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시적이고 표지가 맘에 들어서 전부터 눈독들이던 책이다.
모리 에토.. 심지어 저자의 이름까지도 왠지 음악적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저자의 이력 소개를 보는 순간 나에게 저자의 또 다른 책이 있다는 걸 깨닫고 기분이 좋아졌다.
'컬러풀', 얼마전 고모에게 빌려온 책이었는데, 또 다른 저자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책을 덮고,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어도 기뻐서 웃음이 났다.
 
이 책에는 6가지의 단편이 실려있다.
하나같이 특이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솔직히 세번째 이야기인 '수호신' 의 주인공의 심리와 네번째 이야기인 '종소리' 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오만한 집착은 그대로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에 그렇게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실수를 비웃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들과 천천히라도 깨달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다섯번째 이야기인 'X세대' 는 순수한 열정에 대한 완성이었고, 무척이나 공감도 되었다.
 
십년전, 친구들과의 야구모임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시쓰.
그런 그의 열정을 보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자신의 열정도 되살리는 겐이치.
그런 둘의 마지막 대화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우리, 언제까지나 그런 바보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10년 전에 그렇게들 얘기했습니다. 그야 물론 세월이 10년 정도 흐르면 다들 일도 할 것이고,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아이까지 있을지도 모르죠. 중요한 일도 많아지고, 책임도 방해물도, 아무튼 온갖 것들이 많아질 테지만, 그래도 10년에 하루쯤, 모두 모여 동네 야구를 즐길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고, 10년에 하루 정도는 야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바보스러움을 유지하고 싶다고, 우리는 그런 얘기를 했더랬습니다." - p.317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 없는 친구들, 그렇게 그립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도 내 맘은 그대로인데 무언가 어색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슬퍼진다.
내가 결혼하면 더 만나기 힘들꺼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게 사실일지라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그래서 온갖 우여곡절로 힘들어도 현실의 모든걸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려는 이시쓰와 친구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문득, 나도 그런 약속을 친구들과 한다면 나도 이시쓰처럼 그렇게 지켜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모두가 변해도 나와 내 친구들은 한결같기를 바라는건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함께이고 싶다.
이시쓰와 친구들처럼...
 
첫번째 이야기는 최고의 케이크를 만드는 히로미와 그런 그녀를 동경하는 야요이의 이야기다.
야요이도 원래의 꿈은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작은 자신의 가게를 갖는거였지만 히로미의 케이크의 반해, 케이크를 만들기보단 그런 그녀의 맛있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돋보이게 해주는 그릇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꿈까지 접고서 남의 뒤치닥거리나 하느라 자신의 생활은 엉망이 되는 그녀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꿈을 버린게 아니라 새로운 꿈을 갖게된 것 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괜찮은거 같다. 그저 자신의 꿈과 행복이 뭔지 아는 그녀가 부러웠다.
이리저리 삶에 치이고 힘들더라도 그게 자신의 꿈과 행복을 위한 과정이니까 견딜 수 있고 보람있는 일이니까...
그녀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것이다.
 
오로지 케이크밖에 모르는 야요이는 가게 주인의 관심사가 폭넓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 무질서함이 꺼림칙하기도 했다. 가게 앞에는 과연 작은 새가 네 마리, 두 마리씩 쌍으로 들어 있는 새장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새장에 갇힌 새' 에서 연상되는 비참함은 조금도 없었다. 작은 새들이 오히려 느긋하고 행복해 보여, 그 역시 왠지 꺼림칙했다.  - p.30
 
그녀는 그렇게 '새장에 갇힌 새'가 모두 불행한건 아니라고, 그 편견을 깨는 생각을 가르쳐 주었다.
 
두번째 이야기, '강아지의 산책',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우리에게 버림받은 떠돌이 개들을 돌보기 위해 술집에 나가는 에리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녀의 '하루 800엔'의 기준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녀만큼 확실한 기준도 없이 하루하루 낭비하며 살아가면서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오히려 묻고싶다.
 
에리코를 비난하는 책 속의 남자같은 사람들은 우리 곁에 많이 있다.
우리 아빠를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아빠 역시 그 남자와 같은 말을 했었다.
 
"세상에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개를 위해 저러다니 참 우아하군." (p.90) 시간이 남아도나보다고 덧붙였었지.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 나는 아무런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말씀도 틀린 말이 아니라 생각되었고, 또 내가 사람이나 개를 위해 무언가 행동할 여력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개를 돕지 말자고 생각하는건 아니었기에 조금 답답했었다.
지금은 그저 에리코의 말대로 이건 인간의 우열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관심의 문제(p.88) 라는걸, 나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라크에 잡혀갔다 풀려난 일본인 세 명의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교회사람들이 그렇게 잡혀가서 맘 졸였던 일이 기억이 났다. 정부가 위험해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굳이 가서 잡혀간 그들이 유명해지고자 하는 심리로 그런거라며 멋대로 행동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왜 우리가 낸 세금을 낭비해야 하는가?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때 이런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에리코의 질문이 나에겐 참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하고는 무관하다고 외면하면 그만인 누군가와 어떤 일을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이 있던가? - p.106
 
이 주제는 마지막 이야기이자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인 아름다운 제목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에서 강렬하게 나타난다.
아름다운 제목만큼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였다.
난민들을 돕는 UN 기관에서 일하게 된 리카는 상관인 에드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지만 그들이 정말 행복하게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에드는 현장에 나가 직접 난민들과 호흡하는 일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해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한 소녀를 구해내고 죽어버린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그건 바로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을 뜻하는 거였다.
리카는 에드가 죽기 전, 이혼을 했다. 항상 밖으로만 나가는 에드를 끝까지 이해해 줄 수 없어서...
그녀는 에드가 사랑했던 그곳을 '적' 으로 생각했다. "내게서 에드를 빼앗아가는 적." (p.366)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리카처럼은 함께하고자 더 이해해보고자 노력도 않고 그저 불평만 해댔었다.
그와 내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나도 그녀처럼 '적' 으로 생각하고 더 거부하고 미워했었다.
그래서 결국 난 그에게서, 그 상황에서 도망쳤는데, 리카는 이제 당당히 에드의 삶을 받아들인다.
나는 언제쯤 도망가는 걸 멈추고 리카처럼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적어도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한 내 삶의 기준만이라도 갖게 될지 조금 불안하다.
 
나를 나로써 존재하고 살게 만드는 나만의 기준, 리카처럼 용기가 필요한 위대한 기준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야요이나 이시쓰처럼 나와 내 친구들의 작은 행복을 위한 기준을 찾고 싶다.
정말이지 나를 울고 웃게 한 가슴 따뜻한 여섯 편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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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리 홀 원작,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박선영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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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연이어 본 책들이 자꾸만 날 울리다니... 게다가 이 책은 빌리려고 했던 책도 아니었는데 영화를 본 반가운 맘에 집어든 책이
나를 이렇게 펑펑 울리다니...
책을 읽을 때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듯 해서 음악을 잘 듣지 않는데 요즘 좋아진 '주걸륜' 의 노래와 함께 읽은 이 책은 정말이지...
주걸륜의 목소리 자체가 약간 슬픈 음색이라 빌리에게 더 몰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빌리가 처음 춤의 즐거움에 빠졌을 때나 슬픈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던 때, 특히나 발레선생님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 그리고 사실은 아빠도 빌리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학교를 오가는 다리에서 친구 마이클에게 춤을 보여주며 반짝반짝 빛나던 빌리를 보았을 때, 할머니, 아버지, 친구 마이클, 마을 사람들, 심지어 형 토니까지도 조지를 위해 모금을 할 때, 처음으로 조지가 펑펑 울던 날이나, 바닷가로 뛰어나가 파도소리를 들며 맘을 달래던 일, 아버지 앞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춤을 보여주던 일, 시험에 합격하고 너무나 기뻐 울먹이던 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상하던 빌리까지.. 그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생각이 나고 기뻐서 때론 슬퍼서 펑펑 울었다.
 
나는 사실 영화를 거의 마지막 부분밖에 보지 못했다. 마을회관에서 친구 마이클과 춤을 추다가 아버지에게 걸렸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춤을 보여주던 모습, 그 부분이 내가 빌리를 처음 만난 부분이다.
나는 그때 꼬마남자아이 빌리의 춤에 빠져서 채널을 돌리지도 못한채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보았다.
그래서 빌리가 입었던 줄무늬 셔츠의 내력이나 '철의여인 대처수상' 과 탄광촌의 대립으로 인한 파업의 아픔, 마지막에 빌리가 주인공이었던 '백조의 호수' 공연의 이상한 점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때 나는 오로지 웬 남자아이의 아름다운 춤, 신나는 점프에만 홀딱 빠져있었던 것이다.
'백조의 호수' 가 원래 여자 발레리나들의 공연이고,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남자들의 파워있는 '백조의 호수' 공연으로 내 흥미를 끌었던 그 공연이 바로 빌리가 했던 공연을 말한다는걸 오늘에서야 알게된 것이다.
 
빌리는 춤추는 걸 좋아한다.
탄광파업 때문에 먹고 살기도 힘들어지고 발레보다는 남자는 권투라고 생각하는 광부의 집에서 태어나 자란 빌리지만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았나보다.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발레에 빠져 걸리면 혼날 것을 알면서도 발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할머니만이, 그리고 우아하면서도 강해보인다며 빌리를 응원한 친구 마이클로 인해 빌리는 계속해서 열심히 춤을 춘다.
그런 빌리를 아버지와 특히 형 토니가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빌리를 이해해주게 된다.
계속 아버지가 말하던 우리 빌리..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말주변이 없는 아버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표현이었으니까..
 
"조지, 나는 그애가 무엇이든 상관없네, 그애는 우리 빌리일 뿐일세. 그거면 충분해. 나는 그애가 설사 호모 짓을 한다 해도, 그애는 우리 빌리일세."  p.231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싸움을 보자. 그것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고, 지역사회를 위한 싸움이다. 또한 나와 토니의 일자리가 걸린 싸움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빌리를 위한 싸움일까? 사오백 미터 지하에 들어가서 석탄을 파내는 빌리를 상상해 본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검은 땀방울...... 결코 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그애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뒷바라지뿐인데, 지금은 그조차도 할 수 없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올지 어떨지도 모르겠다. - p.30~31
 
그애가 루돌프 누레예프라고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래선 안될 일이었다. 다시 말해 빌리가 발레 무용수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면, 그리고 그애가 정말 발레 무용수가 되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무슨 방도를 찾아 줘야 했다. 나는 그애의 아버지다.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그렇지 않은가? - p.194~195
 
아버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왔을때 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낸다. 빌리를 위해 형 토니를 설득하고 동료들을 배신하면서도 탄광에 일을 하러 간다. 빌리가 합격하지 못할것 같은 두려움에 울 때도 꼭 춤을 출 수 있게 해줄꺼라고 위로해주고, 시험에 합격해 런던에 가게 되어 새로운 곳에 혼자가게 된다든 두려움으로 긴장했을때도 용기를 준다. 
영화장면도 그렇지만 두 부자가 경찰들 사이에서 만나 눈물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할것이다. 빌리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속삭이며 울음을 삼키던 아버지의 모습을...
빌리 엘리어트 영화는 그 영화로서도 감동적이지만 책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번갈아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과 저마다의 방법으로 빌리를 아끼는 마음들을 볼 수 있어서 말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난 춤을 추었죠.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난 춤을 추었죠.
그렇게 일찍부터 춤추는 게 이상한가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난 춤을 추었죠.
- p.15
 
그렇게 소년은 결국 날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또 울었다. 사실, 지금까지 말한 장면 중 울지 않은 장면은 하나도 없다.
내가 너무 눈물이 헤픈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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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08-04-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의 마음이 영화보다 더 잘 드러나죠.. 저도 토니와 아빠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답니다^^

미니반쪽 2008-04-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맞아요..저도 정말 사실은 혼내기만 하던 아빠 맘이 이랬구나..해서 특히 많이 감동받고 울었어요^^

pw0607 2008-04-2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역시 책을 통해 감동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신기하고 벅찬 일입니다 ^^
 
홍당무
쥘 르나르 지음, 연숙진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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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이 불쾌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은 뭐지?
학대받는 아이의 이야기치고는 <홍당무> 는 약간 이상한 책이다.
과장되고 왜곡되고 그렇지만 그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 홍당무 이야기는.. 뭐랄까 내가 생각한 학대받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쩔 때는 분명히 홍당무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이해가 안되기도 하는 이 모순된 감정...
읽는 동안 내내.. '이게 무슨..'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오! 맙소사' 이같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며 읽었다
 
홍당무는 못생겼다.
저자의 설명으론 그러하다. 그래도 단순히 못생겼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무언갈 열심히 해도 칭찬보다는 꾸중을 더 많이 받는 홍당무.
어두운 밤에 용기를 내어 닭장 문을 닫고 돌아왔더니 앞으로 계속 닭장 문 닫는 일을 하라는 어머니,
형의 실수로 형의 곡괭이에 이마를 찧어 아파도 오히려 형을 기절시켰다고 혼나고 형이나 누나의 놀림이 되는건 너무 흔한 일이다.
그렇게 가정에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다보니 동물들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선생님에 대한 애정을 비뚤어지게 표현하기도한다.
글쎄, 그렇더라도 왜 이렇게 안타깝다는 기분보다는 구역질나는 기분이 드는지..
홍당무에게 사과를 해야하나. 그의 말대로 비극이 너무 희화화되고 과장되다 보니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날만큼 익숙해져 그런가보다.
이렇게 익숙해지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닌데 말이다.
 
"야! 이 더러운 녀석아, 네가 뭘 먹은 줄 알고나 있니? 어젯밤 네가 싼 거라고."
"그런 것 같았어요." 홍당무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홍당무는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해 있었다. 뭔가에 익숙해지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법이다.
- p.24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바빠서 신경을 써줄 수가 없고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아버지...
아버지와 홍당무가 주고받은 편지글이 중간에 나오는데 뭐랄까.. 이 아버지는..
엄청난 유머감각의 소유자라고 해야할지, 다분히 현실도피적인건지...
아무튼 뭔갈 해주고는 싶은데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식사내내 조용한 분위기로 하녀마저 당황하게 만들고, 사냥과 일로 밖에만 돌아다니는 아버지
그가 마지막에 홍당무에게 현실과 행복에 대해 충고해 주는 부분은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것도 있겠고
그냥 현실에 수긍하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홍당무도 어찌보면 그런 상황에 적응하고
아버지의 현실순응적 기질을 조금은 이어받은것 같다. 마지막에 변화시키려는 시도? 어떻게 될지는 이제 아무도 모르겠지.
다 자란 홍당무가 궁금하기도 하다. 과연 홍당무는 그가 바라던 행복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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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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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나리가 주인공이라니 좀 더 격식에 맞춰 인사를 올려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일반 귀족다운 면모를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도로시 L. 세이어즈 의 처녀작인 <시체는누구?> 의 주인공은 영국 귀족인 피터 윔지 경이다.
그는 영국의 명문가의 둘째아들로 보통 귀족들다운 언사와 취미보다는 다소 다른 취미를 즐기고 있었는데
바로 탐정일이었다.
그밖에 그가 좋아하는 일은 귀한 고서를 모으는 일, 홈즈를 흉내내는 일, 어머니와 대화하기 등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중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바로 수다떨기인 듯 하다.
 
작가의 다른 책은 보지 못해서 그것이 그녀의 일반적인 서술방법인지 아니면 피터 경의 특징을 수다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엔 후자같다. 책 속에서 피터 경과 그의 어머니의 사이는 매우 돈독한데 그의 어머니도 조금 수다스럽다.
그의 수다는 가끔은 재밌기도 하지만 대부분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어 조금 산만하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정보는 끝까지 혼자만 알고 있는 기존의 추리소설의 방식을 따른다.
 
"이건 오래된 사슬이 아냐. 전혀 닳지 않았지. 아, 고맙네, 번터. 자, 여기 보게, 파커.
자네가 어제 창틀과 욕조 맨 가장자리에서 찾아낸 지문이 있군. 나는 그건 못 보고 지나쳤는데. 이걸 발견해 내다니 다 자네의 공일세. 자네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겠군.
내 이름은 왓슨이야. 지금 막 입 밖에 내려던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네. 나도 모두 다 인정하니까, 자 이제 우리는...... 오호, 오호, 오호라! - p.86
 
왜 탐정은 항상 친구, 혹은 조수와 사건을 풀어가면서도 끝까지 정보를 말해주지 않을까?
물론 소설의 형식상 그런 것일테고 신중한 수사를 하기 위함일테지만 읽는 나로서는 매우 답답하다.
중간에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인가? 하다가도 금방 다른 곳으로 나를 몰고갈때면 더욱 그렇다.
피터 경의 추측을 뒷받침한 손님 피곳의 말처럼 나도 묻고 싶다.
"내 말은 피터 경이 약간 똑똑한 겁니가, 아니면 내가 약간 멍청한 겁니까?" (p.287)
나는 빨리 범인이 알고 싶은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책을 다 읽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리고 이 책에서는 범인이 누구인가? 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시체가 누구인가? 의 문제라는 점이 다른 점이다.
범인을 찾는 건 그 나중 문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연결될 듯 연결되지 않는 사건이 두 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시체의 정체만 알게 되면 범인은 손쉬울 정도로 금방 밝혀진다.
한 마리 토끼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났고, 다른 토끼는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감추었으니. (p.149~150)
이 책에서 일어난 두 사건의 특징을 정말 잘 집어낸 피터 경의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내가 존경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견줄만한 추리소설의 대가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와도 친분이 있다고 하는데
왜 그만큼 그녀의 책이 많이 번역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와 같은 시대의 고전 추리 문학을 더 다양하게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을텐데...
그 당시 고전추리문학은 비슷하면서도 훌륭하며 작가마다의 다른 특징을 찾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피터 경은 고서를 좋아하고, 인용구를 자주 인용하는 등 특히 문학적 지식이 뛰어난 저자의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다.
 
이제 피터 윔지 경이 그 위대한 첫 발을 내딛었다는 책 소개 문구처럼 다른 책들도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은 조금 산만한 점이 있지만 처녀작이니만큼 앞으로 보다 더 세련되지고 재미있는 피터 경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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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재밌는 소설을 많이 읽긴 했지만 눈물을 몇 번이나 흘릴뻔하며 읽는 책은 조금 오랜만이라 더 기뻤다
나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책 속의 수녀님들은 나에게 너무나 친숙함을 안겨주었다.
처음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안느 수녀를 대하며 거부감을 느끼던 것과는 반대로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두 수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녀들이 마약상인으로 오해받아 죽을뻔할땐 나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또 위험하고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콜롬비아의 매력에 빠져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그녀들의 낙천성과 대범함에 나도 얼마나 마음뿌듯했던가..
게다가 드디어 그녀들이 무대 위에서 수백의 거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공연까지 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 유쾌해졌다.
그네들이 그녀들이 수녀란걸 알면 얼마나 깜짝 놀랄까...후훗 
  
 

수녀원을 살려라

 
평화롭고 조용한 프랑스 시골의 생 줄리앙 수녀원, 마음씨 착한 수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그녀들에겐 문제가 있다. 비새는 성당 지붕을 수리할 돈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세계 최고의 초콜릿을 뽑는 대회에서 생 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이 '황금 카카오' 상과 상금을 받으면서
수녀들은 백년전부터 만들던 수녀원의 자랑인 초콜릿을 다시 만들기 위해 그 재료인 카카오를 구하러 콜롬비아로 가게 된다.
바로 이 막중한 임무를 차기원장수녀 내정자인 안느 수녀와 수련수녀 자스민이 맡게 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기예메트 수녀 대신 세상에서 도망쳐 수녀가 되겠다고 찾아온 자스민이 떠나게 된 것이다.
여행 첫날부터 삐걱대는 안느와 자스민, 그리고 그녀들을 쫓는 추격자.
과연 그녀들은 무사히 콜롬비아에 도착해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를 구해 수녀원을 살릴 수 있을까?
정말이지 그녀들처럼 매일같이 엄청난 사건사고를 겪는다면 나는 너무나 힘들어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오지로 선교활동을 떠나는 것 말고 그 누가 수녀님들이 이런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될꺼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나는 정말 이 특이하고 용감한 수녀님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산 넘어 산, 끝임없는 시련 뒤, 강해지다.
 
안느 수녀는 차기수녀원장 내정자였다. 그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본인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황당무계한 상상을 자주 했는데, 이를 비밀로 했다. 차기수녀원장으로서 위엄때문이었다.
 
그녀는 폭풍을 뚫고 전진하는 용감한 선장이나 영혼을 구제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무적함대의 함장을 꿈꾸었던 것이다.
때로는 대담한 여전사가 되어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면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지상의 악을 무찌르는 현대판 잔 다르크라고나 할까.
- p.54
 
여행을 떠나는 첫날, 안느 수녀는 자신감과 책임감, 그리고 수련수녀를 돌봐야한다는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하지만 여행이 고달퍼짐에 따라 나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수련수녀인 자스민에게 잘못을 떠넘기기도 하며, 상상 속에선 용감하던 자신이 현실에선 부끄러운 모습이나 보이는 것에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책은 잠시, 자신과는 다르게 어떤 상황에서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자스민에게 괜한 트집과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안느는 자스민이 그녀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적응력, 어디서든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점들로 미루어 신을 져버리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고말꺼라며 자스민을 자주 다그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혼란스러워하던 안느는 결국 여행중 만난 신부에게 (가짜신부지만 그당시 안느는 이를 몰랐다.) 자스민의 젊음을 질투한 자신의 나약한 성격과 부족한 신앙심에 대해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된다.(p.296)
자스민을 다그쳤던 안느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일지 짐작하게 되었다.
 
자스민은 어떤가. 나는 그녀의 불행한 과거이야기를 들을 때 눈물이 났다. 그녀는 그렇게 고통 속에 세상을 등지고 수녀원을 찾았다.
처음부터 안느수녀보다 콜롬비아에 가는걸 두려워했던 사람은 자스민이었다.
그런 그녀가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오히려 더 강해졌다. 때론 두려워하는 안느 수녀를 달래주고 기지를 발휘해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국적이고 열정적인 콜롬비아의 소소한 모습 곳곳에서 경외심을 느끼고, 그때마다 신에게 감사한다.
 
'오히려 우리를 멀리 보내려 했던 그 남자한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 덕에 아마존 밀림에도 와보고. 
여긴 정말 멋진 곳이야. 길거리의 멍멍이들조차 사랑스러워. 보고타에서 본 사나운 녀석들하곤 전혀 다르잖아?'
- p.165   
 
그래도 아무리 그녀들이 강하고 낙천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모습까지 보여도 하루도 빠짐없이 고난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 역시 마음이 바짝바짝탄다. 
  
 
고난의 끝, 결국 모든 문제의 답은 사랑이다.
 
수녀원에서 콜롬비아로 카카오 열매를 구하러 떠난 수녀는 그들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끝에는 백년전 초콜릿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 수녀님에 대한 비밀이 있었다. 또 다른 수녀들에게도 비밀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여행을 함께 한 안느와 자스민에게도 비밀이 생겼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또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며 콜롬비아에 도착했지만 둘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그래서 힘들어한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마음의 고통이었다.
단조롭다고 하면 단조로운 수녀원의 일상보다 생생한 콜롬비아로의 여정 동안 그들은 분명히 변하고 많은걸 느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의 고민은 당연한거였고, 아프지만 행복한 결정을 내려야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선택은 예전의 수녀님들이 그랬듯 비밀로 간직될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그 대상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분명 사랑이었다. 아마 그녀들은 그 사랑 속에서 진정으로 찾던 무지개를 찾은걸 테지.
 
그녀에게 힘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리.'
 - p.214 
  
 
끝, 또 다른 시작
 
수녀원에 다시 돌아온 안느 수녀는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어. 모험도, 말 타기도, 그리고 위험했던 순간들도.' - p.383
 
나도 점점 얇아져가는 책의 두께만큼 곧 이 매력적인 수녀들과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쉬웠다.
몇번이나 그녀들 때문에 울고 웃었는데...
하지만 곧 안느와 자스민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시작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 모험들로 가득차게 될까.
책장을 덮으며 괜히 내가 더 두근두근거렸다.
 
지금 인생이 힘들고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으며 끝없는 고난을 겪었던 두 수녀를 기억해보자.
그리고 다음 원장 수녀님의 말씀을 새겨둔다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행복의 무지개는 여러분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것을 색으로 나타낸, 뭐라고 할까요. 일종의 팔레트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되돌려주시는 것이지요. 좋은 마음뿐 아니라 견디기 힘든 것들까지. 하지만 무지개는 항상 아름답고 늘 영롱하게 빛나지 않습니까? 비바람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나 무지개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열심히 찾아보세요.
- p.65~66
 
우리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길 부에나 수에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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