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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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강요하지 않은 글쓰기는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 쓰기말이다. 그래서 일기 쓰는 것도, 편지 쓰는 것도 참 좋아했더랫다.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고, 혹은 주고 받을 수 있는 행위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달까?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제목은 부정적이지만, '편지'라는 단어만으로 내 마음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하다. 편지와 책, 도서관이라는 단어에 미치는 나 아닌가? 겉표지를 펼쳐 작가의 소개를 본다. 하~ 광주 사람이네... 무조건 신뢰. 내가 이렇다. 이렇게 단순한 나이다. 좋으면 그냥 좋다.

 

 주인공 지훈은 서른 초반 쯤 되었나 보다. 과거 안내견이었던 눈먼 개와 함께 "편지여행"중이다. 발이 이끄는 곳 어디든 정처없이 떠도는 여행을 장장 3년 동안 하는 중이다. 이유, 목적없이 떠 도는 이 여행에는 규칙이 있다. 아니 규칙이라기 보다는 몸에 벤 습관이 있다. 하루치의 여행을 마치고 모텔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편지를 쓰는 것이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미뤄두고 가족에게든, 그날 만났던 누구에게든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는 여행 중 만났던 어떤 이에게도 이름은 묻지 않는다. 다만 주소를 물을 뿐이다. 주소를 알려 주는 이에게 일련 번호를 붙여 준다. 여행을 하며 만난 200번째 사람이라는 뜻에서 200번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은 무한할 것이고, 번호도 끝이 없으니 그걸로 영원하다는 뜻이다. 일상적인 삶을 사는 나에겐 오히려 이름이 외우기 쉽고, 편하다는 생각에 뭐, 그리 어렵게 숫자로 외울까? 그 번호가 누구인지 기억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훈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참 좋은 아이였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느꼈지만 무언가와, 누군가와 인연이 끝맺음 되는 것이 죽도록 싫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집을 떠나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자이고, 여행이란 원래가 낯선 사람의 접근을 쉽게 용인하기 위한 행동이고, 낯선 사람에게 쉽게 접근해야만 의미가 있다면 있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이란 게 풍경이나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사람 다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p.25

 집에 있으면 속이 뒤집히는 병이 생겨 떠나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로 옆에 사는 친구에게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한다. 편지가 왔느냐고.. 자신이 쓴 편지에 답장이 오는 날 집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러면 자신의 병도 고쳐지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발이 이끄는 곳 어디든 하루치만큼 여행을 하고, 그 여행 속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잠자기 전 편지를 쓰고, 도시 곳곳의 모텔방에서 눈 먼 개와 하루의 삶을 마무리 하는 인생... 주인공은 왜 이 고단한 여행을 지속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기차를 타고 좀 멀리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여행하면서 터득한 건, 목적지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목적이 없으면 기대도 없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날 수 잇는 것이야 말로 자유다. -p.81

 지훈은 눈 먼 개에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숫자들.. 첫사랑을 잊지 못해 기차에 머무는 109도 있고,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32도 있고, 친구를 밀어 식물인간으로 만든 239, 길거리에서 자신의 책을 파는 작가 751도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며, 연필을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내는 행위는 자신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희망을 주는 듯 하다.


우체통 앞에 서서 편지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린다. 꺼내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한번 봉인한 편지는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 밤새 쓴 편지를 아침에 확인하는건 자기를 부정하는 행위다.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잘못처럼 삭제하고 싶은 문장 한두개쯤은 반드시 발견된다. 너무 감정에 충실해서 혹은 용기가 충만해서 생긴 증상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밤에라도 용기를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평생 비겁하게 살야야 할 것이다. 투입구로 편지를 집어 넣는다. 편지가 텅 빈 바닥으로 텅, 안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익숙한 소리다. -p.36

 지훈은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눈 먼 개의 원래 주인이던 조부의 이야기, 말 더듬이였던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직업까지 정해 준 엄마,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 중 만난 무수히 많은 숫자들의 삶 이야기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뒤죽박죽 정신이 없을 것 같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매끄럽게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많은 이야기가 이 작은 책 안에 담겨 있을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읽는 내내 이 작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음에 책을 읽을 당신이 내 리뷰를 보고 다 알아버리면 싱거울 것 같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쯔음 당신은 눈물을 흘리며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지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가의 대단함에 대해서도. 이 소설이 왜 작가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과연 지훈은 편지를 한 통도 받지 못했을까? 집으로 돌아 가기는 할까?

'과거는 현재를 위해 항상 봉헌되고, 현재는 미래를 위해 항상 희생된다.' 그 말대로 희생된 나의 오늘은 나의 내일을 눈부시게 빛나게 해 줄 것이다.-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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