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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ㅣ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살라 시무카, 최필원 역, [눈처럼 희다], 비채, 2016.
Salla Simukka, [VALKEA KUIN LUMI(AS WHITE AS SNOW)], 2014.
핀란드의 작가 살라 시무카의 '스노우화이트 트롤로지' 첫 번째 [피처럼 붉다](비채, 2015.)가 동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했다면, 두 번째 [눈처럼 희다]는 그림형제의 동화 [흰 눈과 붉은 장미]를 변주하고 있다. 시리즈를 읽으면서 같은 등장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전작하고 마찬가지로 십 대 후반의 루미키 안데르손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제목의 의미하고는 조금 다르게 6월 초여름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다.
"내게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이 흑단 창틀처럼 검은 아이가 있었으면."(p.5)
뒤뜰에 떨어진 피 묻은 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마약 조직과 엮이고, 그들로부터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은 형사를 밝혀낸 사건으로부터 석 달 반이 지났다. 당시의 허벅지 관통상과 동상으로 지친 몸을 겨우 추스른 상태이다. 하지만 저택의 비밀 파티에 잠입하여 조직의 보스 '북극곰'이 일란성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그 뒤를 이어서 북극곰을 상대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각 권의 완결된 구조 외에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가는 단계라고 여겼다. 하지만 기대하고는 다르게 집을 떠나 여행 중이고, 다른 사건에 연루된다.
뜨거운 날이었지만 여자의 첫 마디가 끝나는 순간 루미키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네 언니인 것 같아.(p.17)
낯선 곳에서 누군가 다가와 느닷없이 친자매(형제)라는 말을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고, 과거에 여기를 여행하면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돌아갔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태어난 배다른 형제라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거울 앞에서 둘은 서로의 닮은 모습을 찾는다. 루미키는 혹시 모를 혈연의 끊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면 믿지 마라.(p.61)
누구도 믿지 마라. 그것이 루미키의 좌우명이었다.(p.135)
매력 있는 외모를 지녔으면서 자신이 예쁜 줄 모르고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짧은 인생의 경험은 몇 가지 규칙을 갖게 했는데, 남을 쉽게 믿지 않는다. 가족 간의 관계는 뭔지 모를 서먹함으로 담을 쌓은 기분이고 그래서 아빠와 엄마에게 별다른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뜻밖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남자친구와의 이별... 뭔가 평탄하지 않은 십 대를 보내는 주인공은 또 다른 혼란에 맞서게 된다. 그녀는 루미키를 자신이 사는 곳으로 초대한다.
루미키와 블레이즈.
루미키와 젤렌카.
루미키와 몇 살 위의 어릴 적 친구. 그들은 '흰 눈'과 '붉은 장미'라는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녀는 문득 그 시절 즐겼던 이야기와 게임을 떠올렸다. 이야기 속에서 마법에 걸려 곰으로 변한 왕자는 소녀들을 구해주었다. 비록 규칙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미키는 게임을 좋아했다. 친구는 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흰 눈'과 '붉은 장미'는 늘 붙어 다녔고, 위험이 닥치면 서로를 구해주었다. 그림자극 속의 두 공주처럼.(p.217)
신성함과 사악함, 가족 공동체 화이트 패밀리, 컬트 종교, 집단 자살, 탐사보도, 성공의 욕심, 돈과 명예... 저마다의 욕망은 일순간 부딪혀 충돌하고... 그 중심에 루미키가 연관된다. 마치 로드무비처럼 중세의 관광지를 달리는 모습은 아주 역동적이다. 추위를 견디며 아무도 없는 눈밭을 달려야 했던 전작하고는 다르게 이번에는 갈증과 씨름하며 발에 땀이 차도록 뛰고 있다. 그들은 동화 속의 두 공주처럼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십 대 후반으로부터 이십 대 초반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 어덜트 픽션은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는데, 그 나잇대의 고민과 고뇌를 여실히 드러내며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에로틱하다. 길지 않은 분량에 적절한 스릴로 긴장을 유지하고, 극단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범죄 집단과 언론의 유착, 뉴스를 생산하고 왜곡한다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더 깊이 있는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보스의 검거는 실패로 끝나는데, 세 번째 [흑단처럼 검다](비채, 2016.)는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다음 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