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의 망가지지 않은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내 안의 망가지지 않은/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양윤옥 옮김/ 소담출판사/ p.360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 무난한 성격으로 별 어려움없이 살아 온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라던지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고 아무리 과거를 되짚어 봐도 언제나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나오토는 엘리트 출판사의 편집자이면서 3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귀는 아주 나쁜 남자이다. 어린 아들이 있는 연상의 술집 마담인 도모미와 좋은 집안에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면서 유능하기까지한 에리코, 변태적인 성적 갈등을 해소 해 주는 댓가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받을 수 있는 오니시 부인까지.. 그러나 나오토는 3명의 여자와 사귀면서도 어느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거나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2살 때, 어머니에게 버림 받을 뻔한 경험 때문에 다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슬픈 과거를 가진 나오토는 심지어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의 전문을 외우고 있을 정도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보이거나 마음을 주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지만 오로지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듯 하다.
[내 안에 망가지지 않은] 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 주인공에게 에피소드가 많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나타나 주인공의 꽉 막힌 마음을 열지도 못한다.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절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나오토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은 커녕 관심도 갖지 않는 나오토. 자신의 기억만을 믿고 자신의 말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오토. 자꾸만 주인공들에게 손을 내밀어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이들을 따듯한 양지로 끌어 내고 싶어진다.
주인공처럼 모든 것이 엉망이고, 희망도, 재미도 없이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에 떨어져 있다면 자살을 결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오토는 자살을 스스로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을 죽인 것이라 해석한다. 타인을 죽이듯 자신을 살해한 거라고..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그건 아마도 나에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나 자격이 없 듯,
나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나 자격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서야 표지가 눈에 띈다. 나 안의 작은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지금까지 읽었던 일본 작품은 빠른 속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으나 이 작품은 읽는 내내, 그리고 읽은 후에도 가슴에 풀리지 않은 미련이 남아 있다. 내가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했는지... 시간이 흐른 뒤 꼭 다시 한번 읽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