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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2월
평점 :
이노우에 마기, 이연승 역,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블루홀6, 2024.
Inoue Magi, [ARIADNE NO KOE], 2023.
불가능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순간 거기까지라는 한계가 정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노우에 마기의 소설 [아리아드네의 목소리]는 스마트 지하 도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고립된 인명을 구조하는 재난 미스터리이다. 여기에는 최신의 드론 기술을 활용하는데, 지하에 홀로 남은 여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 장애를 겪고 있다.
- 조만간이 대체 언제야? 뭐 됐어. 원래 인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니까.(p.11)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에 해안가의 동굴에서 사고로 형을 잃는다. 사고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라는 형이 남긴 말을 신념으로 여기고 산다. 그 때문일까? 그는 탈랄리아라는 벤처 기업에서 일하는데, 시설물 점검과 재난 구조용 드론을 개발하는 업체이다.
그리고 저는 제가 특별히 소수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처럼 시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농맹인'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이 일본 전역에 무려 2만 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덧붙이자면 시청각 장애를 비롯해 신체 어딘가에 장애가 있는 '신체장애인'은 전국에 무려 4백만 명 이상! 놀랍죠? 일본 인구가 약 1억 2천만 명인데 그중 3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신체에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p.48)
WANOKUNI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지하 5층의 스마트 시티가 만들어진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구상으로 지상층은 주거지역, 지하 1층은 상업층, 지하 2층은 사무층, 지하 3층은 생산층, 지하 4층은 인프라층, 지하 5층은 교통층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계획도시이다. 도시 개막 행사에 삼중 장애를 가진 나카가와 히로미가 초대된다. 레이와의 헬렌 켈러라고 불리는 그녀는 장애인의 희망이고, 불가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말한다.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리아드네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는 그 유명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할 때 자신을 흠모하던 크레타섬의 공주 아리아드네에게 받은 실타래를 써서 괴물이 사는 미궁에서 탈출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을 '아리아드네의 실'이라 부르는 것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p.90-91)
도시 개막 행사를 마쳤을 때 거대 지진이 발생한다. 스마트 시티의 건물이 무너지고 지하 도시가 파괴된다. 지하 1층과 2층은 화재로 불이 번지고, 지하 5층은 지하수로 침수되고 있다. 아래는 큰 물, 위에는 큰 불이 덮치는 상황에서 지하 5층에 홀로 남은 생존자 나카가와 히로미를 지하 3층에 있는 비상 대피소로 피신시켜야 한다. 여기에 재난 구조용 드론인 아리아드네를 투입하기로 한다.
-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죠. 그래서 전 '나한테는 불가능해'라고 생각되면 곧장 그 일을 포기하고 조금 더 제가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찾아요. 그쪽으로 목표를 전환하는 거예요.(p.250)
- '불가능'이라는 건 말이지. 일종의 신호야. '이 이상 더 하면 위험하다'라는 의미의, 뇌와 몸이 보내는 신호. 물론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 그 신호가 정말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너무 신중하게 행동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거나,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나머지 무모한 짓을 벌일 수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불가능한지, 아닌지'의 선을 스스로 긋는 거야. 너만의 감각으로, 너만의 의지로 선을 긋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야. 왜냐하면 그 선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 네가 그때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고 포기한 건 그 자체로 옳은 일이야.(p.254-255)
화재와 침수로부터 남은 6시간 내에 드론의 충전과 전파 통신을 확보하고, 캄캄한 지하 도시에 산적한 장애물을 뚫고, 생존자를 찾아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대피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해야 하고... 긴박감과 긴장감을 그리고 기발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나카가와 히로미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움직임을 보여서 장애를 의심받기도 하고, 드론이 추락해서 기체를 분실하는 위기가 오기도 한다. SF와 미스터리의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과거의 사건으로 불가능은 없다는 강박적인 삶에서 벗어나 불가능은 일종의 위험 신호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다는 메시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