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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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대여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번에 세 권씩 빌려다 밤을 새워 읽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등교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 갔었다. 자습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다 들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학생이 읽기에도 참 감동적이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감동을 느끼고 싶어 작년에 <아리랑>을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이번에도 역시 눈물 글썽이며 밤을 새워 읽었다. <태백산맥>은 올해 읽어야지 다짐했다. 그 후, <한강>을 읽어야지 계획하고 모두 구입해 놓았다. 그 만큼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이 좋았고, 감동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얼마 전, 조정래 작가님의 <황토>가 재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두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읽게 되었다. 중편이었던 <황토>가 37년만에 장편소설로 태어났다니 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그 만큼 좋은 작품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야기는 주인공 점례의 작은 아들 동익이의 겨울산 등반 조난 사고 소식으로 시작된다. 점례는 무서운 경찰서에 혼자 가기가 두려워 큰 아들 태순에게 전화를 하지만, 태순은 "피는 못 속여요. 인디안을 개 잡듯 한 그 살인자들의 피가 동해서 그 자식이 그따위예요"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일본인의 피가 흐르면서 그런 말을 서슴치 않는 아들에게 모욕감을 느낀 점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전개 된다.




 일제 말기에 점례는 억울하게 잡혀간 부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순사의 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들 태순을 낳게 된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 순사는 점례와 태순을 버리고 모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때 점례의 나이 열 아홉. 홀로 된 점례의 엄마는 태순은 자신이 키우기로 하고 멀리 사는 이모를 대동해 점례를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게 된다. 점례를 이뻐하고 살뜰히 챙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농민을 해방시키겠다며 인민군이 되어 나타났다.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어지자 곧 돌아오겠다며 두 딸과 점례를 두고 야반도주를 한다. 점례는 공산당이 된 남편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가고, 젖 먹이 세진과 모진 고초를 겪다 풀려 나지만 결국 어린 딸을 잃고 만다. 그 후 자신을 걱정해 주고, 어린 딸을 병원에 데려다 주던 선의를 가장한 미군에게 겁탈 당하여 결국 동익을 낳게 된다.




 일제 시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여자가 아닌 어머니로 살아야 했던 점례는 세 남자, 세 나라에 버림을 받으면서도 결국 어머니였기에 그 어려움과 역경을 다 이겨 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의 민족이 어떻게 가정을, 이 나라를 지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편과도 같다고 생각 된다. 왜 나라를 빼았겼는지도 모르고, 종놈살이를 하면서 나라 다스린 남자들은 따로 있다는 말을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는 세상에서,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3·8이남은 미군에게, 3·8이북은 소련군에게 점령 당해 우리 민족이 반토막 난 채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녀는 아니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만 똑바로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다거나 신세가 박복하다는 비탄이나 탄식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어서 당하게 된 일었기 때문이다.




 점례는 딸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긴다. 내가 남긴 재산 중에서 세연이 네가 법에 있는 장남 몫을 차지하고, 태순이하고 동익이는 시집간 큰딸 · 작은딸한테 가는 것만 주면 된다. 라고... 그 다음 줄부터는 자신이 살아온 평생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쓰기로 했다. 그녀의 일기가, 그녀의 유언이 우리의 역사로 남겨질 것이다.




- 눈을 크게 뜨고 이 세상을 봐. 넌 너일 뿐이야. 이 세상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천박함이고 야비함일 뿐이야. 넌 누가 뭐라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면서 꿋꿋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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