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0
진 웹스터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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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를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다섯 번쯤 읽었다는 것은 기억할 수 있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이라고 말할 순 없겠네요. 출판사가 달랐으니까요. 이번에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인디고 출판이랍니다. 예쁜 일러스트가 담겨 있어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답니다.



18세까지 고아원에서 자란 주디는 고아원을 후원하는 평의원 중 한명의 눈에 띄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답니다. 대학 등록금과 용돈을 주는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의 재능을 살린 작가가 되어야 하지요. 대신 조건이 있답니다. 자신을 지원해 주는 평의원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 것. 그리고 매달 자신의 근황과 공부 내용을 편지로 쓸 것.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조건이지요. 평생 고아원에 갖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살린 공부도 할 수 있고, 자유로운 세상도 알아 갈 수 있으니까요. 마음의 빚과 물질적인 빚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구요.






주디가 자신의 후원자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키가 큰 남자라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편지마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을 쓰지요. 주디는 자신이 사귄 친구의 이야기, 학습 내용, 키다리 아저씨가 주신 용돈으로 무엇을 구입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솔직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띄운답니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워질 때도, 아플 때도, 몹시 기쁘고 행복할 때도... 주디에게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을 돌봐 주고,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 주디가 의지할 단 한사람.



주디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평범하지만 다복한 집안의 샐리와 부유하고 가문을 중시하는 집안의 줄리아를 친구로 사귀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많은 삶들을 공유하게 된 답니다.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초라하고 가난한 고아원 생활을 했지만, 현재의 모습에 매우 만족하고 행복해 한답니다. 자신이 갖은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행복해 할 줄 모르는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더욱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던 중 줄리아의 삼촌, 저비스를 알게 됩니다. 함께 방을 쓰는 줄리아와 샐리, 주디를 위해 초콜릿, 과자도 보내 주고, 카페도 데려가 주지요. 자신의 후원자가 소개 해 준 농장에서 방학을 보낼 때에도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졸업을 하고 농장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저비스의 청혼을 받게 되지만 주디는 거절하지요. 그 이유는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저비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지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저비스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답니다. 그 애절한 마음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통해 알리고 상담을 할 정도였어요.




마침내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왔답니다. 그 곳에 나와 있는 키다리 아저씨. 그 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누구일까요? 상상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읽을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지요. 자신을 한없이 믿고 후원해 주시는 키다리 아저씨. 영원히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점점 동화적이고 순수한 것을 찾게 됩니다. 무슨 어른이 동화처럼 쉬운 책을 읽냐? 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는 느낌, 감동. 그건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것이랍니다. 어렸을 때 느낀 [키다리 아저씨]는 '나에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없이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순수함,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주디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미래를 상상하고, 노력하지요. 현재에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미래에는 더욱 행복해질 주디가 기대 됩니다. 이 것이 제가 동화책을 읽는 이유랍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주디가 보내는 편지를 읽던 키다리 아저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자신을 밝히고 싶어도 밝히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주디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을까요? ^^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동화책의 세계로 빠져 보세요. 매일 매일이 행복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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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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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대여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번에 세 권씩 빌려다 밤을 새워 읽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등교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 갔었다. 자습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다 들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학생이 읽기에도 참 감동적이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감동을 느끼고 싶어 작년에 <아리랑>을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이번에도 역시 눈물 글썽이며 밤을 새워 읽었다. <태백산맥>은 올해 읽어야지 다짐했다. 그 후, <한강>을 읽어야지 계획하고 모두 구입해 놓았다. 그 만큼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이 좋았고, 감동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얼마 전, 조정래 작가님의 <황토>가 재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두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읽게 되었다. 중편이었던 <황토>가 37년만에 장편소설로 태어났다니 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그 만큼 좋은 작품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야기는 주인공 점례의 작은 아들 동익이의 겨울산 등반 조난 사고 소식으로 시작된다. 점례는 무서운 경찰서에 혼자 가기가 두려워 큰 아들 태순에게 전화를 하지만, 태순은 "피는 못 속여요. 인디안을 개 잡듯 한 그 살인자들의 피가 동해서 그 자식이 그따위예요"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일본인의 피가 흐르면서 그런 말을 서슴치 않는 아들에게 모욕감을 느낀 점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전개 된다.




 일제 말기에 점례는 억울하게 잡혀간 부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순사의 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들 태순을 낳게 된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 순사는 점례와 태순을 버리고 모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때 점례의 나이 열 아홉. 홀로 된 점례의 엄마는 태순은 자신이 키우기로 하고 멀리 사는 이모를 대동해 점례를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게 된다. 점례를 이뻐하고 살뜰히 챙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농민을 해방시키겠다며 인민군이 되어 나타났다.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어지자 곧 돌아오겠다며 두 딸과 점례를 두고 야반도주를 한다. 점례는 공산당이 된 남편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가고, 젖 먹이 세진과 모진 고초를 겪다 풀려 나지만 결국 어린 딸을 잃고 만다. 그 후 자신을 걱정해 주고, 어린 딸을 병원에 데려다 주던 선의를 가장한 미군에게 겁탈 당하여 결국 동익을 낳게 된다.




 일제 시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여자가 아닌 어머니로 살아야 했던 점례는 세 남자, 세 나라에 버림을 받으면서도 결국 어머니였기에 그 어려움과 역경을 다 이겨 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의 민족이 어떻게 가정을, 이 나라를 지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편과도 같다고 생각 된다. 왜 나라를 빼았겼는지도 모르고, 종놈살이를 하면서 나라 다스린 남자들은 따로 있다는 말을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는 세상에서,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3·8이남은 미군에게, 3·8이북은 소련군에게 점령 당해 우리 민족이 반토막 난 채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녀는 아니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만 똑바로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다거나 신세가 박복하다는 비탄이나 탄식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어서 당하게 된 일었기 때문이다.




 점례는 딸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긴다. 내가 남긴 재산 중에서 세연이 네가 법에 있는 장남 몫을 차지하고, 태순이하고 동익이는 시집간 큰딸 · 작은딸한테 가는 것만 주면 된다. 라고... 그 다음 줄부터는 자신이 살아온 평생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쓰기로 했다. 그녀의 일기가, 그녀의 유언이 우리의 역사로 남겨질 것이다.




- 눈을 크게 뜨고 이 세상을 봐. 넌 너일 뿐이야. 이 세상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천박함이고 야비함일 뿐이야. 넌 누가 뭐라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면서 꿋꿋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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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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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자음과모음

올해의 독서 계획 중 하나는 한국 작가의 소설 읽기이다. 각 출판사가 선정한 수상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이 마음에 와 닿으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사이드북으로 끼워 읽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제 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박솔뫼의 「이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읽어서인지, 오랫만에 나선 서울 나들이에 들떠서인지 이 소설의 초반부는 참 어색하고 낯설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중심인물은 ""이다. 노을을 줄여 "을"이라 불리우는 을은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말로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관심 갖고 질문하거나 웃고 떠드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면서 공장의 소음 안에서는 평온함을 느끼는 묘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조용히 들어 주고, 적당히 맞장구 치며, 억지로 캐고 들지 않는 민주를 무한 신뢰하며 의지한다.





- 을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싫었지만 도시는 언제나 좋았다. 흰색과 검은색의 빽빽함. 건물들은 침묵을 지키고 자동차들은 예측할 수 있는 소리를 냈다. 을은 도시가 갖고 있는 기계적임에서 안정을 찾았다. p35-





을은 이국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민주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을의 부름을 받고 고국을 떠나 을이 머무는 호텔에 함께 장기 투숙하고 있다. 이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는 호텔의 하우스키퍼로 일하는 씨안은 여행 중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연히 머무른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의미없는 반복된 일상을 보낸다. 또 다른 장기 투숙자인 프래니와 주이는 사촌 자매이자 연인인 자신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국을 떠나 이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 편견없이, 편하게 대해 주는 씨안과 함께...





어느 날, 프래니와 주이 사이에 제 3의 인물이 나타나게 되고, 프래니는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그 일로 인해 무미 건조하고, 아무 걱정도, 목적도 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프래니와 주이 사이에 제 3의 인물인 손님이, 바원과 윤 사이에 과거의 민주가, 을과 민주 사이에 씨안이, 씨안이 자주 보던 영화속에서는 새로이 등장하는 주인공이 각각의 평화로운 관계 속에 파괴범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둘이 있을 때는 원할하게 지나가던 일상이, 대화가, 관계가 무참하게 깨어지는 것이다.





-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씨안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언젠가는 학교로, 집으로, 방으로 도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되도록 늦어지기를 바랐다. …… 내가 이곳을 떠날 그 언젠가가 일주일 미뤄졌으면 좋겠어. 그 일주일이 지나면 일주일을 더 연장시킬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언젠가를 늦춰난가고 싶어. 원하는 것을 입 밖에 내자 그것은 더욱 간절해졌다. p90-





작가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커플들이 제 3의 인물의 침입에 의해 깨어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무얼 밝히고자 한 것일까? 제 3의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둘의 모습이 엄청 행복하다거나 딱히 만족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저 잔잔할 뿐. 평범한 사람을 지칭하는 갑. 을. 병. 정처럼 "을"이라는 인물은 우리 사는 세계의 평범한 한 인물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가는대로 가고, 하고자 하는대로 행동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 그래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영원히 갖혀 있고 싶은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200 페이지의 얇은 이 책은 특별한 사건없이 잔잔하게 흘러 가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읽으면서도 갸우뚱, 책을 덮고 나서도 갸우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씩 머릿속에 떠 오르는 것들이 있다. 아~ 그래서 을이 그런 행동을 했구나. 이래서 씨안이 그런 행동을 했구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이 나를 살펴봐 주길 원하는 마음 한편에는 나에게 무관심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데나 갈 수 있잖아.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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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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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한국] 제리/ 김혜나/ 민음사 ★★★★

 

 

 분홍빛 표지에 풍선과 여자의 얼굴. 몽환적인 <제리>의 표지를 보고 난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저 표지엔 무언가 담겨 있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이 있을 거야. 위시리스트에 적어 두고, 언젠가 꼭 읽어야지 했다. 하지만 먼저 읽은 지인들의 평은 그닥 좋지 않았다. 검색을 해 보아도 읽는 내내 답답했다는 말 뿐.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럴까? 호기심을 더 자극시킨다.

 

 주인공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뚜렷한 목표는 없다.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학교에 갔다가 친구들과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 오는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처음 만난 이성과 쉽게 섹스를 할 수도 있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1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는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 감정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술과 섹스 뿐이다. 그러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로 나온 제리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그녀의 생각과 일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제리를 자꾸 만나고 싶어지는 것 뿐.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애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서 태어난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무리 죽어라 달려도 절대로 그런 애들을 뛰어 넘지 못해. - p.100


 

 <제리>를 읽는 내내 나도 다른 이들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답답함의 의미가 약간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느낀 답답함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는데 달라진 바는 없다. 자유는 있으되 목표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 전쟁 속에 살고 있으며, 수학 능력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면접 시험 준비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청춘이 있는 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 지를 모르는 청춘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삶에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그냥 그 순간을 지나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청춘에게 누군가 나서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무수한 인간들 중 어떠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숨기고 싶은 삶의 한 부분을 여실히 까발려 놓은 것 같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 아픈 사람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름 없이 "나"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 너무 아프다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렇게 열심히 하지않아도 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괜찮다고, 한번도 말해 주지 않았다. - p.216


 독서 모임을 통해 다른 이들과 이 책의 느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느낀 점과 다른 이들이 느낀 점은 당연히 다를 것이고, 그 차이에 대해 인정해야 함을 알게 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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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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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강요하지 않은 글쓰기는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 쓰기말이다. 그래서 일기 쓰는 것도, 편지 쓰는 것도 참 좋아했더랫다.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고, 혹은 주고 받을 수 있는 행위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달까?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제목은 부정적이지만, '편지'라는 단어만으로 내 마음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하다. 편지와 책, 도서관이라는 단어에 미치는 나 아닌가? 겉표지를 펼쳐 작가의 소개를 본다. 하~ 광주 사람이네... 무조건 신뢰. 내가 이렇다. 이렇게 단순한 나이다. 좋으면 그냥 좋다.

 

 주인공 지훈은 서른 초반 쯤 되었나 보다. 과거 안내견이었던 눈먼 개와 함께 "편지여행"중이다. 발이 이끄는 곳 어디든 정처없이 떠도는 여행을 장장 3년 동안 하는 중이다. 이유, 목적없이 떠 도는 이 여행에는 규칙이 있다. 아니 규칙이라기 보다는 몸에 벤 습관이 있다. 하루치의 여행을 마치고 모텔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편지를 쓰는 것이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미뤄두고 가족에게든, 그날 만났던 누구에게든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는 여행 중 만났던 어떤 이에게도 이름은 묻지 않는다. 다만 주소를 물을 뿐이다. 주소를 알려 주는 이에게 일련 번호를 붙여 준다. 여행을 하며 만난 200번째 사람이라는 뜻에서 200번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은 무한할 것이고, 번호도 끝이 없으니 그걸로 영원하다는 뜻이다. 일상적인 삶을 사는 나에겐 오히려 이름이 외우기 쉽고, 편하다는 생각에 뭐, 그리 어렵게 숫자로 외울까? 그 번호가 누구인지 기억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훈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참 좋은 아이였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느꼈지만 무언가와, 누군가와 인연이 끝맺음 되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집을 떠나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자이고, 여행이란 원래가 낯선 사람의 접근을 쉽게 용인하기 위한 행동이고, 낯선 사람에게 쉽게 접근해야만 의미가 있다면 있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이란 게 풍경이나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사람 다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p.25

 집에 있으면 속이 뒤집히는 병이 생겨 떠나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로 옆에 사는 친구에게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한다. 편지가 왔느냐고.. 자신이 쓴 편지에 답장이 오는 날 집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러면 자신의 병도 고쳐지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발이 이끄는 곳 어디든 하루치만큼 여행을 하고, 그 여행 속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잠자기 전 편지를 쓰고, 도시 곳곳의 모텔방에서 눈 먼 개와 하루의 삶을 마무리 하는 인생... 주인공은 왜 이 고단한 여행을 지속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기차를 타고 좀 멀리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여행하면서 터득한 건, 목적지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목적이 없으면 기대도 없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날 수 잇는 것이야 말로 자유다. -p.81

 지훈은 눈 먼 개에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숫자들.. 첫사랑을 잊지 못해 기차에 머무는 109도 있고,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32도 있고, 친구를 밀어 식물인간으로 만든 239, 길거리에서 자신의 책을 파는 작가 751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며, 연필을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내는 행위는 자신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희망을 주는 듯 하다.


우체통 앞에 서서 편지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린다. 꺼내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한번 봉인한 편지는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 밤새 쓴 편지를 아침에 확인하는건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다.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잘못처럼 삭제하고 싶은 문장 한두개쯤은 반드시 발견된다. 너무 감정에 충실해서 혹은 용기가 충만해서 생긴 증상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밤에라도 용기를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평생 비겁하게 살야야 할 것이다. 투입구로 편지를 집어 넣는다. 편지가 텅 빈 바닥으로 텅, 안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익숙한 소리다. -p.36

 지훈은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눈 먼 개의 원래 주인이던 조부의 이야기, 말 더듬이였던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직업까지 정해 준 엄마,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 중 만난 무수히 많은 숫자들의 삶 이야기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뒤죽박죽 정신이 없을 것 같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매끄럽게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많은 이야기가 이 작은 책 안에 담겨 있을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읽는 내내 이 작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음에 책을 읽을 당신이 내 리뷰를 보고 다 알아버리면 싱거울 것 같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쯔음 당신은 눈물을 흘리며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지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가의 대단함에 대해서도. 이 소설이 왜 작가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과연 지훈은 편지를 한 통도 받지 못했을까? 집으로 돌아 가기는 할까?

'과거는 현재를 위해 항상 봉헌되고, 현재는 미래를 위해 항상 희생된다.' 그 말대로 희생된 나의 오늘은 나의 내일을 눈부시게 빛나게 해 줄 것이다.-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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