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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마쓰이에 마사시, 김춘미 역,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2016.
Matsuie Masashi, [KAZANNO HUMOTODE], 2012.
제64회 요미우리문학상
소심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거대한 개념의) 건축에 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실용적인 디자인에는 관심이 있어서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찾아다니기는 하지만, 스스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슬슬 바람이 든 것일까? 나만의 왕국, 나를 위한 공간 연출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오래전에 방영한 일본드라마 <결혼 못 하는 남자>(2006.)에서 아베 히로시는 독신을 즐기는 건축가로 등장하는데, 그가 설계하는 집은 주방이 중심이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온 가족이 하루에 한 번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곳이 주방이기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여기에 공을 들인다.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나는 거실과 서재를 중심으로 하는 집을 갖고 싶다.
기타아오야마의 주택가,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치기 쉬운 골목 안에 고즈넉이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있다. 콘크리트로 된 단독 건물로, 처마 밑에 자동차 세 대분의 주차 공간이 있다. 매년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기타아오야마 사무소는 반쯤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데 기타아사마에 있는 오래된 별장지, 통칭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사무소 기능이 옮겨가기 때문이다.(p.10-11)
내가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간 1982년, 선생님은 이미 칠십대 중반에 들어서 있었다. 회사원이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지만, 삼십대는 초짜, 사십대가 되어도 젊은 축인 건축계에서 칠십대 현역은 드물지 않았다. 선생님은 설계뿐 아니라 현장에 자주 나가 의뢰인들과 긴밀하게 상의하는 것을 번거로워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도, 아마도 사무소의 재정 상태도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사무소가 오 년, 십 년 뒤에 어떻게 될지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무엇보다 그것이 궁금했을 것이 틀림없다.(p.12-13)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매번 놀라는 것은 그 소재의 다양성이다. 건축을 소재로, 그것도 회색의 콘크리트 도심이 아닌 초록의 숲이 우거진 대자연의 사이에서 이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지속하는 글을 쓰다니... 기대 이상이다. 1982년, 기타아오야마의 주택가에 있는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조금 특이하다. 칠십대 중반의 무라이 슌스케의 개인 사무소지만, 전후 일본의 건축사에 이름을 올린 실력 있는 사무소이다. 마음만 먹으면 더 크게 키울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규모에 맞춰 일을 선택하고 내키지 않는 일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개인 주택의 설계 의뢰는 절반이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오고 최소 2년 이상을 기다려야 완공된 집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매년 여름이면 두 달 동안 기타아사마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옮겨가 일을 한다.
"그렇게 큰 집만 설계하다가는 스케일 감각이 이상해지거든."
... 같은 시대에 활약한 대부분의 건축가는 미래지향적 도시론이나 문화론을 웅변하면서 잇달아 공공 건축을 낙찰했다. 한편 선생님은 설계 경합을 전제하는 공공 건축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원래가 튀는 건축론을 피력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디어가 다루는 기회도 저절로 적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선생님 건축을 십 년, 이십 년 뒤에 직접 보고 돌아다니면서 무라이 슌스케라는 건축가가 묵묵히 계속해온 일의 비범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무라이 슌스케는 하나하나 만들어내고 있었다.(p.16)
사무장인 이구치 씨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대해 두 명의 베테랑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근 매일 아침, 입만 열면 그 이야기다.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은 무라이 설계사무소로서는 십 년 만의 지명 경합 참가였다. 경합 안(案)의 기본 플랜을 확정 짓고, 11월 말의 제출 기한에 맞춰 설계안을 마감하는 것이 이번 여름 별장에서의 최대 과제였다.(p.49)
시대의 변화나 건축가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용도에 따른 가장 적합한 설계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무라이의 철학은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변 환경하고 어울리는 건물로 세워진다. 건축학과 4학년인 사카니시 도오루는 이러한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명성을 존경하여 입사를 지원한다. 최근 몇 년간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던 사무소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참여를 예정하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그를 채용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여름 별장에서 갓 들어온 젊은 건축학도와 장인에 버금가는 노건축가가 함께 국립현대도서관을 설계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젊음의 열정과 노년의 노련함은 어떤 조화를 이루게 될까?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기본 설계에서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남으면, 실제 설계 단계에서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니까 정말 이해할 때까지 정성을 다해서 설명하는 게 좋아."
말이 많지 않은 선생님이 입에 담는 말들은 유창하고 능숙한 말보다 고객의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p.59-60)
나중에 유키코에게 물었더니 오전오후 합해서 최대 열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보다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선을 계속 긋고 있으면, 어느 지점부터 의식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그 틈을 노려서 실수가 미끄러져 들어오니까 연필이 어떻게 닮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p.64-65)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책을 테마에 따라 배열하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어. 종래의 도서관은 책 선택을 이용자에게 맡기는 수동적 시스템이었지. 책을 빌리러 오는 이용자에게는 찾는 책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니까 국회도서관쯤 되면 국가의 지적, 문화적 재산을 모두 소장하는 것이 최대의 역할이지. 그러나 이렇게 방대한 책이 간행되고 있는 시대에 19세기의 도서관 같은 콘셉트로 하다 보면 사장되는 책이 늘어갈 뿐이야. 이용자들이 이거다, 할 만한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지. 다만, 이런 제안은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납득시키기 어려워. 건물 디자인 그 자체로 설득해야 해."
무엇보다도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은 늘 선생님 설계의 중심에 있다.(p.119)
선생님이 중얼거리듯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같은 공공 건축물은 이용자가 직접 부탁하는 일이 없어. 거기에는 반드시 공무원이 있고 예산이 있지. 위원회 멤버들도 당연히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 그렇지만 공공 건축이라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니까 나라의 위신을 건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 하물며 공무원의 인맥이나 공로의 집대성이라는 이야기는 농담도 되지 않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드니까 이 시설은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지. 또 하나 건축가란 말이야, 역시 후대까지 기억되는 건축물을 만들지 않으면 주어진 역할을 다한 것이 못 돼. 그것은 관공서 시설관리과든 종합건설사든 똑같아. 전화국이든 우체국이든,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건축물이 있어. 건축가가 누군지 모르는 건축물이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 방문한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언제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설계했는가 상상하게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나? 국립현대도서관을 어디에서 수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플랜은 남겠지.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젊은 건축가들이 이쪽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싶네. 건축가가 죽은 뒤에 완성되는 건물도 있으니까 말이지."(p.139-140)
선생님은 내 의문에 미리 대답하듯이 말했다. "가구는 좀더 뒤에 생각하자는 이구치 군 생각도 이해하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토털 계획이 중요하지.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야. 물론 이구치 군도 그런 거야 알고 말한 거겠지만 말이야. 세부와 전체는 동시에 성립되어가는 거야.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반복해서 사람 모습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본 일이 있나? ... 손가락 같은 것은 놀랄 만큼 빠른 단계에 완성돼. 태아는 그 손가락으로 뺨을 긁기도 하고 열었다 닫았다,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건축에서 세부리는 것은 태아의 손가락과 같아. 주종관계에서의 종이 아니야. 손가락은 태아가 세계에 접촉하는 첨단이지. 손가락으로 세계를 알고, 손가락이 세계를 만들어. 의자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야. 의자를 디자인하다 보면 공간 전체가 보이기도 하지."(p.173-174)
선생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p.180-181)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불탄 들판에, 외롭게 자기 집만 남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봐. 주위 사람들은 많이 죽었어. 이쪽은 인명은 물론 가재도구도 전부 무사해. 이건 말이야, 견디기 어려운 광경이야. 그런 사태를 사람이 견뎌낼 수 있을까? 마지막은 운을 하늘에 맡기고 천우신조 덕이라고 생각하면 간신히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철저하게 방재를 한 주택은 요새지, 주택이 아니야. 살기 편할지 어떨지 의심스러워. 요새에 산다는 건 늘 재난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과 같으니 말이지."(p.202)
"그게 자네 혼자 결정한 일인가? 왜 보이고 의논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엄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고객이 있고, 기일이 있어. 건축가의 일이란 그런 거야."(p.286)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설계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을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할 수 없어."(p.286-287)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우치다 군은 셔터를 내려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한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 말도 안 되는 것이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고."(p.352-353)
집은 준공된 순간 건축가의 손을 떠나, 고객과 시간의 흐름에 그 운명을 내맡기게 된다. 손질할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고객이라 해도, 삶의 변화에 따라, 예컨대 가족 수가 늘거나 줄거나 하면 증개축할 필요가 생긴다. 다시 설계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건축가, 혹은 시공사가 원래 구상과는 관계없는 플랜을 세워서 형태를 바꿔버릴 때도 있다. 팔린 뒤에 자비 비슷한 감정과 함께 다시 살기도 하고, 가차 없이 부숴버릴 때도 있다.
사는 사람이나 주인이 바뀌면 주택에 대한 평가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명건축이라고 불리는 것이라도 견해를 바꿔보면 노후화된, 효율 나쁜, 평가액 제로의 불편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증개축 정도의 변경이라면 언젠가 처음 설계안으로 원상 복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헐어버리면 그 땅에서의 복원은 거의 절망적이다. 고유한 건축의 수명은 그때 끝나버린다.(p.389-390)
양손으로 끌어안듯이 아크릴 케이스를 살그머니 들어올려 옆에 두었다. 이렇게 정밀하고 견고한 모형은 전에도 후에도 본 일이 없다. 우치다 씨하고 나와 유키코가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모형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팔과 손목, 손바닥과 손가락의 연계가 이상적으로 안정되고(어떤 세밀한 작업에서도 손가락은 1밀리미터도 떨지 않았다), 시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0.1밀리미터의 틈새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들은 그 사실에 아무런 자각이 없던, 틀림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선생님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손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p.414)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p.415)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개념을 잡고 이것을 충분히 설명한 후에 동의를 얻어 설계한다. 이것은 현장에서 건물로 준공되어 비로소 완성되는데, 마치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은 보기만 하는 작품하고 다르게 사람이 들어가 사용하는 것인데, 손과 발이 직접 닿는 곳은 때가 묻어 더러워지고 햇빛과 비와 바람으로 점점 녹이 슬고 손상이 간다. 세월의 흐름으로 보수를 하거나 사용자의 증감으로 증개축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처음 설계와 개념은 관계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가 주인이 바뀌면 집의 가치와 평가가 달라지고 가차 없이 허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수명처럼 건축의 수명이 있는데, 이것을 잔잔하게 설명한다. 과거에도 집을 짓고 사랑을 했다.
소설에는 어떤 괴짜나 갈등을 유발하는 악인이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개성으로 설계를 한다. 주인공은 특별히 영웅적이지 않고 오히려 평범하다. 단지 열심을 내서 일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계몽적이지도, 성장적이지도 않다. 한 마디로 건전하다고 해야 하나? 커다란 굴곡이나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경합을 준비하지만, 크게 경쟁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서정적이고 싱그럽다. 일본의 원제는 [화산 자락에서]라고 하는데, 표고 1,000미터 고산 지대에 있는 여름 별장을 배경으로 이처럼 청명한 소설이 또 있을까? 더위가 사라지는 가을에 읽은 최고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