 공공 건축을 낙찰했다. 한편 선생님은 설계 경합을 전제하는 공공 건축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원래가 튀는 건축론을 피력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디어가 다루는 기회도 저절로 적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선생님 건축을 십 년, 이십 년 뒤에 직접 보고 돌아다니면서 무라이 슌스케라는 건축가가 묵묵히 계속해온 일의 비범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무라이 슌스케는 하나하나 만들어내고 있었다.(p.16)

  사무장인 이구치 씨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대해 두 명의 베테랑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근 매일 아침, 입만 열면 그 이야기다.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은 무라이 설계사무소로서는 십 년 만의 지명 경합 참가였다. 경합 안(案)의 기본 플랜을 확정 짓고, 11월 말의 제출 기한에 맞춰 설계안을 마감하는 것이 이번 여름 별장에서의 최대 과제였다.(p.49)

  시대의 변화나 건축가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용도에 따른 가장 적합한 설계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무라이의 철학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변 환경하고 어울리는 건물로 세워진다. 건축학과 4학년인 사카니시 도오루는 이러한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명성을 존경하여 입사를 지원한다. 최근 몇 년간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던 사무소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참여를 예정하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그를 채용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여름 별장에서 갓 들어온 젊은 건축학도와 장인에 버금가는 노건축가가 함께 국립현대도서관을 설계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젊음의 열정과 노년의 노련함은 어떤 조화를 이루게 될까?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기본 설계에서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남으면, 실제 설계 단계에서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니까 정말 이해할 때까지 정성을 다해서 설명하는 게 좋아."

  말이 많지 않은 선생님이 입에 담는 말들은 유창하고 능숙한 말보다 고객의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p.59-60)

  나중에 유키코에게 물었더니 오전오후 합해서 최대 열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보다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선을 계속 긋고 있으면, 어느 지점부터 의식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그 틈을 노려서 실수가 미끄러져 들어오니까 연필이 어떻게 닮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p.64-65)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책을 테마에 따라 배열하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어. 종래의 도서관은 책 선택을 이용자에게 맡기는 수동적 시스템이었지. 책을 빌리러 오는 이용자에게는 찾는 책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니까 국회도서관쯤 되면 국가의 지적, 문화적 재산을 모두 소장하는 것이 최대의 역할이지. 그러나 이렇게 방대한 책이 간행되고 있는 시대에 19세기의 도서관 같은 콘셉트로 하다 보면 사장되는 책이 늘어갈 뿐이야. 이용자들이 이거다, 할 만한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지. 다만, 이런 제안은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납득시키기 어려워. 건물 디자인 그 자체로 설득해야 해."

  무엇보다도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은 늘 선생님 설계의 중심에 있다.(p.119)

  선생님이 중얼거리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같은 공공 건축물은 이용자가 직접 부탁하는 일이 없어. 거기에는 반드시 공무원이 있고 예산이 있지. 위원회 멤버들도 당연히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 그렇지만 공공 건축이라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니까 나라의 위신을 건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 하물며 공무원의 인맥이나 공로의 집대성이라는 이야기는 농담도 되지 않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드니까 이 시설은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지. 또 하나 건축가란 말이야, 역시 후대까지 기억되는 건축물을 만들지 않으면 주어진 역할을 다한 것이 못 돼. 그것은 관공서 시설관리과든 종합건설사든 똑같아. 전화국이든 우체국이든,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건축물이 있어. 건축가가 누군지 모르는 건축물이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 방문한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언제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설계했는가 상상하게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나? 국립현대도서관을 어디에서 수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플랜은 남겠지.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젊은 건축가들이 이쪽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싶네. 건축가가 죽은 뒤에 완성되는 건물도 있으니까 말이지."(p.139-140)

  선생님은 내 의문에 미리 대답하듯이 말했다. "가구는 좀더 뒤에 생각하자는 이구치 군 생각도 이해하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토털 계획이 중요하지.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야. 물론 이구치 군도 그런 거야 알고 말한 거겠지만 말이야. 세부와 전체는 동시에 성립되어가는 거야.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반복해서 사람 모습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본 일이 있나? ... 손가락 같은 것은 놀랄 만큼 빠른 단계에 완성돼. 태아는 그 손가락으로 뺨을 긁기도 하고 열었다 닫았다,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건축에서 세부리는 것은 태아의 손가락과 같아. 주종관계에서의 종이 아니야. 손가락은 태아가 세계에 접촉하는 첨단이지. 손가락으로 세계를 알고, 손가락이 세계를 만들어. 의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야. 의자를 디자인하다 보면 공간 전체가 보이기도 하지."(p.173-174)

  선생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p.180-181)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불탄 들판에, 외롭게 자기 집만 남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봐. 주위 사람들은 많이 죽었어. 이쪽은 인명은 물론 가재도구도 전부 무사해. 이건 말이야, 견디기 어려운 광경이야. 그런 사태를 사람이 견뎌낼 수 있을까? 마지막은 운을 하늘에 맡기고 천우신조 덕이라고 생각하면 간신히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철저하게 방재를 한 주택은 요새지, 주택이 아니야. 살기 편할지 어떨지 의심스러워. 요새에 산다는 건 늘 재난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과 같으니 말이지."(p.202)

  "그게 자네 혼자 결정한 일인가? 왜 보이고 의논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엄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고객이 있고, 기일이 있어. 건축가의 일이란 그런 거야."(p.286)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설계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을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할 수 없어."(p.286-287)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우치다 군은 셔터를 내려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한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 말도 안 되는 것이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고."(p.352-353)

  집은 준공된 순간 건축가의 손을 떠나, 고객과 시간의 흐름에 그 운명을 내맡기게 된다. 손질할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고객이라 해도, 삶의 변화에 따라, 예컨대 가족 수가 늘거나 줄거나 하면 증개축할 필요가 생긴다. 다시 설계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건축가, 혹은 시공사가 원래 구상과는 관계없는 플랜을 세워서 형태를 바꿔버릴 때도 있다. 팔린 뒤에 자비 비슷한 감정과 함께 다시 살기도 하고, 가차 없이 부숴버릴 때도 있다.

  사는 사람이나 주인이 바뀌면 주택에 대한 평가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명건축이라고 불리는 것이라도 견해를 바꿔보면 노후화된, 효율 나쁜, 평가액 제로의 불편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증개축 정도의 변경이라면 언젠가 처음 설계안으로 원상 복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헐어버리면 그 땅에서의 복원은 거의 절망적이다. 고유한 건축의 수명은 그때 끝나버린다.(p.389-390)

  양손으로 끌어안듯이 아크릴 케이스를 살그머니 들어올려 옆에 두었다. 이렇게 정밀하고 견고한 모형은 전에도 후에도 본 일이 없다. 우치다 씨하고 나와 유키코가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모형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팔과 손목, 손바닥과 손가락의 연계가 이상적으로 안정되고(어떤 세밀한 작업에서도 손가락은 1밀리미터도 떨지 않았다), 시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0.1밀리미터의 틈새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들은 그 사실에 아무런 자각이 없던, 틀림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선생님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손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p.414)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p.415)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개념을 잡고 이것을 충분히 설명한 후에 동의를 얻어 설계한다. 이것은 현장에서 건물로 준공되어 비로소 완성되는데, 마치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은 보기만 하는 작품하고 다르게 사람이 들어가 사용하는 것인데, 손과 발이 직접 닿는 곳은 때가 묻어 더러워지고 햇빛과 비와 바람으로 점점 녹이 슬고 손상이 간다. 세월의 흐름으로 보수를 하거나 사용자의 증감으로 증개축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처음 설계와 개념은 관계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가 주인이 바뀌면 집의 가치와 평가가 달라지고 가차 없이 허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수명처럼 건축의 수명이 있는데, 이것을 잔잔하게 설명한다. 과거에도 집을 짓고 사랑을 했다.

  소설에는 어떤 괴짜나 갈등을 유발하는 악인이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개성으로 설계를 한다. 주인공은 특별히 영웅적이지 않고 오히려 평범하다. 단지 열심을 내서 일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계몽적이지도, 성장적이지도 않다. 한 마디로 건전하다고 해야 하나? 커다란 굴곡이나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경합을 준비하지만, 크게 경쟁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서정적이고 싱그럽다. 일본의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라고 하는데, 표고 1,000미터 고산 지대에 있는 여름 별장을 배경으로 이처럼 청명한 소설이 또 있을까? 더위가 사라지는 가을에 읽은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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